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황태자, 나는 당신이 싫어 (21)화 (21/61)

〈21〉

그로부터 일주일이라는 시간이 지난 지금.

‘예상보다 훨씬 더, 완벽하네.’

키첼을 받아 간 귀족들의 모두가 내 말을 이행해 준 것은 아니었지만 역시 몇 이들의 움직임으로도 그 파동은 컸다.

심지어 몇 명의 귀족들은 키첼을 목걸이나 브로치로 만들어 몸에 차고 다니기까지 했으니 소문이 퍼지는 것은 한순간이었다.

화려한 그들의 행적 덕에 레이즌은 그 넓은 곳의 자리가 부족할 정도로 사람들이 늘어났다.

레이즌의 이미지는 날이 갈수록 좋아졌고 많은 이들이 그곳을 들르는 모습에 따라나서는 이들도 생겨났다.

그 순간을 놓치지 않고 관리자들은 최대한 직원들의 서비스 관리에 힘을 썼다.

고위 귀족이라는 포장 속에 갇히기에는 이젠 너무도 광범위한 고객층이 ‘레이즌’이라는 클럽을 찾고 있었다. 결국 내 목적은 아주 성공적으로 달성했다.

물론 사람과 사건들이 늘어나며 취침 시간은 점점 줄어들었고, 서류를 읽던 도중이라면 식사 또한 거르는 일이 다반사가 되었으며, 최근에는 불면증까지 생겨 침실에 들여놓은 향초만 해도 3개가 넘었지만.

‘뭐 어때? 우리 가문에 들어오는 수익이 이렇게 늘어났는데.’

지금의 내 만족도는 한없이 올라가고 있을 뿐이었다.

“후우.”

오늘은 이 정도만 할까 생각하며 의자에 걸치듯 몸을 기대자 문밖에서 작은 노크 소리가 들려왔다.

“아가씨.”

문이 열리자 그곳에 고개를 내민 메이샤가 안으로 들어왔다.

요즘 내가 하는 일들을 가장 가까이에서 지켜보는 그녀는 혹여 내가 힘들어할까 하루에도 몇 번은 나를 찾았다. 처음엔 미안하기도 했지만 이젠 그저 익숙해진 일이었다.

“무슨 일이야?”

“아가씨께 편지가 왔어요. 두 개나요.”

“편지?”

서류가 아닌 편지. 그것도 두 장이라.

황실에서 파티가 또 있던가?

그렇게 생각하며 메이샤가 건네는 편지를 받아 들자 편지의 검은 왁스 위에 새겨진 테하스 공작가의 문양이 눈에 들어왔다.

클로디 영애께.

언뜻 딱딱하게도 보이지만 그 끝은 이내 부드러워지는 글씨체가 공작의 모습과 똑 닮아 있었다.

레이즌의 일로 바쁘시다고 들었습니다.

하지만 괜찮으시다면 꼭 한번 다시 보고 싶네요. 몇 가지 묻고 싶은 이야기도 있고.

그러고 보니 파트너 제안을 한 뒤로 공작을 만나지 못했었다.

이제는 서로의 사업 파트넌데 여러 이야기도 나눠 봐야지.

납득할 수 있을 만한 내용에 나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며 다음 문장을 읽어 내려갔다.

여러 일로 바쁘겠지만 시간 내 주시길 바랍니다.

답신 기다리겠습니다.

카를 테하스.

짧다면 짧은 편지였지만, 이전 생의 그의 모습을 알고 있는 나로서는 그 편지가 한없이 신기하기만 했다.

그렇게 싱긋 웃으며 두 번째 편지를 빼내자 이번에는 분홍빛 왁스를 떨어트린 편지지가 눈에 들어왔다.

‘분홍빛 문양이라.’

왠지 익숙한 그 편지지에는 라엘에게 사교계에 대해 들었을 적 보았던 카슬라 자작가의 문양이 새겨져 있었다.

카슬라 자작가에서 내게 왜?

그런 의문과 함께 읽어 내려간 편지 내용은, 제 걱정을 완전히 머릿속에서 날려 버렸다.

클로디 영애님께.

부드럽고 작은 글씨체로 적힌 글씨체에서 밝은 기운이 느껴지는 듯했다.

기억하실지 모르겠지만 저번 티 파티에서 영애를 처음 뵈었어요.

당시 모습이 인상 깊어 친해지고 싶다고 생각해 이렇게 편지를 적어 보냅니다.

혹시 영애께서만 괜찮으시다면 저희 저택에 초대하고 싶어요.

달콤한 디저트와 차를 준비할 예정이거든요. 아 물론 영애를 제외하고는 아무에게도 편지를 보내지 않았답니다. 전과 같은 불편한 상황은 없을 거예요.

좋은 대답 기다릴게요.

엘리 카슬라가.

세상에.

편지를 들고 있던 두 손이 놀란 마음에 벌어진 입을 가렸다.

포르한가에서의 티 파티 이후로 이런 관계는 생각지도 못했었다.

사실은 지난번보다도 관계를 쌓기가 어려울 거라고 생각했다.

그 누가 저보다 더 권세 있는 이에게 대드는 인물을 좋아하겠느냐고 믿어 의심치 않았는데 이건 정말, 예상 밖의 일이었다.

엘리 카슬라. 이전에 라엘이 사교계의 인물들에 대해 알려 줄 당시 들어 본 이름이었다.

사업체를 운영 중인 카슬라 자작가의 둘째 딸로 알려진 그녀는, 홀로 사업을 이끌어 가는 것으로 시작해 그녀 자신의 행적만으로도 이름을 알리고 있었다.

세간에 크게 알려진 것들도 없던 사람이었으나 어느샌가 사교계에서 확고한 자리를 차지한 이가 된 그녀는, 그것을 내게 알려 주던 라엘 또한 신기한 사례라고 답했다.

그래서인지 자연스레 붙은 의심의 시선들에도 그녀는 꿋꿋이 사교계를 활보했으며 아직까지도 사교계에서 큰 부분을 차지한 상태였다.

음, 하지만 사실 그녀가 누구인지는 내게 그리 중요한 안건이 아니었다.

‘잘만 하면 그녀와 친해질 수 있을지도 몰라.’

티 파티 이후 어떻게 회복해야 하나 고민하고 있던 영애들과의 관계가 나아질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가벼운 웃음이 지어졌다.

나는 책상 서랍에서 빠르게 편지지를 꺼내 두 편지에 답신을 적어 냈다.

특히나 카슬라 영애의 편지에는 더더욱 심혈을 기울여서.

반가워요, 카슬라 영애.

영애의 호의에 정말 감사드립니다.

가까운 시일 내에 만나 뵐 수 있을까요?

편지를 보낸 나는 그날 밤 평소와 달리 깊은 잠에 빠져들 수 있었다.


 

°˖✧๐·°º✲º°·๐✧˖°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