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8화. 루시페우스 알비누스 (10)
누구지? 어디를 봐야 할지 몰라 두리번거리는데.
“…어머니?”
밤하늘을 가득 채운 달을 배경으로 나타난 인물은… 틀림없이 어머니였다.
무명 튜닉에 가죽 바지, 적갈색 머리칼을 질끈 묶은 서른 안팎의 여인.
그가 마지막으로 기억하는 어머니이되, 어느 한 군데 상하지 않은 모습이었다.
“아하, 에리나가 네 어미구나?”
“에리나…. 네.”
어머니가 아닌가?
“네가 믿는 사람이 없더라고. 그래서 에리나의 몸을 했어.”
“에리나의 몸….”
무슨 의미지. 루시페우스는 얼떨떨한 낯으로 상대를 바라보았다.
상대의 말소리는 하나같이 비현실적이었지만, 루시페우스로서야 믿을 수밖에 없었다.
아니, 왠지 믿게 되는 울림이었다.
“여기는 너희들에게 작은 달이라고 불리는 곳이야.”
“작은 달….”
상식으로야 알았다. 달의 신이 기거하는, 1년 조금 못 미치는 시간을 주기로 공전하는 작은 달.
작은 달의 보름날에는 그해의 행복을 비는 풍습이 있다지만… 그에게는 그런 풍습을 가르쳐줄 사람도, 빌 행복도 없었다.
한 번이라도 행복했으면, 그런 마음을 떠올린 것이 마지막 기억이어서 행복의 기도가 이르는 곳에 닿은 걸까?
입 안에서 ‘행복’이라는 단어가 꽤 버석하게 씹혔다.
“그리고 난 여기의 주인이야.”
“그러면….”
“너희는 나를 달의 신이라고 부르더라.”
달의 신이 빙긋 웃었다.
루시페우스는 달의 신을 좋아했던 것도 같았다. 여성의 모습으로 조각된 달의 신은, 어째서인지 제 어머니를 떠올리게 하는 구석이 있었던 것이다.
“에리나의 신성력이 폭발하길래 데려와 봤어. 에리나는 우리의 힘을 크게 타고났거든.”
“…네.”
루시페우스는 살면서 어머니의 이름을 이토록 많이 들은 적이 없었다.
“에리나는 강한 종이었지. 에리나의 어미도 그 누이만큼 우리의 축복을 받았고.”
“우리의…라면.”
“나와 태양 녀석 말이야.”
처음 듣는 말이었다. 그도 그럴 게, 그에게 외조모에 대해서 알려줄 사람이란 전무했으니까.
루시페우스는 여전히 얼떨떨한 마음으로 달의 신을 바라보았다.
“너는 에리나의 모든 걸 타고났으면서 후회뿐인 삶을 살았더구나.”
“…….”
루시페우스는 할 수 있는 말이 없었다.
그의 침묵을 무어라 생각했는지, 달의 신은 어깨를 으쓱였다.
“미안. 데려온 김에 네가 뭐로 구성돼 있는지 좀 구경했어.”
“아닙니다.”
루시페우스는 더는 말하지 않았다. 그는 애초에 말을 길게 해본 적이 없어, 살갑게 침묵을 넘기는 법을 몰랐다.
말로써 표현하고자 하는 욕망도, 거기에 담고자 하는 마음도 가져본 적이 없었다.
달의 신은 한참 동안 그를 바라보았다.
“행복을 줄게.”
“네?”
“한순간이라도 행복하고 싶다며?”
“…….”
속내를 들킨 것 같아, 루시페우스는 입을 꾹 다물었다. 그건 정말 죽기 전에 충동적으로 든 생각이었는데.
“원래 그런 때 드는 생각이 진짜 욕구에 닿아 있더라고.”
나는 죽어본 적 없지만 말이야. 마치 그의 생각을 읽은 것처럼, 달의 신은 물음도 없었는데 대꾸했다.
그런데, 이제 와서요?
루시페우스가 생각만으로 반박한 순간 달의 신이 싱긋 웃었다.
“다시 살면 되지. 너는 소원 빈 적 없잖아. 소원 빌었다 쳐.”
저 말고 모든 이들이 소원을 빌고 살았나? 다들 그렇게도 바라는 게 많은가? 매해 꼬박꼬박 빌 만큼….
“그만큼 내가 에리나를 아끼기도 했고…. 네가 있는 줄 알았으면 한 번쯤 돌보는 건데. 너한테는 지하의 힘이 강해서 그만, 에리나의 힘이 소멸하고 만 줄 알았네.”
원한 적 없는 마력 때문에 신에게도 눈에 띄지 못했다는 것인가. 루시페우스는 새삼스럽게 제 존재에 절망했다.
다시 산다라.
절망뿐인 삶을 다시 사는 데 의미가 있을까?
한데 이어지는 달의 신의 말이 가관이었다.
“그런데 미안. 나도 행복이 뭔지는 몰라.”
루시페우스는 황당한 마음이 되었다. 그 속내를 읽었을 텐데도 달의 신은 제 할 말만 이어갔다.
“인간들이 내게 비는 것이 이뤄졌을 때 생성되는 감정이 행복인 거겠지?”
“제가 바라는 건.”
“그건 안 돼.”
“…….”
사람답게 사는 것. 그러니까 그의 평생을 괴롭힌 두 개의 강대한 재질을 버릴 수 있길 바란다고 말하려고 했는데.
그게 불가능하다면 어머니의 신성력이라도 거둬달라고 말하려고 했는데.
루시페우스는 불만스러운 낯으로 달의 신이 내릴 말을 기다렸다.
“에리나는 숭고한 삶을 살았어.”
“…네.”
“마음껏 사랑하고, 마음껏 싸우고, 죽어도 괜찮겠다 싶을 때 죽었어. 우리의 힘을 진하게 받은 애들은 다 그래.”
그저 낯설게만 들리는 이야기였다. 그 힘이란 것이 결국 제게도 온 거였는데, 저는….
“그런데 너한테는 미안했나 봐. 제힘을 다 준 걸 보면.”
그게 동대륙의 노파가 말한, 목숨같이 아낀다는 걸까?
루시페우스는 그 생에 들었던, 그다음 생에도 들을 답을 떠올렸다.
“네 삶이 몇 번을 반복해도, 에리나는 몇 번이고 똑같은 선택을 할 거야.”
똑같은 선택. 세계를 위해 앞장서서 마수와 싸우고, 죽음을 앞뒀을 때 아들에게 제 신성력을 남김없이 물려준다는 선택.
“너를 다시 살리는 거야 태양 몰래 한 번쯤 할 수도 있는 건데, 에리나의 선택까지는 어려워. 어떻게 살아갈지 정하는 건 너희들의 소관이니까.”
그러니까, 어머니의 신성력은 필연적으로 그에게 주어질 수밖에 없다는 소리였다.
그렇다면….
“미안. 그건 더 안 돼.”
루시페우스가 마력을 포기하는 일에 대해 떠올린 순간 즉답이었다.
“네가 거기서 난 이상 어쩔 수 없는 일인데, 지하의 균열은 내 힘으로 어쩔 수 있는 게 아니라.”
그럼 도대체, 제가 어떻게 행복해진다고…?
저주와도 같은 제 체질이 바뀌지 않는 이상, 똑같은 삶을 살아봤자 그는 똑같은 절망만 안고 살 텐데.
억울함 비스름한 감정에 루시페우스의 목구멍이 뜨거워질 무렵이었다.
“대신 변수를 하나 줄게.”
“변수요?”
“네가 원하는 걸 줄 수 있는 누군가가 있으면 되지 않을까?”
그건 물음이었지만, 그에게 묻는 말은 아니었다.
응, 그래. 네가 딱이겠다. 루시페우스가 답하지 않는 잠시의 공백 동안 달의 신은 다른 누군가와 대화하고 있었다.
원하는 걸 준다니, 내가 원하는 게 뭘까….
그에게는 버리고 싶은 것만 있었지, 갖고 싶은 건 없었다.
분홍 머리 여인에 대한 집착도 실은 다른 이유 때문이었음을 이제는 알았으니까….
내내 묻지도 않은 말에 대답하던 달의 신은, 이번에는 친절히 답해줄 생각이 없는 모양이었다.
달의 신이 싱긋 웃었다.
“그다음은 네가 찾아야지. 이번엔 잘살아봐. 다음에 볼 땐 좀, 인간답게 굴어주면 좋겠다.”
인간다운 건 또 뭐람. 루시페우스의 고개가 미세하게 옆으로 기울었다.
“말도 좀 하고 말이야.”
인간들은 다 말이 많은데 너는 조용해서 재미가 없네. 어느새 지척에 다가온 달의 신이 그의 이마를 콕, 쳤다.
그것이 ‘그’ 루시페우스의 마지막 기억이었다.
얼결에 받아버린 두 번째 삶.
첫 번째 삶에서와 같은 절망을 안고 동대륙을 헤매던 그에게, 그렇게 첫 번째 삶의 기억이 왔다.
달의 신과의 일만 빼고.
그것을 잊고 있었음은 지금에야 알았다.
어린 시절의 환상으로 눙쳐두었던 세실리아를 다시 만나고, 이끌리고, 자꾸만 가닿고, 함부로 제게 시간을 내주시게 요구하여… 그녀의 일거수일투족에 이리도 동요할 지경이 되고서야.
제 과오로 세실리아가 해를 입었음에, 봉인해 두었던 신성력을 주체하지 못할 정도로 무너지고 나서야.
지난 생의 마지막에서처럼 신성력이 해방되며 마력과 부딪혀 그를 살라먹을 위기에 처하고서야.
‘그걸 어떻게 잊고 있었지.’
달의 신이 두 번째 삶을 안겨주며 약속했던 한 가지.
이전의 삶엔 없었던 변수.
이 삶이 첫 번째 삶과 똑같지 않다면.
‘유일하게 달라진 것은….’
동대륙에서 지난 생의 기억을 되찾은 그는 그저, 세실리아를 그 생과 지금의 생을 구분하는 지표로만 생각했다.
세실리아가 없던 첫 번째 삶, 세실리아가 있는 두 번째 삶.
온기를 아는 삶.
제 손이 닿지 않는 곳에나마 작은 빛이 존재하는 삶.
그건 조금 살 만한 삶이었다. 그럼에도 여전히 죽음을 생각하게 되는 거였지만.
아니 오히려, 세실리아와 별개로 그는 제 최후를 생생히 그렸다.
배꼽에서 얻은 기억에서 그가 건져낸 것은, 후작에 대한 깊은 복수심이었으니까.
하지만. 달의 신의 약속을 기억해낸 지금은.
‘그러니까 나 때문에….’
그 작은 빛이, 오로지 나 하나 때문에 이 세상에 존재하게 된 것은 아닌지.
‘이전 생에는 분명 안 계셨으니까….’
그것이 과대망상자의 착각이 아니라면.
지금에야 이 기억을 얻은 것에, 무슨 의미가 있다면.
쪼롱, 쪼로롱. 짹짹.
그의 의식이 수면 위로 떠올랐을 때, 귓가에는 새들이 지저귀는 소리가 아스라이 울렸다.
어디지?
그가 천천히 눈을 뜨자, 어둑한 밤하늘 아래 나무들이 우거져 있었다.
동대륙의 배꼽인가?
아닌데. 마지막 기억이….
루시페우스는 느릿하게 눈을 끔벅였다. 눈가가 말라붙었던 듯 버석한 감각이 났다.
아. 그러니까.
갑작스러운 습격, 도미닉의 비열한 미소, 세실리아를 향해 무너져 내리던 건물의 파편들, 그리고….
넘어진 세실리아. 아프다 말하던 세실리아. 피를 흘리던 세실리아.
“윽.”
그걸 되짚는 것만으로도 속이 뒤틀리는 것 같았다.
폭주 끝에 정신을 잃어버리고 만 것은 정말이지 처음 있는 일이었다.
덕분에 모든 기억을 되찾기야 했지만.
‘…한심하게.’
그녀 앞에서 못 보일 꼴을….
그녀.
그러니까, 세실리아는?
찬물을 맞은 것처럼 정신이 번쩍 들었다. 흐릿하던 초점이 명료해졌다.
먼동이 터오려는 건지 하늘이 푸르스름했다. 그 하늘을 구획하는 골조와 유리….
‘온실?’
그러고 보면 시야의 나무들이 모두 낯설었다. 동대륙에서조차 본 적 없는 잎사귀들이었다.
온실이라면.
“이 온난한 황성에서 굳이 아열대 식생을 보겠다고 마법 온실을 꾸렸다니. 황실 예산 쓰는 거야 자유라지만, 철이 그리도 없어서야.”
어느 날 게이블스 후작이 투덜대던 말소리가 떠올랐다.
그러니까 열대 우림을 옮겨놓은 온실이라 하면.
‘그녀의, 온실…?’
루시페우스는 반사적으로 몸을 일으켰다.
“으….”
후유증인지 머리가 띵하게 울렸다. 절로 관자놀이를 짚자.
‘아, 안경이.’
없어도 보는 데 지장은 없지만, 누가 보면 흉할 텐데…. 루시페우스는 붉은 눈동자를 황망하게 이리저리 굴렸다.
이곳이 세실리아의 온실이라면, 그렇다면.
방황하던 그의 시선이 멎은 곳은 그가 누워 있던 침상의 머리맡이었다.
열대의 나무들이 우거진 세실리아의 온실, 저를 비밀리에 돌보기 위해 급히 두었을 침대, 제 머리가 누였던 곳.
거기에 세실리아가 있었다.
제 침상을 지키다가 잠들었는지, 작은 스툴에 걸터앉아 침대에 엎드린 채로.
그의 밤을 눈부시게 만들던 은사가 이리저리 흩뿌려져 있었다.
점점이 새벽별이 명멸하는 밤하늘 아래서 루시페우스는 제 우주를 보았다.
밤하늘에 알알이 박힌 빛보다, 더욱 진하고 시리게 빛나는 그 존재를.
제가.
그러니까 제가 감히 행복하고자 하여서.
정말로 저 때문에.
그는 저도 모르게 손을 뻗어, 침상 위에 어지러이 흩어진 세실리아의 머리칼을 그러쥐었다. 요 얼마간의 일들로 고단해서인지, 세실리아는 미동도 하지 않았다.
그의 손바닥을 타고 은사가 흘러 내렸다. 장갑도 어찌 된 것인지 맨손이었다.
수많은 바보 같은 짓을 저지르고 만, 뻔뻔하고도 더러운 손.
달의 신이 준 기회에도 불구하고, 어린 날의 온기와 작은 빛이 선사한 감동에도 불구하고 저는 똑같은 삶을 살아버렸다.
오히려 더 구제 불능인지도 몰랐다.
두 번째 생에 주어진 선물을 꿈결로 치부하고, 후작에게 복수하고 이 삶을 그대로 끝맺을 생각만 했으니까.
다시 만나 행복했지만, 손잡고 말 걸 수 있음에 감격했지만, 그걸 저 혼자만의 추억으로 묻어두려고 마음먹었으니까.
제 욕심대로 다가가서, 작은 빛을 흔들어 놓고서.
루시페우스는 손이며 다리에 상처를 입고도 그를 안심시키기 위해 태연한 척하던 세실리아를 떠올렸다.
피곤할 텐데도 그가 올 테니 기다리겠다 말하던 세실리아를, 손잡게 해달라는 그 기이한 요구를 결국 받아주고 마는 세실리아를 떠올렸다.
동대륙에서 깊은 잠에서 깨었을 때 제 머리맡을 지키고 있던 온기를, 어린 날의 수많은 밤을 위로해준 온기를 생각했다.
그의 밤을 밝혀준 작은 빛을 생각했다.
“왜.”
푹 잠겼던 목소리는 가슴을 긁듯이 울렸다.
“왜 자꾸….”
루시페우스는 손을 천천히 그러쥐었다. 미세하게 떨리는 그의 손 사이사이로 세실리아의 머리칼이 하느작댔다.
흑, 목구멍까지 깊이 차오른 무언가가 왈칵 쏟아졌다. 눈시울이 뜨거워져, 그는 제 손안에 얼굴을 묻었다.
아니, 그는 세실리아의 머리칼에 눈을 묻었다. 제가 세실리아를 넘보지 못하는 수많은 이유 중 가장 찬연히 빛나는 것에, 제 저주받은 태생의 증명을.
그의 눈꺼풀에 은사의 감촉이 새겨들었다.
“왜 자꾸만 저를 살고 싶게 하십니까….”
목소리만큼 떨리는 손안에, 오래간 흘린 적 없던 눈물이 고였다.
그의 손을 타고 달빛이 흘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