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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화 (6/145)

6화

“3황자 전하. 정신 차려 보세요. 지금 눈 감으시면 안 돼요. 전하!”

디아나는 어느새 케이든만큼이나 희게 질린 얼굴로 다급하게 주저앉아 그의 상태를 살폈다.

죽기 직전 감옥에서 보았던 그조차 이런 모습은 아니었다.

금방이라도 숨이 멎을 것처럼 거칠게 호흡하는 그의 모습에 심장이 알 수 없이 덜컹 내려앉았다.

그녀는 벌벌 떨리는 손으로 케이든의 얼굴을 더듬었다.

그때였다.

“목소리…… 허억.”

새하얗게 질린 얼굴로 숨을 색색 몰아쉬던 케이든이 돌연 입을 열었다.

“목소리, 낮춰……. 젠장. 누가, 들었, 다간…….”

케이든은 어떻게 해서든 눈을 똑바로 뜨려 애쓰며 띄엄띄엄 목소리를 쥐어짜 냈다.

그러나 디아나는 케이든의 주위에서 느껴지는 마력에 정신이 팔려 그의 말을 귀담아듣지 못했다.

‘무슨…….’

이 정도의 방대한 마력을, 고작 한 인간의 몸이 감당할 수 있나?

‘말도 안 돼.’

실제로 케이든 주변을 감도는 마력은 제 주인이 이조차 감당하지 못하고 쓰러진 것이 분하다는 양 미친 듯 날뛰고 있었다.

이따금 마력이 크게 일렁일 때마다 케이든이 고통스럽게 입술을 짓씹으며 신음을 참는 것이 보였다.

‘전에도 이 정도는 아니었는데?’

‘마력’은 이 세계 어디에나 존재하는 힘이었다.

모든 인간은 선천적으로 일정량의 마력을 몸 안에 가지고 태어난다.

감각이 뛰어난 사람은 자신의 마력을 이용해 여러 일을 할 수 있었고, 사용한 마력은 시간이 지나면 물이 차오르듯 다시 메워졌다.

다만 사람마다 몸 안에 담을 수 있는 마력의 양에는 선천적인 차이가 있다.

몸 안에 담고 있는 마력이 많을수록 상급 정령과의 계약이 성사될 가능성이 컸다.

케이든은 몇백 년 만에 나타난 상급 빛의 정령사였다.

회귀 전에도 레베카에 의해 목숨을 잃지 않았다면, 언젠간 정령 왕과의 계약도 노려 볼 수 있을 정도로 타고난 마력의 양이 많았던 사람.

하지만 목숨을 잃던 당시의 케이든조차 이 정도로 방대한 마력을 담고 있지는 않았다.

인간이 거대하고도 장엄한 자연을 맞닥뜨렸을 때에 버금가는 위압감.

나름 케이든에 버금가는 마력을 지녔던 디아나마저 그 기운에 눌려 손끝이 희미하게 떨릴 정도였다.

“대체, 어떻게, 찾아온…….”

디아나는 헐떡거림 속에 섞여 들려오는 케이든의 목소리에 뒤늦게 정신을 차렸다.

빠르게 이성을 되찾은 그녀가 몸을 일으키려 했다.

“사용인들이 전하를 찾고 있습니다. 지금 당장 황궁의를―.”

“안 돼.”

그러나 그녀가 몸을 일으키려는 순간, 케이든이 번개같이 손을 뻗어 그녀의 소맷자락을 붙잡았다.

“아무도 데려오지……. 큭.”

소맷자락을 쥔 악력은 아픈 사람의 것 같지 않게 무서울 정도로 강했다.

디아나는 무언가 생각이라는 것을 해 보기도 전, 그가 그렇게 말하는 이유를 이해해 버리고는 소리 없이 탄식했다.

‘아.’

당신은 이렇게 살아남았구나.

이렇게 초라하게.

이토록…… 절실하게.

“흐…….”

간간이 채 삼키지 못한 신음을 잇새로 뱉으며 아파하고.

반쯤 정신이 오락가락하는 와중에도 손으로 쥔 제 소맷자락을 끝까지 놓지 않는다.

그 모습에 왜인지 눈물이 날 것만 같았다.

“……알겠어요.”

디아나는 마음이 짓이겨지는 것 같은 와중에도 지난번 뒷골목에서 그와 마주쳤을 때, 손끝에서 느껴지던 기이한 감각을 기억해 내고는 낮게 입을 열었다.

그녀는 잔디밭 위에 아무렇게나 널브러진 케이든의 손을 내려다보며 심호흡을 했다.

‘이번에도 같을까?’

마력이 날뛰고 있는 지금도 그때와 같은 느낌을 받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아무것도 시도하지 않고 바라보기만 하는 것보다야 나을 것이다.

“아무도 부르지 않을게요. 다른 사람에게 알리지도 않을게요.”

디아나의 말에 케이든이 식은땀에 젖은 머리카락 사이로 눈을 가늘게 뜨고 그녀를 올려다보았다. 그는 퍽 혼란스러운 얼굴이었다.

디아나는 그의 시선을 피하듯 눈을 내리깔며 나직하게 말했다.

“대신 저만큼은.”

당신을 죽음으로 몰고 간 나 하나만큼은.

“내치지 말아 주세요.”

애원하듯 속삭이며 그의 손을 잡아 쥐는 순간.

저번과 같이 온몸을 감싸는 안온한 감각이 손끝에서부터 퍼져 나갔다.

* * *

“……내치지 말아 주세요.”

눈앞이 흐릿한 와중, 귓가로 물기 어린 속삭임이 흘러드는 것과 동시에 가슴을 찢는 듯했던 통증이 미약하게나마 가셨다.

케이든은 반사적으로 눈을 번쩍 떴다. 고통으로 인해 부옇게 흐려져 있던 시야가 아주 조금 선명해졌다.

‘무슨…….’

신기루처럼 미미했으나 그것은 분명 차이였다.

첫 발작 이후 나날이 심해지기만 하던 통증이 티끌이나마 줄어든 것을 느끼지 못할 수는 없었다.

[대체 원인이 무엇인가! 명색이 황궁의라는 자가 병명 하나 알아내지 못하는 것이야!]

[저, 저로서는 전하께서 타고난 기량이 너무도 뛰어나 이러는 것이라는 진단밖에는…….]

[그걸 말이라고 하는가!]

이렇듯 발작이 찾아오는 날이면 귓가에는 늘 죽은 3황비의 울음소리가 들렸다.

3황비는 병명을 알 수 없고, 단지 몸이 마력을 회복하려는 기질이 뛰어난 것 같다고 말하는 황궁의를 수도 없이 질책했다.

하지만 케이든은 그의 말이 진실이라는 것을 알았다.

3황비는 마력을 다룰 수 있는 능력이 전무했기에 몰랐을 것이다.

케이든이 선천적으로 타고난 능력은 고작 한 인간의 몸뚱이가 감당하기에는 과분하다는 사실을.

불행이라고 해야 할지 다행이라고 해야 할지, 황궁의는 몸이 약한 3황비를 개인적으로 안타깝게 여겼다. 일찍이 잃은 딸과 닮았다는 이유에서였다.

그는 연민에 젖은 눈으로, 케이든이 주기적으로 발작을 일으킨다는 것을 평생 함구하겠노라 맹세했다.

[이 일이 1황비 전하의 귀에 들어가는 일은 없어야 하겠지요.]

그는 황궁의 실정을 잘 알았고, 그렇기에 1황비가 이 일을 알았다가는 강대한 빛을 타고났다며 주목받는 케이든을 옳다구나 물어뜯으려 할 것이라는 사실 또한 알았다.

하여 그 당부를 마지막으로, 황궁의는 3황자 궁에 발길을 끊었다.

3황비 모자를 1황비의 눈에 띄지 않게 해 주려는 그 나름의 배려였다.

그리고 그날 이후 케이든은 발작이 찾아올 때마다 늘 혼자였다.

침대 시트가 축축해질 만큼 식은땀을 쏟고, 끝내는 숨조차 쉴 수 없는 고통에 못 이겨 시트를 물어뜯을 때조차 그의 곁에는 아무도 없었다.

그의 어머니인 3황비는 얼마 지나지 않아 죽음의 품으로 돌아갔으므로.

그런데…….

[아무도 부르지 않을게요. 다른 사람에게 알리지도 않을게요.]

[대신 저만큼은.]

[내치지 말아 주세요.]

안개가 그득한 허공처럼 흐린 시야 너머.

어쩐지 익숙한 느낌이 드는 여자가 왜 저리도 애처로운 목소리를 내는 건지, 케이든은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지금은 쉬세요.”

그러나 그의 생각은 눈꺼풀 위를 덮어 오는 따스한 손에 다시금 끊겼다.

“곁에 있어 드릴게요.”

당신은 대체 뭐지?

난생처음 느끼는, 꼭 있어야 할 자리에 돌아온 듯한 이 느낌 또한.

‘어디서 본 것 같은데…….’

기이한 기시감을 마지막으로, 케이든은 까무룩 기절하듯 잠에 빠져들었다.

* * *

케이든이 정신을 차린 것은 그로부터 몇 시간이 지난 후였다.

그는 벼락을 맞은 듯 눈을 뜨며 벌떡 몸을 일으켰다. 그 움직임에 수풀이 흔들려 바스락대는 소리를 냈다.

‘……그 여자는?’

케이든은 급하게 자리에서 일어나 주변을 둘러보았다. 하지만 주위는 고요했다.

‘어떻게 생겼더라.’

케이든은 미간을 찌푸리며 기억을 되살리려 애썼다.

하지만 어딘가 익숙하다는 감각만 들었을 뿐, 고통으로 인해 시야가 흐려진 탓에 정확한 외양은 기억나지 않았다.

“젠장.”

그는 소리 내 욕지거리를 짓씹고는 성큼성큼 걸음을 옮겼다.

그가 주기적으로 발작을 앓는다는 사실은 파트라슈 같은 최측근조차 몰랐다.

죽은 3황비와 그를 친손자처럼 여기는 황궁의만이 그 사실을 알고 있었다.

‘찾아야 해.’

그 여자가 누군지는 모르지만, 만약 그가 주기적으로 발작을 일으킨다는 소식이 1황비의 귀에 들어가면 위험했다.

가뜩이나 끼니때를 맞추듯 찾아오는 암살자들로 인해 그는 매 순간 고비를 넘기고 있었다.

[대신 저만큼은.]

[내치지 말아 주세요.]

그때 문득 여자의 물기 젖은 목소리가 떠올랐다.

잠시 멈칫했던 케이든은 고개를 휘휘 저어 목소리를 떨쳐 버리려 애쓰며 빠르게 궁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헉, 전하! 대체 어딜 갔다가 오신 겁니까!”

여전히 3황자 궁 주변을 수색하고 있던 파트라슈가 케이든을 발견하고는 대경해 달려왔다.

그는 서러움을 와르르 쏟아 내듯 다다다 말을 내뱉었다.

“지금 약속 시간이 얼마나 지났는지 아십니까? 서즈필드 영애가 그냥 돌아가 버렸으면 어쩌려고요! 이 기회를 놓치면 저흰 사실상 파산입니다, 파산이라고요!”

“지금 갈 거야. 그보다, 오늘 황궁에 출입한 귀족 영애들 명단 추려 와. 기한은 내가 돌아올 때까지다.”

“예, 예?”

“간다.”

케이든은 당황하는 파트라슈의 어깨를 툭 치고는 빠르게 중앙 정원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힐긋 하늘을 올려다보니 어느덧 뉘엿뉘엿 노을이 내려앉고 있었다.

‘돌아갔으려나.’

파트라슈는 저를 찾는 데 사람을 동원하느라 여자의 동태는 미처 확인하지 못한 모양이었다.

케이든은 가볍게 뛰다시피 하여 중앙 정원에 들어섰다.

‘정원에서 기다리고 있을 거랬지.’

호흡을 고르며 주변을 두리번거리던 그는 한쪽에서 눈에 익은 빛깔을 발견하고는 잠깐 호흡을 멈추었다.

옅은 분홍빛의 머리카락을 가진 여자는 잔디 위에 무릎을 모아 앉아 하늘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바람에 긴 곱슬머리가 살랑 휘날렸다. 그녀는 문득 기척을 느낀 듯 고개를 돌려 케이든이 있는 쪽을 바라보았다.

오묘한 청보랏빛의 눈이 놀란 듯 커졌다가 이내 반가움을 담아 휘어진다.

케이든은 어쩐지 홀린 사람처럼 그녀와 시선을 마주했다.

‘……저 사람은.’

그때 여자가 빙그레 웃으며 입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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