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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산마신-205화 (205/226)

< 83, 타락영웅(墮落英雄)! >

83, 타락영웅(墮落英雄)!

무림맹은 정파무림의 집합체와 같다.

그 말인즉슨 정파의 영역에서 구할 수 있는 모든 것이 구비됐다는 의미였다. 아닌 말로 중정석과 형석과 같은 광물을 야심한 밤에 어디서 구할 수 있겠는가.

하나 무림맹에는 존재했다.

그도 그럴 것이 무림맹의 정보망은 강호에 존재하는 모든 식물과 동물, 광물에 대한 광대한 사료를 토대로 만들어졌다. 아닌 말로 맹의 중요 인물이 살해당했다면 시신에 남아 있는 흔적을 통해 흉수를 유추하는 것이 가능할 만큼 엄청난 정보를 자랑했다.

그리고 맹주란 그 모든 것을 열두 시진 내내 확인할 수 있는 자리였다.

“허어.”

이십여 년에 가까운 맹주 생활 동안 수많은 사건과 사고, 기행과 기연을 지켜봤다. 하여 맹 내에 있음에도 강호의 식견은 타의 추종을 불허했다.

한데 그런 그가 입술이 바짝 마를 만큼 쉴 새 없이 탄성을 내뱉었다.

“저것이, 허허, 저런 걸······.”

대연무장 주변에 설치된 진법은 발동하기만 하면 수많은 사람을 죽일 수 있을 터였다. 한데 그것이 단 한 번의 발 구름으로 산산조각날 줄 누가 알았겠는가.

그리고 맹주는 느낄 수 있었다.

이훤의 기운은 진법을 산산조각낸 후 내부에 엉켜 있던 기운과 휘말려 대별산 전체로 퍼져나갔음을 말이다. 약자라면 미세한 진동으로 인해 지진을 우려했을 것이고, 초절정에 근접하기라도 한 자라면 엄청난 고수의 등장을 예상했으리라.

“설마! 설마? 말도 안 돼.”

맹주는 차가 식는 줄도 모른 채 연방 입을 벙긋거렸다.

하나 그것이 시작이었을 줄 누가 알았으랴.

이훤은 악마가 두 개의 창을 박아놓은 장소의 반대편에서 섰다.

“준비 다 됐지?”

탈마와 묘마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훤이 워낙 별 것 아닌 듯 대처하니 덩달아 마음이 느긋해질 지경이다. 하나 맹주의 두 눈은 이내 찢어질 것처럼 커졌다.

솨아아아아아아아아-

혈륜이 흩뿌려지는 가운데 조금 전에 보았던 피의 장막이 대연무장에 내려앉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공의 발출은 계속됐다.

“설마 땅 속까지 기운을 퍼트리는 건가? 그렇다면 십만 근의 화약을 통째로 감싸려는······. 그런 게 될 리가 없지 않은가?”

그 때 탈마가 투덜거리듯 읊조렸다.

“윗사람이 저렇게 부정적이니 아랫사람들의 고충은 말하지 않아도 알겠네.”

맹주의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다.

‘그렇게 쉽게 말할 문제가 아니잖아!’

폭발은 곧 자연의 산물들이 결합하여 일어나는 현상이다.

그리고 논리적으로 보았을 때 자연지기를 다룰 수 있다면 폭발의 영역을 좁히거나, 제어하는 것이 가능할 터였다. 실제로 무당의 면장이나 소림의 연대구품이 그러했다. 하나 그런 예시의 대상은 고작 손바닥만한 소천뢰(小天雷)나 암기를 뿌려 생성한 독무(毒霧) 정도였다.

솨아아아-

그 순간 거대한 덩어리처럼 일렁이던 기막의 형태가 변했다. 마치 호리병처럼 한쪽이 주둥이처럼 튀어나왔고, 방향은 악마가 창을 세워놓은 쪽이다.

그 순간 맹주의 머릿속에는 불가능한 상상이 스쳐갔다.

“설마 저걸 다 터트린 후 한쪽으로 밀어내려는 건가?”

폭발의 방향을 땅이나 주변이 아니라 허공으로 향한다는 생각자체가 잘못됐다고 여긴 것은 아니다. 그저 그것의 가능 여부가 궁금했을 뿐이다.

“크큭! 맹주님 별호는 독천무협이 아니라 설마 대협으로 바꿔야겠어.”

탈마의 농담마저 귓등으로 흘릴 만큼 충격적인 광경이었다. 반면 괴마들은 이훤의 행동을 보면서도 놀랍도록 침착했다. 애초에 실패를 염두에 두지 않는 모습이고, 오히려 고금을 통틀어 유례가 없을 기사에 흥미를 보였다.

“이쪽은 준비 끝났어요!”

이훤이 고개를 끄덕이자, 묘마가 손을 뻗었다.

그 순간 무형의 기운은 이훤의 발 아래 있는 항아리로 향했다. 십만 근의 화약 중 기폭제에 해당하는 항아리가 산산조각나는 순간 불똥이 튀었다.

그리고 그대로 폭발했다.

하나 소리도, 폭연도, 파편도 흘러나오지 않았다.

그저 이훤이 만든 공간 안에서 폭발했을 뿐이다.

그리고 그가 손을 뻗어 악마가 꽂아놓은 창 쪽으로 혈륜을 비트는 순간 묘마가 움직였다.

파팟!

그녀는 탈마가 허락 없이 빌려온 중정석(重晶石)을 발로 걷어찼다. 그것이 무형진기에 섞여 폭발과 뒤섞이는 순간 기사가 벌어졌다. 마치 가죽 주머니에 물을 가득 채운 후 끝을 눌렀을 때와 같았다. 호리병의 주둥이처럼 튀어나왔던 공간으로 폭연과 폭음, 그리고 온갖 파편이 휘몰아치듯 튕겨나왔다. 그리고 그것은 악마가 호언장담했던 것처럼 사선으로 솟구쳤다.

콰콰콰콰콰콰콰콰쾅!

한데 아름다웠다.

맹주는 눈앞에서 펼쳐진 녹색 빛무리에 말을 잇지 못했다.

그 때 탈마는 대연무장 전체가 요동을 치는 가운데 소리 높여 외쳤다.

“천룡전 새끼들아! 너희들의 십 년이 폭발하고 있다!”

동시에 이훤이 한 번 더 입구를 조였고, 연쇄반응으로 폭발하던 화약들이 주둥이를 향해 밀려들었다. 그리고 묘마가 이번에는 사람의 뼈를 으깬 후 흩뿌렸다. 주둥이를 여는 순간 이번에도 여지 없이 폭발이 시작됐다.

콰콰콰콰콰쾅!

이번에는 붉은 빛이다.

맹주는 자신도 모르게 읊조렸다.

“폭죽?”

탈마의 조롱이 한 번 더 이어졌고, 같은 행위가 몇 번이나 반복됐다. 형석을 섞으면 주황색 불꽃이 하늘에서 꽃처럼 흩뿌려졌고, 석회는 황색, 동은 대낮처럼 푸른빛으로 쉴 새 없이 번쩍이기 시작했다.

“아! 예쁘잖아?”

묘마는 마치 어린 여아가 장난을 치듯 이것저것 섞었다. 그럴 때마다 기이한 색이 하늘을 수놓았고, 그 광경은 마치 신무대회를 위해 무림맹에서 준비한 폭죽처럼 쉴 새 없이 솟구쳤다.

콰콰콰콰콰쾅! 콰콰콰콰콰콰콰쾅!

이훤이 혈륜을 쥐락펴락 하며 주둥이를 열 때마다 여지 없이 붉은 기막 안에서 폭발했던 폭탄의 흔적이 비산했다.

“아!”

맹주는 백여 방에 가까운 폭죽이 하늘을 수놓은 후에야 십만 근의 화약이 모두 사라졌음을 알아차렸다. 천룡전의 암수에 걸려서 꼼짝없이 당했다고 생각한 것이 불과 반 시진 전이다. 이제 그의 시선은 부러움이나 기특함이 아니라 경외심이 담겼다.

“후우.”

맹주 이학주는 이훤이 식후 운동이라도 한 표정으로 돌아섰을 때 일생을 통틀어 가장 경건한 자세로 손을 모았다.

“취선관주, 취마, 아니 호칭이 뭐가 중요하겠습니까. 당신이 무림맹을 살리셨습니다.”

그는 솔직한 심경을 전했다.

그리고 이내 운기조식을 끝내고 구경을 하고 있던 구파오가의 노고수들 역시 혀를 내두르며 손을 모았다. 이훤으로 인해 작은 깨달음을 얻은 것도 갚지 못할 빚이거늘 맹의 위기마저 해결해준 셈이 아니던가.

이훤은 히죽 웃더니 신장이 발로 짓뭉갠 듯한 대연무장을 가리켰다.

“그렇게 고마우시면 뒷정리 좀요.”

“응? 뒷정리?”

“몇 시진 후면 여기서 신무대회가 열려요. 그냥 둘 겁니까?”

맹주가 먼저 나서서 외곽에 쌓였던 흙을 퍼날랐다.

수십 명의 노고수들이 더러워지는 것도 개의치 않고 흙과 모래를 날랐으며 청석을 조심스럽게 덮었다.

망아취자는 그 모습을 지켜보던 이훤에게 빙긋 웃으며 술을 건넸다. 칭찬이나 당부의 말은 없었다. 그저 웃으며 함께 술을 마실 뿐이다.

“이제 낙안봉은 완전히 제 것입니다.”

주원경을 무단 점거하고 있던 자가 내뱉는 말에 원주인은 어쩔 수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너 가져라!”

잠시 후 이훤은 원상 복구된 대연무장을 떠나며 맹주를 스쳐갔다.

“아! 그리고 아까 제안은 받아들일 게요.”

“제안이라니?”

맹주의 물음에 이훤은 눈을 찡긋하며 읊조렸다.

“공적, 그거 해줄 게요.”

이훤과 괴마들이 떠나고, 노고수들 역시 한결 편안한 표정으로 돌아갔다. 하나 홀로 남은 맹주는 여전히 이해할 수 없는 표정을 지은 채 몇 번이나 읊조렸다.

“한다고? 공적을? 왜? 아니 무림공적을 굳이 하겠다는 사람이 어디······.”

그 순간 망아취자의 당부가 뇌리를 스쳐갔다.

- 생각하지 말라고.

- 그냥 내려놓으라고.

아무래도 그래야만 할 듯했다.

“후우, 내가 감당할 수 있는 상대가 아니로구나.”

*

신무대회의 식순이 대폭 간소화됐다.

천룡전의 음모와 그들의 마수가 맹 깊숙한 곳까지 퍼져 있는 것을 아는 이상 한가롭게 대회에만 집중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다행히 강호인들은 쌍수를 들고 환영했다.

그들이 원하는 건 신무대회를 통해 새롭게 등장할 후기지수나 고수의 영웅담이 아니었다. 오직 신마의 심득을 위해 천릿길도 마다하지 않은 자들이 아니던가. 그리고 이훤이 예고한 날이 도래했을 때 대별산은 인산인해를 이뤘다.

“이거······. 목소리가 들리기는 하는 거야?”

무림맹의 내원과 외원의 경계까지 올 수 있었던 무인이라도 불안한 표정을 숨기지 못했다. 이미 무림맹 밖으로 밀려난 이들로 인해 소요가 일어났고, 곳곳에서 시비가 붙었다. 아닌 말로 제아무리 내공을 담아 외쳐도 외원까지 들리기나 할까 싶었다. 또한 설령 그것이 가능하다손 쳐도 가까이 있는 이들은 어쩌란 말인가.

너무 커도 문제, 작아도 문제, 들리지 않아도 문제였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봐도 해결 방법이 떠오르지 않았다.

“조금 더 앞으로 가볼까?”

무인은 동료에게 말을 건넸다가 흠칫 어깨를 움츠렸다.

앞쪽에 다닥다닥 붙어 있던 이들이 살벌한 눈빛으로 노려봤기 때문이다. 새치기라도 했다가는 살인이 일어나도 이상하지 않을 것처럼 팽팽한 기운이 감돌았다.

“하아, 고향의 무관을 부흥시키려고 종자돈까지 모아서 겨우 온 길인데······.”

“잘 사는 이들은 이미 앞에 진을 쳤고, 이쪽은 다 똑같은 형편이야. 쓸데없이 끼어들지 마! 다 죽여 버리고, 나도 죽을 거야!”

험한 목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렸다.

그리고 가뜩이나 좁은 공간에 땀내 나는 사내들이 모여 있으니 불만이 터져 나오지 않을 이유가 없다. 그렇게 웅성거림이 극에 달했을 때였다.

“나는 이훤이다.”

인상을 쓰던 이들이 눈을 휘둥그레 떴다.

크고, 작음은 있으나 알아듣기에는 충분한 목소리였다.

“어디서 말하는 거지?”

“지역마도 돌아다니는 건가?”

강호인들은 이훤의 위치를 찾기 위해 주변을 돌아봤다.

하나 어디에서도 그를 찾을 수 없었다.

“집중해요. 당신들도 느꼈다시피 이건 고금을 통틀어 유례가 없는 일임을 잘 알고 있을 거요. 신마의 심득은 강호 전반의 보편적인 가치관을 무너트릴 만큼 엄청난 위력과 무한한 가능성을 품고 있지. 하나 만매만전을 통해 느꼈을 거요. 그대가 어떤 사람이고, 어떻게 살아왔는지에 따라 같은 걸 들었음에도 느껴지는 바가 다를 거요. 그리고 얻는 것도 달라지겠지.”

누군가 중얼거렸다.

“그럼 여기서 듣고 해결을 해야 한다는 건가?”

“내가 직접 심득을 풀어서 설명하는 건 오늘이 처음이자 마지막이겠지만, 향후 무림맹에서 충분히 필사하여 배포하게 될 거요. 그러니 다음을 기약하고 싶다면 떠나도 좋소.”

누구 한 명 자리를 뜨지 않았다.

모두가 한 마음 한 뜻이 되어 이훤의 말이 이어지기를 기다렸다. 마음속으로는 자신도 천하에서 손꼽히는 고수가 되었을 때를 그리며 말이다.

“신마의 심득 중 현재 무림맹에 도착한 건 무당파, 산동악가, 남궁세가, 그리고 화산파요. 존장의 유진일 텐데 기꺼이 공론화를 허락한 각 방파에 잠시 감사하는 시간을 가집시다.”

잠깐의 침묵이 이어졌다.

하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묵념하거나 감사를 표하는 대신 무림맹에 나타나지 않은 이들을 욕했다.

“만매만전은 이미 널리 알려졌으니 무당의 천관심결과 산동악가의 십전진뇌공, 그리고 남궁세가의 무형진기를 전하도록 하겠소.”

그렇게 이훤의 설명이 반 시진 이상 이어졌다.

*

“아쉽지는 않아?”

이훤의 물음에 악마와 묘마는 코웃음을 쳤다.

“오십 년 동안 어깨에 짊어지고 있었어. 이걸 남과 나눴으니 이제 내가 더 이상 신마에게 갚을 빚도, 동도들과의 맹약을 지킬 의무도 없겠지. 그리고 대형도 알다시피 오십 년 동안 파고들어서 여기까지 왔잖아. 나와 남궁세가는 저들보다 언제나 앞서 갈 거요.”

묘마의 말에 악마도 동의하며 웃었다.

그는 특히 이훤이 완성시킨 대규모 육합전성에 경탄을 금치 못했다.

“지금까지 법보와 역법보를 분류할 생각만 했었지. 한데 대형은 밤사이에 법보와 법보를 연결하여 목소리를 산 전체에 퍼트리는 걸 이뤄냈잖아. 이런 사람이 있는데 신마의 심득 따위를 욕심낼 까닭이 없지.”

악마는 아직도 감흥이 사라지지 않는 듯 연방 혀를 내둘렀다. 반면 탈마는 아쉬운 마음에 입맛을 다셨다.

“천룡전은 뭐하는 건지? 제갈세가까지 내세웠음에도 실패했잖아요. 오십 년의 세월이 공염불로 변했는데 조용한 것도 이상하네.”

“지금쯤 바짝 독이 올랐을 거다.”

“그러면 뭐해요? 독이 올랐다고 다 튀어나오지는 않잖아. 어딘가 또 웅크려서 다른 기회를 노리는 건 아닐까?

이훤은 맹주전에서 가져온 술을 마시며 말했다.

“그래서 다 방법을 세워놨지.”

“뭔데요?”

“맹주가 조만간 발표를 할 거야. 우리가 신마의 심득을 다 밝히지 않은 채 도망쳤다고 말이야. 그리고 무림공적으로 선포하겠지.”

“무림공적이 되자고요?”

“어.”

묘마와 악마, 탈마는 이유가 있겠거니 하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하나 전마 예영영은 눈을 끔뻑이며 돌아가는 상황에 적응을 하지 못했다.

“공적요? 왜요? 지금 우리가 좀만 바쁘게 움직이면 억만금도 끌어 모을 수가 있는데!”

이훤은 병을 기울여 마지막 한 방울까지 쪽쪽거린 후 히죽 웃었다.

“괜찮아. 내가 해봤는데 나름 재미있어.”

< 83, 타락영웅(墮落英雄)! > 끝

ⓒ 김태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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