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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태자, 나는 당신이 싫어 (20)화 (20/61)

〈20〉

‘우선은 받아 주는 쪽으로.’

굳이 처음부터 경계를 살 필요는 없었다.

짝, 가볍게 박수를 친 내가 해맑게 웃어 보이며 목소리를 높였다.

“모두가 저희 클럽 발전에 크게 기여해 주신 분들이시잖아요. 한번 이리 다 함께 모이면 좋겠다고 생각했거든요.”

그러한 반응을 보이자 귀족들은 가늘어진 눈으로 나를 살폈다.

“고작 그런 이유로 이 많은 이들을 끌어들였다고요?”

불만 가득한 표정들이 일그러졌다. 그럴수록 나는 더 환하게 미소 지었다.

“끌어들이다뇨. 제가 초대를 한 건 맞지만 결국 다들 자의로 오신 게 아니신가요? 저는 모든 분들께 손끝 한번 댄 적이 없는걸요.”

“초대장의 이 문장은 협박이 아니고서야 무엇입니까? 설마, 거짓말이었나요?”

‘참석하지 않으면 불이익이 생길지도 몰라요.’ 조금 전 그것에 대해 따지던 여성이 그 대목을 가리키며 내게 들이밀었다.

“어머, 그것 또한 거짓말은 아니었답니다. 후에 준비한 선물이 있거든요.”

“선물이라, 웃기는군.”

역시나 고운 반응을 보이는 이들은 찾기 힘들었다.

“저희 클럽에 도움을 주신 이들이니 친해지고 싶었거든요. 편히 대해 주세요. 혹 제게 질문이 있다면 하셔도 좋고요.”

그 말에 한 영식이 넌지시 목소리를 냈다.

“여긴 어떻게 가지게 된 겁니까?”

“……무슨 뜻일까요?”

“리노테인가와 클로디가는 아무런 접점이 없던 걸로 알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이 큰 상단을 넘겨주다니, 이상하지 않습니까.”

예상한 질문이 먼저 터져 나왔다. 긴장이 되기도 했지만 어쨌든 한 번은 겪어야 했을 일이었기에 낮게 심호흡을 했다.

“후작님께서 제게 빚이 있으셨거든요. 그것을 갚기 위한 일종의 수단이었을 뿐입니다.”

“인수인계를 하는 데에 들인 시간은 어느 정도입니까?”

곧바로 돌아온 질문은 이전부터 준비라도 한 것 같았다.

“말했다시피 빚을 청산하는 것에 대한 대가였기에 인수인계는 따로 없었습니다.”

“그럼 아무런 준비도 없이 이 큰 클럽을 들여왔단 말입니까?”

나는 아무런 대답 없이 미소를 그렸다.

“……정말이란 말입니까? 하, 아무리 멋모르는 이도 이리 행동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기반을 잘 다져 둔 것이라도 이후 관리가 소홀하면 속에서부터 썩어 가는 것을. 책임지지 못할 일은 지금이라도 적임자에게 맡기는 게 낫겠습니다.”

아주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휘어잡을 기세네.

예상하기는 했지만 생각했던 것보다 더 나에 대한 신뢰가 없는 모양이었다.

“충분히 그렇게 생각하실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저도 그리 생각 없이 들여온 것은 아닙니다.”

“이 상황을 보고도 그런 말이…….”

영식은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듯이 내게 눈을 흘겼다.

“이 상황이라뇨?”

하지만 그럴수록 나는 미소만을 유지했다. 그것 역시 내가 잘하는 몇 안 되는 것들 중 하나였으니까.

“혹여 지금까지 이곳을 이용하시며 한 번이라도 관리로 인한 불편함을 느끼신 적 있으셨나요? 그런 일이 있다면 물론 제가 사과해야겠지만 지금까지 그런 일은 없었던 걸로 아는데.”

톡, 책상을 건드린 손끝이 턱을 쓸었다.

“또 저는 그리 무책임하다 생각하지 않습니다. 레이즌을 받아 오기 전, 미리 그곳에 가 시설이 돌아가는 구조와 고쳐야 할 점을 알아보았고, 곧바로 실행에 옮겼습니다. 저를 도와주는 이들은 역시도 능력을 인정받은 이들이고요. 저는 이 클럽의 관리에 소홀했다고 생각한 적이 단 한 번도 없습니다만 영식께서는 어느 점에서 저를 그리 보셨을까요?”

“……그 관리자들 또한 이제야 이름을 알린 평민이 아닙니까. 애초에 고작 평민 세 명을 관리자로 둔 것부터가 위험하다는 겁니다.”

“평민이 관리자로 오른 것이 뭐가 문제란 말입니까.”

그러자 몇몇 이들의 표정이 묘하게 일그러졌다.

“몇몇 분들은 다를지 몰라도 적어도 저는 그리 생각합니다. 관리도 못할 거면서 일단 많은 이들부터 무작정 들여보내는 사업이 과연 좋은 사업일까요? 모래로 아무리 큰 성을 쌓는다 한들 작은 파도에 밀려 순식간에 사라지는 게 수도 사업입니다. 최소한의 믿을 수 있는 사람, 제가 최대한으로 관리할 수 있는 규모. 이게 제가 이곳을 운영하는 방식입니다.”

많은 이들의 시선이 내게 머물렀지만 단 한 사람도 입을 열지 않았다. 한바탕 조용해진 그곳에서 나는 결국 다시 입을 열었다.

“말하다 보니 조금 길어졌네요. 앞으로도 전 지금처럼 여러분들을 존중하고 도움을 주기 위해 노력할 것입니다. 하지만 제 경영 방식을 바꿀 생각은 아쉽게도 없네요.”

그 말이 끝을 맺자마자 나를 바라보던 후작이 만족스럽게 웃어 보였다.

“순진하기만 한 영애는 아니었나 봅니다.”

“칭찬이신가요?”

호탕한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물론이지요. 제가 또 강단 있는 사람들을 좋아하는 편입니다.”

“그런 걸로 치면 후작님 마음에 아주 꼭 드셨겠군요, 하하.”

흐뭇하게 바라보던 몇몇이 가세하자 분위기는 자연스럽게 너그러워졌다. 이후 가벼운 말들이 오가고 있자니 그제야 긴장이 풀린 나는 관리실에 있을 체프린을 불렀다.

관리자실에서 내 신호를 기다리던 체프린이 손에 한 플레이트를 든 채로 걸어 나왔다.

“이건 제가 준비한 선물이에요.”

체프린이 건넨 것을 받아 든 플레이트 위에는 작지만 눈에 띄게 새파란 보석이 반짝이고 있었다.

“그건, 키첼 아닌가요?”

“맞아요.”

역시나 한눈에 알아보는 이들이 있었다. 알아보지 못한 이들 또한 그것의 이름을 듣자마자 흥미로운 듯이 반응을 보였다.

사실 이건 당연한 반응이나 마찬가지였다.

“이걸 어떻게 영애가…….”

“이 귀한 걸…….”

조금 전까지만 해도 거물들만 모여 있는 분위기에 어색해하던 귀족들의 눈동자까지도 화려하게 굴러가기 시작했다.

“말했다시피 저희에게도 도움을 주신 분들인데 이 정도가 아까울까요.”

아깝다.

여유롭게 웃고 있었지만 그것을 건네는 손이 달달 떨려 오는 걸 간신히 참고 있는 중이었다.

고작 몇 개의 키첼이지만 그 값어치를 알고, 그것을 위해 무엇들을 희생했는지 알고 있었기에.

예상보다는 적었지만 그래도 이번 일에 꽤나 큰 금액을 지불했었다. 그것만 아꼈어도 우리 저택의 복지가 조금은 더 나아졌을 텐데.

생각할수록 눈물이 앞을 가렸기에 그저 생각을 포기했다.

“한 개씩 선물로 드리고 싶어요.”

하나 정도로 크게 활용을 할 수도, 어디 내다 팔 수도 없으니 보기에 좋은 선물용으로는 적합했다.

“오오.”

역시나 대부분이 눈을 반짝이며 키첼에 손을 뻗었다.

“큼, 영애의 성의가 있으시니 이건 받아 가지요.”

“좋은 걸 받아 가네요.”

그들의 손이 지나간 플레이트에는 2개의 키첼이 남아 있었다.

그것들의 주인공은 내가 나타나기 전 가장 인자하게 미소 짓던 자작과 모자를 눌러쓴 여성이었다.

“저는 대가 없는 선물은 받지 않습니다.”

“마찬가지입니다. 후에 무얼 요구하실지 어떻게 알고요.”

자작과 여인이 순서대로 말했다. 대부분이 미소를 띠고 있는데도 그 두 사람만은 아직 나를 향한 의심스러운 눈빛을 거두지 않았다.

이런 반응은 예상 못 했는데.

하지만 나는 곧 픽 웃음을 뱉어 냈다.

“제가 언제 대가 없는 선물이라 했나요?”

이것 때문에 들인 돈과 시간이 얼만데 이번 한번 호감 사는 걸로 끝내자고? 웃기지도 않아.

‘투자가 갔으면, 그만큼의 이익이 돌아오는 게 당연하잖아?’

내 말에 덥석 키첼을 들고 간 이들이 손끝을 움찔거렸다. 내가 무슨 말을 할지는 모르는 일이었기에.

“그럼 대가를 요구할 건가요?”

“물론이죠.”

나는 책상을 톡톡 손끝으로 건드리며 질문을 건넨 부인과 눈을 맞췄다.

“제가 또 여러분들을 한자리에 모이게 한 데는 이유가 있지 않을까요.”

“?”

“모두가 저희에게 도움을 주신 건 맞지만 역시 정기적으로 보기는 조금 힘들어서요.”

“저희보고 이곳을 주기적으로 방문하라는 말씀은 아닐 테죠. 그건 영애가 무어라 정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니.”

“당연히 아니죠. 그 정도로 무식한 이는 아니랍니다. 저는 그저 여러분을 볼 수는 없어도 간간이 소식을 듣고 싶다는 거죠.”

여성이 하, 헛웃음을 뱉어 냈다.

“저희를 이용해 클럽의 홍보를 하시겠다는 말인가요?”

역시, 머리가 좋았다.

귀족들이라면 자신들의 일로 바쁜 게 당연하니 잘 방문하지 않지만, 차라리 내게는 그게 더 효율적이었다.

언제 올지 모르는 고위 귀족들을 보러 하위 귀족들은 자꾸 이곳을 방문하고 있으니까.

하지만 내가 원하는 건 더 안전한 길이었다.

방문의 주목적이 고위 귀족들이 아니라 레이즌이 되면 참 편할 테니까.

“제가 많고 많은 선물 중에 키첼을 드린 이유를 아실 거라 생각하는데.”

이들에게 호의를 사는 것만이 목적이었다면 내가 그 고생길에 나서서 키첼을 구해 오지도 않았을 터다.

돈이나 보석. 다른 값진 것들이 얼마나 많은데.

내가 그것을 고른 주된 이유는 광고성이었다.

한때 많은 이에게 도움을 주다 어느 날 사라진 키첼은 그 값이 하늘까지 솟구쳤다. 때문에 세상에 얼마 남지 않은 양조차 구하기 어려운 상황인 지금, 레이즌에서 키첼을 푼다, 라. 다른 귀족들은 필시 그것이 탐이 나고 궁금할 것이다.

그 자리의 모든 이들이 이해했다는 듯이 반응을 보였다.

우리 클럽에 기여하는 이들에게는 이득이 있다는 걸 보이란 거지.

“우리가 그것을 해 줄 거라는 보장은 있나?”

날 선 질문과는 달리 자작은 온화한 미소를 띠고 있었다.

“현명하신 분들이시니, 쉬운 길을 두고 굳이 저와 대척하시는 길로 가시지 않을 거라 믿습니다. 그런다고 해서 이득 볼 것도 없으니까요.”

“하나 대척한다고 잃을 것도 없지.”

“득도 실도 없다면 그 사람 마음에 달린 것이지요. 그러니 이리 부탁드리는 것이고요.”

모두의 의견이 동일시되는 순간이었다.

“……좋게 말하면 참 대담하신 분이네요. 이상하지만 또 거부감이 들지는 않아요.”

후후, 웃은 여성이 푸른 키첼을 손에 쥐었다.

“앞으로 좋은 관계가 유지되면 좋겠네요, 단주님.”

단주라.

틀린 말은 아니었지만 처음으로 불려 본 호칭에 괜히 기분이 이상했다.

어느새 플레이트의 두 키첼이 두 사람의 손에 들어갔다.

“이건, 잘 받지요.”

“감사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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