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597 98. 신들의 무덤 =========================================================================
“네가 데려다 줄 수는 없는거야?”
명후는 레퓨렘에게 물었다.
“응.”
레퓨렘은 당연하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등장하면 도망칠 테니까.”
데려다 줄 수는 있다. 하지만 데려다 주는 순간 그곳에 있던 신은 레퓨렘의 기운을 느끼고 도망을 갈 것이다. 그렇게 신이 도망가 버리면 데려다 주는 의미가 사라진다.
“아, 맞아. 도망친다고 했지.”
명후는 레퓨렘의 말에 답하며 생각했다.
‘신들이 이렇게 몸을 사릴 줄이야.’
처음에는 믿지 않았다. 신들이 몸을 사릴 것이라고는 전혀 생각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신들은 몸을 사리는 편이었다. 그것도 극도로 사리는 편이었다. 신들 역시 죽음을 두려워하고 있었다.
“바로 갈거야?”
이번에는 레퓨렘이 물었다.
“그래야지.”
어차피 영약도 전부 복용했다. 더 이상 할 것도 없고 무엇보다 기다릴 이유가 없어 명후는 바로 출발 할 생각이었다.
“그럼 수고해!”
“알았다.”
“아, 그리고 그거 잘 챙기고. 혹시나 녀석들에게 들어가면 귀찮아지니까.”
“알았어.”
명후는 레퓨렘의 말에 답했고 명후의 답을 들은 레퓨렘은 미소와 함께 사라졌다. 레퓨렘이 사라지고 방에 홀로 남게 된 명후는 방금 전 레퓨렘에게 받은 두 개의 아이템을 확인했다.
<발렌의 증표[유니크]>
증표를 보일 경우 대사제의 대우를 받을 수 있다.
<신성제국의 신들[데미갓]> [교환불가]
신성제국을 수호하는 신들의 정보가 담겨 있는 책이다.
바로 ‘발렌의 증표’와 ‘신성제국의 신들’이라는 아이템이었다.
“증표는 쓸 일이 거의 없을 것 같고.”
증표의 경우 대사제의 대우를 받는 것 뿐이다. 그 외에 특별한 효과는 없었다. 어떤 상황이 올 지 모르지만 쓸 상황은 오지 않을 것 같았다. 명후는 인벤토리를 열어 증표를 넣은 뒤 다음 아이템 ‘신성제국의 신들’을 보았다.
“이건 아주 쓸만하지.”
증표와 달리 책은 아주 쓸만했다. 그도 그럴 것이 책에는 명후가 소멸시켜야 될 신들의 정보가 가득 담겨 있기 때문이었다. 명후는 인벤토리를 닫고 책을 펼쳤다. 그리고 명후는 볼 수 있었다.
-아필라스
-오너스
-캐빌리아
.
.
끝없이 이어지는 신들의 이름을.
“목차까지 있고!”
신들의 이름만 나열 된 것으로 보아 목차가 분명했다. 목차 이후 이어지는 신들의 정보를 한 번 훑어 본 명후는 책을 덮었다.
“3지역에 많이 나타난다고 했지.”
책에 쓰여 있는 것은 아니었다. 레퓨렘이 말해주었다. 현재 발렌과 신성제국은 다섯 곳에서 전투를 하고 있었다.
그 다섯 곳은 1지역, 2지역, 3지역, 4지역, 5지역이라는 호칭이 붙은 상황이었다. 그리고 그 중 신들이 가장 많이 나타나는 곳이 3지역이었다.
“1지역부터 차근차근 갈까?”
물론 3지역에 많이 나타난다고 해서 목적지로 3지역을 선택 한 것은 아니었다. 어차피 명후는 모든 지역을 돌아다닐 생각이었다. 굳이 3지역부터 갈 이유가 없었다.
“그래.”
어떤 지역부터 갈까 생각하던 명후는 곧 목적지를 정할 수 있었다.
“1지역부터 차근차근 돌자.”
바로 1지역이었다.
* * * *
가린 왕국의 왕 헤벨의 동생이자 가린 왕국의 밤을 장악한 헤론은 미간을 찌푸렸다.
“...뭐?”
그리고 이어 반대편에 엎드려 있는 사내를 향해 반문했다.
“...”
사내는 헤론의 반문에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아니, 하면 자신의 목숨이 온전치 않다는 것을 알고 있는 사내는 말을 하지 않았다.
“다시 한 번 말해봐.”
“그것이..”
그러나 이어진 헤론의 말에 사내는 입을 열수 밖에 없었다. 이번에도 입을 열지 않는다면 자신의 목숨이 온전치 않다는 것을 느꼈기 때문이었다.
참으로 변덕스런 헤론의 성격. 그 성격 아래서 15년간 목숨을 유지해 왔던 사내의 목소리는 담담했다.
“30명이 당했습니다.”
“...”
사내의 말에 이번에는 헤론이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물론 말을 하지 않는 이유는 사내와 전혀 달랐다. 사내는 살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헤론이 말을 하지 않는 이유는 극도의 분노 때문이었다.
“40명이 가서 30명이 죽어?”
헤론이 극도로 분노한 이유, 그것은 바로 40명을 보냈는데 30명이나 죽었기 때문이었다.
“고작..”
작전 중에 죽었다면 이해한다. 화를 내지도 않았을 것이다. 화를 내는 이유는 작전 중에 죽은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수도에 잠입하는데?”
수도, 고작 수도에 잠입 하는데 4분의 3이 죽었다. 왕궁에 잠입한 것도 아니고 수도에 잠입하는데 4분의 3이 죽었다는 것이 헤론은 이해가 가지 않았다.
“죄송합니다.”
사내는 변명하지 않았다. 헤론은 변명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저 사내가 지금 상황에서 할 수 있는 건 죄송하다는 말 뿐이었다.
“...후.”
헤론은 짧게 숨을 내뱉었다. 숨을 내뱉으며 분노를 가라앉힌 헤론은 여전히 싸늘한 눈빛으로 사내를 바라보며 말했다.
“남은 10명으로 작전이 가능해?”
수도에 잠입한 인원은 10명 뿐이었다. 과연 10명으로 작전을 수행 할 수 있을까?
“예.”
헤론의 물음에 사내는 재빨리 답했다.
“다섯으로도 작전이 가능합니다.”
사내 역시 30명이 죽을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그러나 작전에 필요한 인원은 애초에 40명이 아니었다. 다섯, 다섯만 있어도 작전은 충분히 수행이 가능했다. 40명이나 보낸 것은 작전의 성공 확률과 혹시 모를 일에 대한 대비였다.
“바로 시작해.”
헤론은 사내의 답에 명을 내렸다.
“알리온 왕국이 항복을 했으니 이제 시간은 우리 편이 아니야.”
알리온 왕국이 항복을 했다. 이제 시간은 가린 왕국의 편이 아니었다. 한시라도 빨리 작전을 시작해야 했다.
“예, 단장님.”
여전히 엎드려 있던 사내는 헤론의 명에 답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방에서 나와 어딘가로 걸음을 옮겼다.
저벅!
사내가 걸음을 멈춘 곳은 바로 사내의 방이었다. 사내는 자신의 방으로 들어가 책장 앞에 멈추어 섰다.
스윽
책장 앞에 멈추어 선 사내는 중간에 있던 책을 빼냈다. 그러자 기묘한 소리와 함께 책장이 움직이며 비밀 통로가 나타났다.
사내는 다시 책장 안에 책을 넣고 비밀 통로를 따라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그렇게 비밀 통로를 따라 걸음을 옮기던 사내는 곧 갈림길에 도착 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미 길을 알고 있던 사내는 일말의 망설임 없이 왼쪽으로 들어갔다. 이후 몇 번 더 갈림길이 나왔지만 사내는 단 한 번도 멈추지 않았다.
“오셨습니까.”
그리고 이내 사내는 갈림길이 아닌 어느 한 방에 도착 할 수 있었다. 방에서 대기하고 있던 사내의 수하는 사내가 도착하자 재빨리 자리에서 일어나 사내를 반겼다.
“AF로 보내.”
사내는 책상으로 다가가 종이에 무언가를 쓴 뒤 종이를 수하에게 건네며 말했다.
“옙!”
수하는 사내의 말에 종이를 받아 재빨리 방에서 나왔다. 방에서 나온 수하는 멀리 가지 않았다. 바로 옆 방으로 들어갔다.
방에는 수많은 새장이 있었고 새장에는 새가 한 마리씩 들어 있었다. 물론 그냥 새가 아닌 마법으로 훈련이 된 새들이었다.
“AF가 요놈이었지!”
수하는 수많은 새장 중 하나를 열어 안에 있던 새를 꺼냈다. 그리고 새의 등에 달려 있는 작은 통에 종이를 넣었다.
“빨리 가라!”
통에 종이를 넣은 뒤 사내는 창문을 열어 새를 날려 보냈다.
스아악
마법으로 훈련되었기 때문일까? 새의 속도는 어마어마하게 빨랐다. 그렇게 어마어마한 속도로 날던 새는 곧 목적지에 도착 할 수 있었다. 목적지에는 여인이 있었다. 여인은 자연스레 통에서 종이를 꺼냈고 그 내용을 확인했다.
“벌써 시작이라. 빠르네?”
내용을 확인 한 여인은 옆에 있던 벽난로에 종이를 던졌다. 벽난로는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었고 종이는 그대로 타 사라졌다. 종이가 타 사라진 것을 확인 한 여인은 걸음을 옮겨 집에서 나왔다.
여인은 계속해서 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곧 걸음을 멈췄다. 걸음을 멈춘 여인의 앞에는 작은 마법진이 하나 그려져 있었다.
스윽
마법진을 보며 여인은 품에서 무언가를 꺼냈다. 여인이 품에서 꺼낸 무언가, 그것은 바로 마나석이었다.
푹!
여인은 마나석을 마법진 중앙에 꽂았다. 그리고 재빨리 왔던 길을 돌아갔다. 그렇게 여인이 사라지고 기다렸다는 듯 마법진이 활성화 되었다.
스아악!
활성화 된 마법진에서 빛이 뿜어져 나왔다. 잠깐 나온게 아니었다. 계속해서 빛이 뿜어져 나왔고 뿜어져 나온 빛은 하늘로 솟아올라 거대한 빛의 기둥으로 변했다.
“일어나.”
힘 왕국의 수도 근원에 잠입한 가린 왕국의 암살자 중 하나 인 카페로는 빛의 기둥을 보고 옆에서 선잠을 자고 있던 동료 암살자를 깨웠다.
“시작이다.”
빛의 기둥은 작전의 시작을 의미했다. 잠에서 깬 동료 암살자는 언제 잠을 잤냐는 듯 또렷한 눈빛으로 카페로를 보았고 카페로는 앞장 서 조심스레 왕궁을 향해 움직이기 시작했다.
“대장, 저거 뭔가 이상하죠?”
물론 빛의 기둥을 본 것은 가린 왕국의 암살자들 뿐만이 아니었다. 힘 왕국의 음지를 책임지는 검은 손톱 기사단원들 역시 빛의 기둥을 보았다.
“흐음.”
검은 손톱 기사단의 간부인 벨락은 라미스의 말에 빛의 기둥을 보며 침음을 내뱉었다.
“확실히 이상하군.”
이 밤에 빛의 기둥이라니? 확실히 이상했다.
“당장 확인 할 수 있는 거리는 아니고.”
당연히 빛의 기둥이 시작되는 곳을 확인해야겠지만 확인하기에는 너무나도 거리가 멀었다.
“얼마 전에 죽인 새끼들이랑 관련 있는 거 아니에요?”
벨락의 말에 라미스가 말했다.
“다 못 죽였잖아요.”
얼마 전 수도에 잠입하려 했던 이들이 있었다. 당연히 음지를 책임지는 입장에서 검은 손톱 기사단원들이 움직였고 잠입하려 했던 이들 상당수를 죽일 수 있었다. 상당수, 전부 죽이지는 못했다는 말이었다. 몇몇이 수도에 잠입해 자취를 감췄다. 빛의 기둥은 그때 죽이지 못한 이들과 관계 있을 것이라 라미스는 확신했다.
“그래, 그녀석들과 관계 있을 확률이 매우 높지.”
벨락 역시 라미스와 같은 생각이었다.
“에도르, 카알 빛의 기둥이 있는 곳으로 가 확인을 해.”
빛의 기둥을 바라보던 벨락은 뒤로 돌아섰다. 그리고 대기하고 있던 에도르와 카알에게 명을 내렸다. 거리가 멀다고 해서, 당장 확인 할 수 없다고 해서 확인하지 않을 수는 없었기 때문이었다.
“예.”
“...”
에도르와 카알은 벨락의 말에 자리에서 그대로 사라졌다.
“에비드 넌 단장님한테 보고하고 플랜 C를 허락 맡아.”
“예.”
벨락의 말에 에비드 역시 답과 함께 자리에서 사라졌다.
“라미스 넌 나랑 로겐 공작님을 지키러 간다.”
빛의 기둥이 어떤 의미인지 알지 못한다.
‘죽은 녀석들만 30명. 보통 일은 아니야.’
그러나 죽였던 녀석들만 30명이었다.
‘대규모 암살.’
암살, 벨락은 대규모 암살이라 생각하고 있었다.
“공작님을요?”
“그래, 가장 중요한 분이니까.”
만약 로겐이 암살을 당한다면? 크나큰 혼란이 일어난다. 암살이 확실한 건 아니지만 1%의 확률이라도 대비해야 된다.
“잠깐만요. 가장 중요한 분이면 왕자님을 지켜야 되는거 아닙니까?”
라미스는 벨락의 말에 반문했다. 가장 중요한 인물을 지켜야 된다는 벨락의 말에 라미스 역시 동의했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사람은 로겐 공작이 아니었다. 왕궁에는 현재 왕자가 있었다. 왕자와 로겐.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된다면 당연히 왕자를 선택해야 된다. 그것을 알고 있을 벨락이 어째서 로겐을 선택한 것인지 라미스는 이해가 가지 않았다.
“누가 누굴 지켜?”
벨락은 그런 라미스의 말에 피식 웃었다.
“우리가 왕자님을?”
“...?”
라미스는 벨락의 말에 의아해 했고 벨락이 이어 말했다.
“웃기는 소리 하지 말고 따라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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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장하다 허리 나갈 뻔 했네요.
어머니는 더 힘드셨을텐데 어떻게 이걸 매년 하시는 건지 존경스럽습니다.
편안한 일요일 보내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