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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화 (39/145)

39화

케이든은 정신을 잃은 사이 꿈을 꾸었다.

‘여긴…….’

그는 자신이 서 있는 곳이 어디인지 깨닫자마자 눈을 가리고 싶었다.

그가 서 있는 곳은 3황비의 장례식장이었다.

황궁 구석진 곳에 차려진 장례식장은 손님 하나 없이 조용했다.

하녀 출신의, 살아생전 내내 1황비에게 견제당하던 3황비의 장례식장까지 구태여 찾아올 자는 없었다.

고인에 대한 예의라며 괜히 이곳에 발이라도 들였다가는 그 즉시 1황비의 눈 밖에 날 것이 뻔했으니까.

황제는 제 나름대로 3황비를 아꼈기에 그녀의 죽음에 퍽 상심한 듯 보였으나, 얼마 가지 않았다.

그는 3황비의 장례식 첫날 이곳에 방문하고는 그다음 날부터 다시 술과 향락에 취해 지냈다.

그는 3황비, 그리고 3황비와 함께하는 가족 놀이를 즐겼던 것이지 케이든을 아낀 게 아니었으므로.

첫날 꽃만 내려 두고 사라진 황제를 제외하고서 이곳을 찾은 것은 황후, 그리고 그녀의 아들인 1황자, 괴짜 4황비뿐이었다.

그조차도 처음 하루 이틀 사이의 방문이었으므로, 그 이후로 장례식장은 을씨년스럽다는 말이 어울릴 정도로 고요해졌다.

그나마 위안이 되는 것은, 1황자 엘리엇이 홀로 장례식장을 지키는 케이든을 안쓰럽게 여겨 매일 그와 함께 있어 주었다는 것이었다.

주홍빛 노을만이 가득한 장례식장 안.

내내 케이든의 곁을 지키던 엘리엇이 걱정스레 그에게 말을 붙였다.

[케이든. 그러지 말고 잠깐이라도 눈을 붙이는 게…….]

[아니에요. 그러는 형님께서야 말로 이만 들어가 쉬세요. 안색이 안 좋아 보여요.]

케이든은 애써 웃는 얼굴로 고개를 내저었다.

엘리엇이 함께 있어 주는 것은 분명 기쁘고 고마운 일이었으나, 하루가 다르게 그의 몸이 상해 가는 것이 눈에 보였기에 어쩔 수 없었다.

[하지만…….]

[얼른 가세요, 형님. 이럴 시간에 조금이라도 쉬고 나서 다시 저랑 같이 있어 주시면 되잖아요.]

케이든은 일부러 애교 있는 웃음을 띠며 엘리엇의 등을 꾹꾹 밀었다.

그러자 엘리엇은 한숨과 웃음을 보이고는 어쩔 수 없이 황후궁으로 돌아갔다.

[휴…….]

케이든은 엘리엇을 보내고 난 후 구석진 곳에 털썩 주저앉았다.

벽에 등을 기대고, 무릎을 끌어안은 자세로 케이든은 멍하니 창문으로 비쳐 들어오는 노을을 바라보았다.

한참이나 그러고 있자니 자연스럽게 눈꺼풀이 내려왔다.

케이든은 무릎에 뺨을 기댄 채 눈을 느릿하게 깜박이다가 문득 생각했다.

[……혹시.]

내가 잠든 사이에 1황비 전하께서 암살자를 보내지는 않을까?

만약 그렇다면, 깨지 않고 단번에 아픈 걸 느끼지 않고 죽을 수 있다면 좋을 텐데…….

[차라리 이대로 영원히 잠들었으면 좋겠다.]

어린 케이든은 그런 생각을 하며 스르륵 눈을 감았다.

“……든.”

그러니 분명 잠이 들어야 하는데.

어쩐지 의식이 수면 위로 조금씩 떠오르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케이든은 귓가에서 웅웅거리는 소리에 미간을 찌푸렸다.

그냥 이대로 물속에 잠긴 것처럼, 영원히…….

“케이든.”

그때 돌연 또렷한 목소리가 귓가를 파고들었다. 동시에 눈이 번쩍 뜨였다.

케이든은 잠시간 얕게 숨을 몰아쉬며 눈을 깜박였다. 흐릿했던 시야에 익숙한 천장이 들어왔다.

분명 조금 전까지 어떤 꿈을 꾼 것 같은데 기억이 나질 않았다.

그 대신 정신을 잃기 직전의 일들이 하나둘 떠올랐다.

“……디아나.”

케이든은 방어전에서의 일을 떠올리자마자 그녀를 부르며 다급하게 몸을 일으켰다.

그러나 상체를 일으키기 위해 힘을 주자마자 흰 손이 그의 어깨를 툭 밀쳤다.

“아직 일어나시면 안 돼요.”

“윽.”

작고 가벼운 손짓이었으나 부상을 입었던 탓인지 케이든은 속절없이 침대 위로 쓰러졌다.

그가 목소리가 들린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디아나?”

“…….”

디아나는 케이든의 부름에도 눈을 내리깐 채 그의 약으로 보이는 것을 젓느라 여념이 없었다.

케이든은 다시금 팔꿈치로 상체를 받치고 일어나려 애쓰며 물었다.

“디아나, 몸은 괜찮아?”

“…….”

“다친 곳은? 그때는 내가 정신이 없어서 미처 확인을 못 했는데…….”

“지금 제 걱정을 하실 때예요?”

“어?”

디아나는 결국 약 그릇을 탁 소리 나게 내려놓고 울컥해 입술을 깨물었다.

예상치 못한 반응에 케이든이 허둥지둥 제 등을 더듬거렸다.

“왜? 황궁의께서 잘 치료해 주시지 않았어? 실력이 굉장히 좋은 분이라…… 아, 역시 다 아문 것 같…… 미안. 뭔지는 모르겠지만 내가 잘못했어.”

그는 주절주절 말을 늘어놓다가 말고 디아나가 말없이 저를 빤히 응시하고만 있자 황급히 사과했다.

‘……왜 저러지?’

케이든은 등 뒤로 식은땀을 삐질 흘렸다.

디아나는 본래도 감정 표현이 큰 편이 아니긴 했다.

하지만 저렇듯 아무런 표정 없이 물끄러미 저를 응시하고만 있으니, 차라리 큰 소리로 화를 내는 것이 낫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무서웠다.

케이든은 입을 다문 채 디아나의 눈치를 살폈다.

그러자 그녀가 잠자코 베개를 가리켰다.

“누우세요.”

“응.”

“드시고요.”

“응……. 콜록!”

케이든은 얌전히 디아나가 내민 약을 마시려다가 훅 올라오는 쓴 향에 콜록거리며 그릇을 밀어냈다.

“이건 좀…… 많이 쓴 것 같지 않아?”

“그렇게 믿음직하신 황궁의께서 깨어나면 먹게 하라 하신 약이에요. 외상이야 나았을지 몰라도 역소환으로 인한 내상은 아직 치료되지 않았다고 하셨고요.”

“그걸 먹으면 더 아파질 것 같은데…….”

케이든은 일부러 눈썹을 누그러트리며 불쌍한 척을 했다.

며칠간 침대에 누워 있느라 한층 청초해진 외모의 미남자가 눈썹을 일그러트리니 사슴 같은 분위기가 풍겼다.

그러자 작게 한숨을 삼킨 디아나가 담담하게 말했다.

“그럼 제가 입으로 먹여 드릴게요.”

그 말에 케이든은 조금 전보다 한층 크게 기침했다.

“쿨럭, 컥! 뭐?”

“앉아 보세요. 외상은 다 아물었다고 했으니까 등에 베개 받쳐 드릴게요.”

“아니, 디아나. 잠시만…….”

당황한 케이든이 무어라 말하려는 사이, 디아나는 그를 껴안다시피 일으켜 침대 헤드에 기대게 했다.

케이든은 디아나의 손을 다급하게 붙잡았다.

“그냥 내가 마실게. 그릇도 못 들 정도는 아니니까 무리하지 말고…….”

하지만 끝으로 갈수록 그의 목소리가 흐려졌다.

그도 그럴 것이 디아나가 고집스레 약 그릇을 붙잡은 채 그를 빤히 바라보기만 했기 때문이었다.

결국 케이든은 항복하듯이 그녀의 손을 놓고 베개에 등을 기댔다.

“……알았어.”

케이든은 그리 말하고는 눈을 감았다. 그렇게라도 하면 몹쓸 상상을 덜어 낼 수 있을 것 같아서였다.

하지만 그것이 잘못된 선택이었다는 것은 금세 깨달을 수 있었다.

“되도록 짧고 빠르게 끝낼게요.”

이내 디아나가 약을 한 모금 머금은 채 입술을 겹쳐 왔다.

케이든은 저도 모르게 그녀의 어깨를 잡아채려는 손을 막기 위해 주먹을 말아 쥐어야 했다.

‘이건 아무 의미도 없는, 그냥 의료 행위……. 아, 젠장.’

디아나는 순수하게 그에게 약을 먹이려는 듯했지만 당하고 있는 케이든의 머릿속은 자꾸만 불순해졌다.

그는 ‘나는 짐승이 아니다’를 기도문처럼 중얼거리며 속을 다스리려 애썼다.

입술에 닿아 오는 말캉함도, 코앞에서 살랑거리는 꽃향기도 무시하려 애썼다.

그것은 파트라슈와 어깨동무를 하고 세 시간을 버티라 하는 것과는 다른 의미로 고역이었다.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영원히 바닥나지 않을 것 같던 약그릇이 모두 비워지고, 내내 겹쳐져 있던 입술이 떨어졌다.

케이든은 디아나의 입술이 멀어지고 나서야 입술 새로 가느다란 숨을 흘려보냈다.

그는 당장 눈을 떠 디아나의 얼굴을 보면 또다시 불순한 생각이 머릿속을 장악할 것만 같아 눈을 감은 채 물었다.

“다…… 됐어?”

“…….”

“디아나?”

그러나 디아나는 한참이나 대답하지 않았다.

결국 기다리다 못한 케이든이 의아한 목소리로 그녀를 부르고 눈을 뜨려던 순간, 그녀가 그의 가슴팍에 고개를 툭 기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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