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4화 (14/145)

14화

“흣…….”

난생처음 해 보는 입맞춤에, 디아나는 말 그대로 다리에 힘이 풀릴 지경이었다.

일전에 파르망디 거리에서 그와 닿았을 때와는 비교조차 할 수 없을 만큼 짙고, 홧홧한 감각.

처음에는 장난치듯 입술을 지분대던 케이든이 이를 세워 디아나의 아랫입술을 슬쩍 깨물었다.

놀란 그녀가 그의 팔을 그러쥐며 저도 모르게 입을 열자 그 사이로 곧장 말캉한 살덩이가 파고들었다.

젖은 살이 마찰하며 작게 질척이는 소리가 났다. 상냥하고 부드럽다가도 도망치는 듯 보이면 집요하게 붙잡아 옭아맨다.

마치 온몸의 열기를 입을 통해 주고받는 느낌.

정신없이 입맞춤을 받아들이던 디아나는 호흡이 부족해 손끝을 바르르 떨었다.

다행이라고 해야 할지 그녀가 기절할 것 같다고 생각하는 순간 입술이 떨어졌다.

“하…….”

디아나는 입술이 떨어지자마자 다급히 숨을 몰아쉬었다.

마찬가지로 작게 숨을 몰아쉬던 케이든은 발긋하게 달아오른 그녀의 입술을 보며 묘한 얼굴을 했다.

‘왜 이렇게…….’

분명 입술을 떼어 냈는데도 누군가 속에서 불을 지피는 기분이었다.

멈추고 싶지 않다.

이 사람의 숨결 하나까지 낱낱이 삼켜버리고 싶다.

그런 비이성적인 충동이 자꾸만 그를 부추겼다.

케이든은 무의식중에 손을 움직여 엄지로 그녀의 입술을 지그시 눌렀다.

“케이든?”

디아나가 의아하게 입술을 달싹이자마자 뒷덜미에 소름이 돋을 정도의 전율이 느껴졌다.

순간적으로 이성을 잃을 뻔했던 케이든은 황급히 손을 떼어 내고 한 걸음 뒤로 물러났다.

그에 맞춰 울리는 박수 소리와 종소리가 예식의 끝을 알렸다.

케이든은 제 안에 남은 정염을 꺼트리려는 듯 싱그럽게 웃으며 속삭였다.

“그대에게 빛의 가호가 있길. 황궁에 온 것을 진심으로 환영해, 디아나 블루벨.”

그 웃음을 눈에 담은 순간 디아나의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

쿵, 쿵.

갑작스러웠던 탓인지, 아니면 다른 이유 탓인지 심장 뛰는 소리가 귓전을 남김없이 메우듯 크게 울렸다.

디아나는 회귀 전에도 딱히 케이든을 이성으로 본 일이 없었다.

외려 기이하리만치 제게 친근하게 구는 것이 껄끄러워서 피해 다니기 바빴다.

하지만 조금 전의 일은, 뒤섞인 숨이, 맞닿은 열기가, 한순간 한 몸이 된 듯했던 그 감각이 너무도 선명해서.

새삼스럽게 그가 이성이라는 것을 자각한 디아나의 얼굴이 확 달아올랐다.

* * *

식이 끝난 이후로는 피로연이 이어졌다.

서즈필드 자작은 그간 황족의 신분에 가까워지기 위해 노력한 나날의 한을 풀겠다는 듯 이 결혼에 아낌없는 투자를 퍼부었다.

그를 드러내듯 피로연장 곳곳에서는 오페라 다이아몬드가 찬연한 빛을 뿜어냈다.

“하여간 누가 졸부 아니랄까 봐…….”

“입이 찢어지게 웃고 있는 저 꼴 좀 보라지. 품위 없이.”

귀족들은 피로연장 한쪽에서 사람들에게 둘러싸인 채 함박웃음을 짓고 있는 서즈필드 자작을 은근히 흘겨보며 헐뜯었다.

하지만 그의 주위에 몰려 있는 인파로 알 수 있을 만큼, 그가 지닌 부는 거부하기 힘들 정도로 매혹적이었다.

당장 주위만 둘러보아도 서즈필드의 재력이 어마어마하다는 것이 느껴졌다.

사방을 휘감은 오페라 다이아몬드 장식은 물론이거니와, 산더미처럼 쌓여 있는 와인 병, 끝이 보이지 않는 핑거 푸드.

거기에 불의 정령사를 고용한 것인지 금이 쉼 없이 흘러내리는 분수까지.

서즈필드 자작은 뛰어난 상인이었고, 어떻게 해서든 멸시받을 것이라면 차라리 압도적인 부를 보여 주는 것이 낫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하여 귀족들은 속으로 서즈필드 자작을 천하다고 여기면서도 앞에서는 그를 향해 웃어 보이기 바빴다.

그러한 분위기에 따라서, 자연스럽게 그의 딸이자 오늘의 주인공인 디아나 또한 사람들의 관심을 한 몸에 받게 되었다.

디아나와 케이든은 오페라 다이아몬드를 박아 넣은 샹들리에 아래, 플로어의 한중간에서 춤을 추는 중이었다.

끈 떨어진 연과 졸부의 딸.

그렇기에 두 사람의 관계가 더욱 극적으로 보이는 것이긴 했으나.

귀족들은 그 수식어만 놓고 보면 참으로 분수에 맞는 짝이 아니냐며 내심 두 사람을 비웃었다.

“뭐…….”

“……잘 어울리긴 하네요.”

하지만 유려한 곡선을 그리며 빙글빙글 도는 그들의 모습은 호사가들조차 부정할 수 없을 정도로 아름다웠다.

케이든은 고개를 살짝 기울여 디아나에게 무어라 작게 말을 걸고 있었다.

그의 입꼬리가 슬쩍 올라간 것을 보아하니 사람들은 부부간에 무언가 다정한 말이라도 나누는가 보다, 하고 이내 신경을 껐다.

하지만 실상은 조금 달랐다.

“디아나.”

“네, 네?”

“그건 나보고 웃으라고 그러는 건가?”

“무슨…….”

“눈이 좌우로 벌어지다 못해 곧 뒤로 넘어가겠는데.”

케이든은 심술궂게 웃으며 디아나의 옆으로 불시에 얼굴을 들이밀었다.

그랬더니 청보랏빛 눈이 곧장 움직여 천장을 바라보았다. 일견 다급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케이든의 잇새로 헛바람 같은 실소가 터졌다.

“허.”

“…….”

“그대.”

휙!

“디아나.”

홱!

디아나는 케이든이 제 시선이 미치는 곳으로 호시탐탐 얼굴을 들이밀 때마다 기가 막힐 정도의 반사 신경으로 그의 눈을 피했다.

그러면서도 또 춤은 이상하게 보이지 않게 추고 있으니 황당할 노릇이었다.

끝내 케이든의 이마로 핏줄이 빠직 돋아났다. 그가 웃는 얼굴로 스산하게 이를 악물었다.

“미안하군. 입맞춤이 그렇게까지 형편없게 느껴졌을 줄은 몰랐는데.”

“그, 그게 아니라.”

“어떻게, 제 눈을 리본으로라도 칭칭 감아 가리면 좀 돌아봐 주시렵니까, 부인?”

‘제발 그런 말 좀 하지 말아 주시겠어요…….’

디아나는 반사적으로 보랏빛 리본을 눈에 두른 케이든의 모습을 떠올렸다가 하마터면 울 뻔했다.

물론 디아나는 케이든이 그런 의도로 한 말이 아니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알고는 있었다.

하지만 한번 생각이 그쪽으로 흐르기 시작하니 도통 멈출 수가 없었다.

춤을 추느라 바싹 맞닿아 있는 손과 허리, 숨결 등이 매 순간 신경 쓰여 미칠 노릇이다.

‘누가 내게 도움…….’

디아나는 필사적으로 주위를 둘러보았지만, 그들 주위는 텅 비어 있었다.

갓 맺어진 신혼부부를 방해하는 것은 사교계의 통상적인 예의에 어긋난다.

결혼의 주인공들이 아무리 볼품없고 초라하다 한들 마찬가지였다.

하여 사람들은 디아나와 케이든을 제외한 채 저들끼리 파트너를 바꿔 가며 춤을 추고 있었다.

그들의 얼굴에는 제각기 뿌듯한 미소가 떠올라 있었다.

이것이 바로 지성인의 배려! 진정한 품위!

‘하나도 안 고마워.’

디아나는 절망했다.

한편, 그사이 황당함과 오기를 어느 정도 갈무리한 케이든이 조금은 시무룩한 얼굴로 말했다.

“아무튼, 어떤 상황에서든 그대의 의사를 미리 묻고 행동했어야 했는데. 진심으로 미―”

“사과하지 마세요.”

그 말에 디아나는 저도 모르게 고개를 홱 들었다.

상대의 말을 끊었다는 자각조차 없을 만큼 빠른 반응이었다.

케이든은 갑작스럽게 저를 직시해 오는 청보랏빛 눈에 움찔 어깨를 떨며 입을 다물었다.

피할 때는 언제고, 저렇게 말갛고 곧은 눈빛이라니. 속이 간지럽지 않은가.

디아나는 조금 전까지 케이든에게 느꼈던 어색함마저 잊은 채 단호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사과하지 않으셔도 돼요. 전하께서는 한 번도 제게 사과할 만한 일을 저지르신 적이 없어요.”

회귀 전, 케이든의 목숨까지 빼앗았던 자신이다.

지금의 그에게는 기억이 없다고 한들 어떠한 말로 사죄해도 부족할 것이다.

그러니 감히 케이든이 자신에게 머리 숙일 일은 없어야 했다. 그것은 인간의 도리가 아니었으므로.

그리고 거기에 더해서.

“……에요.”

케이든은 디아나가 무어라 입술을 달싹이자 고개를 갸웃 기울였다.

“잘 안 들리는데.”

“……전에도 말했지만, 싫어서 그런 게 아니에요. 그냥 조금 어색해서.”

디아나는 민망함에 빠르게 답을 뱉어 낸 뒤 괜히 손을 꼼지락거렸다.

물론 그 직후 손끝에 닿아 오는 단단한 어깨의 감촉이라든가, 커다란 손이 지나치리만큼 생생히 느껴져 곧장 후회했지만.

케이든은 저보다 조금 아래에 있는 디아나의 얼굴을 멍하니 내려다보았다.

애써 표정을 갈무리하고는 있으나 한시라도 빨리 물러나고 싶다는 듯 양손을 가만히 두지 못하고 이곳저곳 옮겨 짚는 모습을 보니 어쩔 수 없이 웃음이 났다.

‘싫지 않다는 말을 들어 본 게 언제더라.’

3황비의 죽음 이후.

케이든은 언제나 기피당하는 삶을 살아왔다.

언제 죽임당할지 알 수 없는 아이. 가까이했다가는 1황비와 1황녀의 미움을 살지도 모르는 아이.

케이든은 그런 아이였고, 그가 손을 뻗을 때면 사람들은 소스라치게 놀라며 뒤로 물러나곤 했다.

그가 닿는 것이 소름 끼치고 기분 나쁘다는 양.

지금에야 파트라슈와 같은 사람들이 적게나마 생겼다지만 그때의 기억은 꽤 강렬하게 케이든의 안에 자리 잡고 있었다.

그렇기에 ‘싫지 않다’라는 디아나의 말이 조금은, 아주 조금은 기뻤다.

이내 서운함을 말끔히 털어 낸 케이든은 평소의 모습으로 돌아왔다.

자고로 아내의 마음이 불편하지 않게 풀어 주는 게 훌륭한 남편의 도리 아니겠는가.

그는 일부러 자못 심각한 태도로 입을 열었다.

“한데 부인.”

“네?”

“내가 아무리 점잖은 남편이라지만, 자꾸 그렇게 더듬대면 나도 힘든데.”

“……제가 대체 언제 더듬댔다고 그러시는 거죠?”

“몰라서 묻나? 자꾸 이렇게 손을,”

“잠시만요, 거긴 좀!”

디아나는 제 허리에 얹혀 있던 케이든의 손이 움직이려 하자 간지러움에 소리 죽여 비명을 질렀다.

그는 결국 킥킥 웃음을 흘리며 장난스럽게 속삭였다.

“옆구리가 약한가 보네. 기억해 둬야겠어.”

“……변태.”

“변태인 건 내가 아니라 그대 머릿속인 것 같은데. 무슨 생각을 한 거야?”

“점잖은 아내로서 전하의 방탕한 언행을 단속해야겠다는 생각이요.”

디아나는 부루퉁한 얼굴로 입술을 삐죽였다.

케이든은 그 모양새가 너무 웃기고 귀여워 장난을 멈출 수가 없었다.

그가 미소 띤 낯으로 다시 입을 열려던 차에 음악이 그쳤다.

케이든은 아쉬워하며 디아나의 허리를 감싸던 손을 거두어들였다.

그때 두 사람 사이로 고저 없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