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화산마신-221화 (221/226)

< 90, 나는 천마다. (3) >

*

신마(神魔).

출신과 사문은 물론이고, 언제 처음 등장했는지도 알려진 바가 없다. 그저 내키는 대로 행동하고, 술을 즐겼으며 거슬리는 것을 참지 못했다고 한다.

그런 그가 무림맹과 얽힌 건 사실 화산 때문이 아니었다.

정사마를 가리지 않고 문제를 일으키니 공적으로 몰리는 건 시간 문제였다. 그런 상황에서 화산의 일대제자를 죽였으니 좋은 명분이었으리라.

하여 신마의 대한 평가는 대동소이했다.

괴팍하고, 잔인하며 계획 없이 일을 저지르는 즉흥적인 악인이라더라.

그러나 이훤은 반대로 생각했다,

신마야말로 누구보다 치밀한 성격이며 아무리 사소한 일이라도 허투루 일을 벌이지 않을 것이라 여겼다.

‘그리고 그 자가 세운 계획은 오십 년 전부터 시작됐겠지.’

공적으로 몰린 것도 의도한 바였으리라.

화산의 제자를 죽여 명분을 만들어 준 것도 마찬가지였다.

그 후 절명곡으로 정파인들을 끌어들였고, 유격전을 통해 자신의 계획과 어울리는 자들을 골라냈겠지.

그렇게 골라낸 것이 절명곡의 생존자일 터였다.

‘모든 것이 의도됐어.’

그 후의 일은 예상대로 진행됐다.

강호인에게 심득이란 목숨보다 중요하지 않던가.

어떤 맹세를 했든 누군가는 심득을 익혔을 것이고, 그로 인해 파탄이 일어날 터였다. 그리고 인간의 특성 상 자연스럽게 모든 심득을 얻고자 할 것이다.

‘가장 먼저 욕심을 낸 건 당연하게도 마교도였겠지.’

강림혼요술을 익힌 후 사적인 원한에 침식되었던 제갈삭을 꼬드겼으리라. 결국 수십 년이 흘러 신마의 심득들이 하나로 합쳐지기를 원했을 터였다. 누가 됐든 신마의 심득만 완성시킬 수 있다면 상관이 없었으리라. 그리고 분명 완성된 심득을 가지고 자신을 찾아오게 만들려고 했을 터였다.

이제 남은 건 두 가지다.

‘신마는 신에 근접했을지도 몰라.’

하늘의 이치를 논할 때 천망회회 소이불루라는 말을 쓰지 않던가. 하늘의 그물은 성긴 듯 보여도 결코 놓치는 것이 없다는 의미였다.

‘하나 신은 아니다.’

이훤의 회귀가 그 증거이리라.

죽은 자를 살려 과거로 보내는 것은 인간의 힘으로 만들어낼 수 있는 이적이 아니었다.

‘그러니 다른 사람은 신마에게 가면 안 돼.’

그것이야 말로 신마가 원하는 바였다.

하나 신마조차 예상하지 못한 자신이 간다면 분명 완벽한 계획에도 틈이 생기리라. 그렇게 된다면 지금껏 궁금해 했던 상대의 목적을 알 수 있게 될 터였다.

왜 이런 짓을 꾸몄는가?

누구보다 똑똑하고, 누구보다 치밀한 자가 이처럼 장구한 계획을 세웠다면 반드시 알아야 했다.

“아마 신마의 마지막 시험이겠지.”

이훤의 말에 맹주는 침음을 흘렸다.

“천마를 물리치는 것이?”

“놈은 우리와 천마를 구분하지 않아. 신마의 심득만 제대로 받아들였다면 누가 와도 좋은 거지.”

망아취자가 눈을 가늘게 뜬 채 말을 건넸다.

“그 말인즉슨 천마 또한 신마의 모든 심득을 받아들였다고 봐야겠군.”

“맞아요. 결국 세상에는 천마로 알려지겠지만, 실상 신마의 대리인이나 마찬가지입니다.”

맹주는 침을 꿀꺽 삼켰다.

그는 지금까지 몇 번이나 이훤이 만들어낸 이적을 지켜보지 않았던가. 한데 아군이 아니라 적군이 그와 같은 신위를 보인다면 걱정이 될 수밖에 없었다.

“막을 수 있겠는가?”

이훤은 어깨를 으쓱거렸다.

“그건 모르지.”

무책임한 한 마디에 멸마회에 속한 무인들마저 눈을 휘둥그레 떴다. 그들은 서로를 바라보며 지금이라도 원로원 쪽으로 달려가야 하는 것이 아닌지 웅성거렸다.

이훤은 저들의 우려를 깊이 공감했다.

그도 그럴 것이 그 또한 회귀 전의 삶을 돌이켜보았을 때 가장 두려운 건 천마였다. 비록 천마가 그에게 관심을 두지 않았기에 무사히 살아갔던 것일수도 있다.

‘결국 나를 죽여서 무언가를 얻었고, 천마는 그를 통해 신마를 만났을 수도 있지.’

어차피 자신이 죽은 세상의 일 따위는 관심 없다.

그저 이쪽 세상에서 반복되지 않기만을 바랄 뿐이다.

“이렇게 모이는 것도 마지막일 것 같은데······.”

이훤이 운을 떼기 무섭게 망아취자가 미간을 좁혔다.

“안 돼.”

아무래도 검후로 인해 술을 마실 기분이 아닌 듯했다.

이훤은 동경하던 주당의 현실적인 모습에 입맛만 다셨다.

‘이럴 때일수록 술을 마셔서 마음을 다잡아야 하거늘······. 스승님도 이제 가실 때가 됐군.’

하나 제아무리 그라고 해도 속안의 말을 입 밖으로 꺼내지 않았다.

“귀신이라도 나올 것 같군요.”

누군가의 말처럼 시신만 남은 마교의 내부는 음산하기 짝이 없었다. 수만 명이 오가던 공간에 남은 건 현무령과 청룡령, 그리고 수십 명의 천공인이 전부일 터였다.

“저들은 보내는 것이 어떻겠느냐?”

맹주가 멸마회의 무인들을 보며 턱짓을 했다.

망아취자도 같은 생각이다.

이훤의 말처럼 천마가 신마의 마지막 시험이라면 저들이라고 해도 배겨낼 재간이 없다. 헛되이 사라지느니 강호에 남겨서 정파를 건사하게 하는 편이 나을 터였다.

“그러세요.”

“그래도 되는가?”

애초에 검후와 한마를 구하기 위해 끌어들인 사람들이 아니던가. 그러니 이미 용도를 다 했다고 봐도 무방한 상태였다.

“어차피 도움이 필요한 건 여기까지였어요.”

이훤의 냉담한 한 마디에 멸마회의 무인들은 마뜩찮은 표정을 지었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괴마라 불리며 강호를 뒤흔든 존재가 아니던가. 그리고 세뇌당한 마교도들을 몰살시키는 광경 또한 그리 아름답지 않았다.

“맹에서 기다리겠네.”

이훤은 히죽 웃으며 말했다.

“기다리기만 하지 말고, 연회라도 성대하게 열어요.”

“연회라고?”

묘마는 소매로 입을 막은 채 키득거렸다.

“어차피 천마고, 신마고 간에 다 때려잡을 거니까 승전연이라도 준비하라는 말이잖아.”

맹주는 잠시 굳은 표정을 풀지 못했다.

그는 이훤의 말을 단순한 허장성세로 받아들일 수 없었다.

신마를 잡지 못하면 어차피 다 죽는 다는 말처럼 들렸기 때문이다.

‘결국 강호의 안위를 저들에게 맡겨야 하는군.’

하나 맹주된 사람으로서 우려 섞인 표정만 내비칠 수는 없지 않은가. 그렇기에 짐짓 쾌활하게 웃으며 주변의 시선을 끌었다.

“좋네. 수십 년 동안 암중에서 강호를 뒤흔든 적도가 사라지는 날이니 내가 직접 성대하게 연회를 준비하지!”

“그러세요.”

멸마회의 무인들은 생각보다 순순히 자리를 빠져나갔다.

이훤은 전마와 색마를 향해서도 손을 내저었다.

“너희들도 가라.”

“대형, 이제 와서 가라니요?”

색마는 그 사이 눈물이라도 글썽일 것처럼 날뛰었지만, 전마는 주먹만 꽉 쥔 채로 입을 닫았다.

신마의 심득이 온전하게 전달됐을지도 모를 천마가 등장한다면 약자는 곧 짐이 된다. 그리고 그 대상이 색마와 전마일 것은 불을 보듯 뻔했다. 괴마는 무공의 고하로 결정된 것은 아니기에 언제고 닥칠 일이라 여겼다.

다만 예상한 것과 직접 겪은 건 강도가 달랐을 뿐이다.

“이 일은 오십 년 전에 시작된 것이다. 그러니 당사자들끼리 마무리를 해야지.”

망아취자와 축융노도, 그리고 악마와 묘마가 고개를 끄덕였다. 하나 여전히 이훤을 홀로 두고 떠날 수 없었던 색마는 탈마의 발목을 잡아끌었다.

“탈마가 있어야 어떤 상황에서든 한마를 구할 수 있어.”

그 말을 끝으로 남을 사람들이 결정됐다.

*

술은 마시지 않았다.

그렇기에 시간은 더없이 느릿하게 흘렀다.

새벽녘이 밝아올 즈음이다.

이훤은 갑작스레 엉덩이를 털고 몸을 일으켰다.

그와 동시에 망아취자가 입을 열었다.

“나왔군.”

그 순간 교주전의 배후에서 음산한 기운이 안개처럼 퍼져 나왔다. 그리고 그것은 슬그머니 고개를 내밀었던 태양을 쑤셔 박은 후 다시 어둠을 불러온 것처럼 묵빛의 장막이 되어 하늘을 덮기 시작했다. 그리고 원로원 방향에서 어둠보다 더 짙은 묵빛의 그림자가 너울거렸다.

[지금이다.]

이훤은 전음을 보냈다.

하나 돌아보니 탈마는 이미 자취를 감춘 후였다.

하여간 제 놈이 활약해야 할 시기는 기가 막히게 알아차리는 녀석이다.

그 사이 악마가 침음을 흘렸다.

“엇! 온다!”

인지하는 순간 그것은 머리 위에 나타났다.

얼굴 전체가 검다.

하나 이목구비는 더 검다.

그렇기에 묵화에 묵을 덧칠한 것처럼 생긴 기괴한 존재가 입을 열었다.

“예상대로구나. 기다리고 있었어.”

그 순간 괴마들은 너나 할 것 없이 미간을 좁혔다.

귀가 아니라 머리에 꽂혀드는 음성만으로도 욕지기가 일었다. 그 뒤로 청룡령과 십 수 명의 천공인들이 땅을 접어 달리듯 기이한 보법을 펼치며 쇄도했다. 확실히 천마가 등장하는 순간 마공을 익힌 자들의 힘이 몇 배나 증폭한 듯보였다.

“천마냐?”

이훤의 물음에 천마는 허공에 뜬 채로 입이라고 생각되는 부위를 실룩거리며 웃었다.

“그렇다.”

촤아아아악-

그가 양 팔을 뻗는 순간 피풍의와 같이 펄럭이던 마기가 여섯 갈래로 갈라져 저마다 허공을 수놓았다. 그것은 마치 여섯 개의 팔로도 보였고, 혹은 여섯 장의 날개처럼 보이기도 했다.

“나는 천마다!”

그 순간 등 뒤에서 일렁이던 마기가 아가리를 벌린 것처럼 벌어졌고, 동시에 교주전을 비롯한 전각군이 태풍에 휘말린 모래성처럼 쓸려나갔다.

콰콰콰콰콰콰콰콰콰쾅!

하나 이훤을 중심으로 전방에 악마가 창대를 횡으로 눕힌 채 굳건히 버텼다. 좌우로 묘마와 망아취자가 파편을 모조리 튕겨냈다. 그리고 중앙에 선 이훤은 어느새 자신의 등뒤에 찰싹 붙은 축융노도를 보며 쓴웃음을 지었다.

“아무 것도 안 할 줄은 알았지만, 너무 안하는 거 아닌가?”

축융노도는 당당하게 코웃음을 쳤다.

“지금은 내가 움직일 때가 아니다.”

죽음을 대가로 필살의 일격을 펼치겠다는 의미다.

하나 이훤은 어깨를 으쓱거리며 전방을 응시했다.

‘그럴 일이 있기나 하려나?’

망아취자는 그 사이 침음을 흘렸다.

“확실히 멸마회를 그냥 두었다면 피해가 컸겠구나.”

묘마가 혀를 찼다.

“하지만 그 사이에 놈의 사각을 찌를 수 있었겠지.”

악마는 창을 바로 하고, 어깨를 쫙 편 후 당당하게 말했다.

“그보다 이 모든 것을 막아낸 내게 칭찬의 한 마디를······.”

반면 천마의 이목구비는 바람을 맞은 갈대처럼 심하게 요동을 쳤다. 수십 년 동안 강림혼요술만 믿고, 버텨온 삶이었다. 천마만 된다면 마교 따위는 언제든지 세울 수 있다고 믿었고, 등장하는 순간 만마가 앙복할 것이라 여겼다.

하나 마교도들은 이미 뿔뿔이 흩어지거나, 시신으로 남았다. 그리고 자신의 제물이 되어야 할 정파인들은 고작해야 다섯 명만 남은 상태였다. 심지어 회심의 일격마저 가볍게 받아치니 울화가 치미는 건 당연했다.

“크으으으!”

천마란 곧 마의 정점을 의미한다.

그러니 정의 순리나 올곧음과는 대립하는 입장이다.

그렇기에 천마는 감정을 숨기지 않고, 숨길 이유가 없다.

“내가 천마다!”

여섯 장의 마기는 이제 완전히 날개처럼 보였다.

날갯짓을 하는 순간 하늘에서 쉴 새 없이 검은 벼락이 내리꽂혔고, 땅은 조각조각 나뉘어 저마다 뒤집히기를 반복했다.

콰콰콰콰콰쾅!

하나 이훤이 막아섰다.

그는 무슨 생각에서인지 반격을 하기보다 천마의 공세를 받아치는 데에만 집중했다.

보이지 않는 무형의 마기가 사방팔방에서 꽂혀든다.

잠시 후에는 역법보의 기운이 강렬한 곳에서 천마의 신형이 튀어나왔다. 환영이 아니라 진체에 가까울 만큼 마기가 짙게 드리워졌다. 그야말로 신마의 여덟 심득의 총화를 얻어낸 것처럼 천마의 공세는 인간의 수준을 뛰어넘었다.

그그그그그그극-

천마가 손가락으로 이훤을 가리키자, 묵빛의 기운이 길게 늘어지며 대지를 파고들었다. 한데 강기처럼 보이는 마기는 끊이지 않고 마치 막대기로 땅에 선을 긋듯 길게 늘어졌다.

“크하하! 나는 천마다! 어디 십지마류공도 받아보아라!”

천마는 아예 열 손가락을 번갈아 놀리기 시작했다.

그러자 허공에 열 개의 선이 그어졌고, 손가락을 움직일 때마다 투로가 바뀌었다.

이훤은 천라지망과도 같이 뒤엉킨 십지마류공(十指魔柳功)을 모조리 잘라냈다. 그리고 한 순간 몸을 띄워 천마의 지척에 이르렀다.

“놈!”

여섯 장의 날개와 열 개의 마선이 쇄도했다.

하나 이훤의 눈이 핏빛으로 물들며 팔황과 무극이 번뜩이는 순간 모든 것이 가루가 되어 흩어졌다.

“자. 언제까지 지켜보기만 할 거지?”

천마는 인상을 썼다.

그리고 다시 한 번 거대한 마기를 일으키며 외쳤다.

“내가 바로 천마다!”

그 순간 이훤의 신형이 사라졌고, 다시 나타난 그의 손이 천마의 목울대를 움켜쥐었다.

“크으으으으으으.”

이훤은 가래 끓는 소리를 연발하는 천마의 눈을 뚫어져라 응시한 채 읊조렸다.

“나와라. 신마.”

< 90, 나는 천마다. (3) > 끝

ⓒ 김태현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