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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산마신-101화 (101/226)

< 41, 꽃 중의 꽃. >

41, 꽃 중의 꽃.

제월방(諸鉞幇)는 흔히 쓰지 않는 도끼를 독문병기로 사용했다. 애초에 황보세가가 벌목꾼들의 조합을 속가로 받아들였다. 육신의 단련이 극대화된 나무꾼들은 약간의 무공을 전수하는 것만으로도 상당한 수준의 외공을 지닐 수 있었다. 그들은 무공을 받은 대가로 황보세가의 궂은일을 마다하지 않았다.

- 세력을 넓혀라!

이것이 황보세가에서 받은 밀명 중 하나였다.

햇볕에 그을린 몸에 우람한 체구는 물론이고, 시각적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는 도끼까지 패용했으니 보호비를 받는 건 식은 죽 먹기와 같았다. 그러니 영풍장을 찾아온 이들은 여유로웠다. 촌락의 이름 없는 장원의 주인쯤이야 도끼만 몇 번 흔들어도 금방 수결을 할 것이라 여겼다.

틀린 생각은 아니었다.

영풍장주는 결국 힘에 굴복했으리라.

이훤이 없었다면 말이다.

퍽!

혈륜도 아까웠다.

그저 잡히는 대로 한 놈씩 두들겨 팼다.

초식의 사용을 궁리하는 것마저 귀찮게 여겨졌다.

그래서 주먹으로 안면을 가격했다.

퍽! 퍽!

‘많이도 왔네.’

영풍장을 찾아온 제월방도는 무려 사십 명이다.

그 중에는 제월방의 부방주도 함께였다.

영풍장으로 시작으로 산동성 남부의 촌락을 모두 손아귀에 넣으려던 제월방의 원대한 포부는 이훤의 알 바가 아니다.

‘도끼로 찍으면 금방 끝날 텐데······.’

이훤은 힘을 쓰기는커녕 조절을 해야 했다.

압도적인 무력을 지닌 자가 기세를 흩뿌리는 것만으로도 사건이 해결될 터였다. 하나 그렇게 되면 지금까지 힘겹게 쌓아온 매화군자의 협명에 먹칠을 하는 셈이다.

- 세상사에 초탈하여 술을 즐기는 자.

- 시화를 아끼고, 매화를 사랑하는 자.

- 양민의 곁에서 함께 숨 쉬는 자.

이것이 취선관주인자, 매화군자인 이훤의 목표였다.

그는 천하제일인보다 많은 사람에게 존경을 받는 이가 되고 싶었다. 회귀 전에 공적이 되면서 먹었던 욕만큼 칭찬을 받고자 했다.

“그러니까 이 나쁜 새끼야! 영풍장주의 인품과 고아한 성정을 알면서도 그깟 자릿세를 강요하러 떼로 몰려왔단 말이냐?”

“무슨 소리요? 우리는 대화로······.”

퍽!

이 놈은 안 되겠다.

대가 약한 놈을 찾자.

이훤이 슬쩍 한 걸음을 내딛자, 제월방도들이 주춤거리며 물러섰다. 하나 그에게 있어서 거리란 중요하지 않았다.

“염왕채를 돌리고!”

“그런 일 없소!”

“왈패처럼 공짜로 술을 마시면서 행패를 부리고······.”

“그건 다 하는 일이 아닙니까?”

녀석들은 강골답게 맞으면서도 고통을 참아냈다.

아무리 제월방이 황보세가의 뒤치다꺼리를 하며 나쁜 짓을 했어도 아직까지는 정파 소속이 아닌가. 그러니 자칫 죽였다가는 역풍이 불수도 있는 노릇이다. 하여 놈들을 때리면서도 명분을 찾으려 했다.

‘세간에 알려진 소문 가지고는 부족해.’

결국 회귀 전의 기억을 더듬을 수밖에 없었다.

‘뭐가 있었더라?’

이훤이 딴청을 피우는 사이 제월방도가 대부를 내리쳤다. 제대로 맞았다가는 몸이 두 쪽으로 갈라져 좌우로 튕겨나갈 정도의 위력이었다. 몸만 살짝 비틀어 도끼의 궤적을 피해낸 후 녀석의 아랫배를 걷어찼다.

콰직!

사타구니를 얻어맞은 녀석이 비명과 함께 허물어졌다.

독문병기인 도끼마저 내던진 채 사타구니를 움켜잡는 놈을 보는 순간 떠올랐다.

‘그래, 그게 있었다.’

회귀 전 황보세가는 이훤이 죽는 그 순간까지도 오대세가로 복귀하지 못했다. 산동악가가 태산의 기문진 이후 몰락했지만, 빈자리를 채운 건 다른 세가였다.

바로 한 가지 논란이 원인이었다.

제월방이 민간의 소년들을 납치하여 황궁의 환관들에게 팔아넘겼다는 소문이 돌았다. 제월방이 황보세가의 속가라는 건 암암리에 알려진 사실이 아니던가. 그리고 황보세가의 연줄이 대부분 황궁과 군부임 또한 모르는 이가 없었다. 아닌 말로 자금성의 수호장 중 삼 할 이상이 황보세가에서 무공을 배웠을 정도였다.

황보세가는 극구 부인했다.

결국 제월방의 독자적인 비위로 결론이 났다.

제월방주를 비롯한 수뇌부들은 무림맹의 추포를 피해 단체로 독약을 마시고 자결했다.

그렇게 끝난 사건이다.

‘그건 절대로 소문이 아니야!’

무림맹은 천하에서 가장 고결하고, 정의로운 조직이어야 했다. 그렇게 되지 않으면 온갖 불합리한 일을 뒤덮을 명분이 없지 않은가.

그렇기에 똥이 묻은 황보세가를 품지 않았으리라.

고로 황보세가는 제월방을 통해 인면수심의 짓거리를 자행한 것이 분명했다.

이훤은 황급히 주변을 살폈다.

열 명 남짓 남은 제월방도들 뒤로 유달리 눈에 띄는 자가 있었다. 방도보다 목 하나가 크고, 짙은 눈썹과 새카만 수염이 돋보였다. 하나 그가 입은 무복은 방도들과 달리 비단으로 만든 화의다.

‘저 새끼가 대장이다.’

파팟!

이훤은 계산을 끝낸 후 암천군림보를 펼쳤다.

제월방도들에게는 그저 무언가 휙휙 움직이는 것처럼 보였으리라. 제월방의 부방주 또한 절정의 무인이었지만, 방도들과 다르지 않았다.

“커헉!”

이훤은 부방주의 멱살을 쥐고 코가 닿을 만큼 잡아당겼다.

“너 이 새끼! 애들을 납치해서 환관한테 팔아먹고도 네 놈이 사람이라고 할 수 있더냐?”

그 순간 부방주는 눈동자를 돌리며 회피했다.

그것을 인지하는 순간 뱃속 깊은 곳에서 무언가 뜨거운 것이 끓어올랐다. 본래 회귀 전 자신을 쫓던 잔당에게 복수를 하는 것이 목적이었던 싸움이다. 한데 소문이 사실로 드러나는 순간 황보세가와 천룡전의 다른 점을 찾기 힘들었다.

“너희들은 천룡전보다 더 추악하다!”

아니 최소한 천룡전은 신마의 깨달음을 얻기 위해서라는 핑계라도 존재했다. 한데 황보세가의 행위는 그저 돈을 위한 것이 전부였다. 지금 이 순간 화청궁 관음동에 갇혀서 실혼인이 되어야 했던 여아들이 떠오른 건 당연했다.

“나, 나는 모르는 일이외다.”

이훤은 부방주의 변명을 듣고, 눈이 돌아갔다.

“그런 일이 없다고 해야지! 이 개새끼야!”

정파 내에서 협명을 알리고자 시작한 일이다.

그러니 정사지간이나 사파라면 모를까 명문정파와는 적당히 거리를 유지해야 했다.

꽈득!

이훤은 부방주의 목을 꺾어버렸다.

생각해보니 산동성의 기연을 얻고자 나선 길에 협객 놀이에 너무 심취한 듯했다. 회귀 전 그가 겪은 정파와 사파의 차이는 하나였다. 나쁜 짓을 하더라도 조금 더 능숙하게, 장기적으로, 조용히 하는 것이다.

“천락아! 다 때려치우자.”

언제부터 정파와 친했다고?

아니 그런가?

그저 화산이 좋았고, 화산파와 묵은 은원을 풀었을 뿐이다. 그런데 이제 와서 정파인처럼 웃는 얼굴로 등에 칼 꽂는 건 우스운 일이 아닌가.

그래서 이훤은 손에 잡히는 대로 목을 꺾어버렸다.

“일부러 거세를 하여 고통스러워하는 것을 즐기고!”

콰직!

“그런 놈들을 뻔히 알면서도 돈을 받고 모른 척하고!”

콰직!

“그 돈으로 웃으면서 좋은 사람인 척하는!”

콰직!

“새끼들은 그냥 뒈져도 돼!”

이훤은 혈륜을 일으키지 않았다.

하나 장내에는 피바람이 불었고, 짙은 혈향이 후각을 마비시킬 만큼 휘몰아쳤다. 그때 분위기와 어울리지 않게 훌쩍이는 소리가 들려왔다.

건장한 체구의 방도 한 명이 주저앉은 채 울고 있었다. 생각해 보니 조금 전 사타구니를 걷어 채이고 널브러진 놈이다.

“몰랐어요. 그냥 팔아넘기는 거라고 생각했는데······. 아니, 알았어요. 나도 자식이 있다고요. 그렇게 회피했는데. 씨발, 아니었으면 좋았을 텐데.”

이훤은 코웃음을 쳤다.

이제 와서 개과천선이라도 했다고 주장할 셈인가.

놈의 뒷목을 겨냥하고 주먹을 말아 쥐었다.

그 때 퀴퀴한 냄새가 코를 자극했다.

굳은 표정의 관자림이 다가왔다.

“왜? 이제 와서 같은 정파인이랍시고 동정심이라도 생겼냐?”

그는 고개를 내저었다.

“만에 하나 그것이 사실이라면 그냥 넘어갈 수 없는 일입니다. 심지어 산동성 내에서 버젓이 일어난 일이라면 개방도 책임을 피할 수 없고요. 그러니 저 자는 살려두어 증인으로 삼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이훤은 입꼬리를 올렸다.

개방 내에서도 황보세가와 붙어먹은 놈이 존재할 것이다. 그러니 저 놈을 내어준들 언제까지 살 수 있으랴. 하나 관자림에게 빚을 지워두는 것도 나쁘지 않았다. 어차피 저런 놈의 생사쯤은 문제될 것이 없지 않은가.

“그래.”

관자림은 이훤의 허락을 받고, 방도와 함께 사라졌다.

“아이고! 지금까지 했던 게 모두 헛수고가 되었네.”

이훤은 고천락의 투덜거림에 헛웃음을 지었다.

“재미도 없더라.”

한데 녀석이 곧장 맞장구를 쳤다.

“그러게요. 어릴 때부터 눈칫밥을 먹고 살아서 그런지 남의 눈치 보면서 일 하는 것만큼 재미 없는 게 없네요.”

“네가 퍽도 눈칫밥을 먹었겠다.”

“눈칫밥도 먹고, 훔친 밥도 먹고 그러는 거지. 물론 그 중의 최고는 공짜 밥이고!”

고천락은 별채에 차려놓은 음식을 마구 퍼먹었다.

잠시 후 배가 찼는지 은근슬쩍 질문을 했다.

“형님, 거기는 어떻게 할 거요?”

소룡대연(小龍大宴)을 묻는 게다.

이훤은 관자림이 남기고 간 초대장을 만지작거리며 입꼬리를 올렸다.

‘알아서 문을 열어줬으니 당연히 가야지.’

종남파의 진산노도가 소천뢰를 사용하지 않았던가. 한데 강호에서 소천뢰를 다루는 건 황보세가 뿐이다. 그러니 이 기회에 황보세가에 진 빚도 갚고, 기문진에 대한 정보까지 캐낼 수 있는 일석이조의 자리였다. 어린 것들을 어르고, 달래면 뭔들 나오지 않겠는가. 게다가 산동악가에 있을 신마의 깨달음도 산동삼화 중 한 명인 악설을 통해서 운을 떼 볼 생각이다.

“가야지. 밥 중의 밥은 공짜 밥이라며?”

“예 소저와 악 소저를 구경하러 가는 게 아니라요?

고천락의 말에 이훤이 무릎을 치며 탄성을 내뱉었다.

“공짜 밥보다 더 좋은 게 있었어.”

“뭔데요?”

“미녀와 함께 하는 공짜 술.”

“그 말이 왜 안 나오나 했다.”

이훤은 피식 웃으며 턱짓을 했다.

“안 무섭냐?”

“뭐가요?”

“이거 잘못되면 공적으로 몰릴 수도 있어.”

“대도는 무문이라. 큰 도적에게는 문이 필요 없어요. 정파 문이든, 사파 문이든 제가 가지 못할 곳이 없단 말입니다.”

대도무문의 의미는 달랐지만, 녀석이라면 저럴 줄 알았다. 관자림은 제월방도를 안가에 숨겨 놓은 후 돌아왔고, 이훤의 생각을 들은 후 경악을 금치 못했다.

“소룡대연에 가신다고요?”

“오라는데 가줘야지.”

“소룡대연의 주최는 황보세가입니다. 연회에 참석할 즈음이면 제월방에 대한 소식도 전해질 거고요. 괜히 참석했다가 화를 당할 수도 있습니다.”

비단 몸과 몸의 싸움만을 말하는 것은 아니리라. 말로서 사람을 죽이는 방법이야 말로 정파인의 특성이 아니던가.

“과거 내 행적을 살폈다며? 그럼 내가 뭘 할지 알고 있을 텐데 말이야.”

이훤의 말에 관자림은 눈을 휘둥그레 떴다.

“설마?”

“그래, 내부에서부터 적을 무너트리는······.”

“일단 다 두들겨 패버린 후에······.”

두 사람이 동시에 말끝을 흐렸다.

이훤은 눈을 가늘게 뜨고 관자림을 노려봤다.

“너.”

“크하하하! 맞는 말이잖아요. 어이! 고 형, 마음에 드네. 냄새 나는 것만 빼면 왠지 잘 맞을 것 같아.”

퍽!

고천락은 엉덩이를 얻어맞고 나뒹굴었다.

이훤은 관자림을 응시했다.

“따라올 거야?”

“네.”

“개방에서 싫어할 수도 있어.”

“밥값은 이미 충분히 해뒀습니다.”

역시 생각의 범주가 정상적이지 않다.

이훤은 피식 웃으며 말했다.

“너는 색마다. 앞으로 우리끼리 있을 때에는 색마라고 부를 거야.”

“아니! 형님, 그 무슨 흉악한 별호에요? 공적이 되는 건 상관없지만, 일부러 애쓸 필요는 없잖아요!”

확실히 취마나 탈마에 비해 색마는 어감 자체가 달랐다. 고천락은 관자림을 만류하려다 넋을 놓았다. 정인에게 정표라도 받은 것처럼 좋아하는 관자림을 보고 있자니 만사가 귀찮아졌다.

“될 대로 되라지.”

*

영풍장주는 끝까지 훌륭한 인품을 자랑했다.

“이 대협의 꾸짖음을 듣고 있자니 이 몸도 부끄러움이 크더이다. 자릿세를 내는 것이 당연하다고 여겼고, 이 정도면 된다고 만족을 했으니 말이오.”

“괜찮으시겠습니까?”

이훤은 떠나면 그만이다.

하나 뒤에 남을 영풍장과 영풍현의 양민들은 혹시 모를 제월방의 복수를 떠안아야 할 수도 있지 않던가.

“아직 잘 모르겠소이다. 하나 노력은 해봐야지요. 그래도 영풍현에 터를 잡은 게 삼십 년이외다. 인맥이라는 것이 제법 있으니 도움을 청해볼 생각이외다.”

이훤은 입꼬리를 올렸다.

오랜만에 만나는 좋은 어른에게 선물을 주고 싶었다.

“이거 받으세요.”

영풍장주의 주름진 손 위에 씨앗이 놓였다.

“이게 뭡니까?”

“매화나무를 기르세요. 아무리 훌륭하고, 화려한 그림이라고 해도 실물을 이길 수 없지 않습니까.”

이훤의 말에 영풍장주는 너털웃음을 지었다.

“알겠소이다. 매화군자께서 주신 선물이라고 후대에 꼭 자랑을 하리다!”

“네, 분명 좋은 일이 생길 겁니다.”

이훤은 고천락과 관자림을 이끌고 영풍장을 떠났다.

고천락은 말을 몰았고, 관자림은 마차 위에 누웠다.

“어디로 갈까요?”

이훤은 마차 안에서 투덜거리듯 말했다.

“알면서 그래?”

잠시 후 키득거림과 함께 고천락의 외침이 들려왔다.

“제월방으로 갑니다!”

< 41, 꽃 중의 꽃. > 끝

ⓒ 김태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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