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8, 사상 최강의 조합. (2) >
*
감각사도는 같은 얼굴을 지녔지만, 태생이 달랐다.
흑의인의 경우 사자림의 후계자였고, 홍의인의 경우는 상계에서 발탁됐다. 감각사도는 저마다 장기를 살려 강호 곳곳에서 암약하게 되었다. 하나 누구도 손을 대지 못하는 방파가 바로 남궁세가였다.
홍의인을 제외하면 말이다.
그는 상인이었기에 포기하지 않았다.
강림혼요술도 물건을 파는 것과 같다고 여겼다.
지금 당장 팔 수 없다면 기회를 엿보면 되는 게다.
그렇게 오랜 시간을 기다렸다.
하나 마냥 놀면서 보낸 시간은 아니었다.
멀리서 남궁세가를 지켜봤다.
그들이 제검백가를 관리하는 방식에 맞춰 해결책을 찾으려 했다. 다행히 남궁세가는 언제나 강호제일이었기에 외원에 대한 방비는 그리 엄격하지 않았다. 하여 홍의인은 제검백가의 무리들에게 강림혼요술을 펼치는 대신 가까워졌다. 보통 사람들이 나누는 평범한 친분을 쌓는데 주력했다. 어려운 일이 있을 때 도와주고, 슬픈 일에 어깨를 빌려주며, 기쁜 일이라면 자신의 일처럼 함께 움직였다. 제검백가의 무인들은 아무 대가도 바라지 않는 홍의인에게 감사했다.
홍의인은 그것만으로도 고맙게 여겼다.
그도 그럴 것이 강림혼요술은 그 자체로도 강력하지만, 상대가 경계하지 않는다면 더욱 위력을 발휘하지 않던가.
그렇게 친분을 쌓으며 기다렸다.
언젠가 남궁세가의 경계가 느슨해지고, 기회가 온다면 대규모로 강림혼요술을 펼쳐 한 번에 휘어잡을 준비를 끝낸 셈이다.
“나옵니다.”
이미 창천성 외부의 경계 무인들은 정리가 된 상태였다.
가주가 아닌 노소(老少)의 행렬이었다.
하나 홍의인은 검후와 이훤을 확인했다.
그걸로 족하다고 여겼다.
그는 이미 남궁세가의 모든 것을 알고 있었다.
건물의 구조와 세가의 운영 방식은 물론이고, 밀어까지 통달한 상태였다. 그리고 남궁세가에 문제가 생겼을 때의 대응책까지도 말이다.
- 내원은 제왕전으로, 외원은 천무각으로.
홍의인은 천무각으로 향했고, 그곳에 모여 있는 수많은 무인들에게 강림혼요술을 걸었다. 그가 처음 등장했을 때 제검백가의 무인들은 인사를 하며 반겼을 만큼 친했다. 그렇기에 미혼술에 걸려드는 건 한순간이었다.
그는 자신의 명령에 따라 창천성 밖으로 달려 나가는 제검백가의 무인들을 보며 입꼬리를 올렸다.
“됐구나.”
“내원으로 가시겠습니까?”
홍의인은 자신을 호위하는 사객을 보며 눈을 가늘게 떴다. 흑의인의 수족 같은 놈이 아닌가. 자신의 정체를 알고 있으니 좋은 일을 권할 리 없다고 여겼다.
“아닙니다. 이제 저도 즐겨야지요.”
사객은 별다른 말없이 퇴로를 확보했다.
“모시겠습니다.”
홍의인은 사객의 뒤를 따르며 생각에 잠겼다.
‘음노와 양노에 흑의인의 세력까지 모두 더했어. 거기에 제검백가가 합류한다면 이천여 명에 이를 것이야. 누가 됐든 결코 빠져나올 수 없을 것이다!’
웃음을 참으며 창천성의 반대편으로 빠져나왔고, 이미 봐두었던 구릉에 올랐다.
“으아아아아아아악!”
창천평에는 지옥도가 펼쳐졌다.
고통으로 인한 신음과 두려움으로 인한 비명이 쉴 새 없이 들려왔다.
하나 홍의인은 눈을 휘둥그레 뜬 채 말을 잇지 못했다.
지옥도는 펼쳐졌다.
하나 그가 그렸고, 원했던 지옥도가 아닐 뿐이다.
“이게 뭐야!”
*
전방에서 밀려오는 적은 소속을 확인하기 어려웠다.
여러 방파에서 긁어모은 듯 복장도 제각각이었고, 병장기와 무공도 마찬가지였다. 하나 수십 명이 검기를 발산하고, 또 다른 수십 명이 창영을 번뜩이며, 또 다른 수십 명이 도기로 하단을 휩쓰는 광경은 위력적이었다. 저들이 난입한다면 어지간한 중견방파는 반각도 지나기 전에 폐허가 될 터였다.
그리고 실제로 그런 일을 하기도 했던 자들이다.
다만 상대가 좋지 않았다.
“사마외도의 냄새가 나는구나!”
검후가 일갈을 내지르며 검을 비스듬히 내지르는 순간 공간 또한 잘렸다. 그리고 그 궤적에 존재하던 십 수 명의 무인들은 수십 년 동안 갈고닦았을 성명절기도 제대로 펼쳐보지 못한 채 잘려나갔다.
“으아아악!”
이훤은 코를 벌름거렸다.
검후의 말처럼 확실히 악취가 진동했다.
아무래도 멀리서 찾아온 자들로 보였다.
“피곤할 테니 쉬어라. 평생!”
이훤은 무리에서 떨어져 뛰기 시작했다. 늘어트린 양 팔에서 팔황과 무극이 검으로 변하는 순간 금광이 번뜩였다. 그가 삼 장 거리를 뜀뛰기 하듯 한 바퀴 돌고 오는 순간 수십 명이 피를 쏟아냈다. 혈륜을 활용하지도 않고, 그저 순수하게 육신의 힘과 팔황무극의 예리함만으로 만들어낸 상황이다.
“칼이 참 잘 드는군.”
청하는 이훤을 보며 혀로 아랫입술을 핥았다.
악마는 콧방귀를 뀌더니 창을 전방으로 내질렀다. 손바닥과 창대의 빈 공간에서 일어난 와류가 창두까지 휘감기는 순간 광풍이 전방을 휩쓸었다.
콰콰콰콰쾅!
창이 가리키던 방향에 있던 적이 십여 명은 족히 쓰러졌다. 시선을 확 사로잡는 굉음과 달리 가장 비효율적인 공격이었다.
“훗, 젓가락질하는 것도 아니고.”
악마가 머쓱한 듯 얼굴을 붉히며 외쳤다.
“이 년아! 언제까지 구경만 할 셈이냐?”
하나 청하는 불어오는 바람을 맞이하듯 양 팔을 벌린 채 미소 지을 뿐이다. 동시에 그녀 근처로 다가서던 적들이 급살이라도 당한 것처럼 쓰러졌다.
푹푹푹푹푹푹푹푹푹푹푹!
지금까지의 공세는 대단했다.
전방에서 거침없이 달려오던 적들의 이목이 집중될 정도였다. 하나 청하가 손가락을 뻗는 순간 픽픽 쓰러지는 광경은 꿈에서도 보기 두려울 만큼 비현실적이었다.
악마는 무형검을 자유롭게 다루는 청하를 보며 부러운 마음을 억지로 감춰야 했다.
“허, 손가락질은 왜 하는데?”
“이거라도 하지 않으면 내가 한 줄 모르지 않겠니? 그리고 내가 너보다 한 명 더 죽였다.”
악마는 진심으로 분한 기색을 내비쳤다.
“이잌! 나는 완성을 했는데!”
그도 그럴 것이 악마는 구궁벽력공을 보완하여 십전진뇌공(十全震雷功)을 완성했다. 음양의 조화로 대자연이 이뤄지듯 그 또한 법보(法譜)와 역법보(逆法譜)를 통해 완벽의 상징인 십전에 이른 게다.
반면 청하는 신마의 심득을 오롯이 얻지 못한 상태였다.
그녀가 진정 심득을 완성했다면 무형검 이상의 것을 선보였을 게다. 그것이 무엇이든 간에 당사자는 알 터였다. 이것이 끝임을 말이다.
그러니 악마의 분함도 이해 못할 바는 아니었다.
‘젠장! 산동악가였다면 제아무리 무형검이라고 해도 모조리 파악할 수 있었을 텐데······.’
하나 이곳은 산동악가가 아니었고, 심지어 며칠 전에 도착한 상태였다. 법보와 역법보를 파악할 시간도 없었고, 그럴 가치도 느끼지 못했다. 앙숙이나 마찬가지인 남궁세가를 위해 움직일 이유가 없지 않던가.
“완성을 했으면 보여 봐. 뭔데?”
청하는 악마를 응시한 채로 손을 뻗었다.
보지도 않고 내뻗은 손가락이 어딘가를 가리키는 순간 다섯 명이 쓰러졌다.
악마의 얼굴은 불덩이를 삼킨 것처럼 붉었다.
산동악가에서 이곳까지 오는 내내 자신의 몸에 법보와 역법보를 새겼다. 그렇기에 그의 몸은 그 어느 때보다 단단하고, 끈끈했다. 아닌 말로 강기조차 원하는 방향으로 튕겨내는 것이 가능할 정도였다.
하지만 청하에게 말하지 못했다.
‘젠장! 아무리 맞아도 쓰러지지 않는 게 뭐 대수라고!’
누가 봐도 방패보다는 칼이 멋졌다.
이훤은 평행선처럼 대립하는 청하와 악마를 보며 히죽 웃었다. 단순하게만 보자면 악마의 방어와 청하의 공격은 모순(矛盾)의 고사가 떠오를 정도였다. 그만큼 극단적으로 치우친 심득으로 인해 활용법이 갈린 게다.
‘덕분에 무형검을 쉽게 얻어 익히기는 했는데······.’
그러고 보니 악마의 창은 공격보다 방어에 능했다.
태산 정상에서 만날 때에도 그랬고, 지금은 그보다 강화된 상태가 아니던가.
“할머니. 뒤로 빠지세요.”
“뭐라고? 나 아직 팔팔하다!”
“악마가 방어에는 더 능해요.”
이훤의 말에 악마가 소리쳤다.
“아니야! 나는 공격도 강해!”
하나 청하는 이미 이훤의 말을 듣고, 히죽 웃고 있었다.
“아하, 그렇군. 이해했다. 약한 놈이라면 제 몸 간수하는 법부터 배워야지.”
악마의 두 눈에서 귀화가 피어올랐다.
태생적으로 남궁세가를 넘어서야한다고 세뇌되었던 사람이 아닌가. 여차하면 적을 앞에 두고 청하와 건곤일척의 승부를 겨룬다고 해도 이상할 것이 없는 상태였다.
[이 일이 끝나면 무형검의 핵심을 알려줄게!]
악마는 찬물을 뒤집어쓴 사람처럼 무덤덤한 표정으로 검후의 앞에 섰다.
“선배, 제가 막겠습니다. 단 한 놈도 저를 지나갈 수 없을 겁니다.”
“갑자기 징그럽게 웬 존칭이냐?”
“저는 칠대괴마의 악마니까요!”
그리고 악마는 자신의 말을 지켰다.
그가 중심을 잡고 있는 이상 검후와 청하, 이훤은 마음껏 날뛰었다. 잠시 호흡을 가다듬을 때에만 악마에게 돌아왔다. 창영이 번뜩이며 만들어진 공간은 일 장 남짓에 불과했다. 하나 창천평 내에서 가장 안전한 공간일 터였다.
“집 잘 지켰냐?”
“어, 그래. 네 년 자리는 저기 구석이다. 지쳤으면 자빠져서 한 숨 자고 나가라!”
청하는 악마의 짜증 섞인 일갈에 대꾸하는 대신 나직이 탄성을 내뱉었다.
‘진짜 악마 같은 새끼.’
악마는 일장 남짓 되는 공간을 빠르게 휘돌며 수십 명의 공세를 막았다. 튕겨내고, 빗겨 치다가 틈이 보이면 쓰러트렸다. 마치 열 명의 고수가 물샐 틈 없는 방진을 펼친 것처럼 완벽했다. 아닌 말로 악마의 말처럼 일각 정도 잠을 자도 괜찮을 것처럼 보였다.
‘뚫을 수 있나?’
청하는 아랫입술을 혀로 핥으며 악마의 뒤통수를 바라봤다. 무형검을 쏘아냈을 때 악마의 머리가 호박처럼 터져나가는 걸 상상하려 했지만, 쉽게 그려지지 않았다.
‘진짜 완성했군. 나도 뒤쳐질 수 없지.’
그녀는 몸에 묻은 피를 털어낸 후 걸음을 내딛었다.
그 순간 악마는 뒤통수에 눈이 달린 사람처럼 자연스럽게 공간과 공간 사이를 내줬다. 청하는 그저 평소처럼 걸었을 뿐인데 벌써 적진의 한복판이었다.
“청하야. 이제 뒤에도 움직인다.”
검후의 말에 청하는 미간을 좁혔다.
지금까지 창천성의 담장과 정문을 점거하고 있던 제검백가의 무인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정면에서 달려오는 노인들의 얼굴을 확인하는 건 어렵지 않았다. 비록 가주 자리를 남궁혁에게 내줬지만, 한 때 그를 우러러보던 자들이 아닌가. 죽든 살든 개의치 않았지만, 최대한 많은 것을 베풀려고 했다. 강림혼요술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수많은 재화를 쓰고, 일부러 제검백가를 돌며 살펴본 적도 있었다. 한데 하루아침에 돌변한 이들을 보는 순간 짜증이 솟구쳤다.
“등신 같은 것들.”
‘그렇게 조심하라고 경고했건만!’
하지만 뒷말은 억지로 삼킨 채 걸음을 내딛었다.
꽈드득-
청하가 주먹을 말아 쥐었다.
손을 펴는 순간 보이지 않는 수많은 검이 저들을 헤집을 터였다.
그녀도 무인이고, 저들도 무인이다.
기억에 남을 만큼의 인연도 있고, 생면부지의 무인도 보였다. 하나 무형검을 펼치는 순간 적아의 구분이 확연하게 드러날 것이다.
미련부터 완전하게 지웠다.
“천룡전의 개로 사느니 남궁세가의 검으로 죽어라.”
청하가 주먹을 펴려는 순간 이훤의 다급한 외침이 들려왔다.
“죽이지 마요.”
굳게 마음먹었던 결심을 부정당했기에 목소리는 더없이 싸늘했다.
“뭐라고?”
하나 이훤은 어느새 좌측을 쓸어버린 후 청하의 곁에 내려섰다. 그리고 제검백가의 무인들을 한 눈에 담더니 입꼬리를 올렸다.
“아까 우리가 나올 때 인사까지 했던 자들이라고요.”
그래서 더 미련 없이 죽이려는 것이다.
“강림혼요술의 원리를 파악하지 못한 상태에서 저들은 좋은 연구 대상이 될 겁니다. 무력화만 시켜요. 잘 하면 강림혼요술의 원리를 파악하거나, 깰 수 있는 단서가 될 거예요.”
일리가 있다.
청하는 미련이 아니라 득실을 따지는 것이라 되새기며 가슴께를 겨눴던 주먹을 무릎 쪽으로 슬쩍 내렸다. 그리고 그녀가 손을 펴는 순간 살기가 충천한 채로 달려들던 이들이 전방부터 수숫대처럼 쓰러지기 시작했다.
“으아아악!”
이훤은 그제야 뒤로 물러섰다.
잔뜩 굳어 있던 청하의 얼굴에 자그마한 미소가 피어난 것을 확인한 후였다. 다시 전장으로 복귀한 후 장내를 살피는 순간 혀를 내둘렀다.
이제 고작 반각이 흘렀을 뿐이다.
하지만 벌써 수백 명이 쓰러졌다.
강림혼요술이 아니었다면 적은 이미 등을 보이고 도망쳤으리라. 하나 명령이 내려진 이상 죽을 때까지 덤벼들 것은 불을 보듯 뻔했다.
이훤은 미간을 좁혔다.
피곤한 것도 아니고, 내력의 운용에 문제가 생긴 것도 아니다. 다만 시신이 너무 많아서 움직일 때마다 거치적거리는 게 신경 쓰였다.
그는 가볍게 대지를 박찬 후 악마 앞에 내려섰다.
“한 번 뒤집을 게요.”
그 말을 끝으로 양 손으로 대지를 후려쳤다.
팔황과 무극으로 휘감긴 손이 극대화된 혈륜을 포함하여 대지를 파고드는 순간 말 그대로 땅이 뒤집힐 것처럼 솟아올랐다.
콰콰콰콰콰쾅!
주변의 시신은 흙과 모래와 엉킨 채 튕겨나갔고, 근접해 있던 적들 또한 덩달아 휘말렸다.
그 순간 저 멀리서 명적이 솟아올랐다.
삐이이이이이-
탈마의 신호였다.
이훤은 히죽 웃었다.
‘제검백가는 청하에게 맡기고······.’
수백 명 정도는 알아서 정리할 수 있을 게다.
‘저것들이야 할머니와 악마가 알아서 하겠지.’
실제로 시간만 충분하다면 두 배도 문제는 아니리라.
그러니 가장 맛있는 요리를 먹으러 갈 차례였다.
쾅!
이훤이 대지를 박차는 순간 땅이 움푹 파이며 먼지구름이 일어났다. 그리고 그 사이를 뚫고 이훤의 신형이 일직선으로 솟구쳤다.
“먼저 갑니다!”
< 68, 사상 최강의 조합. (2) > 끝
ⓒ 김태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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