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36화 (36/145)

36화

두런두런 의견을 주고받던 기사들의 시선이 문득 관람석 쪽으로 향했다.

“……?”

그들의 시선 끝에 있는 것은 눈을 깜박이며 이쪽을 바라보고 있는 3황자비, 디아나였다.

케이든은 돌연 주위가 고요해지자 이상함을 느꼈는지 상념을 접고 주위를 둘러보았다.

“뭐야, 다들 어딜 보고 있는…….”

그가 미간을 찌푸리며 고개를 돌렸다가, 기사들의 시선 끝에 자리한 디아나를 보고 움찔 말을 멈췄다.

‘……그러고 보니.’

결혼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습관적으로 1황자 내외에게로 생각이 흐르긴 했지만.

지금 그에게 가장 각별한 사람은…….

그때, 그들을 바라보고 있던 디아나가 돌연 몸을 일으키더니 계단을 내려왔다.

케이든은 당황하며 빠른 걸음으로 그녀에게 다가갔다.

“디아나.”

“1황녀 전하께서 말씀하신 조건에 맞는 건 아무래도 저인 것 같아서 내려왔어요.”

디아나는 무구한 얼굴로 그리 말하며 엷은 미소를 머금었다.

그 말에 케이든이 미간을 움찔 좁혔다. 그의 눈에 안개와도 같은 경계심이 피어났다.

‘……설마.’

케이든은 티 나지 않게 레베카 쪽을 힐긋 일별했다.

레베카는 이미 한번 시녀들을 통해 ‘경고’를 목적으로 디아나를 해치려 한 전적이 있었다.

이렇듯 모든 것이 ‘디아나’를 가리키는 조건을 그녀가 제시한 것이 과연 우연일까?

“…….”

합리적인 의심에 케이든의 심장이 불안하게 뛰었다. 그가 불안해하자 그의 마력 또한 따라서 일렁였다.

‘또 저러네.’

디아나는 재빨리 손을 뻗어 케이든의 팔을 도닥였다. 그녀가 작게 웃으며 속삭였다.

“잘 지켜 주실 거잖아요. 그리고 저희에게는 안타르 경도 있으니까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디아나는 그 말을 하며 안타르를 힐긋 일별했다. 그러자 안타르가 보란 듯 허리를 꼿꼿이 세우며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케이든은 디아나의 손을 가볍게 그러쥐며 숨을 가다듬었다. 그녀와 닿자 불안하게 뛰던 심장이 조금은 가라앉았다.

그렇지만 의심은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다. 케이든이 염려 서린 얼굴로 디아나를 살피며 당부했다.

“그래도 혹시 모르니까 조심하고, 무슨 일이 있으면 바로 소리를 질러. 이럴 줄 알았으면 뭐라도 챙겨서 나올걸 그랬군.”

“알겠어요.”

지금 이 시점에서 레베카가 굳이 그녀를 노릴 이유는 없었다.

지난번의 ‘경고’를 마지막으로 대부분의 의심을 거두었을 테니까.

하지만 케이든은 그 사실을 모르니 불안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디아나는 케이든을 안심시키고자 그의 팔을 몇 번 더 토닥인 후 단상 앞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 * *

대지 속성 정령사의 능력으로, 연무장에는 네 개의 성벽이 세워졌다.

그 성벽 위에는 각 연대의 깃발을 맡은 이들이 앉아 있었다.

케이든이 지휘하는 제4연대의 깃발은 디아나였고, 레베카가 지휘하는 제1연대의 깃발은 루드비히였다.

디아나는 저 멀리, 루드비히가 귀 옆에 붉은 장미꽃을 꽂고 제1연대의 성벽 위에 앉아 있는 모습을 보며 속으로 웃음을 삼켰다.

‘깃발 표시라기엔 너무 잘 어울리네.’

뭐, 그러는 그녀 또한 루드비히가 꽂고 있는 것과 같은 장미를 머리에 꽂고 있긴 했지만 말이다.

디아나는 제4연대의 성벽에 올라앉은 채 주위를 둘러보았다.

성벽 아래에는 안타르를 비롯해 방어에 특화된 기사들이 반원형으로 늘어서 있었다.

안타르는 시선을 느꼈는지 잠시 고개를 들어 디아나를 보았다.

그러나 막상 눈이 마주치자 황급히 고개를 내려 버렸다.

‘뭐, 잘하겠지.’

디아나는 그 모습에 고개를 갸웃했으나 곧 의아함을 갈무리했다.

케이든에게 전해 듣기로, 훈련 기간은 짧았지만 안타르는 하나를 가르치면 열을 배울 정도로 정령을 다루는 능력이 뛰어나다고 했다.

그러니 큰 이변이 없다면 이번 방어전은 케이든의 승리로 끝날 것이다.

디아나는 숨을 깊이 들이쉬며 평정을 가다듬었다.

그사이, 케이든을 비롯한 기사들이 각자의 위치에 자리를 잡고 섰다.

안타르를 비롯해 성벽과 깃발 방어를 도맡은 방어조는 성벽 바로 앞에.

케이든, 파트라슈를 비롯해 상대 진영의 깃발을 빼앗아 올 공격조는 그보다 조금 더 멀리에.

사람들이 하나둘 움직임을 멈추자 침묵이 찾아왔다. 그 사이로 마도구에 의해 증폭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셋을 세면 방어전을 시작하겠습니다.”

그 말에 사람들이 긴장하여 어깨를 굳혔다. 그들 사이에 팽팽한 긴장감이 감돌았다.

“3, 2, 1…… 시작!”

뿌우우―

이윽고 긴 뿔 나팔 소리와 함께 목소리가 방어전의 시작을 알렸다.

방어전이 시작되자마자 각 연대의 공격조가 땅을 박찼다.

“올해야말로 끝장을 보겠다!”

“누가 할 소리를!”

옐링 공작과 윅스빌 공작의 제2연대, 제5연대는 나팔이 울려 퍼지자마자 서로를 향해 달려들었고.

“크아아악!”

케이든과 파트라슈는 곧장 레베카의 진영 쪽으로 달려갔다.

“비켜!”

케이든의 손을 밟고 뛰어오른 파트라슈가 고함을 내지르며 거대한 해머를 휘둘렀다.

쿵―!

“크윽……!”

묵직한 땅 울림과 함께 일어난 돌풍에 레베카와 페란트 휘하 기사들이 비틀거렸다.

그 틈새로 케이든이 튀어 나갔다. 그는 성벽만 한 황금빛 검을 휘두르며 기사들을 쓸어 냈다.

“와, 미쳤네…….”

디아나가 올라앉은 성벽 아래에 선 어느 기사가 경악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그녀는 그 말에 전적으로 동감했다.

“으아악!”

그도 그럴 것이, 케이든은 등 뒤의 성벽과 깃발에 신경을 분산시키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만으로도 상당한 부담을 덜어 낸 상태였다.

특히나 안타르는 방어에 특화된 인재이니, 그는 더욱 마음 놓고 상대 진영의 깃발을 빼앗는 데 집중할 수 있었다.

하여 케이든은 마력을 걱정하지 않고 마음껏 검을 휘둘렀다.

물론 평소에도 마력이 부족할까 걱정할 필요가 없는 그였지만, 만일의 상황에 대비하여 마력을 아끼던 때와는 많은 차이가 있었다.

지금의 케이든은 마치 검을 한번 휘둘러 천지를 갈랐다는 초대 황제가 재림한 듯한 모습이었다.

“운디네!”

“샐리스트!”

그때, 날카로운 고함이 케이든의 앞을 가로막았다.

그는 예고도 없이 머리 위로 쏟아지는 주먹만 한 물방울과 불덩이를 피해 몸을 물렸다.

케이든은 거침없이 전진하던 것을 멈추고 잠시 숨을 골랐다.

그의 앞에 레베카와 페란트가 나타났다.

케이든이 모의 전투 직전에 안타르를 영입했기 때문에, 안타르에 대해 정확히 알지 못하는 두 사람은 케이든이 만용을 부리는 것처럼 느껴졌다.

페란트는 멍청이를 보는 듯한 눈으로 케이든을 바라보며 손에 든 사슬을 빙글빙글 돌렸다.

“뭘 믿고 그렇게 배짱을 부려? 네가 아무리 날뛰어도 결국 기사들의 평균적인 실력은 우리가 더 뛰어나다고.”

“그 평균을 전부 혼자서 깎아 먹고 있으면서 말만 많아.”

“뭐, 이 새끼야?”

페란트가 와락 얼굴을 구겼다.

레베카는 한 손으로 그를 저지하며 눈을 가늘게 뜨고 케이든을 살폈다.

‘……뭔가 믿는 구석이 있어 보이는데. 역시 일주일 전에 들였다던 그 기사 때문인가?’

케이든은 전과 달리 등 뒤를 걱정하지 않은 채 레베카의 진영으로 돌진해 오고 있었다.

그것이 적잖이 당황스러워 생각보다 이르게 그를 직접 상대하게 되었다.

‘하지만 그래 봤자 천출이다. 일주일 만에 이렇다 할 훈련이 가능했을 리도 없고, 페란트의 말대로 평균적인 실력은 우리가 압도적이야.’

그러나 레베카는 결국엔 이번 방어전 역시 자신의 승리로 끝나리라 확신했다.

그녀와 페란트가 전술대로 케이든과 파트라슈를 잡아 두면, 결국에는 그들을 제외한 기사들의 싸움이 될 텐데.

제1연대의 기사들은 레베카가 오랜 시간 공을 들여 훈련시키고, 거기에 이번에는 오페라 다이아몬드까지 박아 넣은 장비를 입힌 이들이었다.

그러니 제1연대의 기사들이 제4연대의 기사들보다 뛰어난 것은 당연한 이치였다.

‘결과는 달라지지 않아.’

레베카는 그리 단정 짓고는 말없이 손에 든 검을 고쳐 쥐었다.

케이든이 그런 그녀를 보고 한쪽 입꼬리를 비죽 올렸다.

“역시 형님보다는 누님께서 현명하십니다. 말만 구구절절 늘어놓을 시간에 검이라도 한 번 더 맞대는 것이 본분에 맞겠죠.”

“너야말로 입 다물어.”

레베카는 서늘한 일갈을 내뱉은 후 페란트와 함께 케이든에게 달려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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