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황태자, 나는 당신이 싫어 (13)화 (13/61)

〈13〉

‘역시 공작님이야!’

나는 조금 전 들려온 소식에 서재의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이틀 전,

‘그거 지금 갚는 거 어떠세요?’

‘제 사업 파트너가 되어 주세요.’

그 당시의 당황한 듯이 멍하니 나를 바라보던 공작의 모습이 떠올라 조금은 민망해졌지만, 어찌 되었든 그 덕에 복잡했던 일이 쉽게 풀렸으니 좋은 일이 아닌가.

‘사실 정말 받아 준 건 의외였지만.’

나는 기분 좋게 옷장으로 가 메이샤에게 레이즌으로 갈 채비를 부탁했다. 오늘은 신분을 꽁꽁 숨기고 방문했던 지난번과 반대로 화려하게 내 신분을 드러낼 차례였다.

아직 실세를 파악하지 못한 이들에게 본보기를 보이기도 좋겠지.

그렇게 내 옷은 깔끔하고 활동성 있는 복장으로 준비되었고 신분을 숨기던 망토도, 검은 마차도 없었다.

클로디 백작가의 문양이 떡하니 찍힌 마차에 올라탄 나는, 상기된 기분으로 창밖의 메이샤에게 서류 다발을 건네받았다.

오늘 나는 수많은 후작의 끄나풀을 잘라 내러 갈 것이다.

공작에게 클럽 총수입의 1할을 넘겨주는 조건으로 부탁한 인재 지원.

레이즌에서 가져온 권한들을 채워 줄 만한 이가 없던 나는 아직까지 클럽의 고위직들을 잘라 내지 못한 상태였고, 인재 양성에 관심이 많은 공작에게 그 정도 지원은 꽤 쉬운 편에 속했다.

‘그래도 이틀 만에 보내 줄 줄은 몰랐는데.’

새삼스레 파트너를 잘 뽑은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기분이 좋아졌다.

도착한 가게 앞에는 그때와 같은 남성들이 서 있었다. 그들은 멍하니 서 있다가 내가 내린 마차의 문양을 보고서 다급히 고개를 숙였다.

내가 레이즌의 새 관리자가 된 것을 아는 모양이었다.

소문은 빠르네?

그들의 부담스러운 도움을 받아 홀에 들어서자 이제는 어느 정도 익숙해진 풍경이 펼쳐졌다.

조용한 1층과 여전히 시끄러운 2층을 지나치자 처음 들어가 보는 3층의 모습이 드러났다.

3층 또한 2층과 비슷한 구조로 되어 있었지만, 고위 귀족이 얼마 없는 지금은 보통 2층을 많이 사용했기에 지금은 그저 정적만이 맴돌았다.

그리고 그곳의 가장 안쪽에 위치한 문을 열자 나를 기다리고 있던 세 사람이 보였다.

누구를 보내 주셨을까? 생각하며 들어선 나는 순간 벌어진 입을 숨기지 못했다.

“영애님을 뵙습니다.”

먼저 앞으로 나선 녹색 머리의 남성이 내게 고개를 숙였다.

그 뒤로 한 명의 남성과 한 명의 여성 또한 그를 따라 고개를 숙였다.

‘내가 지금 누굴 보고 있는 거야?’

내가 그에게 부탁한 인원은 재정, 행정, 경영을 관리해 줄 세 사람이었다.

갑작스러운 부탁에 사람을 보내 주는 것도 정말 고마운 일이었는데, 지금 내게 고개 숙여 인사하는 이 사람들은 이전 생에서도 아주 유명한 이들이었다.

공작의 곁에서 그를 도울 정도로 뛰어났던 재정관 체프린과, 빼어난 실력으로 수도권에 이름을 날린 최초의 여성 행정관인 마리티안, 그리고 후에 황실에서까지 탐낼 정도로 뛰어난 경영인이 된 진까지.

게다가 이 사람들의 공통점이 한 가지 더 있었다.

이 사람들은 모두가 평민이었다는 것.

공작가에서는 뛰어난 기색을 보이는 이들이 넘쳐 났는데, 그중에 평민으로 살아남기란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었다. 이들은 오직 실력으로 그들 사이에서 살아남은 것이다.

이런 사람들을 클럽 하나 관리하는 데 몰아넣는다고?

부담감과 긴장감이 한꺼번에 몰려와, 두 손이 떨려 오는 듯했다.

“아, 다들 반가워요.”

나는 사색이 된 얼굴을 감추기 위해 최대한 열심히 웃어 보이며 세 사람을 바라보았다.

그런데 그들의 상태는 나 못지않게 이상했다.

그들은 내 눈빛을 하나같이 피하고 있었으며, 특히 마리티안은 고개를 숙인 채로 두 손을 모아 꼼지락대고 있었다.

“혹시 무슨 문제가 있나요?”

갑자기 불려 온 거라 마음에 들지 않는 걸까?

나를 힐끔힐끔 쳐다보면서도 내 질문에는 답을 하지 못하는 그들을 바라보고 있자 머릿속에 한 가지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설마, 내 눈치를 보고 있는 건가?

만약 그것이 정답이라면 자신들의 실력에 자부심을 가지지는 못할망정 우물쭈물하며 서 있는 그들의 모습을 쉽게 설명할 수 있었다.

“저희는 평민이니까, 혹시 영애께서 불편하시다면…….”

역시나.

지금으로서는 공작저 밖으로 처음 나서 보는 저들은 내가 평민인 자신들이 온 것을 불편해한다고 생각하는 것이었다.

‘오히려 그 반대인데.’

나는 그들이 부담을 느끼지 않을 수 있도록 가볍게 답하려 노력했다.

“눈치 보지 말아요. 전혀 그런 생각 하지 않았는걸요?”

순수하게 진심만이 담긴 내 말에 그들은 서로 눈치를 주고받았다.

이전 생에서도 이렇게까지 눈치를 보았었나, 기억을 떠올려 보려 했으나 어차피 그들과 난 연이 없었기에 하나 마나였다.

“열심히 하겠습니다.”

그때 체프린이 먼저 내게 나섰다.

뒤의 두 사람도 비슷한 의견인 것 같았다.

“그렇게 말해 준다니 기쁘네요. 앞으로 잘 부탁해요, 모두.”

그렇게 말한 내가 방긋 웃어 보이자 그제야 세 사람의 입가에 작은 미소가 피어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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