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화산마신-149화 (149/226)

< 60, 취선관주는 어떤 놈인가? (2) >

*

축전제를 위한 연회는 두 곳에서 열렸다.

그 중 후기지수들을 위한 연회는 화산의 명승지 중 한 곳인 옥화지(玉花池)에서 개최됐다. 원래 정자가 있었던 곳에는 새롭게 건물을 올린 상태였다.

“너무 예쁘네요. 역시 화산의 절경은 다르네요.”

“달빛을 받은 연못이 옥처럼 반짝이니 꽃처럼 보여요.”

여인들이 먼저 탄성을 내뱉었다.

하나 지금껏 오지 못한 것이 아니라 오지 않은 것에 불과했다. 그렇기에 그녀들은 창밖의 풍광을 잠시 즐긴 후 본격적으로 내부를 살폈다.

옥화전 내에는 백여 명의 후기지수가 운집했다.

본래 명문거파의 행사에는 당사자만 오지 않는다. 가까이는 수백 리, 멀게는 천 리 밖에서 찾아온 것이 아니던가. 그러다 보니 이런 기회에 명문의 존장이나 후예들과 친분을 쌓는 건 매우 중요했다.

자리는 정해져 있었고, 겉으로 보기에 별 문제가 없어 보였다. 오히려 후기지수들은 대부분 지정 좌석에 만족함을 드러냈다.

이훤은 이미 팔각 탁자에 앉은 후기지수들을 보며 미소 지었다.

[준비 됐냐?]

탈마가 어깨를 으쓱거렸다.

[하루이틀 하나요.]

주연은 이훤이고, 조연은 탈마다.

그리고 저 앞의 악역들이 시야에 들어왔다.

하서완가의 소가주인 완인청과 한중회의 소회주인 두백대였다.

[힘 조절 잘 해야 해요?]

탈마의 우려에 이훤은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하서완가(河西阮家)는 그 자체로 감숙성을 대표했다.

감숙성에서 가장 강한 무공을 지녔고, 난주 일대를 지배했으며, 최근에는 금광까지 발견한 상태였다.

한 마디로 금력과 무력, 세력을 동시에 갖췄다.

호사가들은 산동악가가 큰 피해를 입은 이상 하서완가가 오대세가에 새로이 이름을 올려야 한다고 주장했을 정도였다.

한중회(漢中會)의 위세 역시 뒤지지 않았다.

섬서성 서남부의 상권을 장악하여 감숙과 사천 일대를 주름 잡는 한중회가 아니던가.

두 곳 모두 상계의 핵심이다 보니 돈 냄새를 기가 막히게 맡았다. 그렇기에 누구보다 빠르게 회음현에 진출하여 수많은 건물을 올리고, 장사치들을 퍼트렸다. 하여 회음현에서 거둬들이는 수익의 구 할이 두 곳으로 흘러들어갔다.

[조절 잘 해서 살려는 둬야지.]

이훤은 저 둘을 살려는 두되 향후 두고두고 돈을 뽑아먹기 위하여 이 자리를 마련했다.

게다가 두 녀석은 의형제를 맺었단다.

한 놈을 엮으면 다른 놈은 알아서 엮일 터였다.

“반갑습니다!”

이훤이 너스레를 떨며 탁자의 빈 자리를 차지했다.

어차피 지정좌석이었기에 목표인 완인청과 두백대의 맞은편이다. 탈마가 은근슬쩍 엉덩이를 붙였고, 곧장 통성명을 시작했다.

“저는 탈마입니다!”

그 순간 완인청을 비롯한 좌중의 얼굴에서 핏기가 사라졌다.

“뭐라고?”

“탈마?”

정파의 상징이 소림과 무당이라지만, 화산 역시 명문정파에서 빠지지 않는다. 게다가 오늘은 화산파가 화산연맹으로 다시 태어나는 날이 아니던가.

탈마는 아무 것도 모른다는 표정으로 싱글벙글 웃었다.

“왜요?”

완인청은 대답 없이 검배에 손을 올렸고, 두백대는 수하들을 부르기 위해 품안의 호감을 움켜쥐었다. 또한 미색이 출중한 두 명의 여인은 자연스럽게 몸을 뒤로 뺐다.

반면 팔각 탁자의 마지막 참석자인 일남일녀는 개의치 않았다.

“탈마라니. 뭘 잘 훔치시나 봅니다.”

청년은 또래로 보였지만, 행색이 초라했다.

봉두난발을 대충 묶어서 늘어트렸고, 격식을 갖추려고 노력만 한 듯한 복장은 추레하기 짝이 없다. 게다가 조금 전부터 주방 쪽을 힐끔거리며 입맛을 다시는 걸 보니 비렁뱅이의 후예라고 해도 이상하지 않을 터였다.

“어디 가서 손 좀 놀린다는 소리를 듣죠.”

탈마의 말에 청년은 히죽 웃었다.

“저는 혈종도 마평이라 합니다. 장성 인근에서 암약하는 광풍단의 부단주죠. 아버지를 따라 화산의 새로운 시작을 축하하러 왔습니다.”

완인청과 두백대의 표정이 한 번 더 일그러졌다.

광풍단(狂風團)이라면 한 때 마적으로 알려졌던 정사지간의 방파가 아닌가. 게다가 혈종도(血從刀)라는 별호 또한 천박해보였다.

“쯧, 잔칫집에는 개나 소나 다 기어들어온다더니 딱 그 짝이로군.”

“지금 나한테 하는 소리인가요?”

혈종도 마평의 옆에 앉아 있던 여인이 인상을 썼다.

가만히 있어도 얼음을 얼굴에 덧씌운 것처럼 냉기를 풀풀 날리던 여인이다. 일견하기에도 짜증이 한껏 치솟은 듯한 표정이다. 하나 그렇기에 더욱 고혹적이면서 백옥 같은 피부가 돋보였다.

완인청은 황급히 미소를 띄운 채 말했다.

“북해빙궁의 궁주께서 계신데 제가 너무 격 없는 말을 했군요. 진무궁이 아니라 옥화전에 오신 것도 불편하실 텐데 제가 잘 모시겠습니다.”

이미 그는 좌석 배치를 보는 순간부터 횡재를 예상했던 바였다. 다른 이들은 북해빙궁의 참석을 의아하게 여겼지만, 감숙성의 패주는 하서완가는 오히려 쌍수를 들고 환영했다. 가뜩이나 대막 혈천궁의 세가 기울었고, 그 자리를 빙궁이 차지하는 형국이다. 이 기회에 궁주와 인연을 맺어두면 향후 새외와의 교역에서 큰 이득을 볼 수 있을 터였다.

무엇보다 완인청은 북리혜가 마음에 들었다.

‘북해의 여자는 피부가 거칠고, 잿빛이라더니······. 곱군. 고와.’

북리혜는 완인청의 저자세가 나쁘지 않았던 듯 시선을 돌렸다. 그곳에 이훤이 있었고, 두 사람의 눈빛은 잠시 허공에서 충돌했다.

‘나! 이런 사람이야. 내가 처음으로 사내에게 이름을 알려줬는데 그걸 고새 까먹어?’

이 눈빛에 대한 대답이 금세 돌아왔다.

‘잘 하고 있어! 계획대로야.’

반면 탈마는 의외로 북리혜의 속내를 짐작했다.

[형님, 괜찮은 거예요?]

[뭐가?]

[궁주가 절대지경의 고수였다면 형님은 이미 눈빛만으로도 목이 날아갔을 걸요?]

이훤은 잠시 뜨끔했다가 대수롭지 않게 받아쳤다.

[저 정도는 예뻐야 완인청 같은 놈이 이성을 잃지.]

[아하. 예쁘다고 생각은 하는군요.]

[닥쳐라!]

완인청은 그 사이에도 북리혜에게 추파를 던지고 있었다.

“궁주께서 원하신다면 냄새나는 것들은 치우겠습니다.”

혈종도 마평은 눈을 휘둥그레 뜬 채 분노했고, 탈마는 여전히 아무 것도 모른다는 순진무구한 눈빛이다.

완인청의 싸늘한 시선이 술과 음식을 게걸스럽게 해치우고 있는 이훤에게 닿았다.

“탈마와 같이 왔으니 그 쪽은 천마라도 되는가?”

이훤은 술병을 흔들며 말했다.

“아니, 취마다.”

“하아! 화산파가 연맹이 되었어도 수준은 크게 달라지지 않는군. 별호에 혈과 마를 집어넣고도 당당한 자들이 즐비하잖아.”

두백대가 완인청의 조롱을 능숙하게 덧붙였다.

“사람도 하루아침에 바뀌기 어렵거늘 문파가 그럴 수 있겠습니까? 우리는 적당히 이득을 본 후에야 자리를 뜨면 되는 거지요.”

이훤은 인상을 썼다.

“지금 화산연맹을 모독하는 거냐?”

완인청은 헛웃음을 흘렸다.

“네깟 놈이 내게 모독을 운운할 자격이나 있더냐?”

“나도 화산에 도관을 가지고 있다!”

두백대는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

“화산의 도관이 수백 개일 텐데 그것이 무슨 자랑거리라도 되는가? 아닌 말로 내가 은자 백 냥만 줘도 내일 당장 화산에 도관을 세울 녀석들이 수백 명은 되겠다.”

그 때 북리혜가 짜증 섞인 한 마디를 내뱉었다.

“흥! 얼굴만 봐도 도사와는 전혀 관계가 없어 보이네. 사람 이름도 제대로 기억 못하고, 술이나 진탕 마시는 왈패라면 모를까.”

사심을 담아 날린 회심의 일격이다.

하나 이훤은 그녀의 말에 날개를 단 것처럼 박장대소를 했다.

“하하하! 취선관을 세운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이처럼 무시당할 줄은 생각지도 못했군.”

탈마가 추임새를 넣듯 말을 보탰다.

“야! 우리 형님이 어! 만매만전도 만들고! 종남파도 돕고! 산동성에서 다 이겼어!”

그러나 속으로는 여전히 의아함을 감추지 못했다.

[형님, 이걸로 되는 거요? 취선관하고 만매만전까지 거론하면 저것들이 더 이상 기어오를 리가 없잖아. 구파오가의 장문인이라고 해도 한 수 접어 줄 걸요? 그러니 미친놈이라면 모를까.]

탈마가 전음을 채 끝내기도 전에 완인청과 두백대의 조소가 흘러나왔다.

“아! 그 사기꾼.”

“가짜 비급이나 퍼트리던 자가 바로 너였구나.”

이번만은 탈마와 북리혜가 모두 당황스러움을 금치 못했다.

‘미친놈들.’

[어, 이게 되네.]

반면 이훤은 저들의 반응을 예상했던 바였다.

망아취자는 만매만전의 핵심은 조화와 균형이라 했다.

하여 순리를 따르는 자는 성장하고, 역리를 추구하던 자는 균형을 찾게 된다고 하지 않았던가.

여기서 중요한 것이 자율성이다.

만매만전은 강제하지 않는다.

스스로 받아들이면 더없이 훌륭한 조력자가 되어주지만, 인정하지 않는다면 그저 뜬구름을 잡는 잡서에 불과했다. 그리고 탈마가 하오문에서 빼내온 자료에 의하면 저들은 만매만전을 조금도 받아들이지 않은 상태였다.

이훤은 탁자 아래로 손가락을 꼽았다.

‘화산연맹을 모독했고, 돈 자랑을 했고, 나를 무시했고, 만매만전을 조롱했으니······.’

무림맹주가 나선다고 해도 명분은 충분했다.

콰쾅!

이훤은 대뜸 탁자를 뒤집어엎었다.

“야! 이 쓰레기 같은 새끼들아!”

*

하서완가의 가주와 한중회의 회주는 모종의 약속을 한 상태였다.

화산연맹의 탄생은 단순하게 화산파가 이름만 바꾼 정도가 아니었다. 종남파가 연맹에 가입했고, 천 리 밖 제갈세가와 무당파가 참석했다. 무엇보다 무림맹이 중추절의 무림대회를 연기하면서까지 사절단을 보낸 상태였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가 매우 컸다.

- 강호의 서쪽은 화산연맹을 중심으로 돌아간다.

그렇다면 하서완가와 한중회의 영역을 모두 포함한다는 의미였다. 그러니 이 기회에 수뇌부들과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고자 했다.

- 수뇌부들에게 뇌물을 주자.

문파에서 연맹을 바뀌었으니 이제 돈도 먹힐 것이라 여겼다. 하여 두 사람은 진무궁에서 열린 연회 내내 기회를 엿보고 있었다. 하나 무림맹과 구파오가가 수뇌부와 담소를 나누는 이상 기다리는 것이 전부였다.

“크흠, 조금 지루하군요.”

“표정 관리 하시오. 곧 우리 차례가 올 게요.”

하나 그들이 나설 차례는 의외의 순간에 찾아왔다.

갑작스럽게 진무궁 밖이 소란스럽더니 여기저기서 비명이 울렸다.

“이게 무슨 난리인가?”

연맹주 서평의 일갈에 이대제자들이 쏟아져나갔다.

연회를 즐기던 이들도 덩달아 움직였다.

그리고 의외의 광경에 말을 잇지 못했다.

후기지수들이 모조리 나와서 웅성거렸고, 중앙에는 한 사내가 두 명의 청년을 두들겨 패고 있었다.

“저, 저건 한중회주의 아들이 아닌가?”

“하서완가의 아들도 있소. 저 무도한 자는 도대체 누구란 말인가?”

그 때 고저 없이 담담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취선관주입니다.”

남궁세가를 대표해서 참석한 창무검제 남궁채린의 대꾸였다. 하서완가주와 한중회주는 얼굴을 붉히며 달려들려다 멈칫했다.

그들 또한 만매만전의 효과를 보지 못한 건 마찬가지였다. 하나 자식들과 달리 취선관주 이훤의 동선을 훤히 꾀고 있었다. 개방과 하오문에서 적극적으로 홍보한 것도 있지만, 상인으로서 정보에 민감했기 때문이다.

두 사람은 자연스럽게 연맹의 수뇌부를 바라봤다.

각상동주는 강 건너 불구경하듯 했고, 태극관주는 호기심을 드러냈다. 서화종은 영문 모를 표정을 지었고, 서평은 노골적으로 분노를 표출했다.

“취선관주께서 이유 없이 저런 일을 하실 리는 없을 터! 맹도들은 그 이유를 아는가?”

하서완가주와 한중회주는 한순간 진저리를 쳤다.

연맹주조차 취선관주에게 극존칭을 사용하니 두 사람의 관계를 짐작하는 건 어렵지 않았다.

“알아보겠습니다.”

유리검 유건평은 달려 나가며 경공까지 펼쳤다.

‘설마 이걸 의도하고 일을 벌이신 건가?’

그는 이훤을 만류하는 대신 정중하게 물었다.

“취선관주께서는 어찌 그리 화가 나신 겁니까?”

이훤으로서는 가려운 곳을 긁어주는 질문이나 마찬가지였다.

“한낱 장사치가 도가의 성지인 화산에 발을 들이더니 문파를 모욕하고, 맹도를 무시하며, 지고한 이념과 아낌없는 배려를 괄시하니······.”

똑같은 말이라고 해도 표현에 따라 느낌은 천양지차인 법이다.

“하서완가와 한중회는 본 맹을 얼마나 우습게 여기고 있는 것인가?”

가주와 회주의 얼굴이 창백하게 변했다.

화산연맹주인 서평은 불길에 기름을 부듯 얼굴을 붉혔다.

“취선관주께서 하시는 말씀이 사실이라면 그냥 넘어갈 수 없습니다!”

두 사람이 황급히 수뇌부의 안색을 살폈다.

서평은 말조차 붙이기 어려웠고, 태극관주는 당장이라도 합류할 것처럼 주먹을 쥐락펴락했다. 그리고 각상동주는 평소와 달리 은은한 노기를 내비쳤다. 저들이 화산의 산적한 도관을 무시했다면 그 대상은 소규모로 운영되는 만류종이 아니겠는가.

“장문인.”

서화종은 침음을 흘렸다.

“저는 장문인이 아닙니다.”

“종주. 도와주시오. 어린 아이들이 말실수를 한 겁니다. 이렇게 쥐 잡듯이 잡을 일은 아니지요.”

하서완가주의 간절한 말에도 서화종은 말을 잇지 못했다.

그 때 가주와 회주의 귓가에 전음이 들려왔다.

[감히 화산의 앞마당에서 허락 없이 돈놀이를 하고도 무사할 줄 알았냐?]

두 사람은 눈을 끔뻑이다가 이훤과 시선을 마주하고 경악을 금치 못했다.

[설마 당신?]

[얼마를 내어놓을 텐가?]

이훤은 전음을 보낸 후 완인청의 콧잔등을 후려쳤다.

콰직! 코가 완전히 주저앉으며 피가 튀었다.

[오, 오 할을 드리겠소!]

퍽! 퍽! 퍽!

주먹질이 이어질 때마다 금액이 올라갔다.

하서완가주와 한중회주는 자식들이 얻어맞을 때마다 몸서리를 쳤다. 이제는 그들도 깨달았다. 이훤은 자신들을 대신해서 자식들을 줘 패는 것이다.

‘도인이라더니 어찌 저렇게 막무가내란 말인가.’

‘저 자는 도인이 아니야. 상인보다 더 무서운 작자다.’

아닌 말로 협상이 결렬되면 무슨 꼬투리를 잡아서라도 한중회와 하서완가를 박살낼 것이 분명했다.

결국 한중회주는 자포자기한 심정으로 외쳤다.

[구 할을 드리겠습니다.]

이훤의 입가에 옅은 미소가 드리워졌다.

그리고 악마가 형님이라고 할 만큼 흉악한 한 마디가 추가됐다.

[순이익이 아니라 매출이다.]

한중회주는 한순간 뒷목을 잡았다.

그러나 생명의 위협을 느끼는 순간이 아니던가.

그는 황급히 하서완가주의 옆구리를 건드린 후 손가락 아홉 개를 펼쳤다. 하서완가주라고 해서 한중회주와 다를 바가 없다. 그 역시 고개를 끄덕이는 순간 이훤의 마지막 전음이 들려왔다.

[광녕종주라면 너희들의 간절함을 알아줄 수도 있겠지.]

가주와 회주는 서화종에게 매달렸다.

“회음현에서 벌어들인 총 매출의 구 할을 기부금으로 건넬 테니 부디 자비를 베푸소서.”

“향후 화산연맹의 건승을 빌며 절기마다 태상노군께 인사를 올리겠습니다. 그러니 좋은 날에 더 이상 피를 보지 마시지요.”

사람들은 총 매출의 구 할을 논할 때 한 번 놀랐고, 주기적으로 기부금을 내겠다는 말에 한 번 더 놀라야 했다.

서화종은 그제야 멋쩍은 미소를 지었다.

‘허허, 이거야 정말 취선관주의 말씀처럼 되었구나.’

이제 화산연맹은 당분간 돈 걱정을 하지 않아도 하고 싶은 일을 마음껏 할 수 있게 되었다.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두 분께서 그렇게 진심을 보이시니 저도 노력을 해보겠습니다. 관주! 관주! 좋은 날입니다. 후학의 실수야 앞으로 바로잡으면 되는 것이니 부디 손속에 정을 두시지요.”

이훤은 어쩔 수 없이 그만둔다는 듯한 표정으로 숨을 몰아쉬었다.

“후우! 광녕종주께서 그렇게까지 말씀하시니 제가 이번만은 양보를 하지요. 하나! 차후 그 누구라도 화산을 앞에 두고 이처럼 경솔하게 행동을 한다면 주먹으로 끝나지 않을 것이외다!”

그 순간 혈륜이 불길처럼 일어나며 양 손을 감쌌다.

핏빛이 기운이 넘실거릴 때 귀빈들은 탄식했으나, 팔찌가 저절로 늘어지면서 검의 형상을 취한 후 금광을 번뜩이니 탄성이 이어졌다.

촤악!

이훤의 검이 완인청과 두백대의 관을 잘랐다.

그는 그 후에야 팔황과 무극을 돌려놓은 후 진무궁 앞에 모인 귀빈들을 향해 포권을 했다.

“저 때문에 연회의 흥취가 끊겼으니 이만 물러가보겠소이다.”

누구도 이훤을 붙잡지  않았다.

오히려 이훤이 사라진 후에야 숨을 몰아쉬면서 주변 사람과 시선을 교환했다.

‘취선관주의 무공은 진짜였군.’

‘그 보다 화산연맹의 기세가 대단해. 게다가 취선관주까지 제어할 수 있는 듯하니 가히 서부의 패주라고 해도 무방하겠어.’

‘서부 지역의 십대 거부라 할 수 있는 자들이 이 정도로 저자세를 취한다는 건 곧 연맹의 반석이 굳건하다는 증거겠지.’

진무궁에 모인 귀빈들 중 대다수는 각자의 목적을 가지고 참석한 자들이다. 하나 이 일로 인해 그들은 화산연맹과의 결속을 먼저 생각해야 했다.

*

이훤과 탈마는 옥화전에서 조금 떨어진 전각으로 향했다.

이미 유건평에게 부탁하여 술과 음식을 준비한 상태였다.

그러니 오늘의 연극이 성대하게 막을 내린 것을 조촐하게 축하할 예정이었다. 한데 안주를 데우겠다며 나갔던 탈마가 눈을 끔뻑이며 돌아왔다.

“형님, 아까 혈종도 마평이라는 녀석이 찾아왔는데요. 형님의 호탕한 모습에 반했다고 함께 술 한 잔 하고 싶답니다.”

이훤은 고개를 끄덕였다.

“아아, 그렇군. 꺼지라고 해.”

“네.”

탈마가 나갔다가 다시 돌아왔다.

“손님이 또 왔는데요. 이번에는 여자입니다.”

이훤은 헛웃음을 지었다.

“훗, 북리혜는 한 몫 했으니 같이 한 잔할 자격이 있지. 들어오라고 해.”

하나 탈마는 여전히 어정쩡한 자세였다.

“그게 궁주가 아닌데요.”

< 60, 취선관주는 어떤 놈인가? (2) > 끝

ⓒ 김태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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