소설리스트

66화 (66/145)

66화

시간은 빠르게 흘렀고, 사교 시즌도 어느덧 한 달째에 접어들었다.

하지만 사람들의 대화는 여전히 끊일 줄 몰랐는데, 오늘 파티에서의 대화 주제는 조금 음울했다.

“또 변종 마물이 출현했다죠?”

“이번에는 윅스빌 영지래요.”

“전에는 그나마 핀들레이 영지 주변에서만 출현하더니, 이제는 점점…….”

“이러다가 수도까지 덮치면 어쩌려나 모르겠어요.”

“그런 소리 하지 말아요. 말에는 힘이 있다고 하잖아요.”

파티에 참석한 사람들은 제각기 안면이 있는 이들과 모여 서 있었지만, 대화 주제는 같았다.

변종 마물의 증가.

변종 마물은 말 그대로 마물의 ‘변종’이었다.

변종 마물은 기존의 마물보다 더욱 끔찍한 외형을 지녔으며, 독 안개를 흩뿌리거나, 불꽃을 만들어 던지는 등 하나같이 기괴한 능력을 지녔다.

정령사들을 동원하여 변종 마물의 사체를 연구해도 변화의 원인이 모호한 상황.

사상자는 늘어날 수밖에 없었고, 황실에서 주기적으로 기사들을 파견하여 변종 마물을 처치하고 있었으나 그 빈도가 점점 잦아졌다.

급기야 하루 전, 변종 마물 떼가 윅스빌 영지의 마을 하나를 산 채로 씹어 삼켰다는 흉흉한 소식이 들려왔다.

사람들이 불안에 떠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었다.

“변종 마물 중에는 맹수의 부리를 가지고, 초식 동물의 꼬리를 가진…… 그런 것들이 많대요.”

“꼭 미친 학자가 생명을 창조하겠다며 시체를 기워 붙여 괴물을 만들어 냈다던 옛이야기 같네요.”

“세상에, 끔찍해라.”

“이래서야 건국제가 끝나고 나서 수도를 벗어나기가 조금 무섭…….”

“어머, 저기 좀 보세요.”

“3황자 전하 내외께서 오셨네요.”

우울한 대화는 새로운 얼굴의 등장으로 인해 잠시 끊어졌다.

사람들은 케이든과 디아나가 들어오자 누가 먼저랄 것 없이 그들을 바라보았다. 몇몇 이가 작게 탄성을 냈다.

“어쩜, 두 분께서는 갈수록 아름다워지시는 것 같네요.”

“사랑을 하면 아름다워진다잖아요.”

최근 케이든과 디아나의 외모는 문자 그대로 ‘물이 올랐다’라는 표현이 적절했다.

그리고 그것은 최근 본격적으로 입지를 넓혀 가기 시작한 케이든에게 날개를 달아 주었다.

때에 따라 유쾌함과 진중함을 오가는 성격, 황족과 귀족을 가리지 않는 정중한 태도, 거기에 눈을 의심하게 만들 정도의 수려한 외모까지.

현재 케이든은 귀족들이 대화 한 번이라도 나누어 보려 안달하는 존재였다.

설령 그가 황제가 되지 못한다고 해도, 선량한 태도와 매력적인 외모는 사람들의 호감을 사기 충분했으므로.

케이든은 들어오자마자 아는 얼굴을 발견하고 인사를 건넸다.

“또 보는군, 옐링 소공작.”

“피오나 옐링이 3황자 전하, 3황자비 전하를 뵙습니다.”

“……세드릭 하이에른이 3황자 전하, 3황자비 전하를 뵙습니다.”

피오나와 세드릭이 나란히 화답했다.

세드릭은 사람들의 시선이 닿지 않는 곳에서 지그시 입술을 깨물었다.

‘또…….’

고개를 숙인 그가 눈만 힐끔 들어 케이든과 디아나의 어깨너머를 살폈다.

그곳에는 어김없이 반듯한 자세의 안타르가 서 있었다.

세드릭은 애써 웃는 얼굴로 고개를 들었다. 그가 억지웃음을 지어 보이며 말했다.

“최근 들어 굉장히…… 자주 뵙게 되는 것 같습니다.”

“그러네. 인연인가?”

안타르와 더불어 부쩍 피오나와 친밀감을 키운 디아나가 그녀를 보며 생긋 웃었다.

물론 속내는 달랐지만.

‘내가 뮈젤에게 피오나와 세드릭이 함께 참석하는 파티를 전부 알아 오라고 했으니까, 당연한 일이지.’

디아나는 피오나의 주의를 돌리고 세드릭을 자극하기 위해, 일부러 두 사람이 참석하는 파티만 골라 참석하고 있었다.

물론 디아나가 굳이 의견을 내지 않아도, 피오나 역시 한 가문을 물려받을 후계자인 만큼 열에 아홉은 케이든과 동선이 겹치긴 했다.

디아나는 태연한 표정을 한 채 옆으로 한발 물러섰다.

“그러고 보니 두 사람은 함께 식사한 적도 있었지. 그렇지 않나?”

그러자 안타르가 앞으로 한발 나섰다. 피오나가 그를 보고 반가운 얼굴을 했다.

“맞습니다. 안타르 경, 또 보네요.”

“옐링 소공작님을 뵙습니다.”

피오나가 손을 내밀자 안타르가 그녀의 손등에 가볍게 입을 맞추었다.

그가 신사적인 태도로 손을 놓는 것과 동시에 디아나가 케이든에게 팔짱을 끼며 뒤로 한 걸음 물러났다.

“우리는 다른 사람들과 인사를 나누고 있을 테니, 그동안 편하게 대화하게.”

“알겠습니다. 다녀오세요.”

“……살펴 가시길.”

피오나는 대수롭지 않게 고개를 끄덕였고, 세드릭은 그와 대조되게 간신히 이를 악물지 않고 대답했다.

이내 케이든과 디아나는 파티의 주최자를 찾아 사라졌다.

피오나는 그들이 사라지자마자 활짝 웃으며 안타르에게 말을 걸었다.

“지난번에 빌려줬던 책은 다 읽었어요? 어때요, 재밌지 않아요? 초대 옐링 공작님의 이야기도 나오니까.”

“마지막 장을 제외하고는 다 읽었습니다. 확실히 5인의 정령사 이야기는 흥미롭더군요. 초대 옐링 공작께서 정령을 다루시던 방식도 기억에 남았습니다.”

“그렇죠! 보통은 초대 빛 속성 정령사이신 데이지 블루벨 님이나 초대 불 속성 정령사이신 니오타 핀들레이 님을 두고 최강의 정령사 자리를 논한다지만, 제 가문이라서가 아니라 맥시 옐링 님이 가장…….”

피오나는 신이 나서 떠들었다. 안타르 역시 흥미로운 얼굴로 그녀와의 대화에 임했다.

세드릭은 그런 그들의 모습에 등 뒤로 주먹을 꽉 움켜쥐며 분노를 삼켰다.

그린 듯 완벽한 웃음으로 뒤덮인 얼굴 아래서 추악한 속내가 요동쳤다.

‘젠장, 젠장!’

피오나는 대지 속성 정령사를 배출하기로 유명한 옐링 공작가의 후계자, 그리고 안타르는 현재 옐링 공작을 제외하면 유일한 대지 속성의 중급 정령사.

그러한 부분 때문인지, 피오나와 안타르는 급속도로 가까워졌고, 유명한 정령사 가문 출신도, 정령사도 아닌 세드릭은 그들의 대화에 쉽사리 끼어들 수 없었다.

‘왜 하필이면 저런 놈이…….’

세드릭은 웃는 척 눈을 가늘게 뜬 채 안타르를 노려보았다.

짙은 갈색의 곱슬머리, 푸른 눈, 눈에 띄게 호남형의 얼굴, 탄탄한 몸과 큰 키. 게다가 뛰어난 능력의 대지 속성 정령사이기까지.

모든 것이 세드릭이 알고 있는 피오나의 ‘이상형’ 그 자체였다.

게다가 가장 큰 문제는 지금껏 세드릭을 제외하고는 남자에 일절 관심을 두지 않던 피오나가 안타르에게만큼은 나서서 말을 붙인다는 데 있었다.

세드릭의 머릿속에 레베카가 보냈던 쪽지의 내용이 아른거렸다.

피오나가 그에게 더욱 빠져들게 해도 모자랄 판에, 갑자기 튀어나온 천출 기사 하나가 그의 계획을 망치고 있었다.

얼마 후 안타르는 3황자 부부에게 돌아갔고, 그와 동시에 파티의 주최자가 환영의 말을 건네며 본격적인 파티의 시작을 알렸다.

세드릭은 피오나의 손을 잡고 댄스 플로어에 올라섰다. 그는 음악이 시작하길 기다리다가 조심스럽게 말문을 뗐다.

“소공작님.”

“응? 왜?”

“듣자 하니 안타르 경은 불법 격투장의 투견…… 출신이라고 하던데요. 사실입니까?”

“아아, 그렇다더라고. 3황자 전하께서 구해 주셔서 제4연대에 들어갔대.”

피오나는 대수롭지 않게 대답했다. 음악이 흐르기 시작하자 그녀는 망설임 없이 발을 움직였다.

세드릭 또한 피오나를 따라 관성적으로 발을 움직이기 시작했으나, 속내는 초조하기 그지없었다.

‘천출이라는 걸 알면서도 그렇게 가까이 지낸다고? 도대체가…….’

불안한 마음에 자꾸만 입술이 달싹였다. 세드릭은 손을 높이 들어 올려 피오나를 한 바퀴 돌리며 말했다.

“이런 말씀을 드려도 될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왜 그렇게 망설여? 걱정하지 마, 네가 말하는 중에도 내 발을 밟지 않도록 알아서 잘 피할 테니까.”

피오나가 장난스럽게 웃었다. 여전히 따스한 호의가 어린 눈이었다.

세드릭은 그 웃음에 조금 안심이 되어 과감하게 말을 이었다.

“안타르 경과 너무 가까이 지내지 않으셨으면 좋겠습니다. 그는 당신께 해가 될지도 몰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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