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황태자, 나는 당신이 싫어 (19)화 (19/61)

〈19〉

“무슨…….”

잠시 나와 눈을 마주하던 블레이저는 질렸다는 듯이 몸을 움츠렸다.

“당신도 그 이야기를 하러 온 건가요? 그런 거라면 돌아가요. 더 이상 할 이야기 따위는 없으니까.”

“그 이야기라는 게 키첼 광산을 말하는 거라면 반쯤은 정답이네요.”

키첼. 마탑에서 사용되는 매개체이자 마력이나 검기를 사용하는 이들의 힘을 증폭시켜 주는 물건으로, 현재 멜로디 후작이 소유하던 키첼 광산은 혈육이 없던 후작의 죽음으로 인해 이름 모를 소유주에게 넘어가 그 자취를 감춘 상태였다.

그리고 그 이름 모를 소유주가 바로 블레이저 멜로디.

멜로디 후작의 조카였지만 마차 사고를 당한 그녀의 부모님과 그녀가 무엇을 빼앗기고 있든 관심 따위는 없던 후작 때문에 결국 평민 못지않은 삶을 살아온 그녀였건만 이후 병으로 인해 미혼인 후작이 죽게 되자 생판 남에게 광산을 넘기고 싶지 않던 후작은 결국 잊고 있던 그의 조카인 블레이저에게 광산을 넘긴다는 말과 함께 눈을 감았다.

모두가 그 광산을 바라보고 있었고 그것을 탐할 뿐, 아무도 그런 그녀에게 도움을 주지 않았기에 수많은 겁박 속에서 살아남고 싶던 그녀는 이런 좁은 마을까지 도망친 것이었다.

지금까지는 이런 상황이었지만 6개월 뒤, 이 모든 것에 지친 그녀는 결국 자신이 알던 상단에 소유권을 넘겨줘 버린다.

‘지금도 많이 피곤해 보이네.’

“저 역시 광산에 대해 이야기가 하고픈 건 맞아요. 하지만 전 소유권 같은 데엔 관심 없거든요.”

“그럼 무얼 원해요?”

사실상 기다리던 질문에 나는 반달 같은 미소를 그리며 말했다.

“저, 키첼 딱 10개만 사게 해 줄래요?”

“네?”

블레이저는 황당하다는 듯이 나를 바라보았다. 하지만 내가 원하는 것은 단지 그것이었다.

“지금 키첼의 값이 높이 떠오른 이상 그에 맞는 지불을 할 거예요. 어때요?”

나는 내가 준비해 온 주머니를 책상 위에 올려 두었다. 가문에 들이는 돈을 제외하고 최대한 받을 이익을 전부 가져온 덕에, 다해서 기존 키첼의 3배 정도는 되는 금액이었다.

부족하지는 않겠지.

“원하는 게 고작 그거예요?”

고개를 끄덕이자 그녀는 혼란스러워하다 이내 가격을 측정했다.

“마침 세공된 것들이 남아 있는데, 그냥 다 가져가세요.”

“?”

그녀가 적은 값에 나는 내 눈을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키첼 10개에 고작 이 금액이라고?’

심지어 굴러다니던 키첼 몇 개까지 더해 준 금액이 그것이었다.

“잘못 측정한 거 아닌가요?”

금액 자체가 적은 것은 결코 아니었지만 그 지불 대상이 키첼이라면 이야기가 조금 달라졌다.

키첼이 시장에 널려 있을 때에도 이 정도는 넘었는데?

그런 내 생각을 읽은 듯이 블레이저가 답했다.

“어차피 저 혼자서는 내다 팔 수도 없는데요, 뭘. 이거면 만족해요?”

“네, 너무 감사한걸요.”

허탈하지만, 그와 동시에 웃기기도 하다는 듯 웃음을 뱉은 그녀는 서랍장을 뒤져 천 주머니 하나를 꺼내 들었다.

‘되게 의연한 사람이네.’

키첼은 그 누구의 눈에 비추더라도 좋은 사업체였다. 계속해서 높아지기만 할 희소성, 아무 곳에나 사용되어도 될 정도로 좋은 활용성에 발전 가능성도 무궁무진.

“블레이저 양은 키첼을 팔 생각 없어요?”

그 질문이 궁금하지 않을 수가 없었으나 내 말에 블레이저는 피식 웃을 뿐이었다.

“제 꼴이 이런걸요? 채굴할 사람들, 세공할 단체, 팔아 줄 상단. 그게 다 하나같이 돈인데, 저는 이제 핏줄 하나 안 남아서 누군가에게 도움을 받을 수가 없어요.”

“…….”

“쓸데없는 걱정 하지 말아요. 이건 내 결정이니까.”

잠시 변한 내 표정을 읽은 블레이저가 말했다.

그녀는 똑똑한 여성이었다. 그녀가 시장에 이걸 팔아 나선다면 말도 안 되게 손해를 볼 것이 분명했고, 모르는 이들에게 도움을 청해 봤자 뒤통수를 맞기 일쑤일 것이었다.

그렇기에 홀로 버티고 있는 그녀는 벌써 모든 힘을 다 쓴 이처럼 보였다.

이 이후로도 몇 개월은 더 홀로 고생하고 있을 텐데.

도와주고픈 마음은 굴뚝같았지만 결국 나도 그녀에게는 똑같은 이방인일 뿐이었다.

이런 내가 그녀에게 신뢰를 주는 건 어렵겠지.

내가 사색에 잠겨 있던 동안 여성은 조용히 키첼을 천 주머니에 담아 주었다.

“오랜만에 좋은 재료로 저녁을 먹겠네요.”

힘없이 웃은 그녀는 내가 내놓은 금액 중 어느 정도만을 받아 갔다.

쿵. 닫힌 문을 바라보던 나는 편지함에 10골드가 든 주머니를 넣어 둔 채로 마차에 돌아갔다.

그녀가 남은 몇 개월간, 더 힘들어하지 않기를 바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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