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화
“저, 저건…… 마물 아니에요?”
플뢰르가 희게 질린 얼굴로 속삭였다.
정원에 있는 귀족 대부분도 그녀와 마찬가지의 반응이었다.
카를롯타의 앞에 놓인 테이블 위에는 흰 철창으로 이루어진 새장이 놓여 있었다.
철창 사이로 일견 새까만 덩어리처럼 보이는 새들이 사납게 부리를 깔짝거렸다.
‘심지어 일반적인 마물도 아닌 것 같은데.’
디아나는 낯선 생김새의 마물을 지긋이 응시하며 미간을 설핏 좁혔다.
회귀 전에도 2황녀 카를롯타는 상당히 제멋대로인 사람이었던지라 행동을 예측하기가 어려웠다.
‘대체 여긴 왜 온 거지?’
마물과 2황녀.
영 좋지 않은 조합이라는 생각에 디아나가 긴장했다.
그사이, 웅성거리던 사람들 틈바구니에서 카를롯타와 친분이 있는 몇이 용기를 내어 그녀의 곁으로 다가갔다.
“2황녀 전하. 오랜만에 뵙습니다.”
살가운 인사에, 새침하게 찻잔을 기울이던 카를롯타가 고개만 돌려 상대를 바라보았다.
상대를 위아래로 한번 훑어본 그녀가 한쪽 눈썹을 슬쩍 들어 올렸다.
“누구더라?”
“아, 그, 그것이……. 저번에 2황비 전하의 탄신 연회에서 뵈었었는데요…….”
상대는 드러내 놓고 ‘너를 기억하지 못한다’라는 대답에 수치심을 느꼈는지 달아오른 얼굴로 웅얼거렸다.
다행이라고 해야 할지 카를롯타는 곧 아, 하며 성의 없이 맞장구쳤다.
“기억나네. 오랜만이로군.”
“기억해 주신다니 영광입니다. 한데 이것은 무엇인가요?”
수치심보다는 호기심이 더 컸는지 이내 당황을 추스른 상대가 새장을 가리키며 물었다.
그들의 근처를 기웃거리던 이들 또한 궁금했는지 은근슬쩍 귀를 기울였다.
카를롯타는 그 물음을 기다렸다는 듯 곧장 우쭐하며 답했다.
“1황녀 전하께서 저번 토벌에서 사로잡아 오신 변종 마물이네. 생긴 것이 꽤 마음에 들어서 관상용으로 기르고 있다네.”
사람들 사이에 소리 없이 경악이 퍼져 나갔다. 상대가 더듬거리며 되물었다.
“벼, 변종 마물을 관상용 새로요?”
“그래.”
“하지만 위험하지 않나요?”
“뭐가 걱정인가? 이런 하찮은 변종 마물 따위는 충분히 제압할 수 있어.”
“아……!”
사람들은 그제야 카를롯타가 대지 속성의 하급 정령사라는 것을 상기하고는 짧은 탄성을 냈다.
하급 정령사라고는 하나, 본디 일반인 중에서 하급 정령사의 자질을 갖춘 사람도 손에 꼽다시피 했기에 그들의 눈에 약간의 선망이 깃들었다.
카를롯타는 그 한가운데서 만족스럽게 입꼬리를 끌어 올렸다.
‘그래, 이래야지.’
그녀는 우쭐해져서 턱을 치켜들었다.
사람들의 시선과 관심을 만끽하던 카를롯타가 슬쩍 눈을 굴렸다.
그녀가 티 나지 않게 바라본 것은 창백한 얼굴의 플뢰르였다.
‘흥. 꼴좋다.’
귀찮게 마물을 챙겨 이곳까지 나선 목적을 이룬 카를롯타가 콧방귀를 뀌었다.
카를롯타는 알게 모르게 1황자비인 플뢰르에게 열등감을 가지고 있었다.
신분도, 외모도.
어느 것 하나 플뢰르에게 밀릴 것이 없음에도, 사람들은 늘 동년배인 두 사람 중에서 은근히 플뢰르를 치켜세우곤 했다.
또래인 황가의 일원이라는 것만으로 번번이 비교당하는 것도 짜증이 나건만.
그보다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은 사람들이 카를롯타를 깎아내리며 플뢰르를 칭찬할 때마다 난색을 보이는 그녀의 태도였다.
[누가 위버의 딸 아니랄까 봐, 가증스럽기 짝이 없구나. 저게 다 너를 기만하려고 저러는 것이다.]
카를롯타는 제 어머니인 2황비가 했던 말을 똑똑히 기억했다.
위버 공작가의 일원들은 더러운 속내를 감추고 겉으로만 천사처럼 웃는 족속이라 배웠다.
위버 공작가 출신인 플뢰르 또한 겉으로는 겸손한 척하지만 속으로 자신을 비웃고 있을 것이 뻔했다.
하여 카를롯타는 플뢰르에게 사람들의 관심이 쏠리는 것을 못 견뎌 했다.
오늘 이곳에 온 것도, 하녀들이 1황자비와 3황자비를 두고 ‘잉꼬부부끼리는 통하는 것이 있나 보다’라는 소리를 하기에 심기가 뒤틀려서였다.
1황자비와 3황자비 두 사람 모두 레베카의 정적이라는 것도 그녀의 적의를 키우는 데 한몫했다.
하여 사람들의 관심을 자신에게 돌리고, 동시에 능력도 뽐낼 겸 레베카에게 받았던 마물을 보란 듯 데리고 나왔다.
사실 태연함을 가장하고 있지만, 새장 속의 새가 부리를 부딪칠 때마다 카를롯타의 어깨는 흠칫거리며 떨리고 있었다.
이만하면 플뢰르에게서 빼앗아 온 관심도 충분히 누렸다 싶었던 그녀가 몸을 일으키며 손짓으로 시녀를 불렀다.
“햇빛이 생각보다 따가워서 이만 들어가 봐야겠어. 이것도 얼른 치우…….”
하지만 그 순간, 마물들이 사납게 씹어 대던 새장의 철창이 날카로운 부리에 잘려 조각났다.
부러진 철창 틈으로 눈 깜짝할 새에 마물들이 쏟아져 나왔다.
카를롯타는 부리를 쩍 벌리고 제게 달려드는 마물에 기겁하며 외쳤다.
“노움!”
마력이 한차례 일렁이더니 간발의 차로 대지의 하급 정령 노움들이 나타나 그녀의 앞을 가로막았다.
카를롯타가 호언장담했던 것과 달리, 그녀의 능력으로는 날뛰는 마물들로부터 제 한 몸을 지키는 것이 고작이었다.
나들이를 나왔던 귀족들은 뜻밖의 상황에 혼비백산하여 비명을 질러 댔다.
“꺄, 꺄아악!”
“살려 줘!”
“근위대! 황실 근위대를 불러!”
소란이 커지자 근처에서 경비를 서고 있던 황실 근위대가 나타났다.
그들은 마구잡이로 날뛰며 사람들을 공격하는 마물의 모습에 경악했다.
“이게 무슨……!”
“멍청하게 넋 놓고 있을 시간 없어! 당장 사람들부터 보호해!”
“예!”
옐링 공작이 지휘하는 제2연대 산하의 기사들이 제각기 정령을 불러내 마물을 막기 시작했다.
개중 플뢰르와 디아나를 알아본 기사 하나가 마물을 제압하다가 말고 기겁해 그들에게 달려왔다.
“두 분께서 왜 이곳에……! 여기 계시면 안 됩니다. 어서 피하십시오!”
“고마, 워요.”
플뢰르는 갑작스러운 상황에 놀란 탓에 창백한 얼굴이었지만 최대한 침착한 음성을 냈다.
기사들이 마물을 막아내는 사이, 디아나는 상대적으로 몸이 약한 플뢰르를 부축한 채 기사 하나의 도움을 받아 정원을 벗어나려 했다.
키에에엑!
그때 그들을 발견한 마물 몇 마리가 쏜살같이 날아왔다. 기사가 황급히 정령을 불러냈다.
“샐리스트!”
허공에서 나타난 불의 중급 정령이 마물들의 앞을 막았다.
하지만 기사는 중급 정령을 불러낸 지 얼마 되지 않아 미숙한 자였고, 수적으로 열세였다.
결국 샐리스트는 얼마 지나지 않아 수많은 발톱에 갈기갈기 찢겨 구슬피 울부짖고 사라졌다.
“커헉!”
정령이 역소환된 충격으로 기사가 피를 토하며 휘청였다.
그 틈을 타 마물들이 먹잇감을 낚아채려는 듯 디아나와 플뢰르에게 달려들었다.
“디아나!”
대경한 플뢰르가 반사적으로 디아나를 보호하듯 감싸 안았다.
그 행동에 찰나 굳어졌던 디아나가 플뢰르에게로 부리를 뻗는 마물을 직시하며 마력을 움직였다.
‘유로.’
서걱―
청보랏빛 눈이 어둑하게 물듦과 동시에 허공에 가는 보랏빛 선들이 나타나 마물을 난도질했다.
은밀하게, 또 소리 없이 일어난 일이었던지라 한 사람을 제외하고는 아무도 그 사실을 눈치채지 못했다.
키이익……!
마물들은 조각난 그림자처럼 허공으로 흩어지며 날카롭게 울부짖었다.
마물의 조각 중 하나가 허공에서 눈송이처럼 떨어지다가 디아나의 어깨 위에 내려앉았다.
그 순간 디아나가 크게 움찔하며 제 어깨를 내려다보았다.
‘방금 무슨…….’
“디아나, 괜찮아요?”
디아나를 끌어안은 채 마물에게서 등을 돌리고 있던 플뢰르는 예상했던 고통이 닥치지 않자 의아해하다가 걱정스럽게 물었다.
그 말에 이성을 되찾은 디아나는 재빨리 웃어 보였다.
“저는 괜찮아요. 감싸 주려 해서 고마워요, 플뢰르.”
“정작 마물은 없어졌지만요. 이게 대체 다 무슨 일인지…….”
플뢰르가 몸을 잘게 떨며 참았던 숨을 내쉬었다.
미친 듯 날뛰던 마물들은 어느새 기사들에게 거의 다 제압당한 상태였기에 급하게 몸을 피할 필요는 없어 보였다.
디아나는 플뢰르의 어깨 너머로, 어쩐지 놀란 얼굴로 저를 바라보는 카를롯타의 시선을 피하며 심각하게 생각에 잠겼다.
한 손으로 제 어깨를 더듬어 보던 그녀가 입술을 지그시 깨물었다.
‘……분명 어둠 속성 정령의 기운이었어.’
변종 마물에게서 언뜻 느껴진 것은, 그녀가 다루는 정령과 같은 기운이었다.
* * *
정원에서 마물들이 날뛴 일 이후 2주가 조금 넘게 지났다.
황제는 경솔하게 마물을 다룬 카를롯타를 크게 꾸중하고 그녀에게 근신할 것을 명했다.
카를롯타는 사실상 1황녀인 레베카의 수하나 다름없었기에, 황제의 처벌은 곧 레베카의 체면에 흠집을 내는 것과 같았다.
하여 타니아는 최근 심기가 불편한 레베카의 앞에서 초조한 심정으로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레베카는 온기 없는 미소를 지으며 조용히 읊조렸다.
“그래서…….”
“…….”
“오늘도 딱히 할 말은 없단 소리구나.”
타니아는 그 우아한 목소리에 도리어 등줄기를 타고 식은땀이 흐르는 듯한 기분을 느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