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7〉
이미 대부분의 이들이 잠들어 버린 저택은 한적하기만 했다.
“우선 백작님이 기다리고 계시니 먼저 찾아뵙지요.”
희미한 불빛에 기대어 어둠 속에서 걸음을 옮기고 있자 문득 한 생각이 떠올랐다.
“메이샤는 어디에 있죠?”
빠른 발걸음으로 나아가던 그를 따라가며 물었으나 돌아오는 답은 없었다. 순식간에 불길한 예감이 스쳤다.
“메이샤, 어디에 있냐고요.”
“……주인을 속인 하녀가 어떻게 될지는, 뻔한 일 아닙니까.”
그 순간 내 머릿속에는 한 단어밖에 남지 못했다.
‘감옥.’
나는 잘만 그를 따르던 발길을 돌렸다. 깊은 여정에 해진 옷을 휘날리며 미친 듯이 지하 계단으로 내려갔다.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는 보통 1층의 방들을 사용했겠지만. 만약 감옥에 보낸 게 그라면…….
나는 1층에서 더욱 아래로 내려갔다.
“아가씨?”
감옥 앞을 지키던 기사들이 나를 보며 눈을 크게 떴다. 생전 감옥 앞을 쳐다도 안 보던 이가 여기까지 달려왔으니 그럴 만도 했다.
“여긴 어떻게…… 아.”
말끝에 가벼운 탄식이 붙었다. 그 말은 내 끔찍한 상상에 힘을 실었다.
“……비켜.”
“아가씨.”
“당장 비키라고.”
결국 그들은 내 앞에서 물러났다. 서늘한 분위기의 감옥을 더 깊숙이 들어가자 익숙한 형상이 눈에 들어왔다.
“아가씨?”
아무렇지 않다는 듯이 감옥의 벽에 기대어 앉아 있던 그녀가 벌떡 자리에서 몸을 일으켰다.
“……왜 이러고 있어.”
그 말을 뱉으면서도 차마 다음 말을 할 수가 없었다. 그녀를 이렇게 만든 게 나였으니까. 결국 또 그녀는 나를 위해 희생했으니까.
미안하다는 말조차도 허울 좋은 말로 들릴 것만 같았다.
“켄 경.”
몰래 벽 뒤에서 나를 바라보던 조금 전 그 기사는 내 말에 어색한 모습을 보였다.
“내가 무어라 말할 지는 경이 더 잘 아시겠지요.”
더 반박할 힘도 없었으나 다행히 그는 내 말에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았다.
철컥, 강압적으로만 보이던 철문이 열리고 메이샤가 빠져나왔다. 내 방으로 돌아가는 길에 우리는 서로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나는 그녀의, 그녀는 내 마음을 너무도 잘 알았기에, 서로를 위한 침묵을 지켰다.
방에 들어오자마자 욕조에 물을 채웠다. 따스한 김이 모락모락 올라오자 나는 메이샤를 바라보았다.
“쉬고 있어.”
“네?”
내 말에 그녀는 크게 놀란 듯이 보였다.
“아니에요. 아가씨께서 더 힘드셨을 텐데…….”
“메이샤.”
힘이 빠져 낮아진 목소리에 그녀가 입을 다물었다.
“이런 건 아무것도 아니잖아. 네가 거기에 있던 건 내 잘못이야. 내 책임이고. 그러니 아무 말 하지 말아 줘.”
나는 그녀를 두고서 욕실을 빠져나왔다.
“하녀들에게 옷을 가져다 달라 할게. 편히 쉬어.”
“아가씨.”
“그럼 다녀올게.”
그 말을 마지막으로 나는 방을 나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