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4화. 루시페우스 알비누스 (6)
그 순간 그의 시야와 내 시야가 자꾸만 뒤섞였다. 현기증이 일 것 같았다.
“경, 어디 아파?”
반사적으로 그의 이마와 내 이마를 한 손씩 짚었다. 굳이 확인해보지 않아도 그에게서 심한 열이 나는 것은 확실했지만.
한데 그의 이마에 손을 대자마자 떼어낼 수밖에 없었다. 뜨거운 한편으로 전기가 오르듯 저릿했던 것이다.
글렌치아 공작저의 테라스에서 손이 맞닿았을 때처럼, 어렸을 때 쓰러져 있던 그를 다독였을 때처럼.
다시금 그의 시야가 뇌리를 스쳤을 때. 나는 내 손에서 난 피를 이마에 묻힌 채였다.
“죄, 죄송합, 니다. 제가. 제가 잘못….”
“경?”
“다치시게, 제가. 제가, 잘못해서. 아프시죠.”
“어, 아아니? 안 아파! 농담한 거야.”
“아, 아프, 시게. 제가, 어제, 어제도…. 저, 저 때문에. 유, 유스티, 티안 전하도.”
“경?”
아무래도 뭔가 문제가 있는 듯했다.
“제가. 제가 치료, 치료해 드려야. 하는데.”
“경이 더 아픈 것 같은데…?”
“저, 저야, 어차피. 죽을….”
죽으면…. 웅얼대던 루시페우스는 그대로 후욱, 숨을 들이쉬었다. 진정하려는 듯 어깻숨을 몇 번이고 쉬었지만 뜻대로 되지 않는 듯했다.
뭐, 뭐야, 이게? 그때, 케인과 엘런이 질겁한 목소리를 냈다.
그들의 시선을 좇으니… 잔뜩 부서진 대리석 바닥이 마치 파도치듯 울렁대고 있었다.
목뒤가 쭈뼛했다.
마력으로 지반을 고정해두던 그에게 혼란이 와서일까?
와중에도 내 머릿속에는 자꾸만 그의 초점 나간 시야가 깜빡였다.
그러니까, 어째선지 그와 시야를 공유하는 것 같은데.
어렸을 때, 쓰러져 있는 그를 발견했을 때처럼.
그가 쓰러져 있는 골목의 풍경이 데자뷔인 양 떠올랐던 것처럼.
“제가, 제가 다, 자, 잘못…. 감히, 어떻게. 요, 욕심내서….”
루시페우스의 어깨가 점점 더 크게 들썩였다.
“아프, 시게….”
“경, 정신 차려!”
나는 재빨리 무릎걸음으로 그에게 바싹 다가가 어깨를 흔들어 보았다. 아까 넘어지며 깨진 무릎이 비명을 질렀지만 신경도 쓰이지 않았다.
루시페우스는 숫제 바닥을 짚고 엎드려서 목 졸린 사람처럼 꺽꺽대며 괴로워했다.
죄송합니다, 다 잘못했습니다, 감히 넘보았습니다, 저 때문에 다치셨습니다, 그런 말만 고장 난 기계처럼 반복했다.
도대체 왜?
늘 무표정만을 낯에 걸어두던 그가 흐트러진 낯으로 괴로워하는 광경이 너무도 생소했다.
나는 그의 어깨를 열심히 흔들며 토닥였다. 여전히 뜨겁고 따가웠지만, 그것만으로도 그가 진정되길 바라서.
와중에도 바닥이 여전히 요동쳐 대리석 조각이 튀었다.
“경, 진정해봐. 다 괜찮아. 다 끝났어. 나 안 아파.”
“죄송, 합니, 윽, 다….”
마지막 사과를 끝으로, 그는 그대로 고꾸라지고 말았다.
적막과 어둠.
아, 이건 그때와 같은 감각이다.
세상의 중심이라는 동대륙의 평원에서 아득한 잠에 빠져들었던 그때의 감각.
기나긴 잠을 잤고, 그 속에서 수년의 세월을 돌이켰지만, 깨보니 하룻밤에 불과했던 그날의 일들.
아무 답도 찾지 못한 그가, 모든 것에 대한 답을 찾은 그날.
제 생의 비밀을 알아버린 그 순간.
그날, 그가 깊은 잠에서 깨어나 눈을 떴을 때.
그가 외로울 때마다 위로가 되어주었던 소담한 온기가 함께하고 있는 것 같았다.
눈물이 날 것 같았다.
“…그랬구나.”
나는 똑같은 삶을 두 번째 살며, 똑같은 잘못을 두 번째 저지르고 있는 거였구나.
똑같이, 무언가 잘못된 삶을 살아내고 있구나.
아니, 이 삶이 그때와 똑같지 않다면.
유일하게 달라진 것은….
그의 기억은 다른 사람보다 훨씬 이른 시기의 것부터 시작되었다.
가령, 저를 안아보지도 못한 채 눈물만 흘리며 죽어가는 피투성이 어머니의 모습 같은 것.
“경, 조금만 더 버티십시오.”
“남은 기사단이 모두 황성을 출발했다고 합니다.”
“신관들도 오고 있으니까요.”
다른 기사들의 말뿐인 위로에, 제게 시선을 붙박아둔 채 눈물조차 간신히 흘리는 어머니의 눈동자는 점차 빛을 잃어갔다.
어머니의 마지막 모습에서 눈을 떼지 못하고 있을 때.
어째서인지 어머니의 신성력이 그에게로 왔다.
누군지는 모르지만 아버지 역시 성기사였으니, 태생적으로 타고난 신성력도 많은 와중에 그리된 일이었다.
마계의 접경 지역에서 태어난 탓에 깃들어 버리고 만 거대한 마력.
그리고 어머니로부터 넘겨받은 거대한 신성력.
아기는 이를 스스로 제어하지 못해 매일같이 울었다.
어머니의 옛 동료들이 어떻게든 달래주려 했지만, 두 재질이 서로 날뛰는 탓에 아기에게 쉬이 손댈 수 있는 이가 없었다.
사람의 손을 타고 자라나야 할 아기는 그렇게 누구의 온기도 모른 채 자라게 되었다.
“…빨간 눈?”
“그, 에리나 경의 자식입니다. 이름은 루시페우스라고 지었다던데….”
“아비가 있을 거 아니오?”
“생환자 중에 아비라 주장하는 이가 없었습니다.”
“악마의 자식인 건 또 아닌지…. 하여간, 출신부터가 미천해서.”
쯧, 작게 혀 차는 소리가 허락의 말이 되어, 아기는 어머니의 이복 남동생인 알비누스 후작의 보호 아래 있게 되었다.
‘보호 아래’라고 하기엔, 그 처지가 썩 고달팠지만.
호적상으로야 양자였으나 누구도 그를 도련님 취급하지 않았다.
여섯 살 많은 후작의 아들은 아기를 제 장난감처럼 대했고, 가주와 그 식솔들이 대우하지 않으니 사용인들은 자연스레 아기에게서 관심을 거뒀다.
다행인 것은, 그들 또한 아기에게 손대지 못하는 것 정도였을까.
아기의 빨간 눈을 비밀로 해야 했기에 아기를 돌보도록 배정된 사용인의 수는 고작 둘에 불과했다.
그 둘에게 아기는 귀찮은 일감에 지나지 않았다.
먹이고 씻기고 입히고, 아기를 다뤄야 할 때 사용인들은 두껍디두꺼운 장갑을 껴야만 했는데, 그것이 번거로우니 아기에게 닿는 손길이 더더욱 드물어졌다.
“아이고, 어제 저녁밥 드리는 걸 깜빡했네. 미안해, 응? 네가 여간 손이 많이 가는 게 아니야.”
“널 다 못 키우고 간 네 엄마를 탓해야지, 어쩌겠니. 네가 진짜 악마의 자식이면 뭐, 배고픔쯤 괜찮을 수도 있고….”
저주받은 체질을 타고나서일까? 돌도 안 된 아기가 알아들으리라 생각지 않고 뱉는 무신경한 말들을 아기는 온전히 이해했다.
거기에 제 마음이 상처받는 것도 모른 채 상처받고 또 그 상처가 헤집어져, 아기의 마음은 점차 무뎌져갔다.
그래서인지 괜찮았다.
외로운 밤이면, 정말 사무치도록 외로운 밤이면, 울어도 와줄 사람 하나 없다는 걸 알지만 울고 싶은 밤이면… 이상하게 누군가가 저를 지켜보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으니까.
그건 따뜻한 온기였다.
이따금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고, 눈가를 닦아주었고, 잘 자, 아프지 마, 잘 지내고 있어, 다정한 한마디를 건네주었다.
그래서 아기는 외로워도 서러워도 괜찮았다.
그런 밤이면 그 온기가 저를 찾아온다는 걸 아니까.
옅어진 외로움의 자리에는 다른 괴로움이 찾아왔다.
아이가 말을 하기 시작하고, 후작의 아들이 다 뗀 책들을 물려받아 간신히 글자를 익히기 시작하자 후작 부자의 괴롭힘이 시작되었다.
아이의 영특함이 눈에 띄니 무시할 수 없게 된 거였다.
아이는 여전히 두 재질을 잘 갈무리하지 못하여서, 덕분에 괴롭힘은 폭언에 그치고 말았지만.
무덤덤하게 굳혀 두었더래도 마음이 다 여문 건 아닌지라 아이는 이따금 밤에 울었다.
그런 때면 온기가 찾아와 주었고 그것이 고맙고 반가웠는데, 그런 걸 어떻게 표현하는지 아이는 알지 못했다.
그저 우는 모습을 보이면 안 될 것 같아 꾹꾹 참을 뿐이었다.
그럼에도 온기 덕에 마음이 따스해지면, 얼려두었던 눈시울이 쉽게 녹아내리는 것이었지만.
그것이 조금 창피했다.
아이의 세상에서 우는 사람은, 저밖에 없었으니까.
아이는 점점 능숙하게 울음을 참을 줄 알게 되었다. 그럴수록 마음이 더욱 무뎌졌으며, 그러다 보니 온기가 찾아올 만큼 외로운 날이 점차 줄어들었다.
아쉬웠지만 괜찮았다.
그만큼 외롭지 않다는 뜻이었고, 사실 아이는 아쉬움이 무언지도 몰랐던 것이다.
그렇게 아이가 아홉 살이 된 어느 날.
아이는 후작저에서 도망쳤다.
실상은 허락받지 않고 외출한 것에 가까웠다.
이유도 없었다. 그저 그러고 싶어서 그랬다.
손님이 오지 않는 날이면 아이는 사용인들이 다니는 통로를 따라 저택을 돌아다닐 수 있었는데, 상인들이 식자재를 대는 뒷문이 열린 걸 본 순간 그리하고 싶은 충동이 든 거였다.
밖이 궁금한 건 아니었다.
하지만 집 안에 지키고 싶은 게 있는 것도 아니었으니까.
바깥은 생각보다 괜찮았다. 아무도 아이를 보고 눈살 찌푸리거나 아픈 말을 내뱉지 않았다.
후작이 맞춰준 변장 마법이 걸린 안경 덕분에 아이가 빨간 눈인 줄 다들 몰라본 덕분이었다.
아무도 제게 적의를 보이지 않는다는 것만으로도, 아이는 바깥이 좋아졌다.
사람들이 가는 곳을 무작정 따라 걸음을 옮기던 어느 한 순간.
퍽.
“아니, 누가 왼쪽으로 다녀?”
아이는 누군가에게 어깨를 부딪혀 자빠지고 말았다.
그토록 큰길을 걷는 건 처음이었다. 아니, 애초에 바깥을 걷는 것 자체가 처음이었다. 큰길을 걷는 사람들 사이에 무언의 규칙이 있다는 사실을 아이가 알 리 없었다.
덩치 큰 소년이 제게 희번덕이는 것을 황망한 낯으로 쳐다보던 아이는….
“빠, 빨간 눈…!”
“뭐? 빨간 눈이라고?”
“허억! 빨간 눈이다!”
넘어지면서 안경이 벗겨지고 만 거였다.
소년의 친구들이 몰려와 아이를 둘러싸고 손가락질하며 웅성대었다.
아이는 처음 겪는 낯선 얼굴들의 향연과 그들이 보이는 적의에, 어떻게 반응하지 모르고서 덜덜 떨기만 했다.
제대로 먹지 못해 아이는 또래보다 한참 왜소했고, 소년들은 위로도 옆으로도 훨씬 컸다.
아이는 눈을 꼭 감았다.
이상해. 무서워. 괴로워. 무서워. 도망치고 싶어. 못 움직이겠어. 무서워.
처음 겪는 감정의 너울이 아이의 목을 졸랐다. 아이는 열심히 식식대며 숨을 고르려 했지만 숨은 점점 더 가빠지기만 했다.
그때, 소년들 중 하나가 아이에게 손을 뻗었다.
“이 눈깔 좀 봐 봐…. 으악!”
아이의 눈꺼풀을 억지로 벌리려던 소년이 펄쩍 뛰었다. 아이와 닿았던 손에서 격통이 인 거였다.
“저, 저주다!”
“악마의 저주다!”
“악마다!”
소년들은 깜짝 놀라 펄쩍거렸다. 몇몇 소년들은 주변을 뒤져 악마에게 던질 만한 것을 찾았다.
하지만 아이는 이미 전력을 다해 도망친 후였다. 손에 안경을 꼭 쥐고서.
사람 많은 거리를 달리는 것도 처음이라 아이는 이곳저곳에 부딪혔다.
짐수레에, 지나가던 행인에, 서 있는 마차에, 건물 모퉁이에, 여기저기 부딪혀서 멍들고 다치고 옷가지가 찢어졌다.
안경을 다시 써야 한다는 생각도 못 해 이따금 빨간 눈을 들키고 나면 이리저리 밀쳐지기도 했다.
후작저에 있을 때와 전혀 다른 종류의 적의가 쏟아졌다. 아이는 심장이 죄고 배 속이 뒤틀리고 목이 졸리는 것 같았다.
헤엑, 헥, 간신히 숨을 쉬다가도 숨이 막혀 죽을 것 같았다.
사람을 피해 비틀대던 아이는 간신히 아무도 없는 외진 골목에 다다랐다. 거기서 풀썩, 쓰러지고서야 아이는 간신히 스스로를 진정하려는 노력을 할 수 있었다.
그게 잘 되진 않았지만….
분했다. 누구에게인지는 몰랐지만.
억울했다. 왜인지는 몰랐지만.
슬펐다. 다시는 안 울려고 했는데.
‘제발, 제발….’
아이가 엎어진 채 시근덕대며, 고통이 가라앉기만을 간절히 바랄 때였다.
웬 여인의 목소리와 함께 익숙한 기운이 느껴졌다.
“맙소사, 이게 어찌 된 일이래.”
따뜻해…?
고개를 들 순 없었지만 아이는 순간적으로 알았다.
온기였다.
아이의 외롭고 서러운 밤을 보듬어주던 그 온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