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63화 (63/145)

63화

“부족하나마 정성을 담아 준비했습니다. 부디 다들 즐거운 식사를 하시기 바랍니다.”

식사는 널따란 연회장에서 진행되었다.

다만 경매로 맺어진 이들은 연회장 안쪽에 거리를 두고 놓인 테이블에 앉아 따로 이야기를 나누었고, 나머지 사람들은 입구 쪽에 놓인 긴 테이블에 적당히 나누어 앉았다.

‘잘하고 있는 거겠지?’

디아나는 식사하는 내내 불안하게 안타르 쪽을 힐끔거렸다.

안타르는 누가 보아도 긴장한 기색이 역력한 얼굴로 피오나와 무어라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그는 대화에 정신이 팔린 나머지 자신이 무엇을 먹고 있는지조차 의식하지 못하는 듯 보였다.

결국 안타르는 물 잔을 집으려다가 허공을 헛짚는 바람에 무릎에 물을 쏟았다. 피오나가 놀라 손수건을 건네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저러다가 나이프에 베이거나 하지는 말아야 할 텐데…….’

디아나는 차마 더 지켜보기가 괴로운 마음에 설레설레 고개를 저으며 다른 쪽을 바라보았다.

긴 테이블의 건너편. 세드릭 하이에른은 다른 이들과 식사를 하는 사이사이 피오나 쪽을 확인했다.

그는 피오나가 안타르에게 말을 붙이거나, 그를 챙기는 듯한 모습을 보일 때마다 아닌 척 식기를 꾹 움켜쥐었다.

‘됐다.’

그것을 확인한 디아나는 조용히 미소를 지었다. 걱정이 많았는데 다행히 계획은 제대로 먹혀들어 가고 있는 듯했다.

한편, 디아나가 식사 중 자꾸 안타르를 힐끔거리더니 끝내는 미소까지 띠자 케이든이 눈을 가늘게 떴다.

‘어딜 저렇게 보는 거야.’

디아나는 정작 옆에 앉은 케이든에게는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케이든은 그 사실에 심술이 나 디아나가 안타르를 바라볼 때마다 그녀의 접시 위로 먹기 좋게 썬 음식을 하나둘 올리기 시작했다.

디아나는 습관적으로 포크와 나이프를 움직여 음식을 입에 넣으며 안타르를 살폈다.

하지만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자 먹어도 먹어도 음식이 줄지 않는 데 이상함을 느끼고 고개를 돌렸다.

“왜?”

그러나 케이든은 어느새 제 식사에 집중하는 척하며 생글 웃어 보였다. 디아나가 의아하게 미간을 좁혔다.

“케이든.”

“응, 디아나.”

“아무래도 이 접시들 중에 마도구가 섞여 있는 것 같아요. 음식이 먹어도 먹어도 줄지를 않아요.”

“큽.”

진지하기 짝이 없는 대답에, 케이든은 고개를 숙이고 웃음을 참았다. 하지만 어깨가 자꾸 들썩이는 것까지는 막을 수가 없었다.

“케이든, 혹시.”

디아나가 그 반응에 수상함을 느끼려던 차에 그가 표정을 수습하고 손을 뻗었다.

그는 디아나의 머리를 가볍게 토닥이며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그나저나 잘 먹으니까 보기 좋네. 더 먹을래?”

“……아니요, 괜찮아요.”

그 미소와 행동에 막 형태를 갖추려던 의구심이 바람에 휩쓸리듯 사라졌다.

디아나는 먹는 것까지 칭찬받고 격려받자 어쩐지 부끄러워졌다.

그때 문득 고개를 돌려 디아나 쪽을 바라보았던 안타르가 우연히 그 광경을 목격했다.

“…….”

그는 저도 모르게 식기를 움직이던 손을 멈추고 멍하니 디아나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경.”

“…….”

“안타르 경!”

“아.”

안타르는 한순간 물 안에서 물 밖으로 머리를 내민 것 같은 감각에 퍼뜩 정신을 차리고 고개를 돌렸다.

그의 맞은편에 앉아 식사를 하던 피오나가 의아하게 고개를 기울였다. 그녀가 제 등 뒤를 살피며 물었다.

“어딜 보고 있던 거예요?”

“아, 아무것도 아닙니다. 그보다 뭐라고 말씀하셨습니까?”

세드릭은 피오나가 제 시선이 향했던 곳을 눈치채지 못하게 하기 위해 급하게 말을 돌렸다.

그러자 피오나는 눈을 가늘게 뜨고 그를 바라보더니, 곧 대수롭지 않게 어깨를 으쓱였다. 아무래도 그냥 넘어가 주겠다는 뜻인 듯했다.

‘다행이다.’

안타르는 속으로 안도의 숨을 삼켰다. 피오나가 장난스러운 미소를 띠고 말했다.

“평소 같았으면 다시 안 말해 줬을 텐데, 그래도 경은 왠지 몇 번 얼굴을 본 친구처럼 느껴지니까 다시 말해 줄게요. 나는 사실 경이 조금 부러워요.”

“……예?”

안도했던 것도 잠시. 안타르는 이어진 피오나의 말에 놀라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도 그럴 것이 피오나는 옐링 공작가의 하나뿐인 후계자였다. 그런 그녀가 천출에 일개 기사 나부랭이를 부러워할 이유가 어디 있단 말인가.

하지만 피오나는 스테이크를 썰며 씁쓸하게 말문을 뗐다.

“경께서는 대단한 실력을 지닌, 대지 속성의 중급 정령사이시죠.”

“그렇게까지는…….”

“하지만 저는 초대 대지 속성 정령사의 피를 이은 가문의 후계자임에도 하급 정령과의 계약조차 실패했거든요.”

어조는 가벼웠으나 그 안에 담긴 내용은 무거웠다. 안타르는 무어라 답해야 할지 몰라 그저 입을 다물었다.

피오나 역시 딱히 답을 바란 것은 아닌 듯 말을 이어 갔다. 어차피 스쳐 지나갈 관계라 생각하니 오히려 편하게 속내를 꺼내 놓을 수 있었다.

피오나는 웃을 내용이 아님에도 입꼬리를 올리며 어깨를 으쓱했다.

그녀는 어떨 때는 놀랍도록 소녀 같은 모습을 보였지만, 또 이럴 때는 굉장히 나이가 많은 이처럼 행동했다.

“그래서 제가 옐링 공작위를 물려받아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많아요. 뭐, 사실 당연하죠. 정령사 가문의 수장이 정작 하급 정령조차 다루지 못한다니. 나 같아도 우습다 비웃었을…….”

“아닙니다.”

그때 안타르의 단호한 목소리가 피오나의 자조를 끊어 냈다.

피오나는 저도 모르게 움찔 말을 멈췄다.

안타르는 식기마저 손에서 내려놓고 진지한 눈으로 피오나를 바라보았다.

늘 탁하던 푸른색의 눈이 드물게도 선명히 빛났다. 그만큼, 지금의 그는 진심이었다.

“제가 황궁에 머물렀던 기간이 그리 긴 것은 아니지만.”

“…….”

“그럼에도 저는 옐링 소공작에 대한 많은 이야기를 접할 수 있었습니다. 소공작님께서 영민하시다는 것은 모두가 알고 있는 사실입니다.”

피오나는 분명 정령을 다룰 수 없음에도, 특유의 비상한 머리와 재치 있는 화술로 사람들의 마음을 샀다. 그것은 분명 대단한 일이었다.

안타르의 입에서 나오는 말들은 예법이라는 껍데기를 쓰지 않았기 때문에 직설적이었고, 그랬기에 더욱더 ‘진실’처럼 들렸다.

낮은 목소리가 피오나의 마음에 잔잔한 파문을 일으켰다.

“그리고, 이런 말을 해도 될지는 모르겠지만 제국법에 정령사가 아닌 자는 가주가 될 수 없다고 쓰여 있는 것도 아니지 않습니까. 그런 소리는 들어 본 적이 없습니다.”

“그건…… 그렇죠. 모두가 암묵적으로 그렇게 여겨 왔던 거니까.”

“그러니 소공작님께서 꼭 공작위에 올라 주십시오. 그것이 이후에 있을지도 모르는, 정령사가 아닌 후계자들에게는 분명 희망이 될 겁니다.”

그 말에 피오나가 조금 멍한 표정을 지었다.

안타르는 한발 늦게 자신이 지나치게 말조심을 하지 않았나, 혹은 피오나의 심기를 거슬렀나 싶어 창백한 얼굴로 입을 다물었다.

그렇게 피가 마르는 듯한 몇 분이 지나가고.

피오나의 얼굴에 서서히 미소가 떠올랐다. 그녀가 끝내 피식 웃음을 흘리며 테이블 위로 팔을 올려 손에 턱을 괬다.

그녀는 안타르의 모습을 물끄러미 살피더니 불쑥 내뱉었다.

“사실, 경의 겉모습만큼은 정말이지 내 이상형에 가깝거든요.”

“……예?”

“아, 오해하지는 말아요. 그런데도 이성적으로는 전혀 끌리는 느낌이 없어서 신기한 참이었으니까. 아무튼, 그래서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안타르는 너무 놀란 나머지 순간적으로 물을 뱉어 낼 뻔했다.

피오나는 또다시 그의 바지가 젖는 일을 막아 주고는 빙긋 웃었다. 그녀가 테이블 위에 놓인 꽃다발을 가리켰다.

“꽃, 좋아해요?”

“……좋아합니다.”

갑작스러운 물음이긴 했지만 안타르는 착실히 대답했다.

경매에 내놓을 물품을 정해 준 것은 디아나였지만, 그의 답은 진실이었다.

그는 비타스에서 괴로워하던 때에도,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피어 있는 작은 들꽃을 보고 웃음 짓던 사람이었으니까.

안타르의 대답을 들은 피오나의 얼굴에 꽃 같은 미소가 활짝 피어났다.

“합격!”

“예?”

“그럼 나랑 친구 하는 거예요. 알겠죠?”

“그, 예?”

“앞으로 오며 가며 보면 인사해요. 아, 말도 편하게 할까요? 몇 살이에요?”

안타르는 뒤늦게 사색이 되어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하지만 결국 피오나의 기세에 밀려 말은 놓지 않되, 서로 이름을 부르는 친구 사이가 되기로 약속했다.

‘……친구.’

그 단어를 입 안에서 굴려 보자 어쩐지 마음이 수런거렸다.

비록 목적이 있기 때문에 그녀와 얼굴을 마주했으나, 실제로 만나 본 그녀는 생각보다 더 좋은 사람이라서.

그래서 이제는, 안타르 자신의 의지로 그녀의 죽음을 막고 싶어졌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