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3, 혈겁 유발자. (2) >
*
소룡대연이 열리는 연회장 외곽은 물샐 틈 없이 포위됐다. 황보세가에서 동원된 무인들만 해도 칠백 명에 이르렀다. 현재 임무를 수행 중인 무인들을 제외한 외단의 전부인 셈이다.
외단주 황보철조가 직접 나섰다.
오늘을 기점으로 산동 강호의 중견 방파들은 대부분 후기지수를 잃게 될 터였다. 산동악가에 죄를 뒤집어씌우고, 황보세가가 공을 세울 기회로 삼았다. 이제 오대세가의 자리는 물론이고, 산동 강호의 중소방파들도 모두 황보세가의 거수기가 될 터였다.
“설치는?”
혼무대주가 나섰다.
외단에서 혼무대(渾霧隊)의 역할은 기관과 진식, 그리고 폭약과 기형병기를 관장했다.
“장원의 출입구와 담장이 낮은 곳에 매설 중입니다. 곧 끝날 겁니다.”
“몇 개?”
“소천뢰 사백 개입니다.”
“쯧, 이런 곳에 사용할 귀물이 아니거늘. 혼무대주는 빠르게 일을 마무리하고, 패룡당주와 패웅당주는 설치가 마무리는 되는 대로 진입한다.”
호리호리한 체구의 장년인과 건장한 체구의 장년인이 고개를 조아렸다.
“아! 천암일화 악설과 부용지희 예영영은 살려둬라. 특히 후자는 티끌 하나 묻지 않아야 한다.”
패룡당이 패웅당보다 경공에 능했다.
“대주 급에게 전해놓겠습니다.”
그 때 혼무대주가 고개를 끄덕이며 눈짓을 했다.
소천뢰의 매설이 끝났다는 의미였다.
“돌입하라.”
“존명!”
패룡당주와 패웅당주가 좌우로 나뉘었다.
각 당은 백 명씩 삼 개 대로 이뤄졌다.
“패웅일대가 먼지 진입한다. 척살보다 후기지수들의 배후를 점거하는 중점을 둔다. 이대와 삼대가 좌우를 막아라.”
“우리는 패웅당이 포위망을 완료하는 순간 발검한다.”
“존명!”
칠백 명의 무인이 야음을 틈 타 소리 없이 움직였다.
황보철조는 턱수염을 쓰다듬으며 손짓을 했다.
황보태웅과 흡사한 외형의 청년이 다가왔다.
“수하들이 매화군자라는 놈을 제압해놓을 게다. 그 때 가서 마무리 해라.”
황보태룡은 입꼬리를 올렸다.
“동생을 죽인 원수의 복수를 한 소가주라. 아주 좋습니다. 감사합니다. 숙부.”
황보철조는 미간을 좁힌 채 음산한 어조로 말했다.
“이유도 모른 채 산동악가에게 밀린지 벌써 수십 년. 네 대에는 반드시 산동악가의 씨를 말려야 한다. 태웅이는 그러기 위한 발판이 되어줄 것이야.”
“그 놈 따위에게는 영광이겠군요.”
“그러니 실수하지 마라.”
황보태룡은 깊이 고개를 조아렸다.
“예.”
*
이훤의 경고에도 후기지수들은 눈만 끔뻑였다.
관자림의 첨언에도 움직이는 자가 없다.
그들을 지켜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한 숨이 절로 나왔다. 정파의 세상이라더니 정말 평화롭게만 살았나 보다.
“아니, 이러다가 정마대전이라도 벌어지면 어쩌려고 그래?”
이훤이 헛웃음을 짓는 사이 황보태웅이 도주하려 했다. 녀석의 뒷목을 낚아챈 후 무릎을 찍어눌렀다. 그리고 뒤통수를 연이어 후려쳤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너는 여기 있어야지. 황보세가가 찾아 왔잖냐?”
황보태웅은 고통 속에서 반색했다.
“너 죽이러. 그러니 좋아할 일은 아니야.”
“나, 나를 왜?”
“그건 모르지.”
이훤은 창밖을 힐끔 본 후 읊조렸다.
“보통 누군가를 구하러 올 때 저렇게 살기를 드러낸 채 개떼처럼 몰려오지는 않잖아?”
후기지수들은 별 생각 없이 창밖을 봤다가 대경실색했다.
이훤의 말처럼 수백 명이 연회장을 향해 달려오고 있었다. 그들은 이훤이 다시 한 번 칼 뽑으라고 외치는 순간에야 반사적으로 무기를 챙겼다.
“뭐야? 진짜 황보세가야?”
“황보세가가 왜요? 양 공자. 어떻게 해요?”
“어쩌긴 어째! 평소 자랑하던 그 연검부터 풀어!”
그야말로 아비규환이다.
이훤은 그 모습을 보고 히죽 웃었다.
“한결 보기 좋네.”
“뭐가 말입니까?”
관자림은 그림자처럼 따라다녔다.
“정파의 그늘에 젖어서 넋이 나간 팔푼이들 같았거든. 그런데 이제야 조금은 강호인의 표정을 보이는군.”
“위기임에도 여유로우시네요.”
이훤은 반쯤 넋이 나간 황보태웅을 흔들며 말했다.
“내게는 위기가 아니지.”
“많은 사람들이 죽을 겁니다.”
“그럼 네가 구해. 모든 사람이 행복하게 장수한다는 결과는 불가능해. 그러니 너라도 구해라.”
관자림은 고개를 내저었다.
“제게는 위기입니다.”
콰쾅!
연회장의 두터운 문이 산산조각 나며 비산했다.
소천뢰였다.
동시에 곰 같은 체구의 무인들이 해일처럼 밀려들어왔다.
이훤은 그 광경을 지켜보며 크게 웃었다.
“하하하! 소천뢰잖아.”
그는 후기지수들을 지나쳐 패웅대를 향해 일권을 날렸다.
“종남파에서의 빚을 갚겠다!”
쾅!
하나 세 명이 하나로 뭉쳐서 방패처럼 양 팔목으로 주먹을 막아냈다. 마치 내공이 전이된 것처럼 실력 이상의 맷집이 분명했다. 전력을 다한 일격이 아니었기에 패웅대원 세 명은 주르륵 밀려났다.
한 대 더 쳤다.
콰직!
이번에는 세 명이 동시에 피를 토하며 나뒹굴었다.
하나 그 사이 패웅대가 포위망을 완성했고, 패룡대가 들이닥쳤다.
“죽여라!”
패룡대주의 일갈에도 후기지수 중 몇몇은 긴가민가했으리라. 황보세가가 미치지 않은 이상 세가의 무복을 걸치고 살육을 벌이지는 않을 것이라고 믿었다. 하나 패룡대의 검이 후기지수의 가슴을 꿰뚫는 순간 한 가닥 희망은 재가 되어 사라졌다.
“이런 미친놈들!”
하나 황보세가는 후기지수의 외침을 귓등으로 흘린 채 계획대로 행동했다.
“목표를 확보해라!”
일련의 무리가 악설과 예영영을 향해 달렸고, 또 다른 무리는 황보태웅을 죽이기 위해 움직였다. 패웅방은 철저하게 벽 쪽으로 도망쳐오는 후기지수를 향해 거검(巨劍)을 휘둘렀다. 남녀를 가리지 않고 비명과 피가 연회장을 장악했다. 지옥도가 펼쳐지는 순간 모든 이가 소속과 성향을 버리고, 살기 위해 무공을 펼쳤다.
이훤은 표정을 굳힌 채 눈을 가늘게 떴다.
이러한 광경이 더없이 익숙했다.
이번 혈사가 자신으로부터 비롯됐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죄책감을 느낄 필요는 없다.
그가 지금까지 해왔던 일로 인해 구해진 사람이 더 많았고, 천룡전의 발호는 그만큼 늦춰지지 않았던가. 그렇기에 죽어가는 후기지수들에 대한 애도가 아니라 실망 가득한 한 마디가 흘러나왔다.
“강호는 늘 이랬구나.”
회귀 전 이 시기에는 개미굴에서 노비처럼 지냈다.
같은 시기 후기지수들은 소룡대연을 열고, 음주가무를 즐겼으리라. 그리고 또 어딘가의 누구는 이름 모를 칼에 맞아 죽었을 것이고, 또 누군가는 기연을 얻어 희망찬 미래를 맞이할 터였다.
“강호가 늘 그랬으니 나도······.”
이훤의 눈가에 붉은 기운이 맴돌았다.
그 사이 패룡당의 무인들이 이훤을 확인하고 포위를 했다.
“매화군자입니다!”
“소가주의 몫이다. 목숨은 붙여 놔.”
다 잡은 물고기처럼 값을 논하는 대화에 실소가 절로 나왔다.
“늘 하던 대로 하련다.”
패룡일대주가 검사를 흩뿌리며 달려들었다.
패룡이대주가 잔영을 남기며 쇄도했다.
패룡삼대주는 내력을 모조리 끌어낸 듯 시뻘게진 얼굴로 흐릿한 강기를 뽑아 올렸다.
세 명의 고수가 지척에 이르는 순간 잊고 있던 것이 떠올랐다. 종남파에서 진산노도의 소천뢰를 마주하는 순간 깨닫지 않았던가. 내외의 조화는 곧 음양의 조화이고, 만물의 나아감과 물러감을 의미했다.
그렇게 천공혈륜겁의 팔성을 넘어섰다.
솨아아아아!
이훤의 두 주먹을 중심으로 혈륜이 휘몰아쳤다.
지금까지처럼 전신에 혈륜을 두를 필요가 없다.
회귀 전 광야제라 불리게 만들었던 무위가 자연스럽게 펼쳐졌다. 일권을 내지르는 순간 주먹에 맺혔던 혈륜이 강기의 형태를 취하더니 전방으로 폭사됐다.
콰콰콰쾅!
일대주는 시신조차 남기지 못한 채 사라졌고, 이대주는 두 다리가 뭉개진 채 튕겨나갔다. 삼대주만이 흐릿한 강기로 이훤의 공세를 막아냈다.
“타, 탄강이라니.”
그 말을 끝으로 칠공에서 피를 토하며 허물어졌다.
“초절정입니다!”
누군가의 외침에 한순간 연회장의 분위기가 가라앉았다.
양떼 무리에 뛰어든 늑대 같은 녀석들이 눈치를 보기 시작한 것이다.
탄강(彈罡)이라면 그럴 만했다.
절정의 무인이 검기와 검사, 검막을 거치듯 초절정이라고 해도 다 같은 수준이 아니었다. 어검술(馭劍術)과 탄강, 의기상인(意起傷人), 또는 천상제(天上梯)와 같이 이야기 속에만 존재한다고 여겼던 상승 무공을 직접 펼치는 것이 가능했다.
이훤으로서는 우스울 따름이다.
신마가 무림공적으로 선포되어 절명곡에서 죽었을 때가 오십 년 전이다. 그리고 그 이전에는 칠십 년 전 어중간한 정마대전이 전부였다. 그러니 정파인들은 칠십 년 이상 제대로 된 적을 만나지 못하고, 안주했다는 뜻이다.
“씨발, 나만 힘들었지. 나만 힘들었어.”
그때 패웅단주와 패룡단주 뒤로 궤짝을 짊어진 중년인이 보였다. 양 손에 쥐고 있는 것은 진산노도가 두르고 있던 소천뢰가 분명했다.
짜증이 치민다.
이훤은 암천군림보를 펼치며 질주했다.
잔영이 사방으로 튀고, 붉은 안개가 쉼 없이 일렁이니 일개 대원들은 뭐가 지나가는지도 모른 채 피를 토하며 튕겨나갔다.
“헙!”
두 단주가 검을 겨눴다.
패룡삼대주와는 달리 제법 영근 강기가 휘몰아쳤다.
강기가 맺힌 검으로 천왕검법과 태산중천검법을 펼치니 검풍만 해도 피부가 따끔거릴 만큼 대단했다.
하나 회귀 전 이훤이 팔 성을 이뤘을 때 진짜 고수를 제외하면 두려울 것이 없었다. 그러니 독이 든 술도 좋다며 마실 정도였다. 한데 회귀 후의 팔 성은 회귀 전과 달랐다. 시기는 더 빨랐고, 몸은 더 건강했다. 게다가 실패했던 경우를 모조리 배제한 채 성장하지 않았던가.
이훤은 태산을 위아래로 쪼갤 기세로 쇄도하는 검을 향해 왼 손을 내질렀다.
쩡!
반탄력으로 인해 패룡당주가 밀려났다.
그 사이 이훤은 가볍게 바닥을 밟으며 몸을 휘돌렸다.
자연스럽게 돌아 나온 오른 주먹이 패웅당주의 강기를 정면으로 후려쳤다.
쩌정!
천공혈륜겁의 성취가 올라갈수록 혈륜은 점점 자연지기에 가까워진다. 그러니 자연지기를 빌려와 가공해서 사용하는 자들과는 천양지차였다.
패웅당주는 목구멍을 통해 솟구치는 핏물을 억지로 삼켰으나 황망함을 금치 못했다. 한철을 조금 섞어 만든 거검은 가주에게 받은 선물이다. 한데 널따란 검면의 중앙에는 한 눈에도 보이는 실선이 거미줄처럼 퍼져 있었다.
“맙소사!”
이훤은 자세를 한껏 낮춘 채 혼무대주를 향해 쇄도했다. 놈이 눈을 휘둥그레 뜨더니 쥐고 있던 소천뢰를 던졌다. 가볍게 피하는 순간 등 뒤에서 굉음이 들려왔다.
누군가 죽었으리라.
하나 개의치 않았다.
혼무대주는 황급히 양 팔을 휘저었고, 소매가 저절로 말리더니 수백 개의 우모침이 쇄도했다. 양 손을 펴고 손바닥을 보인 채 원을 그리는 순간 우모침은 바람에 휘말려 사방으로 흩어졌다.
푹푹푹푹푹푹푹!
암기는 적아를 가리지 않는다.
누가 소천뢰의 폭발에 휘말렸는지 모르겠지만, 복수를 해준 것이나 다름없으리라.
이훤은 바닥을 박차고 뛰어올랐다.
하나 뛰어오른 것보다 빠르게 내려선 상태로 내달렸다. 허공에 잔영이 남아 일렁이니 혼무대주의 시선이 잠시 허공을 향했다.
그 사이 놈의 목을 움켜쥔 채 외쳤다.
“종남파에 소천뢰를 보낸 게 너냐?”
혼무대주는 눈을 부릅 떴다.
“개소리! 본가의 소천뢰는 오직 맹과 황궁, 그리고 본가만이 사용한다.”
자부심 넘치는 외침.
하나 그 사이 양 손이 소매 속으로 사라졌다가 나타났다. 그리고 양 손에는 두 개의 소천뢰가 들려 있었다. 한데 지금까지와 달리 작은 쇠뇌에 붙어 있지 않은가. 놈이 손목을 비트는 순간 소천뢰가 암기처럼 발출됐다.
“흥!”
이훤은 자유로운 손을 펼치고 원을 만들었다. 그 순간 지척에서 발출된 암기가 기세를 잃더니 반대로 튕겨나갔다.
“개나 소나 다 사용하더라!”
이훤은 혼무대주의 몸에 소천뢰가 박히는 것을 확인하고, 적이 모여 있는 곳으로 차버렸다.
콰콰콰쾅!
십 수 명의 육편이 사방으로 비산했다.
그 순간 예기치 못한 명적이 울렸다.
패룡당주와 패웅당주를 필두로 수백 명의 무인이 밀물처럼 빠져나갔다. 살아남은 후기지수들은 서른 명 남짓이 전부였다. 그들은 마치 정마대전에서 승리한 것처럼 환호성을 내질렀다.
“방금 나한테 죽은 놈이 누구지?”
관자림이 숨을 헐떡이며 말했다.
분명 열심히 싸운 것 같은데 원래부터 더럽고, 냄새를 풍기니 태가 나지 않았다.
“황보세가의 혼무대주입니다. 기관과 폭약, 그리고······.”
“됐고! 그 새끼 수하들이 여기 있었어?”
이훤의 외침에 관자림은 표정을 굳혔다.
그 역시 뒤늦게 깨달은 것이다.
“없었습니다. 아무래도 적이 쉬운 길을 택했나 보군요.”
“아니야. 택할 수밖에 없었던 거지.”
황급히 대전 안을 살폈다.
황보세가가 굉천뢰와 소천뢰를 던져서 한 번에 몰살 시킨다는 좋은 방법을 마다한 이유가 있으리라.
‘저 새끼는 아니야. 나도 아니지. 그렇다면······.’
이훤의 시선이 땀에 흠뻑 젖어 있는 악설에게로 향했다.
산동악가의 무남독녀라면 황보세가에서 데리고 갈 이유가 충분하리라.
‘만약 굉천뢰가 터진다면······.’
구할 수 있는 자가 많지는 않다.
반면 구해야 할 자는 두 명이다.
찰나간의 고민이 끝나기도 전에 연회장 뒤편에서 낯익은 녀석이 모습을 드러냈다.
“너, 아직 여기 있었냐?”
구해야 할 녀석이 세 명으로 늘어났다.
고천락은 뒤통수를 긁적이더니 헤죽 웃었다.
“빠져나가려는데 갑자기 들이쳐서 안쪽으로 숨었지요.”
“하아.”
“그런 표정 짓다가는 후회할 텐데?”
이훤은 고천락의 여유로운 모습에 미간을 좁혔다.
무공은 일천하지만, 도둑질에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녀석이 아닌가. 그리고 도둑질에는 치밀한 조사와 대범한 성격, 그리고 무사히 탈출하는 재주가 필수였다.
“너 설마.”
“뒤쪽에 비밀 통로가 있던데요.”
정파의 위군자들 만만세다!
어떻게 된 것이 방파마다 비밀 통로가 없는 곳이 없지 않은가.
“가자!”
이훤은 황보태웅의 뒷덜미를 움켜쥐었다. 그리고 악설의 허락도 없이 혈도를 점한 후 옆구리에 낀 채로 내달리기 시작했다.
관자림은 어리둥절해하는 무인들에게 외쳤다.
“저들은 이제 굉천뢰를 던질 거야. 살고 싶으면 따라와!”
후기지수들은 망설임 없이 이훤을 따라 이동했다.
잠깐의 혈전으로 인해 정신을 차린 걸 수도 있다. 혹은 이미 정신을 차렸기에 살아남은 걸 수도 있다. 하나 어느 쪽에도 해당하지 않는 사람이 한 명 있었다.
“아.”
예영영은 창백한 안색으로 어쩔 줄을 몰라 했다.
애초에 무공이 일천한 그녀가 살아남은 것 자체가 기적이나 마찬가지였다. 한데 그녀를 따르던 수많은 이들은 싸울 때도 그랬고, 탈출할 때에도 그랬다. 언제 아첨을 했냐는 듯 쳐다보지도 않은 채 자리를 떴다.
“예 소저.”
예영영은 머리가 좋은 여인답게 잠깐의 망설임도 없이 관자림의 손을 잡았다.
“고마워요.”
그리고 반각 후 지진이 일어난 것처럼 대지가 요동을 쳤다. 동시에 엄청난 폭발이 일어났고, 화마와 폭연이 하늘에 닿을 것처럼 솟아올랐다. 바람이 폭연을 휩쓸고 지나가니 장원은 흔적도 없이 사라진 후였다.
< 43, 혈겁 유발자. (2) > 끝
ⓒ 김태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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