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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태자, 나는 당신이 싫어 (59)화 (59/61)

〈59〉

숲의 중간 지점 부근, 구석진 곳에서는 헤일론이 홀로 활시위를 당기고 있었다.

휘익—

허공을 가른 활은 이내 푹, 목표로 두었던 나무 중앙에 꽂혔다.

이미 그곳에 박혀 있던 세 개의 화살 역시 함께 흔들렸다.

여분의 화살을 가져오지 않았기에 이제는 몇 발밖에 남지 않은 것들 중 다시 하나를 들어 시위를 당겼지만,

“활은 잘 쏘나 봐?”

그의 왼쪽에서 들려온 목소리에, 훅 손아귀에 힘이 풀렸다.

“뭡니까, 왕녀.”

가늘어진 눈가가 그녀를 매섭게 노려보았다. 그녀 역시 순간적으로 그것을 느꼈으나 이내 씩 웃으며 그에게 다가갔다.

“내가 못 올 곳이라도 온 것처럼 말하네.”

“사냥도 안 하는 사람에게는 못 올 곳입니다.”

“에이, 왜이래? 내가 이래 봬도 활을 꽤 오래 배웠는데 말이야.”

“…….”

그녀를 노려보던 눈빛이 한층 더 무거워졌다. 허나 그 속의 날은 어느새 사라진 채였다.

하, 깊게 숨을 쉰 헤일론은 제 짐을 들쳐 메고는 발걸음을 옮겼다.

제가 지금 이곳에 있어 보았자 좋을 것도 없고, 차라리 제가 움직이는 게 나을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솔직히-”

적어도 그녀가 그에게 활시위를 겨누기 전까지는,

“네 그 상처 하나 못 내는 활보다는 내 것이 더 무섭지 않겠어?”

“왕녀.”

“아니야?”

훅, 순식간에 활을 치운 왕녀는 헤일론에게 가까이 붙었다.

“그럼 한번 쏴 봐.”

“!”

그의 손에 들린 화살촉에 목을 가져다 대는 왕녀의 모습에 헤일론은 급하게 그녀를 밀어 냈다.

“아하하하!”

그 모습에 왕녀는 정말 우습다는 듯이 크게 소리 내어 웃었다.

“여전하네. 참 신기해. 그러면서 그간 여정들은 어떻게 다녔나 몰라?”

아아, 왕녀가 가볍게 탄식했다.

“이번 대회에 나온다 하기에 좀 바뀐 건가 기대했는데, 아쉽게 됐어. 네가 바뀐 뒤로 그날 일을 그 영애가 알게 되면, 참 재미있었을 텐데, 그렇지?”

“제발 내 일에 신경 꺼.”

“그러니까 말했잖아. 내 부탁 하나만 들어주라니까?”

네 비밀 지키는 값치고 그리 큰일도 아닌데 말이야, 뒷말을 이은 그녀는 이내 그녀의 말을 끌고서 걸음을 옮겼다.

“하.”

이미 왕녀의 걸음 소리는 멀어진 지 오래였고, 그 주변에는 어느 소리도 들리지 않았으나, 헤일론은 차마 어느 움직임을 보일 수 없었다.

그녀가 상기시킨 기억은, 제 생각보다도 더 아픈 기억이었다.

‘내 얼굴에 먹칠을 하는구나.’

‘……아버지.’

어린 목소리가 가늘게 떨렸다.

‘쓸모없는 것, 다 성공한 계약이었거늘.’

매서운 눈빛. 제 아들을 보는 눈빛이라고는 할 수 없는 날 선 그것에 온몸에 소름이 끼쳤다.

‘아버지! 헤일론에게 화내지 마세요, 제발요…….’

저는 손끝 하나 대지 못했던 아버지의 소매를 꼭 붙잡은 시에리나의 눈가에는 물기가 서려 있었다.

저를 위한 행동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제 속은 또 다시 뒤틀려 갔다.

그녀가 내가 닿지 못한 자리에 있어서가 아니라,

‘역시 네가-아니다. 그만 가자.’

이럴 때마다 아쉽다는 표정으로 시에리나와 저를 번갈아 보는 그 순간의 표정이, 제게는 너무도 숨 막히게 다가와서.

그게 제게는 정말이지-

“헤일론!”

“!”

순식간에 고개가 훅 올라갔다.

먹먹하던 숨이 탁 트이며 폐 끝까지 시원한 공기가 들어찼다.

무슨…….

“괜찮아요? 죄송해요, 너무 정신을 못 차리셔서.”

제 앞에 흔들리는 갈색 머리가 부드럽게 쓸렸다.

놀란 푸른 눈동자는 조금은 찡그린 표정이었으나 그 찰나의 모습마저도 제 모든 것을 잊게 만들었다.

“아.”

하지만 그것은 어느새, 그에게 두려움으로 다가왔다.

“영애가 왜-”

‘그날 일을 그 영애가 알게 되면, 참 재미있었을 텐데, 그렇지?’

‘안 돼.’

그 한마디로 머릿속이 새하얘졌다.

아직도 과거에 갇힌 이의 모습으로 보이고 싶지 않았다.

‘저런 게 황태자라니.’

제가 소름 돋을 정도로 두려워하는 그 표정이, 차마 그녀에게서 나오는 모습을 보고 싶지 않았다.

이런 모습을 보여 주면 이제 정말 그녀 곁에도 있을 수 없을 것 같아서.

그래서-

‘싫다.’

숨이 턱턱 막히고 시야가 흐려졌다.

그 앞뒤로는 머리가 웅웅, 소리 내며 울렸다.

“전하?”

그 어느 소리도 그의 귓가까지 닿지 못했고 그 어떤 고통도 지금 그에게 만큼은 느껴지지 않았다.

뚝.

검은 공간. 너무도 오랜만에 마주한, 칠흑 같은 어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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