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331 52. 동창회 =========================================================================
‘뭐라 말 할까.’
이내 테이블에 도착 한 창문은 자리에 앉으며 생각했다.
‘다짜고짜 팔라고 할 수는 없고.’
엠벨라텐 L7은 한국에 다섯 대밖에 들어오지 않은 희소성이 엄청난 차였다. 예전부터 알던 사이도 아니고 처음 만난 지연에게 팔아 달라 해도 팔 것 같지 않았다. 아니, 애초에 팔아 달라 말하기가 찜찜했다.
‘명후를 통해서 말해야 될 것 같은데..’
창문은 명후를 보았다. 만에 하나 팔아 달라 말한다면 지연이 아닌 명후에게 먼저 말을 해야 될 것이었다.
‘어흐..’
그러나 명후에게 말하는 것도 찜찜했다. 친한 사이었다면 슬쩍 떠볼 수 있을 텐데 그리 친한 사이도 아니었다. 아니, 그냥 친하지도 나쁘지도 않은 인사만 할 정도의 사이기에 더욱 말하기 껄끄러웠다.
‘괜히 말했나...’
갑자기 후회가 들기 시작했다. 방금 전 문석에게 괜히 통화를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2천만원이 뭐라고..’
사례에 눈이 멀어 생각을 하지 못했다.
‘이미 늦었다.’
그러나 일을 되돌리기에는 늦었다. 문석에게 이미 엠벨라텐 L7의 존재를 말했고 문석은 이곳으로 오고 있을 것이었다.
“화장실 좀 갔다올게.”
바로 그때 명후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기회다.’
“나도 잠시 화장실 좀.”
언제 말을 꺼낼까 타이밍을 잡고 있던 창문은 명후가 일어나자 지금이 타이밍이라는 것을 확신하고 명후를 따라 일어나 화장실로 향했다.
“명후야.”
“...?”
손을 씻던 명후는 자신을 부르는 목소리에 고개를 돌려 창문을 보았다.
“할 말이 있는데..”
“뭔데?”
창문의 말에 명후가 물었다.
“그게.. 지연씨 차 있잖아.”
굳이 질질 끌거나 돌려 말할 이유가 없었다. 명후의 물음에 창문은 바로 본론으로 들어갔다.
“아, 그 엠벨라텐 L7?"
“어어. 그거.”
“그건 왜?”
명후는 의아해 할 수밖에 없었다.
‘그걸 왜 나한테? 설마..’
엠벨라텐 L7은 명후의 차가 아니라 지연의 차였다. 물어 볼 것이 있다면 지연에게 물어봐야 정상이었다. 그러나 차주도 아닌 명후에게 이야기를 꺼냈다는 것은 분명 무언가 있다는 것을 의미했다.
“내가 아는 분이 그 차를 진짜 구매하고 싶어 하시거든..”
창문이 말했다.
“...”
명후는 창문의 말에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뭔가 했더니...’
설마 했던 명후는 차주도 아닌 자신에게 창문이 이야기를 꺼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명후는 살짝 미간을 찌푸린 채 이어지는 창문의 말을 들었다.
“혹시, 그 차를 팔 생각이 없나 해서..”
“...창문아.”
창문의 말이 끝나고 명후는 나지막이 창문을 불렀다.
“어?”
“내 차도 아니고.. 기분이 좋아야 할 동창회잖아.”
명후는 직접적으로 말하지 않았다. 그러나 바보가 아닌 이상 명후의 말에 담긴 뜻이 무엇인지는 알아들을 것이었다.
“...”
역시나 창문은 바보가 아니었다. 명후가 직접적으로 말한 것은 아니었지만 명후의 말뜻은 충분히 이해했다.
‘그래도..’
하지만 창문은 쉽게 포기 할 수가 없었다.
‘돈도 돈이지만.. 문석이형이 오고 있다.’
돈은 둘째 치고 문석이 오고 있었다.
‘그 형 집안이라면..’
창문은 문석의 집안이 어떤 집안인지 아주 잘 알고 있었다.
‘말을 하지 않았어야 했는데..’
다시 후회가 밀려오기 시작했다.
‘답을 듣고 말했어야했는데..’
팔 생각이 있는지 먼저 알아보고 말해야 했다. 엠벨라텐 L7은 한국에 겨우 다섯 대가 들어온 희소성 높은 차였다. 생각해보면 그런 차를 살 정도의 재력이 있는 자가 차를 팔까?
‘절대 안 팔지..’
차 값을 더 쳐준다고 해도 팔지 않을 것이었다.
‘생각이 없었어.’
조금만 생각해 보아도 알 수 있는 것인데 사례 생각에 너무 흥분을 했다.
‘으..’
어떻게 해야 될 지 참으로 난감했다. 차를 팔 것 같지 않은데 문석은 이미 이곳으로 오고 있었다.
“먼저 들어간다.”
창문이 어쩔 줄 몰라 하는 사이 명후가 창문에게 말하고 화장실 밖으로 걸음을 옮겼다.
“미안하다. 이런 이야기 해서..”
테이블로 돌아가는 명후의 뒷모습을 보며 창문이 말했다. 그리고는 난감한 표정으로 핸드폰을 들어 문석에게 전화를 걸었다.
“예, 형. 죄송한데 물어 보니까 안 팔 것 같아요. 예? 그래도 오신다구요? 아..그게.. 아, 예. 이따 봬요.”
문석과의 통화를 마친 창문은 미간을 찌푸렸다.
“설득을 해보겠다니..”
참으로 난감했다.
“아휴, 이 생각 없는 놈. 하..”
창문은 거울을 보며 자신의 머리를 두어 대 때리고 깊게 한숨을 내쉬었다.
‘별 일 없겠지..?’
설득으로 끝나면 좋을텐데 왠지 불안했다.
‘별 일 없을 거야..’
창문은 가슴에 차오르는 불안감을 억누르고 몸을 돌려 화장실 밖으로 걸음을 옮겼다.
* * * *
“아 쒸뻘럼들. 뒤질라고 진짜.”
흡연을 위해 가게 밖으로 나온 남준은 걸쭉하게 중얼거리며 주머니에 손을 넣었다. 그리고 담배를 꺼내 입에 물고 불을 붙였다.
‘그 년..’
연기를 뿜어내며 방금 전 안에서 본 여인을 떠올렸다.
‘얼굴도 좋고 몸매도 좋아 보이던데...’
얼굴은 물론이고 몸매 또한 최상이라 할 수 있던 여인.
‘명후 그 씹새끼는 어디서 그런 년을 흐흐.’
남준이 떠올린 여인은 바로 지연이었다.
띠리리리
지연을 떠올리며 음흉한 생각을 하던 남준은 주머니에서 울리는 벨소리에 핸드폰을 꺼내 확인했다.
“...!”
핸드폰을 확인 한 남준은 놀란 표정으로 재빨리 입에 문 담배를 빼고 통화 버튼을 누른 뒤 귓가에 핸드폰을 가져다 대며 외쳤다.
“예, 전화 받았습니다. 동찬이 형님!”
-어, 그래 남준아.
겉으로 보이는 험악한 분위기와 달리 남준은 아주 공손히 전화를 받고 있었다. 그저 통화일 뿐인데도 실제로 몸을 굽신거리는 남준의 행동은 그의 겉모습과 너무나도 어울리지 않았다.
-너 지금 시간 좀 있냐?
“지금 말씀이십니까?”
공손히 통화를 하던 남준이 살짝 당황스런 목소리로 반문했다.
-아, 지금 동창회라고 했지?
“예, 그렇습니다. 근데 상관 없습니다. 무슨 일인지 말씀만 해주시면..”
-아니야, 아니야. 꼭 필요 한 건 아니고. 이따가 잠시 시간 써야 될수도 있.. 잠깐만. 너 동창회 하는 곳이 어디라고 했지?
“...?”
남준은 동찬의 말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것을 왜 물어 본단 말인가?
“라파타라 라고 하는 가게입니다.”
그러나 답하지 않을 수도, 하지 않을 이유도 없었기에 남준은 의아한 표정을 지으며 답했다.
-아, 그래! 거기! 이야, 거기였구나.
“...?”
이어진 동찬의 반응에 남준은 다시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야, 그랬어! 네가 거기서 동창회를 하는구나!
“...예, 형님. 그런데 무슨 일인지.”
남준은 동찬의 말에 조심스레 입을 열어 물었다. 어째서 동찬이 이런 반응을 보이는 것인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큰형님이 매우 친하게 지내시는 젊은 사장님 한 분이 계신데 말이야.
“...!”
동찬의 말에 남준은 크게 놀랄 수밖에 없었다.
‘큰형님이라면..’
“처, 청수 큰형님 말씀하시는겁니까?”
-그래, 그래.
큰형님, 동찬이 말한 큰형님 청수는 남준의 입장에서 쳐다 볼 수도 없는 그런 위치에 있는 어마어마한 사람이었다.
-그 젊은 사장님이 거기에 일이 있어 가신다는데 혹시 필요한 일이 생길지도 모른다고 하셔서 말이야.
“예, 예.”
-네가 좀 모셔라.
“알겠습니다. 형님!”
거절 할 수도 없었고 거절 할 생각도 없었다. 남준의 입장에서 이번 일은 절호의 기회라 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무슨 볼 일인지 모르겠지만 거기로 가신 거 보면 네 친구들 중 하나 한테 볼 일 있는 것 같은데.. 잘 모실 수 있겠냐?
동찬이 살짝 걱정이 깃든 목소리로 물었다. 볼 일 이라는게 좋은 볼 일 일수도 있고 나쁜 볼 일 일수도 있다. 동찬의 목소리에 걱정이 깃들었다는 걸 느낀 남준은 차가운 미소를 지은 채 입을 열어 말했다.
“걱정 마십쇼. 형님!”
-혹시 기분 나쁜건 아니지?
“전혀 아닙니다. 형님!”
-그럼 다행이고, 아마도 곧 네 전화로 전화가 갈거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큰형님과 친하게 지내는 분이다. 조심히 모셔. 잘만 모시면.. 말 안해도 알지?
“알겠습니다. 들어가십쇼. 형님!”
-그래, 수고해라.
통화가 끝이 났다.
“흐흐. 드디어.”
남준은 활짝 미소를 지었다. 드디어 위쪽으로 올라 갈 기회를 얻었다.
‘이 기회를 놓치면 안된다.’
절대로 놓치면 안 되는 기회였다. 이 기회를 놓치면 위로 올라 가기는 커녕 오히려 아래로 떨어질 것이었다.
띠리리리리
얼마 뒤 벨소리가 울렸다. 전화를 기다리고 있던 남준은 재빨리 핸드폰을 확인했다. 모르는 번호였다. 남준은 침을 삼킨 뒤 통화 버튼을 눌러 말했다.
“여보세요?”
-...
“...?”
말을 했음에도 아무런 말이 없자 남준은 살짝 미간을 찌푸렸다.
‘장난 전화?’
문득 장난 전화가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바로 그때였다.
“저기 혹시 김청수 부사장 사람입니까?”
뒤쪽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남준은 재빨리 뒤로 돌아섰다. 온 몸을 고급스런 명품으로 도배한 사내가 핸드폰을 손에 쥔 채 다가오고 있었다.
‘이 사람이다!’
통화로 전해들은 젊은 사장이 분명했다.
“안녕하십니까. 장남준이라고합니다!”
남준은 90도 각도로 허리를 굽히며 사내에게 인사했다.
“하하, 반갑습니다. 황문석입니다.”
사내의 정체는 바로 문석이었다. 문석은 남준에게 손을 내밀어 악수를 건넸다. 남준은 문석이 악수를 청하자 공손한 자세로 악수를 받았다.
“잠시 따라와 주시겠어요?”
악수를 하고 문석이 말하며 앞장 서 걷기 시작했다. 남준은 침을 꼴깍 삼키며 문석의 뒤를 따라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주차장?’
문석의 뒤를 따라 걸음을 옮기던 남준은 고개를 갸웃거릴 수밖에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문석이 온 곳은 바로 주차장이었다.
‘이곳에 볼 일이 있는건가?’
가게 안 누군가와 볼 일이 있는 줄 알았는데 주차장으로 온 것을 보니 그것이 아닌 듯 했다.
저벅!
이내 문석이 걸음을 멈추자 남준도 따라 걸음을 멈췄다.
‘...이야!’
남준은 문석의 앞에 주차되어 있는 차를 보고 속으로 감탄을 내뱉었다. 매우 비싸 보이는 차였다. 남준은 문석을 보며 생각했다.
‘엄청 비싼 차 같은데.. 이 분 차인가?’
“남준씨?”
“아, 예!”
생각을 하던 남준은 문석의 부름에 재빨리 답했다.
“이 차를 누가 타고 가려 하면.”
남준이 답하자 문석이 차를 가리키며 말했다.
“못 가도록 막고 있어줘요.”
“예?”
“무슨 방법을 동원해서든 못 가도록 막고 있으라구요. 알았어요?”
문석은 남준의 반문에 살짝 미간을 찌푸리며 조금 짜증이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평소라면 주먹을 날렸겠지만 상대방이 어떤 사람인지 알고 있는 남준은 주먹을 날리지 못했다. 그 뿐만이 아니었다.
“아..예.”
오히려 죄송하다는 표정으로 남준은 고개를 숙이며 답했다.
“그럼 수고해요.”
문석은 수고하라는 말과 함께 다시 걸음을 옮겨 위로 올라갔다. 남준은 문석의 뒷모습을 보며 미간을 찌푸렸다.
‘어휴, 저 씨방새. 큰형님 지인만 아니었으면..’
만약 청수의 지인이라는 것만 아니었다면 당장에 쫓아가 두들겼을 것이었다. 그러나 청수의 지인이라는 사실은 변하는게 아니었고 남준은 잠자코 이곳을 지켜야했다.
“에휴.”
남준은 한숨을 내뱉고 시선을 돌려 지켜야 할 차를 보았다.
“차는 진짜 끝내주네.”
참으로 끝내주는 차였다.
“주인은 아닌 것 같은데.. 그러면 우리 동창 중에 이런 걸 몰고 다니는 녀석이 있다는건가?”
문석의 반응으로 보아 지켜야 할 차는 문석의 것이 아니었다. 이곳은 라파타라의 주차장이었다. 문석이 아니라면 친구들 중에 이 차의 주인이 있다는 이야기가 된다.
“이런 차를 몰고 다닐 정도라니.. 도대체 누가?”
남준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이런 차를 몰고 다닐 정도로 부유한 녀석은 없었다.
바로 그때였다.
스윽
누군가가 남준의 뒤에 나타났다. 남준의 뒤에 나타난 그는 손을 들어 남준의 목을 살짝 건드렸다.
“...”
남준이 아무런 말없이 아주 자연스레 옆으로 쓰러졌다. 남준이 쓰러지고 남준을 쓰러트린 그는 남준의 목덜미를 잡았다.
“에휴, 날파리 새끼들.”
한숨을 내뱉으며 중얼거린 그는 이내 남준의 몸을 끌고 이동하기 시작했다. 거대한 체구의 남준은 얼음 위 썰매처럼 아주 가볍게 끌려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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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는 연츠암!!!!
독자는 추츠언!!!!
즐거운 토요일입니다.
맛난 저녁 드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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