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황태자, 나는 당신이 싫어 (29)화 (29/61)

〈29〉

“어머니 오늘 저랑 차 마시지 않을래요?”

상쾌한 공기가 들이찬 오후. 복도에 서서 방 안으로 슬그머니 고개를 기울인 내가 묻자, 어머니는 기다렸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좋지.”

“그럼 조금 이따가-”

그 대답에 기분 좋게 말을 잇던 내 오른쪽에서 어느 틈에 한 시선이 느껴졌다.

이제는 익숙해진 무표정한 얼굴로 나를 내려다보는 아버지는 내가 문밖에서 목소리를 낸 것이 불편하다는 듯한 기색을 보였다.

“좋은 점심이네요, 아버지.”

“복도에서 이야기를 나누는 건-”

“죄송해요, 잠시 잊었어요.”

나는 더는 대화를 원치 않는다는 듯 고개를 휙 돌려 버렸다. 이것에 대해서 더 언급할 거라 예상했지만 그와 달리 아버지는 잠시 나를 바라보다 이내 가던 길로 떠났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 물어보려 해도 대답은커녕 호통만 내시고, 나는 아직까지도 그 여정에 관한 정보를 알지 못했기에 아버지와 대화는 어느 정도 피하고 있었다.

어차피 지금 우리가 할 수 있는 대화라고 해 보았자 서로에게 안 좋은 감정만을 심어 줄 것이 뻔하니 별수 없는 일이었다.

몇 번 반복하다 보니 익숙해지기도 한 일이었고.

“좋은 점심입니다, 아가씨.”

내게 미소를 보내는 저 보좌관의 목소리도 이제는 그저 흘려들을 수 있을 정도가 되었다.

“아가씨.”

메이샤는 나를 뒤로하고 떠나는 보좌관을 잠시 째려보더니 내게 무언가 속삭이려는 듯이 한 손을 내 귀 가까이에 하고 작은 목소리를 읊조렸다.

“포르한가에서 연락이 왔어요. 아마 그 일 때문인 것 같아서…….”

아, 나는 순간 어머니의 눈치를 살폈다. 이번 일을 도울 수 있을 거라는 라엘에게 요청한 자료임이 틀림없었다.

“곧 방으로 갈게.”

얼마 지나지 않아 방으로 돌아오자 한눈에 봐도 편지로는 보이지 않는 큰 봉투가 책상에 놓여 있었다.

발신지는 들은 것과 같이 포르한가.

그 안에 담긴 내용을 하나하나 읽어 보던 나는 얼굴에 환한 미소를 띨 수밖에 없었다.

“찾았다.”

“뭔가 알아내신 건가요?”

내 혼잣말에 다가온 메이샤의 물음에 나는 고개를 저었다. 그럼에도 입가의 미소는 선명한 호선을 그렸다.

‘확실히 이유를 알게 된 건 아니었지만 그 실마리는 잡을 수 있어.’

“기사단에 속해 있는 이 중에 귀족들을 골라낸 거야. 이 사람들을 찾아갈 수만 있다면, 뭐든 알아낼 수 있겠지.”

아버지께선 내게 무언가 말해 주실 생각이 전혀 없어 보이셨다. 그리고 나 역시도 더 이상 그에게 무언갈 바라고 싶지 않았다.

‘레이즌이며 내 본분이며, 그런 이야기를 듣느니 차라리 내가 찾는 게 나아.’

서류에 동봉된 자료를 꺼내 들자 한 손에 짚이는 양이 예상보다도 적었다.

대부분의 기사단을 구성하고 있는 평민들을 전부 제외하고 난 양이기에 그랬다.

분명 기사들은 한곳에서만 모이는 이들이 아니었다. 여정에 나선다면 여러 곳에서 여러 이유로 모일 수 있는 사람들이었으나, 정말 큰 변수가 아닌 평민 기사들은 보통 귀족의 아래에 귀속된 이들이 많았다.

그 말은 즉 만약 내가 이 일을 조사하러 그들과 접촉을 시도하려면 먼저 그 앞의 귀족들에게 허락을 구해야 한다는 말이다.

그 과정에서 그 귀족들이 ‘왜’라는 의문을 가지지 않을 가능성은 거의 제로에 가까웠으며, 그들은 분명 그 이야기 뒤에 무엇이 있는지를 캐 보려 할 것이 분명한 일이었다.

하지만 마땅히 소속된 곳이 없는 귀족 기사들은 다르지 않은가.

우연히 만나기도 쉬웠고, 근황을 묻는 듯이 이야기를 떠보기도 쉬웠다.

뭐, 상대가 누구냐에 따라 다르겠지만 우선 어느 귀족가에 속해 있는지부터 시작해 그 허가와 만남까지 전부 내가 만들어야 하는 평민 기사들보다야 쉽다고 단언할 수 있었다.

“그래도 다행이네요!”

메이샤도 덩달아 신이 났는지 목소리를 높였다.

‘그럼 좀 살펴볼까…….’

라엘이 전해 준 서류는 그리 많지 않았다. 그만큼 귀족들이 얼마 없었다는 거겠지.

“벨 지아샤, 이 사람은 여성들만 있는 탈리안 기사단이니 제외, 놀리 에스텔, 이 사람은 중간에 복귀했으니 제외…….”

제외, 제외, 제외.

‘몇 명 빼고는 도통 남아나는 사람이 없네.’

나는 읽던 장을 펄럭, 넘겼다. 이제 마지막 장이었다.

“제외, 제외, 응?”

어쩐지 익숙한 이름과 서명이 눈에 들어왔다.

‘에비트 리노테인.’

윽, 미간을 구기는 탄성이 절로 나왔다.

하필 몇 없는 이 중 한 명이 이 사람이라니.

에비트 리노테인, 리노테인 후작의 아들이자 내가 후작 다음으로 몸서리치게 싫어하는 이였다.

안 되는 이들은 제외하고 남은 이들은 총 4명. 에비트 리노테인만큼은 추호도 만나고 싶지 않았기에 그를 제외한다면 내가 찾아볼 이들은 단 3명이었다.

문제는 지금껏 접점도 없는 이들과 어떻게 접촉하냐는 건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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