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흑막을 구원하려던건 아니였는데요-196화 (196/220)

196화. 그의 두 생에 걸쳐 일어난 일 (10)

<마도 기계를 갖다 놨다고?>

<네. 자기들의 시야를 공유해주는 녀석들이지요. 돌아올 수 없는 바다의 움직임을 관측하는 게 저희의 목표인지라 본대륙에 오자마자 갖다두었습니다.>

아, 그러니까 루시페우스가 돌아올 수 없는 바다에 나타난 걸 마도 기계로 봤다더니, 그걸 말하는 모양이었다. 일종의 CCTV 같은 건가?

<그렇다면 그걸 조종할 수도 있어?>

<당연한 말씀을요. 그리고 거기서 가동 중인 게 총 열 기입니다.>

우두머리의 말에, 눌러쓴 후드 너머로 그들이 콧대를 높이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반색하며 루시페우스를 쳐다보았다.

“저들이 경에게 우호적인 게 참 도움이 되네.”

“쓸모 있는 이야기를 좀 하던가요?”

“나침반으로 그들이 어느 방향에 있는지 범위만 좁히면, 후작 부자가 정확히 어디에 있는지 찾아볼 수 있을 것 같아.”

그 마도 기계가 몰래 탐사해주면 되니까.

“아, 그 이야기를 들으셨군요. 그쪽 마검사에 대한 정보를 제외하면 저들의 유일한 쓸모일 겁니다.”

나를 바라보며 온화하게 빛나는 남자의 입에서는 가차 없는 말소리가 흘러나왔다.

저, 저기, 쟤네 우리말 알아듣지 않아…?

히히히힝!

“워어, 워.”

그 시각, 아로카트령 남서부.

알렉스가 급히 말을 멈춰 세우자 놀란 말이 앞다리를 들며 허우적댔다.

말에서 훌쩍 내린 그는 우선 주변을 슬며시 살폈다.

보이는 거라곤 돌, 흙, 바위, 모래뿐….

아로카트령 중부에서 말을 바꿀 때까지만 해도, 다소 궁벽해 보일 뿐 여느 지방과 별다를 것 없는 풍경이었는데. 돌아올 수 없는 바다에 가까워질수록 그 풍경은 점차 삭막해졌다.

그리고 목표 지점에 다다르기까지 반 시간쯤 남았을까. 어느새 시야는 살풍경해져 있었다.

알렉스는 제가 혹사한 말이 잠시나마 쉴 수 있게끔 고삐를 근처의 바위에 매어두고서, 지나쳐온 길을 얼마간 되짚어 걸어갔다.

때마침 불어오는 바람마저 건조하기 그지없었다.

“뭐야, 갑자기 왜 멈춰?”

“그 성질머리 못 죽이고 미친 듯이 달리더니, 이제 우리 생각도 났어?”

“뭐라도 본 거야?”

때마침 뒤따르던 소대원들이 그를 발견하고 말을 멈췄다. 그간 쉬지도 못하고 달린 말들이 거품을 물고 투레질하는 소리가 메아리 없이 울렸다.

말을 단속해둔 기사들은 의아한 낯으로 알렉스에게 따라붙었다.

“저쪽 좀 봐.”

알렉스가 고개를 슬며시 들어 그들이 달리던 길에서 꽤 떨어진 곳에 있는 바위를 가리켰다.

“…어, 뭐지?”

“사람이라기엔 너무 흐릿한데….”

“그렇지?”

알렉스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두 달 모두 그믐을 향해 치닫는지라 만물이 어둠에 잠긴 밤. 신성력으로 시력을 강화하고서 한참 달리던 도중, 미약한 신성력의 흔적이 눈에 걸린 것이었다.

“이런 곳에 사람이 있다면….”

모두가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프렘린의 옛 집사장은 아로카트령에 들어선 뒤에 짐마차를 빌렸다고 했다. 아로카트령에서 본성 다음으로 상업이 발달한 마을에서였다.

본성에서 수상한 짐을 갖고 마차를 빌리자니 보는 눈이 무서웠던 모양이고, 한편으로는 그 마을을 거치는 게 동선상 가장 적절하기도 했다.

3소대는 그 사정을 이동 마법진을 빌려 쓴 길드들을 통해 알 수 있었다. 아로카트령에 인접한 영지의 길드에 도착했을 때, 황성에서 처음 신세를 진 이르겐트로부터 전달받은 제보가 가장 결정적이었다.

‘알비누스 후작의 일을 돕느라 그분께서 이르겐트와 연을 맺으신 걸 텐데, 결과적으로 후작에 대적하는 일에 도움이 되다니.’

알렉스는 어젯밤 소대장 회의 직후 이르겐트를 찾았을 때, 그들이 마치 기다렸다는 듯 호의를 베풀었던 걸 떠올렸다.

“에스메르 분들이시죠? 에스메르에서 요청하시는 의뢰라면 뭐든 착수하라고 통 큰 선금을 받았답니다.”

역시, 오래전부터 리나가 노래하던 게 맞았다.

일이 쉽게 풀리려면, 알비누스의 둘째가 전하의 포로가 되는 게 가장 효율적인 길이라는 것 말이다.

실제로 경매장에서 처음 봤을 때부터 저에 대한 질투심을 숨기지 못하던 남자는 이제 돈이며 권력이며 가문이며 모든 걸 다 갖다 바치고 있지 않은가.

덕분에 이르겐트의 이동 마법진을 써서 최대한 먼 거리를 한 번에 이동할 수 있었고, 이르겐트와 협력하는 다른 길드들의 협조를 사기도 쉬웠으며, 무엇보다 큰 힘 들이지 않고 프렘린 옛 집사장의 행방을 알아냈다.

그가 짐마차를 빌린 마을부터 루시페우스가 알려준 지점까지는 짐마차로 거의 반나절. 반면 아로카트령에 진입하는 시간을 고려해도 3소대에겐 예닐곱 시간이면 충분했다.

운반하는 수정의 무게 때문에라도 큰 속력을 내기 힘들 테니, 열심히 말을 달리면 문제없이 따라잡을 수 있을 터였다. 마차가 다닐 만한 길은 정해져 있어서 경로를 정하는 데 어려움도 없었다.

그렇게 순조로이 말을 달리던 중에, 예기치 못한 곳에서 신성력의 흔적을 발견한 거였다.

알렉스와 소대원들은 조심스레 그 바위 쪽으로 다가갔다. 그런데 가까이 다가가 보니 그건 바위가 아니라….

“마차…?”

한쪽 바퀴가 빠개져 기울어지고 차체도 부서진 바람에 거대한 바위처럼 보인 거였다.

“로니!”

선두에 있던 알렉스가 급히 로니를 불렀다.

로니가 서둘러 알렉스를 제치고, 마차 뒤편의 광경을 보았을 때.

“하, 역시….”

시야에 들어온 건 그들이 몇 주간 찾아다닌 프렘린의 옛 집사장이었다. 정확히 말하면, 프렘린 옛 집사장의 시신.

로니의 탄식에 대번에 사태를 파악한 3소대원들이 그쪽으로 다가왔다.

추적이 붙었음을 알아차린 것인지, 단순히 늦게 발견되기를 바라서인지 시신은 흙길에서 바로 보이지 않게끔 마차 뒤에 기대어져 있었다. 그리고 그 곁에는 다른 시신이 한 구 더.

“아, 이자는 앙블렌의 마부인데….”

“…….”

앙블렌을 담당해온 리키의 말에 모두가 침음을 삼켰다.

“세르니타의 일이 있었던 이후로 휴가를 받았다더니 이런 데 있었군….”

그의 씁쓸한 말소리를 들으며 기사들은 시신을 확인했다.

그들의 몸에 난 상처를 살피던 리키가 중얼거렸다.

“사망 시각은 지금으로부터 한 30분쯤 전…. 급습당해서 즉사한 것 같은데, 상흔이 특이하네. 검에 입은 상처 같진 않고.”

“마치 굵은 화살이 관통한 것 같아….”

“로니. 혹시 세르니타에서 그 마검사들이 낸 상처가 어땠는지 기억해?”

“글쎄. 우리가 신성력을 쓰듯이 마력을 검에 덧씌운 정도였는데 딱히 더 위력적이진 않았어. 거기에 다친 녀석들이 몇 있긴 했지만, 특별한 이야긴 없었고….”

로니의 증언에 알렉스가 고개를 주억거렸다. 당시 사냥 대회 참가조였던 3소대원들은 마검사들의 무력을 경험한 바가 없었던 것이다.

“마검사들 짓일까?”

“그러게. 본대륙 무기 중에 이런 상흔을 내는 건 들어본 적이 없으니까.”

로니의 물음에 알렉스가 대꾸했다. 길드와의 정보 교류를 담당하는 3소대원 모두가 저마다 알고 있는 특수 무기를 떠올리며 맞장구쳤다.

“마검사들의 소행이 가장 유력하겠지. 아니면 소후작 본인일 수도…. 세르니타에서 그가 마도 기계를 썼댔지?”

“그랬지. 전하를 공격하기도 했으니….”

로니가 짓씹듯 대꾸했다.

그리고…. 이어지는 불길한 생각에 알렉스가 마차의 후미에 시선을 던졌다. 그사이 3소대에서 가장 덩치가 큰 로건이 반대쪽 바퀴를 빼 마차를 똑바로 세워둔 참이었다.

알렉스의 눈빛이 묻는 바는 자명했다. 로건은 어깨를 으쓱이며 한숨 섞인 말투로 대꾸했다.

“아무것도 없어.”

“…젠장.”

알비누스 상단의 지하실에서 마력을 주입한 수정석이 모조리 사라진 것이었다.

“우리가 쫓는 걸 안 건지, 이들을 입막음하려고 한 건지.”

“둘 다일 수도….”

“오염시킨 수정이 급하면 곱게 받아 가면 될 걸, 굳이 저들 편을 죽이면서까지?”

“최근에 알비누스가 다른 귀족파 가문들하고 반목하긴 했으니까.”

“저들끼리 합의하고 벌인 일이 아닌가? 정말 발악도 가지가지네.”

기사들이 허탈함에 저마다 주절거렸다. 알렉스는 한숨조로 마르탱에게 물었다.

“수정 판 남은 거 있지?”

“응. 하지만 헨리에테 경이 이미 오늘 치 보고를 드렸을 텐데.”

그들의 상황을 보고할 겸 그들의 주군 쪽으로 전보를 한번 부쳤을 테니, 헨리에테 또한 한나절 동안 수정 판을 사용하지 못할 거였다.

“막심 경도 황성에 남아 있고. 어쨌든 보고하면서 이동해야지.”

“그건 그렇지.”

알렉스의 말에 마르탱이 자신의 수정 판을 꺼냈다.

“우선 목표물을 따라잡았… 젠장, 이걸 따라잡았다고 말해도 되는지 모르겠지만.”

보고할 내용을 읊던 알렉스가 머리를 벅벅 긁자 목뒤에서 묶인 꽁지 쪽이 괴상하게 흐트러졌다.

“아무튼. 그와 앙블렌의 마부가 노상에서 살해된 걸 발견했고, 소후작 측 소행으로 추측. 운반 중이던 수정은 그들이 가져가서 회수에 실패했으며, 우리는 약속된 곳으로 이동하겠다고.”

“…응.”

마르탱이 수정판 위로 손가락을 섬세하게 놀려 글자를 새기기 시작했다. 기사들이 저마다 탄식하며 발 구르는 소리가 황량한 벌판을 울렸다.

「아멜리는 살면서 그런 광경은 처음 보았다.

이쪽 끝에서 저쪽 끝까지 온통 붉은 흙이었고, 그 너머에는 깎아지른 절벽의 가장자리가 마치 세상의 끝처럼 자리해 있었다.

수평선 너머로 사라진 배가 낭떠러지 아래로 떨어진 거라고 믿던 고대인들이 이 광경을 본다면, 이곳이 바로 세상의 끝이라고 말하리라.

협곡 건너편에 또 다른 절벽이 있었는데, 그 사이를 가득 메운 운무와 모래바람 때문에 마치 저승의 피안(彼岸)처럼 느껴졌다.

그리고 그 어느 곳에도, 초록은 기미조차 보이지 않았다.

아멜리가 나고 자란 로즈버리령에도 벌거벗은 산이 종종 있었지만, 이곳은 정말로 황폐 그 자체였다.

지상의 모든 생명이 스러지고 그 사체마저 다 풍화되고 나면 이런 풍경이지 않을까.

그 황막함에 압도되어 아멜리는 숨조차 제대로 내뱉을 수 없었다.

돌아올 수 없는 바다.

그 협곡의 가장 깊은 곳, 마계로 이어지는 깊디깊은 균열을 사람들은 그렇게 불렀다.」

와아…. 나는 내 눈앞에 펼쳐진 장관에 입을 다물 수가 없었다.

정말, 난생처음 보는 광경이었다. 전생에 사진으로만 보던 먼 나라의 협곡과도 같았고, 한편으로는 SF 영화의 배경처럼 보이기도 했다.

깎아지른 절벽 위로는 나뒹구는 돌이며 바위만이 있는, 황량하기 그지없는 공간.

그리고 절벽 아래서 스멀스멀 피어오르는 연기가, 이곳이 단순한 협곡이 아님을 알려주고 있었다.

마기에 오래간 잠식돼서인지, 반대편 절벽의 단층에 물든 검붉은 기운이 하부로 갈수록 더욱 진해지고 있었다.

그러니까 저 아래에, 돌아올 수 없는 바다의 균열이….

콜록, 콜록.

“…신성력이 다른 곳에서보다 효율이 떨어져서 말이죠.”

루시페우스가 내 양어깨를 감싸며 한숨 섞인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그가 신성력을 써줬는지, 순식간에 어지러움이 가셨다.

내 식은땀을 닦아내는 루시페우스의 얼굴이 걱정으로 빛났다.

‘이르겐트에서 이동 마법진을 겪고서 어지러웠던 거랑 비슷한가…. 여기에 마기가 가득하니까.’

빨간 눈의 마을에서도 조금씩 어지러울 때가 있었지만, 돌아올 수 없는 바다 바로 옆에 오니 그게 훨씬 더 심했다.

마법을 직접 겪는 게 아니어서인지 쓰러질 정도는 아니었지만 괴롭기는 매한가지였다.

‘하지만, 방해되려고 온 건 아니니까.’

나는 다른 이들에게 내 상태를 들키지 않도록 뒤집어쓴 후드를 더욱 바투 여몄다. 루시페우스를 안심시키기 위해 부러 목소리를 높게 울리면서.

“여기가 후작과 위치를 공유하고 있던 곳이라는 거지? 수정을 마기에 숙성하고 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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