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흑막을 구원하려던건 아니였는데요-189화 (189/220)

189화. 그의 두 생에 걸쳐 일어난 일 (3)

루시페우스의 말이 떨어지자마자 집무실이 한껏 얼어붙었다. 누구도 쉬이 입을 열지 못했다.

얼마간 정적이 흘렀을 때.

“그게… 가능한 거야?”

내 질문에 루시페우스가 조심스럽게 답했다.

“돌아올 수 없는 바다를 인위적으로 열려면 몇 가지 조건이 맞아떨어져야 합니다.”

그의 목소리가 상당한 주저함을 담아 울렸다.

어쨌든 그건 대륙을 도탄에 빠뜨리려는 잔악한 범죄의 계획이었으니까. 그가 직접 세웠던, 그가 아니라면 그 누구도 상상조차 못 했을….

“우선 달의 위상. 두 달이 동시에 그믐이 되면 돌아올 수 없는 바다의 균열이 미세하게 벌어지면서 마기가 짙어지죠. 그리고….”

루시페우스의 낯이 짙은 자책으로 물들었다.

“다량의 마력이 필요합니다. 태양의 힘이 약해지는 이중 일식 때 격랑이 일어나는 걸 생각하면, 마력으로 태양의 힘을 상쇄해야 하거든요.”

“그럼, 그 마력이.”

“…예. 제 마력을 증폭하는 술식을 고안했습니다.”

자신의 허물을 자백하는 것이어서일까, 루시페우스의 낯이 더없이 어둑했다. 그를 안심시키듯 나도 내 기사들도 그저 사실관계만 듣고 있음을 피력하며 태연한 낯을 지었다.

“돌아올 수 없는 바다를 둘러싸고 커다란 마법진을 완성할 수 있도록, 술식의 핵심이 되는 위치마다 수정을 마기에 숙성시키고 있습니다.”

얼마 전, 그가 돌아올 수 없는 바다에서 확인하고 온 수정들을 말하는 모양이었다.

“마법진에 마력을 쏟아부으면 술식이 발동되면서 그 마력이 증폭되고, 대지 깊숙이 자극을 줘서 돌아올 수 없는 바다의 균열이 벌어지게 하는 거지요.”

“그 원리를, 후작도 알고 있는 거겠고.”

“…예.”

루시페우스의 낯이 씁쓸함으로 물들었다. 그건 한편으로 분노처럼 보이기도 했다.

후작은 그의 두 생에 걸쳐 그를 낭패에 빠뜨리고 있으니까.

“경의 마력을 쓸 수 없게 됐으니, 그 마력을 대체하기 위해 그 주민들의 마력을 쓴다는 거군.”

상황을 정리하는 내 말소리는 여상했지만 집무실의 모두가 깊이 침음했다.

나라고 그게 끔찍하지 않은 건 아니었다. 루시페우스가 괜찮다고 말해줬지만, 더 꼼꼼히 살피지 못했다는 자책감을 떨칠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괜찮아. 어떻게든 해결하면 되지. 할 수 있어.”

나는 스스로에게 다짐하듯, 부러 높은 목소리로 말했다.

루시페우스가 진정시켜 주었고, 한편으로는 내 지시를 기다리고 있는 수하들이 있으니까.

“우선, 알비누스 부자의 위치를 찾는다.”

내가 선언처럼 말하자, 모두의 낯이 더없이 진지해졌다.

“마지막으로 확인된 게 언제지?”

“제가 전하께 호출받을 때까지만 해도 후작은 후작저에 있었습니다.”

“소후작은 황실 기사단이 떠나간 이후 상단 건물 지하실에 틀어박혔습니다.”

“비밀 통로나 비밀 공간은 찾았어?”

“저희가 건물로 진입하려고 할 때쯤에 황실 기사단이 들이닥쳐 여의치 못했습니다.”

알렉스가 송구스럽다는 낯으로 답했다.

정무 회의에 가기 전에 알렉스에게 지시를 내렸으니, 알렉스로서도 정무 회의가 끝나기 전까지만 수색을 끝내면 된다고 판단했을 거였다. 그래서 마검사 쪽을 먼저 확인했을 거고.

‘하지만 정무 회의 도중에 아버지가 황실 기사단을 출동시키셨지….’

톡톡톡, 어느새 모두가 침묵에 잠겨, 내가 손끝으로 팔걸이를 두드리는 소리만이 공간을 울렸다. 루시페우스가 손톱을 치유해주지 않았다면 한없이 먹먹하게 울렸을 소리였다.

“우선, 알렉스 경이 찾은 그 수정에 마력을 입힌 것…. 아마 최근에 사들인 수정을 다 이렇게 만든 거겠지?”

“네. 알비누스가 수정 투기에 참여하지 않길래 단순히 상단주 대리가 일을 쉬어서인 줄 알았는데, 상단 건물에서 그런 게 나온 걸 보면 보관을 담당하면서 이런 작업을 하느라 그랬던 모양입니다. 그래서….”

알렉스가 말끝을 흐리며 마력에 물든 수정을 턱짓했다. 그 마력 반응 때문에 마차 보관소의 말들이 날뛰었다는 소리였다.

“비밀 통로 같은 게 없어도, 소후작이 개인적으로 부리는 마검사들이 있다면 다른 가문으로부터 수정을 옮겨오는 데 도움을 받았겠어.”

나는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더 이상 알렉스가 비밀 통로를 찾을 필요가 없게 된 셈이었지만….

‘골치 아프네, 마법.’

루시페우스의 존재만으로도 그렇게 든든했던 만큼, 마법을 쓰는 이가 그편에 있으니 영 골치가 아팠다.

“경. 수정이 마기에 온전히 잠식되려면 며칠쯤 남았을까?”

“닷새는 남았습니다.”

루시페우스가 지난 생에도 했던 일이니, 그의 계산이 틀릴 리는 없었다.

“그게 온전히 숙성되지 않아도, 이런 게 있다면 보탬이 될까?”

“그렇게 작업한 수정의 양을 정확히 모르니 결정적인 역할을 할지는 장담할 수 없습니다만, 보탬은 될 겁니다. 무엇보다 그들은 마도 기계라는 걸 쓰니까요.”

“…그렇단 말이지.”

나는 고개를 주억거리며 중얼거리듯 말을 이었다.

“옛 프렘린 집사장이 상단 거리 인맥을 활용해서 그걸 황성 바깥으로 빼돌렸겠어. 귀족파가 사들인 수정의 양을 생각하면, 여기서 돌아올 수 없는 바다까지 그걸 다 움직이려면 시일이 오래 걸리니 하루라도 빨리 출발해야 했겠지.”

“어쩌면 마차 보관소에서 말들이 날뛴 날, 오염시킨 수정들을 들고 나온 걸 수도 있겠네요. 그 작업이 하루 이틀에 그친 건 아닐 텐데 그날만 그랬던 걸 보면요.”

알렉스가 낭패라는 듯이 하는 말에 모두가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날 회의를 마친 뒤에야 그를 찾기 시작했으니 옛 프렘린 집사장의 소재를 파악하지 못할 수밖에 없었다.

‘그게 렌틸 자작이 원로원에서 귀족파를 고발하기도 전이었는데. 알비누스에서 어떻게든 그 일을 성사하려고 혈안이었나 보네….’

날짜만 따지면 도미닉이 금제 마법에 걸린 게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을 수도 있지만… 정황상 훨씬 전부터 루시페우스 없이도 일을 진행할 수 있게끔 준비해온 듯했다.

‘하긴, 나라도 제가 학대한 양아들이 갑자기 충성한다면 선뜻 신뢰할 수 없을 테니까.’

아무리 루시페우스가 그에게 원하는 게 있다고 해도 말이지….

다시금 집무실에 무거운 정적이 내려앉았다.

“우선, 병력을 둘로 나눠야겠어.”

내 말소리에, 나름으로 생각에 빠져 있던 모두가 집중했다.

“먼저, 옛 프렘린 집사장 추적. 말을 달리면 돌아올 수 없는 바다 근처에서는 따라잡을 수 있겠지. 목적은 생포 및 증거 확보. 그들의 목적지는….”

“후작이 아는 곳은 단 한 군데입니다. 이따 지도로 보여 드리겠습니다.”

루시페우스의 대꾸에 나는 고마움을 담아 생긋 웃었다.

“3소대가 로니 경과 함께 추적해줘. 로니 경이 그의 얼굴을 아니까.”

“네.”

“그리고 1소대는, 우선 후작 부자의 신병 확보.”

“우선이라 하심은….”

“그들에게 협력하는 마검사들이 있다니 지금쯤 황성을 빠져나갔을 수도 있어.”

“그 말씀은…?”

케인이 조심스레 물었다.

“그들이 이동 마법에 조예가 깊지 않대도, 황성 빠져나가는 것쯤은 어렵지 않겠지.”

그리 말하며 루시페우스를 쳐다보자, 그가 내키지 않는다는 듯 고개를 끄덕여 동의했다.

“어쩌면, 경들이 본 그들의 마지막 모습이 마법으로 조작된 것일 수도….”

“충분히 가능성 있는 일입니다.”

마법사의 단언에 기사들의 낯이 어둑해졌다.

“마지막으로 2소대는 빨간 눈의 마을로 가서 리나 경과 린지 경 지원. 목표는 주민들의 신병 확보. 엘런 경?”

“네.”

“혹시 빨간 눈의 마을 위치…. 리나 경에게서 들은 거 있어?”

“저야 그때 전보로 받은 보고서 이후로는 구체적으로 이야기 들은 바가 없습니다. 물론 그 보고서가….”

“그러게….”

우리의 시선이 또르르 헨리에테에게로 향했다.

헨리에테는 기다렸다는 듯 리나의 보고서를 탁자 위에 올려놓았다.

「빨간 눈의 마을, 바다에서 하루 거리, 역사 500년, 뇌물 줘서 촌장 접촉.」

“…….”

“…….”

리나다운 보고서에 다들 침음을 삼켰다.

“이번 일 끝나면, 리나 경 3소대로 보낼게. 서류 작업 좀 가르쳐.”

“에엑, 싫어요!”

3소대장 알렉스가 질색했다.

저 전보를 보고서랍시고 받을 땐 리나답다고 웃으며 넘어갔는데, 막상 정보가 필요해지니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었다.

“한시가 급한데…. 리나 경에게서 마지막 연락이 온 게 언제지?”

“두 시간 전입니다.”

“…한참 남았네.”

황성 바깥에 파견 간 암조의 기사들은 신성력으로 메시지를 보낼 수 있는 수정 판을 써서 전보를 부쳤다. 보고할 일이 없더라도 하루에 한 번씩 신성력을 불어넣어 생존 신고를 하기도 했다.

문제는 그걸로 글씨를 보내자면 다량의 신성력을 오랜 시간 정교히 운용해야 했기에, 하루에 딱 한 번 쓰게 되어 있다는 거였다.

리나가 오늘 밤에 연락했으니, 다음 연락은 빨라야 내일 밤.

어쩌지….

“그 신관님께 여쭤보면 되지 않을까요?”

엘런이 조심스럽게 말했다.

“그분, 빨간 눈의 마을 출신이시라면서요.”

“그게, 그 신관님이 좀 상태가 안 좋으셔서….”

그리 말하며 알렉스가 손가락을 관자놀이께에서 빙글 돌렸다. 킬리온이 정신을 놓았다는 정보를 가장 먼저 입수한 게 그였으니까.

“아니, 어쩌면 의외로 말이 통할 수도 있어.”

“예? 어떻게요?”

“말했잖아. 그가 스스로 후작의 형이라 주장했다고.”

아아, 그제야 기억난다는 듯 알렉스가 대꾸했다.

“그럼, 그 주장이라는 게 그분이 직접…?”

“그것 말고도 이치에 닿는 말을 많이 했어. 그래서 그가 일부러 정신을 놓은 척하는 것도 같아서 레베카 언니께 알아봐 달라고 부탁한 참이야.”

그 말에, 엘런의 낯에 미약한 안도감이 비쳤다.

빨간 눈의 마을이 정확히 어디인지 모른다면 그 기나긴 돌아올 수 없는 바다의 균열에서 하루 거리에 있는 곳을 죄 헤집고 다녀야 하니까.

“우선, 내가 날이 밝는 대로 대신전에 갈게.”

“제가 다녀오겠습니다.”

루시페우스가 재빨리 끼어들었다.

아니, 또…?

그가 내 일을 돕는 게 우리가 함께한다는 증명이라 좋기야 했지만… 그는 내 수하가 아닌데.

나는 미안한 낯으로 말했다.

“경은 마검사들에게서 정보를 알아봐 줘. 그것만으로도 충분해.”

“그 일도 하고요.”

그의 말소리가 사뭇 단호했다.

“전하께선 내일 중요한 일정이 있지 않으십니까.”

“그렇지만….”

“그 일이야말로 전하께서 오래간 공들이신 것 아닙니까.”

루시페우스의 말에 나는 낯을 흐리며 입술 안쪽을 깨물었다.

중요한 일정. 오늘 정무 회의와 만찬연에서 주목받은 스칼렛을 위해, 그 여세를 몰아 프리지어궁에서 크게 다과회를 열기로 한 것이었다.

내 오촌 조카인 에슈바이크 소공녀를 비롯해 이런 때가 아니면 보기 힘든 지방 대귀족가의 영애들을 초대한지라, 스칼렛의 입지를 공고히 하기에 더없이 좋은 자리였다.

하지만 지금 더 중요한 것은….

“전하.”

내 낯에 서린 망설임을 읽었는지, 루시페우스가 재빨리 덧붙였다.

“굳이 전하께서 무리하실 필요가 없는 일입니다. 레베카 전하께서 제게 호의적이시니 제가 잘 말씀드리겠습니다. 그리고….”

잠시 망설이던 루시페우스가 덧붙였다.

“그분과는, 꼭 한 번 더 만나보고 싶었습니다.”

그리 말하는 루시페우스의 낯이 꽤나 진지했다. 거기에 깃든 의미를 모를 수가 없어서, 나는 더 이상 대꾸하지 못했다.

“정말로 혼자 가도 괜찮겠어? 내가 따라가서 레베카 언니랑 이야기하는 게 낫지 않을까?”

깊은 밤, 내 방 안.

잘 준비를 마치고 누운 나는 내 머리맡에 앉은 루시페우스를 올려다보았다.

내가 혼란스러워하는 걸 목격한 그의 걱정이 깊었다. 자책하며 잠 못 이룰까 걱정했는지, 굳이 내가 자는 걸 보고 가겠다고 따라온 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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