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화. 어린 남주와 친구가 되었습니다 (3)
“…네에?”
제가 무슨 말을 들었는지 모르겠다는 양, 물음표를 띄우고 있는 레오폴트의 눈동자가 굴러떨어질 것 같았다.
‘원래 레오폴트처럼 늦된 남자애가 어른스러운 여자애 좋아하는 건 흔한 일이고, 게다가 세실리아의 외모라면….’
그래, 그런 찜찜한 기류는 애초에 차단하는 것이 맞다.
나는 다이아 수저를 쥔 엑스트라로서의 삶에 꽤나 만족하고 있었고, 무엇보다 연애 감정 따위에 홀려 이 안락한 황실을 떠날 생각은 없으니까.
일곱 살이 하기에 굉장히 이른 판단이지만, 내가 진짜 일곱 살은 아니니까….
이참에 쐐기를 박아야지.
“내가 예쁘니까 나한테 반한 것 아니냐고.”
거기에는 일종의 삐딱한 마음이 담겨 있었다.
메리제인과 패티샤가 호들갑 떨 때나 함께 정원 산책을 나가는 호위 기사들의 어깨가 으쓱거리는 것을 볼 때. 또는 프리지어궁에 새로 들어온 하녀들이나 요리사들이 반짝이는 눈으로 첫인사를 올릴 때….
그러니까 황궁의 모든 이들이 나를 사랑스러워 죽겠다는 눈빛으로 바라보고, 유리 세공품 다루듯 애지중지할 때.
그런 때면, 나는 꼭 이런 생각이 드는 것이었다.
‘속에 든 건 똑같은데 이번 생에만 겪는 일인 걸 보면, 결국 외모가 문제인 거잖아.’
나는 어리둥절할 만큼 사랑받고 있었고, 때때로 그것이 어색하게 느껴질 때면 거울을 보면서 개연성을 찾을 수밖에 없었다.
무례할 수 있는 질문에, 레오폴트는 눈을 빛내며 답했다.
“전하께서는 머, 멋있어요!”
“그래, 멋있는 것까진 인정할게. 네가 오늘 내 얼굴을 보고 심장이 두근거렸을 텐데, 그건 놀랐을 때 일어나는 자연스러운 현상이지 좋아해서 그런 건 아니야.”
입을 헤벌린 채 내 얼굴만 바라보고 있는 레오폴트는, 아무래도 내 말을 제대로 알아듣지 못한 것 같았다.
‘공부 머리는 좋으면서…. 뭐, 이런 쪽으로 생각해본 적 없을 테니 그럴 수 있지. 인간관계는 다른 문제니까.’
나는 세실리아 얼굴의 파급력을 걱정하며 만들어 두었던 말을 비장하게 꺼냈다. 내심 이런 일이 생길까 봐서 대비해둔 말소리.
“좋아하는 사람을 만나면, 종소리가 들려오는 거야.”
“네?”
“종소리가 안 들리면 좋아하는 게 아냐.”
“종소리요…?”
레오폴트의 얼굴은 더욱 큰 혼란으로 물들었다.
이것은 기실 뜬금없는 소리는 아니었다.
「“나는 영애를 처음 본 순간… 마치 종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습니다. 이 여인이 내게 사랑을 알게 해줄 천사라는 걸 알려주듯이.”」
훗날 레오폴트가 아멜리에게 고백할 때 그리 말할 예정이었으니까.
본인이 그렇다니까 그런 거겠지. 안 그래?
‘이렇게 세뇌해두면 안심할 수 있을 거야.’
지금 안 울렸지, 하는 눈빛으로 쳐다보니 꼬맹이 남주께서는 여전히 입을 헤벌리고 있었다.
그 머릿속에 말 잘하는 황녀 전하에 대한 동경심이 스쳐 지나가고 있음을, 나는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었다.
‘지금은 무슨 말인지 몰라도, 나중에 이 누나가 얼마나 옳은 말을 했는지 알 수 있을 거란다.’
속이 좀 후련한 듯도 해서, 나는 메리제인이 따라 두고 간 과일 냉차로 입을 축였다.
그때 레오폴트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입을 열었다.
“그런데 전하께서는 전하의 외모 때문에 사람들이 전하를 사랑한다고 생각하시나요?”
“응. 달리 뭐가 있는데?”
나는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대답했다.
“혹시 황실 분들도요?”
“그렇겠지?”
고개를 갸웃거리던 레오폴트가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저는… 전하께서 어떤 모습을 하셨어도 똑같이 좋아할 것 같은데요.”
뭐야, 세실리아 얼굴 때문에 얼굴 붉혔으면서, 뭘 안다고?
내가 기분이 나빠진 기색을 숨기지 않으며 쳐다보니, 레오폴트가 우물쭈물 대답한 것치고는 해사하게 웃고 있었다.
“프리지어궁 분들은 전하의 일상을 늘 함께하시는 분들이잖아요. 가족은 더더욱 당연하고요. 사람이 가족과 친구를 좋아하는 데 외모는 아무 상관이 없대요.”
“글쎄. 보이는 게 다야, 사람은.”
지금의 나는 알맹이는 전생 그대로인데 외모가 바뀌어서 이렇게 사랑받는 거 아닌가?
‘가족이라고 다 이렇게 사랑하는 건 아닌데.’
기분이 나빠진 나는 못된 말을 만들어 뱉었다.
“그건 너도 예쁘게 생겨서 그런 거 아니니? 네가 받는 사랑이 내가 받는 것과 비슷해 보여서 그러나 본데.”
“그, 그렇게 생각하지는 않았어요. 어찌 감히….”
당황한 레오폴트가 조금 울먹거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당황하라고 한 말은 맞았지만, 막상 눈앞의 아이가 괴로워하니 조금 죄책감이 들었다.
…그렇게 말한다고 해서 내 전생이 보상받는 것도 아닌데.
작은 침묵이 흐를 때쯤, 레오폴트가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저는 얼마 전까지 많이 아팠는데, 제 가족들은 이제 안 아프고 살아 있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하거든요.”
그래, 레오폴트에게는 공작가 후계자임에도 상냥한 마음씨를 지녔다는 설정에 개연성을 주기 위해서인지, 어린 시절에 병약했다는 설정도 있었다. 그래서 이렇게 멀리 나온 외출이 이번이 처음인 거고.
“공부 같은 거 안 해도 된다고, 이 사랑은 가족의 일원이라면 누구나 받아야 하는 거라면서요.”
“예쁘게 생긴 애는 원래 아파도 예쁜 법이란다.”
나는 코웃음을 치며 대답했다.
병약한 어린이 생각을 하니… 전생의 막냇동생 생각이 났다. 허약해서 부모님의 관심을 독차지했던.
나도 모르게 미간에 힘이 들어갔다.
레오폴트는 내 반응에 기죽지 않고 말을 이어갔다.
“저와 동갑인 황녀 전하가 계시고 저보다 훨씬 씩씩하시고 의젓하시다는 말을 들었을 때 저는 이미 전하와 친구가 되고 싶었어요. 그래서 아버지를 졸랐고요. 그렇다면 본 적도 없으면서 전하와 이미 친해지고 싶었던 제 마음은 잘못된 건가요?”
거기까지 말을 마친 레오폴트는 거의 울 것 같았다.
‘아, 그러니까….’
그 말을 듣는데 태열도 가시지 않아 빨갛고 쪼글쪼글했을, 그러니까 못생겼을… 내 얼굴을 사랑스럽다는 듯 쳐다보던 이번 생의 부모님과 형제들의 얼굴이 스쳐 지나갔다.
‘사실, 나도 내가 억지 부린단 걸 알고는 있어.’
그렇다고 해서 레오폴트의 순수하고 아름다운 말들에 수긍한 것은 아니었지만.
얼굴이 새빨개져서는 무엄하게 들릴 수도 있는 이야기를 꾸역꾸역 내뱉는 아이를 보며, 깊은 한숨이 나올 수밖에 없었다.
어쨌든, 레오폴트에게 못되게 말할 건 아니었는데.
‘난 어른 자격 없어….’
어른의 사고를 갖고 있다고 자신만만하게 굴고 있었건만, 전생에서 뺨 맞고 현생에서 화풀이하고 있었던 것이다.
잘못한 것이 있다면….
레오폴트와의 첫 만남은 그렇게 어영부영 끝났다.
미안해진 내가 시녀들이 준비해 준 비스킷이며 초콜릿을 모두 레오폴트에게 밀어 주었더니, 그제야 제가 무슨 말실수라도 했나 싶어진 레오폴트가 울먹거리기 시작했기 때문이었다.
‘일곱 살이면 이럴 때도 지나지 않았나….’
보통의 일곱 살이 어떤 건지 잘 알지도 못하면서, 나는 레오폴트에게 죄책감을 담아 최대한 잘 대해줬다.
“전하께서는 더 안 드시나요?”
“응, 네가 먹는 것만 봐도 배불러.”
그렇게 주접을 떨다가도.
“참, 단 거 먹으면 이 상하니까 집에 가서 바로 치카치카해야 해.”
“치카…치카요?”
이렇게 잔소리를 하게 되는 것이었다.
‘어차피 계속 봐야 할 사이니까, 잘 지내야지.’
프리지어궁에 다시 찾아온 아우렌바흐 공작 부인과 함께 마차를 타고 멀어져 가는 레오폴트의 몽실몽실한 뒤통수를 보며, 나는 그 애가 했던 이야기에 대해 생각했다.
‘사실 레오폴트가 어떻게 생겼어도 계 탄 마음이었을 거긴 해.’
그러기엔 로판 남주의 어린 시절이 사랑스럽지 않을 리가 없었지만.
‘우리 부모님도 형제들도 다 외관상 아름다우니까 다들 성격이 모난 데 없고, 그래서 황실이 화목한 거라고 생각했는데. 내가 이렇게 과분한 애정을 받는 것도 세실리아가 사랑스러워서라고 생각했고….’
어쩌면 내가 아니라 원작의 세실리아 그대로였다면, 이런 꼬인 구석도 없이 레오폴트처럼 밝게 자라났을 수도….
어른의 이성이 남아 있다는 것은 황녀로 사는 데 명백히 도움이 되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그릇된 편견 때문에 타인의 마음을 넘겨짚게 한다는 생각이 처음으로 들었다.
“전하께서는 벌써 군주론을 다 떼시고, 대단하세요!”
“어떻게 사과의 품종을 다 감별하셔요? 전하께서는 미뢰도 남다르신 게 분명해요.”
“전하께서는 약을 어쩜 그리 잘 드세요? 저는 매번 쩔쩔매는데….”
레오폴트는 이후 한 달에 두 번씩 나를 만나러 올 때마다 무엇으로든 나를 동경했다.
그때마다 반짝이는 초록색 눈동자가 얼마나 순수하던지.
“역시 전하께서는 고대 성서도 읽으셔서 그런지 어른스러우세요.”
“레오, 그렇지만 나한테 반한 건 아니지? 종소리 안 울렸지?”
“네에, 안 울렸어요.”
그렇게 만난 것이 두 손으로 꼽을 수 있는 횟수가 넘어가다 보니, 우리는 어느새 애칭을 부르는 사이가 되었다.
‘애칭으로 부르는 걸 아멜리가 질투하는 에피소드가 원작에 있으니까, 해야 하는 일 한 거지, 뭐….’
그 애칭이 남녀 간의 어떤 애틋함이 절대 아니리라는 확신을 갖고, 나는 레오폴트의 어리광을 적당히 받아주기 시작했다.
내가 생각해서 어리광이지, 레오폴트는 그냥 자연스럽게 친근함을 표현하고자 한 거였겠지만….
레오폴트의 밑도 끝도 없는 우정 표현에, 나는 자꾸만 멈칫거리게 되는 것이었다.
‘세실리아가 예쁘니까 저런 것도 더 대단하게 느끼고, 그래서 더 친해지고 싶은 것 아닐까?’
애가 원체 상냥하다 보니 그런 거겠지만….
전생에서 이처럼 맹목적인 우정을 겪은 적이 없어서일까? 나는 자꾸만 레오폴트의 마음을 경계하게 되는 것이었다.
‘조금이라도 ‘공제눈’의 세계가 잘못될 소지를 만들고 싶진 않은걸.’
이 세계가 그대로 유지되어야, 내가 어떤 고난도 없이 태평성대를 온전히 누릴 수 있을 거니까.
어려서부터 꿈속에서 수없이 반복 주입되었던, 내게 구원일 거라던 이 세계….
“전하께서는 예법이 제 어머니보다 더 완벽하실 것 같아요!”
“소공작 부인보다? 그게 말이 돼?”
“지금도 이리 완벽하시니 제 어머니처럼 어른 되시면 얼마나 더 대단하시겠어요?”
“나야 두 살 때부터 배웠는걸.”
“그래도요. 그리고 전하께서는 옷도 늘 깨끗하시네요. 저는 꼭 한 번씩 넘어지고, 옷에 뭘 흘려서 하인들한테 미안할 때가 많거든요.”
이처럼 가끔 억지스러운 내용도 있었고.
“와, 제 가정교사가 저보다 더 논리학 진도 빠른 일곱 살은 없을 거랬는데, 전하께선 세계 최고세요.”
“뭐, 뭐래. 나보다는 내 동생이….”
“동생요?”
“아, 아냐. 말이 잘못 나왔어.”
가끔은 그 근본 없는 칭찬이 전생의 기죽은 내 모습까지 건드리기도 했다.
덕분에 나는 세실리아로 커온 몇 년 동안 내 안에서 정설이었던 기승전세실요정설을 조금씩 의심할 수 있었다.
7년이 넘도록 마음속에 굳혀두었던 생각을 대번에 깨부수기란 쉽지 않았지만.
그래, 그건 어쩌면 일종의 방어막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세실리아의 외모가 변하지 않는 한, 지금 받는 애정과 관심 또한 변하지 않을 거라는….
그 방어막이 레오폴트로 인해 가랑비에 옷 젖듯 조금씩 녹아가고 있던 것이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세실, 잠시 시간 되니?”
셋째 언니 레베카가 내 공부방을 찾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