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
그리고 당일, 저녁 식사 시간
“그래서 요즘은요…….”
달그락거리는 식기 소리만 울려 퍼지는 식탁 위, 대답이 돌아오지 않는 내 혼잣말이 허공을 떠다녔다.
아버지는 물론, 매번 다정한 표정으로 내 말에 귀 기울이던 어머니조차도 음식들에만 시선을 고정한 채 그것을 먹을 뿐이었다.
“그리고, 그리고 또…….”
먹먹해진 목소리에 더는 말을 이을 수가 없었다.
어떻게든 무시하고 피하려던 사실을 이제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무엇인가 이상하다는 걸.
평생을 나를 괴롭히던 낮고도 어두운 분위기가 절대 그런 감정을 느끼지 않을 것만 같던 우리 세 사람 사이에 들이닥쳤다.
익숙하지 않은 그 상황이 어색하고 두려웠다.
괜찮은 척 넘기고 있던 음식을 더는 넘길 수가 없었다. 목이 턱턱 막혀 왔다.
“저, 아버지.”
결국 나는 먼저 그를 불렀다. 그의 손에서 움직이던 나이프가 우뚝 멈춰 섰다.
“뭐지.”
“혹시, 무슨 일 있으세요?”
제발, 내 말에 대답해 줘요.
잠시 피곤해서 그런 거라고, 내가 걱정할 일 따위는 없다고.
절대 변해 버린 것이 아니라고.
“그런 일 없다.”
“여정에서 힘든 일이 있으셨던 거면…….”
탁. 그의 손에 들린 나이프와 포크가 소리 내며 테이블 위에 놓였다.
“식사하는 시간에 말이 많구나.”
차가운 목소리. 단 한 번도 내게 들려준 적 없던 목소리가 서늘하게 귓가를 파고들었다.
그와 동시에 어머니의 얼굴에도 어색한 기색이 드리워졌다.
왜?
이게 대체 무슨 상황이야?
어릴 적부터 아버지는 그리 다정한 목소리로 동화책을 읽어 주시는 분은 아니었다. 하나 어색하고 담담한 목소리로라도 매번 내게 따스한 말들을 들려주고는 했었다.
언제나 용기가, 또는 희망이 되는 말들을 들려주던 그였다.
하지만 지금의 그는, 잠든 내 머리맡에서 사랑한다고 말해 주던 그가 아니었다. 내 몇 없는 행복한 기억 속의 나의 아버지가 아니었다. 내 기억이 잘못된 것일까.
순간 울컥, 눈물이 차올랐다.
“베리안?”
차오르는 감정에 고개를 떨어뜨리자 이상하게 여긴 어머니가 내게 손을 뻗었고, 그 모습에 나도 모르게 그 자리에서 벌떡 일어서고 말았다.
탁, 어깨와 부딪힌 손을 떼어 낸 어머니의 시선을 고개를 푹 숙여 가며 억지로 피했다.
“죄, 송해요. 저 먼저 일어날게요.”
그 상태로 문으로 달려간 나는 쿵, 식당의 문을 닫은 채 내 방으로 향했다.
매번 걷는 그 복도가 투박한 비탈길보다 걸어 나가기가 어려웠다. 그런데도 어떻게든 그 자리를 떠야겠다는 생각에 발걸음을 멈출 생각을 하지 못했다.
저 모습을 더 보고 있다가는 정말 내 많은 것이 무너져 내릴 것만 같아서.
쿵.
“아가씨?”
내 방으로 들어서 문을 닫아 버리자 방 안을 청소 중이던 메이샤가 눈을 크게 뜬 채로 내게 달려왔다.
가슴이 조여 와 가빠진 숨을 크게 뱉어 냈다.
“아가씨, 저녁 드시러 간 게 아니었어요? 왜 벌써-”
“메이샤…….”
아버지가 이상해.
내가 지금껏 알던 모습이 아니야. 내가 도망친 동안 몰랐던 일이었다지만, 그래도 이 상황이 너무 속상해서 미쳐 버릴 것 같아.
나는 그대로 그녀의 옷자락을 쥔 채로 참았던 눈물을 떨어트렸다.
“아니, 이게 무슨…….”
내 행동에 메이샤는 당황하면서도 손등으로 내 뺨을 문질러 뺨을 적시던 눈물을 닦아 냈다.
그녀의 걱정 어린 행동들에 더욱 큰 물방울이 넘쳐흘렀다.
흐느끼는 목소리로 무언가를 웅얼거리는 나를 꼭 끌어안은 메이샤는 그대로 내 등을 토닥였다. 당황하기도, 상황의 전말이 궁금하기도 할 텐데 그녀는 그저 나를 달래는 데에 전념했다.
그렇게 몇 분이 지났을까.
나는 눈물을 그치고도 정신을 차리지 못했고 홀로 놓이기 두려웠던 내가 그녀를 잡아끈 바람에 메이샤는 그런 내가 잠이 들 때까지 내 곁을 지켜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