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황태자, 나는 당신이 싫어 (24)화 (24/61)

〈24〉

매번 미소만을 그리고 있던 그녀의 입가가 굳어 있는 모습이 그렇게 무서울 수가 없었다.

그녀는 자연스럽게 본래 앉던 자리에 앉았다. 그런 이후에도 우리 사이에는 아무런 목소리도 떠다니지 않았다.

괜히 나선 건가.

그녀가 화를 내더라도 이상하지 않을 상황이었다.

복귀 후 첫 티 파티라고 일부러 많은 이들을 초대해 주었건만, 그곳에서 목소리를 높였다.

그날 내가 떠난 뒤의 분위기는 육안으로 보지 않았더라도 알 수 있었다.

나 때문에, 그녀의 파티는 엉망이 되었다.

방 안에는 침묵만이 계속되었다. 이것이 계속되자 라엘의 입이 떨어지는 것이 두려워져 왔다.

‘나한테 실망했으면 어떡하지.’

‘그래서 더는 가르치고 싶지 않다고 하면 어떡하지.’

‘내가 함께하고 싶은 몇 안 되는 사람 중 한 명인데, 그날 내 행동으로 라엘이 날 싫어하게 된다면-’

하나의 걱정은 점점 더 깊숙이 들어가며 다른 걱정을 끄집어냈다. 그 덕에 나는 점점 더 불안해졌고, 그로 인해 오는 두려움에 내 손끝이 파르르 떨려 오던 찰나,

“베리안.”

침묵을 깬 라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평소에 비해 낮은 목소리는 저 아래 바닥을 긁고 있었다.

“나한테 할 말 없어요?”

아마 이 상황에 듣는 말들 중 저 문장이 가장 무서운 것이 아닐까 생각이 들었다.

어떡하지.

할 말은 많았지만, 그로 인한 대답이 내가 피하고 싶어 하는 그 말이 될까, 섣불리 어느 말을 꺼낼 수가 없었다.

탁상 아래 자리한 두 손을 마주 잡으며 고민해 보았지만 역시나 이 상황에 답은 없었다.

“죄송해요…….”

결국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방안을 세웠다.

“티 파티를 망칠 생각은 없었어요. 처음에는 저도 정말 조용히 참으려고 했고요.”

말을 하면 할수록 그것들이 전부 변명처럼 들려오는 것 같았다.

“정말, 정말 참으려고 노력했는데요…….”

한 자 한 자를 말하고 있자 점점 목이 메어 왔다.

그럼에도 하던 말들은 멈추지 않고 계속해서 털어 냈다.

“……아무리 제 생각이 그렇대도 결과에 대해서는 할 말이 없어요. 정말 미안해요, 라엘.”

한참 문장을 잇다 보니 어느새 내 고개는 축 처져 아무 죄 없이 뜯고 있는 손끝으로 가 있었다.

그녀는 이런 내 답에 어떤 말을 돌려줄까.

제발, 내 예상만은 피해 주기를.

“역시 아직 멀었네요.”

‘?’

선명하게 들려온 목소리에 나도 모르게 고개를 번쩍 들어 그녀와 시선을 맞췄다.

휘어진 눈매. 평소와 같은 목소리.

“언제쯤 영애는 사람 표정을 읽을 수 있을까요?”

무슨 상황인가를 파악하는 나를 바라보던 라엘은 재미있다는 듯이 웃고 있었다.

예상을, 피해도 너무 피해 갔다.

“……라엘, 화난 거 아니었어요?”

“제가요? 제가 왜요?”

정말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은 라엘은 어깨를 으쓱거렸다.

“뭐, 첫 티 파티라고는 해도 웬만한 영애들이 어려워하는 이들만을 모아 놓은 거고, 솔직히 그날 상황이 말이 아니었잖아요? 그 상황에 참고 있으면 착한 게 아니라 멍청한 거죠.”

“하지만 영애의 티 파티가 엉망이 되었는데요……?”

“파티야 어차피 한번 즐기고 사라지는 건데요. 영애들도 그때만 좀 놀랐지, 괜찮을 거예요. 사교계에 파다한 게 말다툼인걸요. 사실 그렇게까지 직설적으로 말할 줄은 몰랐지만, 결과는 베리안이 이겼으니까, 그거면 됐죠.”

“이기기만 하면 되는 거냐고요…….”

“뭐, 대충은 비슷한 거 아니겠어요? 본래 사교계는 전부 자잘한 싸움이 차고 넘치는 곳이잖아요. 그 수많은 일들의 과정을 전부 기억할 수 없고 결국 기억에 남는 건 결과뿐이니까.”

몇 분 전까지 긴장하고 있던 내 모습이 무색하게도 너무 단순하게 넘어가 버린 그녀의 말에 나는 절로 웃음을 뱉어 낼 수밖에 없었다.

“아하하, 그게 뭐예요.”

내가 미소를 보이자 라엘도 나를 따라 씩 웃어 주었다.

“이번 일은 걱정 말고, 나중에는 좀 더 가벼운 티 파티에 가 보는 것도 나쁘지는 않겠네요.”

“아, 다른 티 파티에요…….”

지난번 같은 일들이 일어나는 건 정말 싫은데.

피곤한 건 둘째 치고 내가 티 파티에 참석하는 이유로 우리 가문이 욕먹는 것이 싫었다.

그런 내 기색을 눈치챈 라엘은 중간에 놓인 유리병에 있던 찻잎을 조금 덜어 찻주전자에 넣었다.

내 앞에 놓인 잔을 분홍빛 차가 채워 갔다.

“아직 힘들면 조금 쉬어도 돼요. 요즘은 사교 시즌이라 여러 곳에서 티 파티가 열리니까. 괜찮아질 때쯤 다시 시작해도 되겠죠.”

“……네.”

나는 멍하니 그녀를 바라보다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요즘 다른 일들은 없나요?”

가벼운 분위기를 만들려는 라엘은 차를 한 모금 넘기며 웃었고 나도 그녀를 따라 환하게 미소 지었다.

“요즘 카슬라 영애를 만나서…….”

오랜만에 만난 그녀와는 이후로 더 이야기를 나누었다.

내 마음을 알아채 가며 배려하는 모습이 이전 삶에서의 모습과 빼닮아 있었다. 하지만 그 당시의 그녀보다 조금 더 미소가 많았다.

괜스레 나도 함께 입가에 배시시 웃음이 피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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