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0, 나는 천마다. >
90, 나는 천마다.
제갈삭은 동경에 비친 자신의 얼굴을 바라봤다.
이목구비는 중구난방이고, 얼굴의 형태는 빚다 말은 것철머 울퉁불퉁했다. 세월의 흐름을 직격으로 맞은 피부는 단순히 쭈글쭈글한 것이 아니라 어딘가 모르게 상처처럼 보여 흉측할 지경이다. 더욱 슬픈 건 이 모든 형태가 모일 때 절로 떠오르는 단어가 바로 추악함이었다.
백 년을 살아왔음에도 적응할 수 없는 얼굴.
제갈삭의 입매가 실룩거렸다.
그가 한 것이 아니라 고장 난 몸뚱이가 제멋대로 움직이는 것이다. 소림의 수양 깊은 노승이라고 해도 자신의 얼굴을 보고 흔들리지 않기란 불가능에 가까웠다.
하나 그래도 그들은 이해하지 못하리라.
고작 못생긴 얼굴로 인한 자괴감으로 천하를 피로 물들이려 한다면 당장 쌍수를 들고 막아설 터였다.
‘당사자가 아니면 이해할 수 없는.’
제갈삭은 신마를 생각했다.
그가 이러했기에 신마 또한 세상 그 누구도 이해할 수 없고, 받아들이기 힘든 얼토당토 않은 무언가를 꿈꾸고 있으리라 여겼다.
‘그랬으면 좋겠다.’
진심이었다.
세상의 중심인 척 살아가는 놈들에게 보여주고 싶었다.
그들을 죽이려는 이유가 얼마나 하찮고, 그들이 얼마나 하찮게 죽어갈지 말이다.
쓰윽-
제갈삭은 주름진 손으로 주름 가득한 얼굴을 쓸어 올렸다.
마른세수를 끝냈다.
추악함은 그대로였지만, 흔들림이 사라졌다.
때마침 밖에서 그를 부르는 이가 있었다.
“현무령, 취마가 천산 아래 와 있습니다.”
그래, 지금은 제갈삭이 아니라 현무령이다.
하나 그는 머지않아 다시 제갈삭으로 돌아올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가 예상한 것이 맞아 떨어진다면 신마에게 있어서 마교 또한 하나의 과정일 터였다.
“대전으로 가세.”
천마신공(天魔神功).
마교의 상징이자, 천마를 대표하는 무공이다.
지금껏 몇 명의 천마가 탄생했으나, 신공을 대성한 이는 전무했다. 하나 천마신공을 겉핥기만으로 익혀도 마교 내에서 따를 자가 없었다.
그렇기에 천마신공을 익힌 천마가 등장한다는 건 마교의 생사여탈권을 쥐는 것과 같았다. 하나 그만큼 천마의 탄생은 지난한 과정을 거쳐야 했다. 아닌 말로 고금제일의 마공이라고 칭송받는 천마신공을 하루아침에 배운다는 건 어불성설이었다.
“천산의 겨울은 적응하기 힘들군요.”
“오래 머물 곳은 아니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천마와 교주가 없는 대전에 모인 자들은 느긋했다. 신마의 심득은 천 년 간 이어져 온 세상의 섭리를 뒤바꾸는 기적과 같았다. 천마가 자격만 갖춘다면 하루아침에 천마신공을 깨우치는 것도 가능하다는 의미였다.
“원로는 몇이나 남았소?”
마도팔가의 원로들이 천마에게 구결을 주입하는 중이다.
각자의 구결은 아무 의미가 없으나, 여덟 명이 호흡을 맞추어 동시에 외치면 그것이 천마신공의 구결이 됐다.
“둘 남았습니다.”
“막바지로군.”
현무령은 창가로 발길을 돌렸다.
이미 마교 내부에 경계령을 내렸기에 수천 명의 마교도가 개미떼처럼 어수선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이미 신마의 심득을 받아들였고, 그 중에서도 강림혼요술에 깊이 감화됐으니 잠력단을 먹은 것처럼 죽기 살기로 싸울 터였다.
“팔가를 최단 시간에 뚫고 온 것을 보면 저들도 제대로 끌어모았을 게야.”
“쉽지 않은 싸움이 되겠군요.”
청룡령은 강 건너 불구경하듯 말했다.
하나 현무령은 오히려 반기듯 입꼬리를 올렸다.
“취마가 데리고 왔다는 건 강림혼요술과 상극이라는 의미지. 마교도와 저들이 양패구상한다고 생각해 보라. 뭐가 남겠는가?”
백호령은 무당의 제자였다는 사실이 거짓처럼 비릿한 혈소를 머금었다.
“크큭! 신마의 심득을 받아들인 어중간한 이들만 강호에 남겠지요. 그렇다면 앞으로의 강호는 어찌될지 불을 보듯 뻔하군요.”
현무령은 아직 오지 않은 내일을 그리듯 읊조렸다.
“인간의 욕망과 질투는 선천적인 것이야. 그것을 돈이나 힘, 명예로 인해 억눌러왔지. 하나 이제 강약의 구분이 무의미한 강호가 될 게야. 뺏고 싶으면 뺏고, 죽이고 싶으면 죽이고, 저마다 제멋대로 살아가는 강호가 되겠지. 그리 된다면 그것이야 말로 지옥과 다를 바가 없지 않은가?”
“천마가 그 선봉에 서겠지요.”
“신마는 원초적 욕망만이 인정되는 원시 시대를 꿈꿨군요. 그가 원하는 대로 원시강호가 탄생한다면 그야말로 신세계입니다.”
현무령은 청룡령과 백호령의 오해를 바로잡아 주지 않았다. 저들은 자신이 신마의 음모 밖에 있다고 여기겠지만, 현무령이 보았을 때에는 바둑판의 흑돌과 백돌일 뿐이다.
‘나 또한 그러하지.’
하나 그는 저들과 달리 지켜볼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될 터였다. 이 사소한 기회는 수십 년을 궁구하여 천총대화를 만들어낸 대가로 충분했다.
“마계폭렬진은?”
“눈으로 보시지요.”
현무령은 창 너머로 일사불란하게 모여드는 마교도들을 바라봤다. 뼛속 깊이 마인인 자들이니 자연스럽게 마기가 흩뿌려졌다. 한데 마교도가 모일수록 마기는 마치 거대한 운무처럼 뭉쳐들었다.
그 광경이 기분 좋은 한 마디가 이어졌다.
“문을 열게. 이렇게 된 이상 대규모로 회전을 벌여 모조리 죽을 수 있는 판을 깔아줘야지.”
청룡령은 품에서 소기(小旗)를 꺼냈다.
“문을 열어라!”
*
산 전체를 휘감은 것처럼 만들어진 전각군은 흑빛 일색이다. 만년설이라고 해도 이상하지 않을 것처럼 새하얀 눈빛 위에 만들어진 흑색의 성은 일견하기에도 엄청난 위압감과 자부심을 전해줬다.
실제로 무인들 중에서는 긴장하거나, 주눅이 들어 보이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멸마회주께서 오십니다.”
이훤이 나섰다.
임시 이름 붙인 멸마회(滅魔會)의 회주는 만장일치로 이훤이 맡게 됐다. 비록 마교를 없앨 때까지만 한시적으로 유지되는 조직이지만, 면면만 따지자면 강호에서 가장 강한 이들만 모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였다.
“어차피 평소에는 진법으로 칭칭 휘감아놔서 보이지도 않아. 그리고 진법을 유지해봤자 우리를 막지 못한다는 것을 알기에 허장성세를 부리는 거지. 그런데 이거 보고 대단하다고 생각한 멍청이는 없겠지?”
이훤의 농에 분위기가 한껏 누그러졌다.
“이미 인간이기를 포기한 자들이다. 우리가 막지 못하면 저것들이 강호에 나가겠지.”
그것으로 족했다.
마교의 수뇌부가 예측하는 것처럼 멸마회 또한 인지하고 있었다. 오늘 모든 것을 정리하지 못하면 신마의 심득으로 인한 부작용이 강호를 지배할 것임을 말이다.
그렇기에 죽음을 불사하고 혼신의 힘을 다하려 했다.
끼이이이이익-
그 때 청룡령의 문을 열라는 일갈과 함께 거대한 철문이 좌우로 벌어졌다. 그 너머에는 시야를 새카맣게 물들이는 마교도가 즐비했다.
“선수는······.”
망아취자의 나직한 읊조림이다.
이훤이 호응했다.
“필승이죠.”
동시에 양 손 끝에서 길게 늘어진 팔황과 무극이 적금의 색으로 물들며 전방을 찢어발겼다.
콰콰콰콰콰콰쾅!
훗날 이름조차 남기지 못한 대회전의 시작이었다.
“나를 따라라!”
악마가 묵빛으로 번들거리는 창의 끝을 늘어트린 채 질주했다. 그 뒤를 멸마회의 무인들이 한 몸처럼 뒤엉킨 채 따라갔다.
하나 망아취자는 일부러 후미에 남은 채 물었다.
“저게 무엇이냐?”
이훤은 미간을 좁혔다.
무형진기를 있는 힘껏 흩뿌린 상태였다.
그렇기에 평소였다면 교주전까지 길이 뚫렸을 것이고, 그 경로에 있던 자들은 가루가 되어 흩어졌으리라.
하나 그렇지 않았다.
고작 수십 명의 마인이 피를 토하거나, 몸에 구멍이 뚫린 채 나뒹굴었다.
“마계폭렬일까요?”
이훤이 생각을 정리한 끝에 찾아낸 것은 마계폭렬진(魔系暴裂陣)이다.
제갈삭의 천총대화는 수많은 도형과 해괴한 그림이 시간의 흐름에 따라 매순간 연결됐다. 그렇기에 당시에는 알지 못했던 것이 시간의 흐름과 상황의 전개로 인해 해석되는 상태였다.
“아마 무형진기와 십전진뇌공에 천관심결을 섞어서 찾아낸 묘리인 듯하네요. 저곳은 마기가 중첩되어 가장 왕성하게 솟구치는 장소입니다. 그리고 강림혼요술과 무형진기가 섞여 마기와 미기와 동조하고 있지요.”
“허허, 차력미기와 같은 건가?”
“네, 한 놈을 두들기면 그 놈과 연결된 수많은 놈들이 함께 버티는 거죠.”
망아취자는 눈을 가늘게 떴다.
“일견하기에도 삼천은 족히 되어 보인다. 저들이 한 덩어리가 된다면 너라고 해도 쓰러트릴 수 없겠구나.”
이훤은 입꼬리를 올렸다.
“그게 된 다면요. 저들의 육신과 정신은 한계가 있고, 감당할 수 있는 힘을 넘어선다면 파탄이지요. 기껏해야 수십 명끼리 얽혀 있을 겁니다.”
그 증거로 악마가 창을 내저을 때마다 서너 명씩 사지가 찢긴 채 튕겨나갔다. 묘마가 춤을 추듯 손을 내저을 때마다 적들은 이유도 모른 채 피를 흩뿌렸다.
“적을 물리치는 건 시간문제로군.”
이훤은 혀를 찼다.
“아마 양패구상을 노릴 겁니다. 저 새끼들에게 마교도란 바둑판의 돌과 다르지 않지요. 흑돌이든, 백돌이든 바둑판 위에서 써먹는 건 마찬가지니까요. 마교가 사라지면 또 다른 무언가를 현혹하여 세상을 어지럽힐 겁니다.”
망아취자는 이훤의 어른스런 한 마디에 눈을 가늘게 떴다.
“뭘 하고 싶은 게냐?”
이훤은 슬쩍 시선을 돌렸다.
지금껏 이훤을 보고 상단전의 개방을 눈치 챈 자는 망아취자가 유일했다. 그리고 이훤을 가장 오랫동안 지켜본 사람답게 속내를 숨기는 것이 어려웠다.
“저는 신마의 심득을 모두 받아들였습니다. 한데 이렇게 되고 보니 천마도, 마교도, 제갈삭도 우스울 따름이지요.”
“결국 신마가 살아 있다면······.”
“아니, 살아 있습니다.”
“그러면 살아 있는 신마는 무슨 이유로 네가 모든 심득을 거둬들이는 걸 내버려뒀을 꼬?”
이훤은 침음을 흘렸다.
“그가 원했기 때문이겠지요. 굳이 제가 아닌 누구라도 신마의 심득을 모두 익힌 자가 등장하기를 원했을 겁니다.”
“그 이유를 알려면 신마를 만나야겠구나.”
이훤은 뒷짐을 진 채 걸음을 내딛었다.
망아취자 역시 어깨를 나란히 했다.
두 사람은 전장을 산책하듯 돌아다녔고, 그들이 지나간 자리에는 시신만 남았다.
그러던 중 예기치 못한 상황이 벌어졌다.
탈마를 통해 데리고 왔던 조괄은 파죽지세로 적진을 갈랐다. 한데 어느 순간 갑자기 뒷걸음질을 치기 시작하더니 아예 단창을 놓치는 것이 아닌가.
“어어.”
눈을 휘둥그레 뜨다가 등 뒤에서 쇄도한 검을 보지 못했다. 검이 심장을 거꾸로 관통하여 위로 솟구치는 순간 상체가 갈라졌다.
“뭐지?”
이훤은 인상을 썼다.
조괄은 그가 직접 신경 써서 초빙했을 만큼 장래가 촉망되는 후기지수였다. 신마의 심득을 제대로 받아들였고, 그 중에서도 만매만전의 성취가 깊었다.
한데 그런 그가 이름도 없는 마인에게 죽어버린 게다.
이훤은 조괄을 죽게 만든 자를 찾기 위해 안력을 돋웠다.
그 순간 기괴한 광경을 확인했다.
여인의 얼굴을 했던 자가 고개를 돌리는 순간 노인으로 변했고, 이내 마인의 무리 속으로 자취를 감췄다.
본능적으로 느낌이 왔다.
‘저 새끼들이 형산의 천극담에서 중수를 옮겼구나!’
이훤의 눈썹이 역팔자로 치솟았다.
분명 가까운 자의 얼굴을 시시각각 흉내내며 아군을 혼란시키는 것이 분명했다. 그러니 이대로 시간이 흐른다면 멸마회의 무인들이 헛되게 죽어나자빠질 터였다.
“후우.”
이훤은 황급히 괴마들을 불러모았다.
악마가 전방에 섰고, 좌우에 묘마와 망아취자가 섰다.
그리고 등 뒤에 탈마가 자리했다.
“한 방에 쓸어버려야겠어.”
이훤의 말에 묘마가 인상을 썼다.
“차력미기가 너무 심해.”
악마가 보충 설명을 했다.
“대형, 이 지대는 최상급 역법보라고 해도 무방해. 정을 쇠하고, 마를 흥하게 만드니 우리는 서 있는 것만으로도 지친다고.”
이훤은 히죽 웃었다.
“그러니까 저 새끼들 방식으로 쓸어버려야겠다!”
그가 양 팔을 뻗는 순간 팔황과 무극이 늘어졌다. 한데 끝이 둘로 나뉘더니 각기 아군의 명문혈에 닿는 것이 아닌가. 마치 팔황과 무극이 네 개의 손으로 변한 듯한 광경이 벌어졌다.
“할 수 있는 최대한의 것을 해봐.”
이훤의 두 눈이 붉게 물들었다.
대성을 코앞에 둔 천공혈륜겁이다.
혈륜을 극대화하여 천공을 이루기에 부족함이 없다는 의미였다. 그리고 눈가에 머물렀던 붉은 기운이 마계폭렬진처럼 아군에게 연결되는 순간 장내의 모든 소음이 잦아들었다.
정적 속에서 이훤의 나직한 한 마디가 들렸다.
“죽어라.”
< 90, 나는 천마다. > 끝
ⓒ 김태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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