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62화 (62/145)

62화

디아나가 노리는 것은 바로 그 한 번의 식사 자리였다.

청보랏빛 눈이 티 나지 않게 피오나 쪽으로 향했다.

피오나와 세드릭은 리를 회장이 물품의 낙찰을 알릴 때마다 박수를 치며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거의 다 보석 장신구, 아니면 나무 조각품이나 그림이네. 아, 이번에는 악기다.”

“저 악기는 대략…… 500만 모트쯤에 팔릴 것 같네요.”

세드릭의 말대로였다. 전시대에 올라온 바이올린은 530만 모트에 낙찰되었다.

‘역시 똑똑해.’

피오나는 볼을 살짝 붉히며 세드릭을 돌아보았다.

선량한 데다가 영특하기까지 하다니. 역시 아무리 생각해 봐도 그녀의 또래 중에는 세드릭 하이에른만 한 신랑감이 없는 것 같았다.

“다음 상품은…….”

그때 내내 힘찼던 리를 회장의 목소리가 조금 수그러들었다.

저도 모르게 말꼬리를 조금 흐렸던 그는 곧 황급히 표정을 바꾸며 천을 걷어 냈다.

“영구 보존의 축복이 걸린 꽃다발입니다!”

“……음?”

“꽃다발……이라고요? 제가 잘못 들었나요?”

사람들은 장신구, 조각품, 악기 등 고가품 혹은 예술품의 중간에 끼어든 ‘꽃다발’이라는 말에 제 귀를 의심했다.

하지만 천이 걷히자 전시대 위에 정말로 소담한 작약 꽃다발이 놓여 있는 것이 보였다.

사람들이 웅성거렸다. 리를 회장은 사람들이 의아한 반응을 내비치자 열심히 말을 더했다.

“이, 이래 봬도 꽃다발을 묶은 리본을 장식하고 있는 건 오페라 다이아몬드랍니다! 게다가 영구 보존의 축복이 걸려 있으니 절대로 시들 일이 없지요. 그럼 50만 모트부터 시작하겠습니다.”

“사실은 오페라 다이아몬드가 주 상품 아니었을까요?”

“하지만 저것조차 너무…… 작네요. 아무리 오페라 다이아몬드가 희소하다고는 해도 말이죠.”

“자선 경매라지만, 굳이 꽃다발을 50만 모트씩이나 주고 사기에는 조금…….”

사람들은 조금 회의적인 시선으로 전시대 위에 놓인 꽃다발을 응시했다. 그러나 리를 회장의 노력이 무색하게도 선뜻 입찰하겠다 나서는 사람은 없었다.

“50만 모트, 아무도 없으십니까?”

리를 회장은 조금 초조한 기색으로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도 그럴 것이, 이 꽃다발은 이번에 3황자 케이든과 함께 그에 버금가는 금액을 후원한 자의 특별한 부탁을 받아 경매에 올린 상품이었기 때문이다.

[이 꽃다발이 경매에 나올 다른 상품들과 격이 맞지 않는다는 건 알고 있네. 하지만 경매에 올리기라도 해 주면 안 되겠나?]

리를 회장이 은인을 생각하며 열심히 꽃다발의 효용성에 대해 설명했으나, 사람들의 반응은 영 시큰둥했다.

피오나는 조명 아래에서 하얗게 빛나는 작약 꽃다발에 시선을 고정한 채 세드릭에게 속삭였다.

“왜 아무도 입찰을 안 할까? 저렇게 예쁜데.”

“확실히 영구 보존의 축복도…… 흔한 것은 아닙니다만. 그래도 어느 정도 다른 상품들과 격이라는 것이 맞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세드릭은 순간적으로 ‘같잖다’라는 말을 내뱉을 뻔한 것을 간신히 참고 상냥하게 답했다.

‘누가 장난이라도 치는 게 아니라면 설명이 되지 않아. 고작 저딴 걸 상품이라고 내놓았다고?’

세드릭은 티 나지 않게 눈썹을 구겼다.

그도 그럴 것이 애초에 그는 꽃을 좋아하지 않았다. 독초로써 이용할 만한 가치가 있는 것을 제외한다면 말이다.

피오나가 알고 있는 ‘세드릭 하이에른’은 철저히 그녀의 취향을 분석하고 맞춰 준비된 모습이었다.

세드릭은 피오나처럼 꽃을 좋아하지 않았으나 애써 그녀의 말에 맞장구쳐 주었다.

하지만 그와 다르게 피오나는 아무도 입찰에 나서지 않자 조금씩 초조한 기색을 드러냈다.

‘그래도 기부자의 체면과 마음이라는 게 있는데……. 꽃이 뭐가 어때서.’

피오나는 조금 속상한 마음에 입술을 비죽였다.

어쩌면 전시대 위의 저 꽃다발이 그녀의 이름을 뜻하는 꽃이기 때문일지도 몰랐다.

“으음, 입찰자가 아무도 없다면 이대로…….”

“잠, 잠시만요! 입찰할게요! 50만 모트!”

결국 피오나는 리를 회장이 입찰을 마무리 지으려 하자 다급하게 손을 들어 외쳤다.

“소공작님?”

세드릭이 경악한 얼굴로 그녀를 돌아보았다. 피오나는 뒤늦게 미안한 얼굴로 그를 돌아보았다.

“미안해, 영식. 내 파트너로 와 준 건데…….”

“……아, 아니요. 괜찮습니다. 그저 조금 놀라서요.”

세드릭은 욕설을 삼키고 간신히 웃어 보였다. 하지만 입 안에서 까득 이 갈리는 소리가 나는 것까지는 막을 수 없었다.

‘이 계집애가 감히 나를 물 먹여?’

세드릭은 오로지 피오나의 파트너 역할을 수행하기 위해 이곳에 온 것이었다.

그런데 피오나가 충동적으로 경매 상품을 구매해 버림으로써 그녀는 해당 상품의 기부자와 단둘이 식사를 하러 가야 했다.

‘그래도 꽃다발이니, 기부자는 여성이려나. 그렇다면 다행인데.’

기부자가 여성이라면 별문제가 없으리라. 하지만 남성이라면 혹시나, 혹시라도…….

세드릭은 초조함을 감추기 위해 턱을 괴는 척 손으로 입을 가렸다. 그가 입술을 잘근잘근 물어뜯었다.

“3, 2, 1……. 네! 이 꽃다발은 50만 모트에 낙찰되었습니다! 이로써 모든 경매를 마칩니다!”

그사이 리를 회장이 유쾌한 목소리로 경매를 마무리 지었다. 박수가 쏟아지는 가운데 사람들이 가장 기대하고 있던 말이 들려왔다.

“그럼 이제부터 연회를 시작하겠습니다! 먼저 에메랄드 귀걸이의 기부자께서는 앞으로 나와 주시길 바랍니다!”

리를 회장의 진행에 따라 기부자가 몸을 일으켜 무대 위로 향할 때마다 탄성과 박수가 터져 나왔다.

무대에 오른 이들은 저마다 수줍은 미소를 띤 채 먼저 식당으로 이동했다.

귀걸이, 목걸이, 반지, 나무 조각품, 서방에서 들여온 귀한 분재, 악기를 거쳐 마지막으로 꽃다발의 기부자를 밝힐 차례였다.

사람들은 너 나 할 것 없이 자선 경매에 저런 소박한 상품을 내놓은 이가 누구인지 궁금해 눈을 굴렸다.

리를 회장이 입을 열었다.

“꽃다발의 기부자께서는 앞으로 나와 주시기 바랍니다.”

세드릭이 주먹을 움켜쥐었다. 모두가 숨을 죽이고 지켜보는 가운데.

“어? 저분은…….”

안타르가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그는 조금 긴장한 기색으로 무대 위로 올라섰다.

그가 무대 위에 확실히 발을 디디자 눈치를 보고 있던 사람들이 드러내 놓고 놀라움을 표했다.

“세상에, 저분이었다니…….”

“하긴. 본인이 대지 속성의 정령사니까 영구 보존의 축복을 걸기도 쉬웠겠네요.”

“오페라 다이아몬드가 장식되어 있었다는 걸 보면, 3황자비 전하께서 도와주신 걸까요?”

한편, 놀란 것은 케이든 또한 마찬가지였다. 그가 의아하게 중얼거렸다.

“안타르가 저걸 준비했다고?”

“네. 안타르 경도 엄연히 저희의 호위로서 파티 참석자 명단에 이름을 올리고 있으니까요. 상품 준비가 부담스러우시면 후원 물품으로 대체할 수 있다고 했는데, 괜찮다며 저 꽃다발을 올리시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리본만 달아 드렸어요.”

디아나는 태연하게 거짓을 속삭였다. 실제로는 D. 옵스큐르의 이름으로 리를 회장에게 부탁을 가장한 협박을 한 것이나 다름없었지만.

안타르는 무대 위에 서서 케이든과 무언가 대화를 나누는 디아나를 한번 힐긋 바라보고는 다시 자세를 바로 하고 정면을 응시했다.

세드릭은 무대 위에 선 안타르를 보고 표정 관리를 해야 한다는 것조차 잊어버렸다.

‘저 자식…….’

짙은 갈색의 곱슬머리, 예복을 차려입으니 유달리 눈에 띄는 수려한 얼굴, 망토에 반쯤 가려졌지만 범상치 않은 태가 나는 키와 몸까지.

무대 위에 오른 안타르라는 사내는 그야말로 피오나의 이상형 그 자체였다.

“꽃다발의 구매자께서는 자리에서 일어나 무대 위로 올라와 주시기 바랍니다.”

때마침 리를 회장의 말이 들렸다. 세드릭은 저도 모르게 피오나를 바라보았다.

“…….”

피오나는 알 수 없는 표정으로 안타르에게 시선을 고정한 채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세드릭은 그녀가 무대로 떠나고, 사람들이 홀로 남은 저를 힐끔거린다는 사실을 깨닫고 수치심을 감추기 위해 고개를 숙였다.

‘설마…… 아니겠지.’

세드릭은 고개를 숙인 채로 눈만 들어 무대를 노려보았다.

리를 회장이 유쾌한 목소리를 내며 두 사람을 소개했다.

이윽고 두 사람은 조심스레 손을 맞잡은 채 연회장으로 사라졌다.

세드릭은 리를 회장이 모두 연회장으로 이동하라는 말을 내뱉기 전까지 안타르의 뒤통수에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

선득한 불안감이 마음을 어지럽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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