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황태자, 나는 당신이 싫어 (44)화 (44/61)

〈44〉

레이즌을 사기에 이용한 제릭의 이야기는 기사로 실리게 되며 이곳저곳에 퍼져 나갔다. 그리고 오늘 아침, 클로디 저택에는 두 통의 편지가 도착했다.

내 일이 잘 마친 것을 알게 된 라엘이 가장 먼저 내게 편지를 보낸 것이었다.

‘베리안에게.

잘 지내나요, 베리안? 기사는 봤어요. 좋은 쪽으로 해결된 것 같아 다행이에요.

사실은 조금 걱정했거든요. 베리안이 그렇게 고민하는 건 처음 봐서.

이렇게 돌아왔는데 요즘 제가 조금 바빠서 못 만나는 게 아쉽지만, 다음에 만날 때는 번화가에 나가서 편하게 시간 보내요.’

분명 처음에는 어색하고 친구보단 동업자에 가까운 관계였는데, 이렇게 보니 많이 가까워졌다는 실감이 부쩍 크게 느껴졌다. 내가 황태자비였던 시절보다 더더욱.

나는 읽던 편지를 다시 봉투에 잘 넣어 서랍 속에 집어넣은 후 다음 편지를 들었다.

‘?’

분명 이름을 확인하기 전인데도 불안함이 감돌았다.

‘잘못 봤겠지?’

편지지를 꺼내 들며 어째선지 보여선 안 되는 인장이 보였던 것 같은데.

그렇게 생각하며 조심스레 뒤집은 편지지에 황금빛 문양을 보자마자 내 가슴속 깊은 걱정은 어느새 확신이 되어 있었다.

‘또 황실인가.’

일전 생에는 잘 보지도 못했던 저 색이 요즘 따라 왜 이리 흔한 것이 되어 버렸나 모르겠다.

나는 걱정 반 두려움 반으로 편지를 열어 보았다.

‘……?’

편지 속지를 꺼내는 손끝에 무언가가 걸렸다.

그 안에는 속지와 함께 말린 안개꽃이 들어 있었다. 봉투 안에 꽃을 넣는 것은 황녀의 취미였다.

‘그럼 이 편지를 황녀가?’

그에 대한 불안한 상상이 일기도 전에 편지지를 열자 바로 보인 이름은 역시나 예상을 빗나가지 못하는 시에리나 데 오베르샤, 황녀의 것이었다.

꽃을 책상 위에 올려 둔 뒤 편지를 찬찬히 살펴보니 종이 한 면에 빼곡한 글씨가 채워져 있었다.

그 글자 양에 어울리지 않는 간단한 속뜻을 말하자면……

‘황실에서 작은 가든파티가 열립니다. 영애를 초대하고 싶어요. 좋은 답변 기다리겠습니다.’

가든파티라는 글자를 보자마자 머릿속에 의문이 생겼다.

‘왜 나를?’

황녀는 이따금 황실에서 자신의 측근들을 모아 파티를 열었다.

사실 파티라고 칭하기에는 작은 티타임이었지만 ‘황녀의 측근’이라는 명칭 하나로 삽시간에 모두가 갈망하는 자리가 되어 버린 그곳은 사교계 영애들 사이에선 모르는 이가 없었다.

게다가 잘만 하면 황녀의 말벗이 되어 황녀를 등에 업을 수도 있으니 영애들뿐만이 아닌 그들의 부모까지도 그것에 눈독을 들였으나, 당연하게도 그 초대장은 쉽게 받을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황녀와 연이 있든가, 가벼운 친분이 있든가, 혹은 조그마한 관심이라도 끌든가.

하지만 나는 그녀와 어떠한 인연도 없었다.

매번 멀리서 발견하거나 가끔 황실 파티에서 만나 인사를 나눌 뿐.

심지어는 이전 생에 황태자비로 들어간 뒤에도 그녀와 몇 마디 이상 말을 나누어 본 적이 없었다.

그렇기에 파티에 초대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는데, 이건 대체…….

또다시 생긴 변화 덕에 잠시 걱정이 되긴 했지만, 어차피 나쁠 건 없는 변화였다.

이번 한 번뿐이래도 다음 파티가 오기까지 그녀의 측근이라는 명성을 얻을 수 있었고, 그걸 이용해 다른 영애, 귀부인들과 친해지는 계기가 될 수도 있었다.

또 황녀는 내가 이번 생에 다시 한번 만나고 싶은 사람 중 한 명이었다.

‘너도 고생이 많구나.’

‘널 무시하는 것들에게 약한 모습을 보이지 마라. 그것이 그들이 원하는 모습이 될 터이니.’

그녀는 황태자비 시절 내게 잠시지만 힘을 준 사람이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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