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
쿵, 쿵.
덜컹이는 마차에 오른 몸이 이리저리 움직였다. 가문의 이름을 단 마차가 아닌 번화가의 한 지점에서 대여한 마차였기 때문에 더 그런 점도 있었다.
명목상 귀족 가문의 마차라는 것이 밝혀지면 안 된다는 이유에서 나온 결과였으나 생각보다 더 불편한 자리임은 확실했다.
하나 내 맞은편 자리에 앉아 있는 메이샤와 그 옆에 앉아 있는 호위, 일러는 다른 대여점 마차보다는 몇 배는 더 편한 편이라며 내 아쉬움에 한마디를 덧붙였다.
“수도 바깥 마을이라, 대체 그런 곳은 왜 가는 겁니까?”
팔짱을 낀 채 여러 마을의 큰 거리를 지나치는 창밖을 살피던 일러가 물었다.
“다 할 일이 있어서 가는 거지 뭐…….”
멍해진 정신에 나온 허망한 투의 목소리에 메이샤는 일러를 째릿, 노려보았다,
“아가씨, 배는 안 고프세요? 벌써 하늘이 어두운데요.”
걱정을 한가득 머금은 메이샤의 목소리에 어느 정도 빠져나갔던 정신이 돌아왔다.
‘그러고 보니 아침에 출발한 이후로 점심도 잊은 채 달려왔구나.’
중간에 쉬는 시간에는 음료나 먹는 정도였지 제대로 끼니를 때우지는 못했다,
‘내가 아니더라도 다들 배고플 텐데.’
침음하던 찰나 창문 너머로 마을의 모습이 보였다. 이미 어둑해진 하늘 아래 마을의 모습은 이제 조금 쉬어 가야 한다는 듯이 음습한 분위기를 풍겼다. 툭툭, 뒤쪽 마부가 있을 곳의 문을 두드려 하룻밤 쉬다 출발하자는 의도로 마차를 세우자 마부는 마을 여관들이 모인 곳에 우리는 내려 주고는 자리를 떠났다.
우리는 마차에서 내려 그 주변을 살펴보았다. 다들 가게를 닫은 시각, 여기저기 주홍빛 조명을 올린 여관들만이 밤공기를 맞고 있었다.
그중에서도 여관이 가장 많이 늘어서 있는 골목에 들어서자 길가의 많은 건물의 모습들이 눈에 들어왔다.
아주 북적이는 곳도, 사람이 적어 한산한 곳도 있는 골목은 같은 길목임에도 그 분위기는 천차만별이었다.
‘음, 역시 보는 눈은 다 똑같다고.’
웬만해서는 시설이 좋은 북적이는 곳으로 향하고 싶었으나 검은 로브까지 쓰면서 신분을 숨기려 하는 나로서는 사람 많은 곳이 그리 달가운 조건이 아니었다.
나는 여관들 중 가장 구석에 자리한 허름한 여관을 가리켰다.
“나는 저곳에서 잘 테니까, 너희는…….”
말을 다 마치기도 전에 두 사람이 고개를 내저었다.
“어딜 또 혼자 가시려고요?”
불꽃 같은 두 눈동자가 그리 매서울 수가 없었다.
‘이럴 때 보면 이상하게 닮았다니까.’
“저기로 가자고 하셨죠?”
잠시 내려 둔 짐을 번쩍 들어 올린 일러가 앞장섰다.
“어서 가요, 따뜻한 물이 나올까 모르겠네요.”
메이샤와 나도 그 뒤를 따랐다.
끼익—
낡은 문이 움직이며 날카로운 소음을 빚어냈다. 금방이라도 부서질 것 같은 문 안에는 외관과는 달리 깔끔한 내관이 눈에 들어왔다.
“저기요?”
양옆을 살피며 조심스레 그곳으로 들어섰지만 어느 누구도 그 시선 안에 나타나지 않았다.
카운터로 보이는 곳까지 다가가자 ‘사람이 보이지 않을 시, 울려 주세요.’라는 쪽지와 함께 작은 종이가 놓여 있었다.
“뭐 이런 곳이 다 있담…….”
내부 인테리어는 좋은데, 서비스가 아쉽네.
딸랑, 맑은 종소리가 공허한 공간에 울려 퍼졌다. 하지만 그 아름다운 소리가 무색하게도 아무도 그 소리에 반응하지 않았다.
나오지도 않을 거면 저런 글은 왜 써 놓은 거야?
“하아…….”
피곤한 몸을 이끌고 들어온 곳이 하필 이 모양이라니.
딸랑, 딸랑, 딸랑.
손에 들린 종이 빠르게 좌우로 흔들리며 소리를 냈다. 듣기 좋은 소리라도 여러 번 듣고 있자니 신물이 날 것 같았다. 그럼에도 여전히 나타나는 이는 없었다.
“안 되겠네, 다른 곳을…….”
결국 다른 곳으로 걸음을 옮기려던 순간, 카운터 아래 놓여 있던 신문이 눈에 들어왔다.
그곳에 쓰여 있던 글이 눈길을 잡아끌어 나도 모르게 그것을 주워 든 바로 그때, 그보다 더 깊은 곳에 자리하던 방의 문이 열렸다.
“뭐야?”
세상 귀찮다는 듯이 머리를 긁적이며 나온 한 보랏빛 머리의 남성은 터벅거리며 우리에게 다가왔다. 훤칠한 키에 한길로 묶인 진한 보랏빛 머리카락 아래에서 빛나는 금안의 묘한 반짝거림은 마치 진주를 닮아 있었다.
긴 다리로 성큼성큼 다가온 그는 세 사람 중 가장 앞에 서 있는 나를 이리저리 훑다 내 손에 들려 있던 신문을 빼앗아 들었다.
“이런, 함부로 남의 물건에 손을 대시면 안 되죠, 아가씨.”
왜인지 모를 분위기에 로브 끝자락을 잡은 손에 더욱 힘이 들어갔다.
“…….”
“음, 그런데 우리랑 익숙한 모습은 아니네?”
갑자기 훅 눈을 빛낸 남성이 내게 가까이 다가와 허리를 굽혔다.
“그럼 이쪽 사람들도 아니라는 건데, 왜 이곳에 온 거지?”
그의 허리춤에 들린 날붙이가 번뜩였다. 그 순간 곁에 서 있던 일러도 제 검을 쥐었다.
순식간에 그 공기가 서늘해졌다.
아, 오늘은 진짜 귀찮은 일 만들고 싶지 않은데.
딸랑.
내 손에 들린 종이 다시 한번 그 소리를 냈다.
일러를 견제하던 남성은 다시 나와 시선을 마주했다.
“왜 이리 과민 반응하는 거지? 여관이라고 적어 놓은 건 당신네들이고. 종을 울리라고 써 놓은 것도 당신네들이면서. 이 상황에 왜 우리가 이런 대접을 당해야 하는 건지 모르겠네.”
“……당돌한 애구나?”
“누가 할 소리를.”
그 말에 남성은 흐음, 제 턱을 쓸었다.
“이건 진짜 모르는 것 같은데. 그럼 뭐, 봐드릴까.”
어느 정도 빠져나왔던 단도가 다시 검집으로 들어갔다.
“이곳 사람이 아니라 들어온 것 같고, 괜히 모습을 숨길 이유도 없으니 귀족 아가씨 정도 되는가 본데, 나 같은 평민들에게 시간을 허비하려는 게 아니라면 저 밖에 다른 곳으로 옮겨 가는 게 좋을 거야. 이전에야 여관이었지만, 지금 이곳은 그런 곳이 아니거든.”
어깨를 으쓱이며 뒤를 도는 그 손에 들린 신문에 자꾸만 시선이 갔다.
‘저걸 읽어 보고 싶은데…….’
분명 유명한 신문사는 아니었고 마을에 돌고 있다 하기에도 역시 내용이 자극적이었다. 그럼 최대 자신들만 아는 신문사의 것이거나 최소 자신들의 것.
대체 무엇이 적혀 있을까, 의문이 생기기는 했지만 사실은 저 남성의 행동거지에 괜히 오기가 생긴 것도 없지 않았다.
“싫다면?”
우뚝, 뒤돌아 가던 남성의 발걸음이 멈췄다.
“방금 뭐라고?”
“잘 들었으면서 뭘 다시 물어. 난 오늘 이곳에서 자야겠어.”
“아가씨……!”
놀란 메이샤가 내 소매를 붙들며 다급하게 나를 불렀다. 이 상황이 웃긴 듯이 웃음을 뱉던 남자는 다시 발길을 돌려 나와 가까워졌다.
“내 말을 제대로 듣지 않은 건가? 이곳은 이제 여관이 아니야.”
“하지만 여관이라고 적혀 있었지. 바깥 간판에.”
“그까짓 게 뭐라고?”
“그까짓 게 법에 지정되어 있어. 허위 사실에 의한 제국법이 꽤나 엄한 걸 알지 못하는가 보지?”
태자비의 지위를 위해 몇 날 며칠을 달달 외운 법서가 이곳에서 사용될 줄은 몰랐다. 이전 생에는 무용지물이었는데.
‘사실 저것도 허위 사실로 손님을 불러들였을 경우에만 해당하는 거지만.’
어차피 상대가 모르면 그만이었다.
“지금 날 협박하는 건가?”
“그렇겠지.”
하, 남성은 제 머리를 확 뒤로 넘기며 차게 식은 웃음을 뱉었다.
“그런 거라면 상대를 잘못 고른 것 같은데. 내가 저 호위 하나 못 이겨서 아가씨 말을 들어 주고 있는 것 같아?”
그의 손에 들린 단도가 빙글 돌며 조명 빛을 반사했다.
“인생 한번 곱게 산 영애님 같으신데, 그냥 조용히 돌아가, 마지막 경고야.”
그렇게 말하는 그는 내게서 겨우 한 걸음 거리까지 다가왔다.
180cm는 훌쩍 넘을 법한 키가 저를 누르듯이 내려다보았으나,
‘나도 협박하기에 그리 좋은 상대는 아닐 텐데.’
내 인생도 저 남성의 생각처럼 그리 아름답지만은 않아서 그다지 두렵지도, 겁을 먹지도 않았다.
그에게 시선을 고정한 나는 그의 손에서 휙휙 돌리고 있던 칼을 손끝으로 건드렸다. 흠칫, 예상치 못한 행동에 당황한 그가 칼을 뒤로 젖혔다.
그 모습에 나는 빙긋 웃었다.
“넌 나한테 상처 못 내.”
“왜 그렇게 생각하는데?”
“네 입으로 말했다시피 나는 귀족이고 너는 평민이니까.”
“내가 그게 두려웠으면 내가 이렇게 나왔을까?”
“그럼 칼은 왜 피한 건데? 정 그러시다면 찔러 보시든가.”
두 시선이 정가운데에서 매섭게 맞부딪혔다. 그러던 순간.
“뭐 하는 거야?”
남성이 나왔던 방문이 다시 열리더니 나온 다른 한 남성이 우리를 바라보고 있었다.
“아니, 자꾸 억지를 부리잖아.”
“……들어 보니 네 잘못이 맞던데, 뭘. 하룻밤 정도야 괜찮잖아. 밤도 늦었고 시끄러워. 괜히 이목 끌게 하지 마.”
“윽.”
원망의 눈동자를 되레 나한테 퍼붓던 남성은 이내 알았다며 다른 남성에게 들어가라고 손짓을 보냈다.
“진짜 아가씨는 운 좋은 거야.”
꾹 눌러 담은 듯한 그의 목소리에 나는 한껏 밝게 웃어 주었다.
“거참 영광이네요.”
한숨과 함께 고개를 저으며 걸어가는 남성의 뒤를 따라 들어선 방 안에는 흰 침대와 작은 서랍장 정도밖에 있지 않았지만, 생각보다 더 넓고 쾌적했다.
“두 여성분은 이쪽, 남성분은 아래층으로.”
“좋아요.”
방을 안내해 준 남성이 밖을 나서자 풀썩 침대에 몸을 눕혔다.
“아가씨, 우선 세안부터 해요.”
“아, 아니야.”
“안 주무실 거예요?”
그녀의 말에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직 할 일이 남았다.
여기에 집착한 이유는 따로 있었으니까.
“잠시만 나갔다 올게.”
“예?”
메이샤의 목소리를 뒤로하고 방을 빠져나왔다. 복도에 들어선 촛불이 위태롭게 흔들리고 있었다.
계단을 천천히 내려가자 조금 전 실랑이를 하던 카운터가 보였다.
‘그 신문을 어디에 두었더라…….’
카운터 뒤쪽을 돌아 살피자 그 구석에 놓인 의자 위 신문 한 부가 놓여 있었다.
‘찾았……?’
급한 마음에 그것에게 다가가자 그제야 무언가 이상함을 느꼈다.
신문이 의자 위, 그러니까 공중을 날았을 때부터. 정확히는 누군가의 손길에 잡혀 있다는 걸 알게 된 이후부터.
“…….”
방금 전 두 번째로 방에서 나왔던, 저를 이곳에 머물게 도와준 그 남성. 그리고 그의 손에 들린 신문. 그것을 향해 손을 뻗다 걸린 내 모습까지.
‘……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