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황태자, 나는 당신이 싫어 (42)화 (42/61)

〈42〉

날이 완전히 밝자 상처에 무리가 가지 않을 실내복을 입고서 방을 나섰다. 가는 길마다 사용인들의 시선이 닿았다.

무슨 시선들일까?

“걱정돼서 그래요, 대부분의 사용인들에겐 그 불길 속에서 있던 모습이 마지막 모습이었을걸요. 제가 아가씨가 죽었다는 이야기에 해명을 얼마나 하고 다녔는데.”

“넌 내가 나간 줄 알았던 거야?”

“당연하죠. 모시던 아가씨가 저희랑 옷 좀 비슷하게 입는다고 못 알아보겠어요? 아는 척했다가 기사들에게 들킬까 봐 못 했던 거지.”

“이야, 감동인데?”

“감동은 무슨, 불길이 일었을 때까지만 해도 제가-”

그로부터 시작한 메이샤의 하소연을 가득히 듣고 있자니 금방 아버지의 집무실 앞에 도착했다.

“다녀올게.”

나는 아직도 조금은 걱정하는 눈빛의 메이샤를 보며 싱긋 웃어 주고서 방문을 당겼다.

“…….”

기다리고 있었던 모양인지 이리저리 돌아다니던 아버지는 나와 눈이 마주치자 우뚝, 굳어 버렸다.

“좋은 아침이에요, 아버지.”

“……앉으렴.”

아버지와 마주 앉은 가운데 테이블에는 가장 최근의 신문이 놓여 있었다. 제릭의 이야기가 적혀 있을.

“기사는 보셨나요?”

“그래.”

“그럼 몇 가지 물어봐도 될까요?”

“……그래.”

나는 일전의 이야기를 나눴다. 왜 그런 일이 생긴 건지 그 경위는 어떻게 되는지.

아버지는 내 물음에 천천히 말을 이어 갔다.

기사단과 마물을 잡은 뒤 어느 한 사람을 만났다고. 그게 자신을 테릴이란 이름으로 소개한 제릭이었고, 그는 가문의 상황을 도울 테니 공을 넘기라고 조언했다.

처음부터 그를 믿은 것은 아니었지만 왜인지 그와 대화를 할 때면 정신이 멍해졌고 그렇게 그의 조언대로 따르게 되자 정말 모든 일이 잘 풀렸다고 했다.

그렇게 그를 보좌관에 앉히고 수도 저택에 들어섰다고.

“그럼 저한테는요? 왜 그리 매정하게 대하셨어요?”

“모든 것을 응원하는 아비는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말을 들었다.”

“제 행동을 지적한 일도요?”

“너를 위한 일이라 했기에…….”

“그래서 제가 원치 않는 일을 그리 강요하셨고요.”

“……미안하구나. 아비로서 면목이 없다. 널 아직도 아이로만 보았어.”

아버지는 언제 그랬냐는 듯이 한없이 작아졌다. 이전과 지금의 차이는 아직 어색했지만 내가 알던 아버지의 모습은 조금, 사실은 아주 많이 반가웠다.

“아직 아이는 맞아요. 혼자서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없거든요.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도와줬어요.”

여전히 내 곁에 있는 소중한 이들이.

“물론 그렇대도, 아직 저는 많이 부족해요. 그러니까, 제 곁에 있어 주세요.”

잠시 흘겨본 그의 손끝이 움찔거렸다.

“혼자 앞에 서 계실 필요는 없어요. 이제 아버지 뒤에 숨어 살 정도로 부족하지는 않으니까요. 그냥 이전처럼 함께 있어요, 우리.”

결국 나는 그를 용서했다.

누군가에게는 이 행동이 어리석게 보일 수 있었지만 나는 아버지께서 얼마나 힘든 시기를 보냈는지 알고 있었다.

가세가 기우는 가문을 홀로 책임지는 것은 육체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엄청난 힘이 들어가는 일이었기에.

그러니 딱, 이번만은 이해할 수 있었다.

“이제 사과해 주세요. 아버지의 변한 모습에 힘들었고, 아무리 가문를 위한 일이라고 해도 제게 언질 한번을 안 주신 건 아버지의 잘못이니까.”

아버지는 고개를 푹 숙였다.

“……정말 미안하구나. 네게 그리 대한 것도, 끝내 그를 믿은 것도, 모든 일을 네가 짊어지게 하고서 마지막에 이리 사과하는 것도 염치없구나. 더 변명할 수가 없어.”

“여기서 제가 괜찮다고 해야 할 부분이겠죠?”

“네가 원하지 않는다면 나도 원치 않는단다.”

나는 그 모습에 졌다는 듯이 고개를 저었다.

“이름이요.”

“응?”

“이름 불러 주세요. 매번 소리치실 때만 절 부르셨잖아요.”

내 재촉에 아버지는 수심이 가득한 얼굴을 조금이라도 펴며 말했다.

“베리안. 너 같은 딸을 두고도 못나게 행동한 이 아비를 용서치 말아라.”

바라고 바랐던 사과의 한마디가 돌아왔을 때, 나는 그 말을 끝으로 아버지를 꼭 끌어안았다.

너무 아이 같아 보이지는 않을까 해서 하지 못했던 행동이었지만 지금은 내 마음대로 하고 싶었다. 항상 앞에서 걸어 크게만 보이던 아버지가 내 곁으로 다가왔다.

“이번엔 넘어가 드릴게요. 그래도 아직 용서한 건 아니에요. 조금 더 지켜보고, 그때 용서할게요. 그러니 그때까지 약물 치료 잘 받고 평소처럼, 웃어 주세요.”

조금은 애매하고 어물쩍 넘어간 마무리처럼 보였지만, 이제 나는, 괜찮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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