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화산마신-96화 (96/226)

< 38, 술, 그리고 매화. >

38, 술, 그리고 매화.

폭발력은 엄청났다.

심지어 폭발의 방향이 일정했다.

마치 수십 개의 기관에서 암기를 발출한 것처럼 이훤을 향해 꽂혀들었다. 그 모든 과정이 느릿하게 이어지며 시계를 그림처럼 수놓았다. 폭연과 폭음, 그리고 수천 개에 이르는 파편이 흩날리는 가운데 묘한 광경이 보였다. 수십 개의 소천뢰를 폭발시킨 진산노도가 반발력을 밀려나듯 튕겨나갔다. 한데 놈의 입가에는 진득한 미소가 가득했다. 마치 이 모든 상황을 예견한 것처럼 말이다.

‘저 새끼 뭐지?’

진산노도는 처음 등장했을 때부터 주남노도의 눈치를 보면서도 감정을 조절하지 못했다. 그리고 그는 주남노도의 사후 억눌렀던 감정을 폭발시키듯 화를 내지 않았던가. 그런 놈이 수십 개의 소천뢰를 몸에 두른 채 자신을 끌어들였다고는 믿기 힘들었다.

‘저 새끼가 할 만한 짓이 아니야!’

제 삼의 누군가가 있다.

분명 혈륜으로 벽을 만든 후 진산노도와 거리를 벌렸을 때 무슨 일이 벌어진 듯했다. 그렇기에 진산노도가 혈륜의 벽에서 한참을 헤맨 것처럼 보였으리라. 놈은 헤맨 것이 아니라 제 삼의 누군가와 밀담을 나눈 것이 분명했다.

‘그렇다면······.’

소천뢰를 수십 개씩 반출하는 것이 가능하고, 이 모든 상황을 주관하고 있으면서, 이훤의 이목을 피해 오갈 수 있는 자가 몇이나 될까.

‘그 새끼겠네!’

찰나간 이 모든 생각이 뇌리를 스쳤다.

분명 흑의인은 종남산 어딘가에서 이곳을 내려다보고 있으리라. 화산보다 훔쳐보기가 편하니 훨씬 더 느긋하게 보고 있을 터였다.

개 놈의 새끼.

‘아무리 봐도 그 새끼가 소마 같아.’

그나저나 이걸 어쩐다.

폭발의 여파가 지척에 이르렀다.

하나 이훤은 여유로웠다.

굉천뢰면 어떻고, 학정홍이면 어떻고, 여인의 나신이면 어떠하랴. 팔 성에 근접한 몸뚱이는 그 자체로 반탄강기를 펼친 것이나 다름없었다. 설령 흠집이 난다고 해도 피륙의 상처일 뿐 천공혈륜겁은 건재할 터였다.

그러나 피할 수 없었다.

파편이 문제였다.

수천 개의 파편은 하나하나가 초절정 고수가 펼친 암기와 같았다. 그가 몸을 피하는 순간 종남파의 문도 중 절반 이상이 죽을 터였다.

종남파 문도의 생사 따위는 사실 크게 개의치 않는다.

다만 화산연맹이 섬서성의 패주로 복귀하면 종남파는 훌륭한 손발이 되어줘야 했다. 향후 무림맹에 진출했을 때에도 종남파를 활용한다면 많은 이득을 취할 수 있으리라.

가령 술, 또는 술, 혹은 술.

‘이 세상에서 술이 가장 많은 곳은······.’

무림맹(武林盟)이다.

문파와 문파가 선물을 주고받을 때 있어보이려면 영약이나, 보검, 또는 기물일 터였다. 하나 세상의 보물은 그렇게 많지 않았다. 그러니 문파가 거주하는 지역의 귀한 술, 특히 오래된 술을 선물로 건네는 경우가 비일비재했다.

하나 무림맹주는 이훤처럼 한가롭게 술을 마실 수 있는 위치가 아니었다. 그렇기에 대부분 창고에 넣어둔 채 먼지와 함께 세월을 보내고 있으리라.

‘그 녀석들을 해방시켜줘야 해!’

그래서 이훤은 피하지 않았다.

그 순간 피부가 따끔거렸다.

소천뢰의 폭연이 몸을 휘감았고, 수천 개의 파편이 피부를 파고들기 직전이다.

할 수 없다.

전신을 휘감고 있는 혈륜을 최소화한 후 나머지를 모두 양 손에 쏟아부었다.

그리고 쌍장을 전방으로 내뻗으려 했다.

힘으로 짓눌러서 상쇄시키려는 목적이다.

쩡!

하나 혈륜만으로는 부족했다.

그렇기에 단전의 내공까지 끌어들였다.

공청석유로 만들어진 이 갑자의 내공은 혈륜에 비할 수는 없으나, 가히 자연지기와 다름이 없었다. 절대지경의 고수나 선보일 법한 강맹한 기파가 전방을 강타했다. 하지만 그래봤자 주변만 막아내는 것이 전부였다.

‘젠장! 이 모든 내력이 혈륜이었다면······.’

때늦은 후회.

그렇게 생각했다.

그리고 종남파의 몇몇은 포기하기로 마음먹었다.

한데 그 순간 화산에서 소부와 상대할 때가 떠올랐다. 단순히 소부를 조롱하고, 격앙시키기 위해 생각 없이 말을 쏟아내지 않았던가.

무언가 깨달은 듯하여 손을 뻗었다.

소부는 기다려줬고, 서화종은 호법을 자처했다.

하나 한순간 떠오른 무언가는 안개처럼 흩어졌다.

‘힘과 명분이 빛과 그림자처럼 어우러지면서 조화를 이룬다면 천하의 그 무엇도 두렵지 않을 것 같았다.’

그렇다면 혈륜과 공청석유의 내력 또한 조화를 이루면 되지 않겠는가.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건 대자연에서 비롯됐다. 그 말인즉슨 조화를 이루지 못할 까닭이 없다는 의미였다.

그게 되나?

이훤의 두 눈이 찢어질 것처럼 커졌다.

됐다.

본래 단전의 내공은 시간의 흐름에 따라 조금씩 전신세맥으로 흘러가서 천공혈륜겁의 혈륜이 된다. 회귀 전에는 그런 방식으로 팔 성의 경지에 올랐다. 밥을 많이 먹으면 체하는 것처럼 내력도 조심스럽게 조금씩 흡수해야 한다고 여겼다.

과아아아아아아아!

한데 생각하는 순간 공청석유로 만들어졌던 내력이 자연스럽게 몸속으로 흩어지기 시작했다. 지금껏 들리지 않았던 굉음이 폭음을 밀어내며 공간 자체가 일렁였다. 이훤의 한계는 손이 아니라 마음이 닿는 모든 공간이다. 입꼬리를 올리며 전방을 향했던 양 손을 좌우로 뻗었다.

그리고 거대한 바퀴를 굴리듯 양 손으로 휘돌렸다.

그 순간 시간이 원래대로 돌아왔다.

콰콰콰콰콰쾅!

이훤이 양 팔을 있는 힘껏 뻗었어도 일 장이 채 되지 못했다. 하나 양 손이 원을 그리는 순간 붉은 빛과 백광이 나뉘어 주변을 수놓았다. 마치 그것은 물결치듯 경계를 나눴다가 손을 휘젓는 순간 단색(單色)으로 섞여 번쩍였다.

그 순간 삼 장에 걸쳐 쇄도하던 파편의 방향이 바뀌었다.

이훤이 양 팔을 하늘로 향하는 순간 폭음과 폭연은 여전했지만, 수천 개의 파편은 허공으로 솟구쳤다.

솨아아아아아-

검은 연기가 광풍에 휘말리는 흩어지는 순간 이훤이 온전한 모습으로 등장했다.

‘팔 성이다.’

천공혈륜겁이 팔 성에 이르렀다.

회귀 전보다 이십 년은 빠른 성취였다.

이훤은 헛웃음을 지었다.

천공혈륜겁의 위력은 여전했지만, 회귀 전과 확실하게 달랐다. 아마 육 성에 이르렀을 때부터 본능적으로 느꼈으리라. 회귀 전보다 천공혈륜겁의 운용이 편했고, 위력도 강해졌다. 비단 다리를 고쳤기 때문만은 아니리라. 분명 신마의 깨달음을 상당 부분 이어받았기 때문에 벌어진 기연(奇緣)이었다.

한데 팔 성에 이르는 순간 깨달았다.

‘나는 회귀 전 팔 성에 올랐을 때보다 훨씬 강해졌다.’

자연스럽게 흘러나오는 기세가 연무장을 짓눌렀다.

고오오오오오-

태을노도는 그 광경을 보고 넋을 놓았다.

‘저런 무공을 들어본 적이 있다.’

어린 시절부터 강호를 떠돌았지만, 진짜 고수라고 할 만한 이들은 보지 못했다. 하나 한평생 소림이나 무당의 고수와 인연을 맺고 싶었기에 귀동냥이라도 허투루 하지 않았다. 한데 이훤이 선보인 신위야 말로 매담자들이 입에 침이 마르도록 설명하던 무당파의 면장처럼 보였다.

‘무위상천태극면장이 극에 달하면 비단인 너울거리듯 눈에 보이는 모든 곳을 뒤덮는다 했다.’

그것을 가리켜 무당파의 삼대신공 중 하나인 십단금(十段錦)이라 하지 않았던가.

그 순간 정신이 번쩍 들었다.

오늘의 혈겁은 종남파의 성세를 기울게 만들 터였다. 진명삼성 중 두 명이 변절했고, 장문인을 비롯한 장로들이 절반 이상 사망했다. 그러니 자칫 하면 예전의 화산파보다 더 심하게 쇠락하여 봉문을 해야 할 수도 있는 노릇이다.

‘저 자는 화산뿐 아니라 무당과도 관련이 있는 건가. 그렇다면 우리도 반드시 인연을 맺어야 한다. 그것도 아주 강하게! 최소한 화산보다 더!’

그 사이 이훤은 진산노도를 뒤쫓았다.

그는 이미 잠력단으로 인해 단전이 상한 상태였다. 그 와중에 비장의 한 수까지 무효로 돌아갔다. 그러니 이미 잡아 놓은 물고기나 마찬가지였다.

이훤은 자세를 낮추고 내달리면서 주인 없는 검을 주워들었다. 그리고 기괴한 표정을 지은 채 축 늘어진 진산노도 대신 슬쩍 뒤를 바라봤다. 태을노도가 굳은 표정을 한 가운데 미세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공범 확보!

이훤은 망설임 없이 진산노도의 심장을 찔렀다.

푹-

종남파의 일이 마무리되는 순간이다.

하나 종남산은 아직 일 터였다.

*

“아아!”

흑의인과 함께 종남파를 내려다보던 주작이 탄성을 내뱉었다. 하나 흑의인은 묘한 표정을 지은 채 종남파의 연무장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죽어버렸네. 이제 열두 명 남은 건가?”

주작이 혀를 찼다.

하나 흑의인은 언제나 그렇듯 만면에 미소를 드리운 채 느긋했다.

“열두 명도 많지요. 천룡을 보필할 네 명만 되어도 차고 넘칩니다.”

“클클, 나는 그래서 자네가 좋아. 아무리 절박한 상황이라도 즐겁게 만들어주거든.”

“주작께서도 고생하셨습니다.”

주작은 어깨를 으쓱거렸다.

“소천뢰를 전해주는 것보다 빼내는 게 더 힘들었어. 내가 아무리 잘났어도 아직은 눈치를 볼 사람들이 있거든.”

“무림맹의 서열 삼 위께서 겸손하기시도 하여라.”

“진짜야. 무림맹의 만선재는 다섯 명 밖에 못 들어가. 나중에 정기 감사라도 하게 되면 내가 곤란해진다고.”

흑의인은 좌측으로 손을 뻗었다.

광무제가 공손하게 차를 따랐다.

“맹에 아는 분이 있으니 별 일 없을 겁니다.”

“역시 믿을 건 자네 뿐이야. 그래서 진짜 산동성의 기문진은 개입하지 않을 건가? 조금 전에 이훤이라는 녀석을 돕던 쥐새끼가 비선각 부각주와 만나서 산동성의 정보를 받아갔어. 어떻게 아는지는 모르겠지만, 분명 산동성에서 다시 만나게 될 거야. 그래도 안 간다고?”

흑의인은 눈을 가늘게 떴다.

“솔직한 마음으로는 가고 싶지요. 저 자는 종남산에 오르기 전보다 강해졌습니다. 이렇게 빠르게 성장할 수 있다는 건 분명 신마의 오의에 다가섰다는 의미겠지요.”

“그럼 오지 말라고 해도 가야지.”

주작의 말에 흑의인은 입꼬리를 올렸다.

“저 자가 제아무리 소중해도 천룡의 안위만큼은 아니지요.”

“설마 그분을 뵈러 가는 건가?”

흑의인은 엉덩이를 털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네.”

주작의 얼굴이 잠시 일그러졌다.

“부럽군.”

“주작께서도 얼른 돌아가시는 게 나을 겁니다. 저 자의 경공은 제법 대단해서 금방 이곳을 찾아올 수도 있어요.”

흑의인은 무릎을 꿇은 광무제의 등에 올라탔다.

하나 주작은 흑의인이 남겨놓은 다구를 들어 주전자 째 차를 들이켰다.

“크하! 멀리서 보기만 하는 건 사내가 할 짓이 아니지. 기왕 이렇게 됐으니 이훤이라는 놈을 여기서 죽여 버릴까?”

흑의인은 손으로 입을 막으며 웃었다.

“풉! 죄송합니다. 제가 그분을 뵈러 가는 이유가 뭘까요?”

“설마 그분께서 이훤을 눈여겨 보신다는 의미인가?”

광무제가 말없이 흑의인의 무릎을 살짝 두드렸다.

“아! 대화는 여기까지. 벌써 근처까지 온 듯하네요.”

“대답하게! 정말 그 분이 이훤을······.”

주작은 일갈을 멈췄다.

광무제의 무심한 눈빛이 닿는 순간 등허리에 소름이 돋았다. 하나 그는 가볍게 목례를 한 후 빛살보다 빠르게 자취를 감췄다.

“쳇!”

주작이 돌아섰다.

전신을 암행의로 감싼 흑의인이 다가왔다.

“어디로 모실까요?”

“맹으로 돌아간다. 그리고 바로 회의를 소집해. 산동성으로 맹의 타격대를 보내야겠다.”

주작은 느긋하게 걸음을 내딛었지만, 표정은 잔뜩 일그러진 상태였다.

‘처음부터 개입하여 산동악가와 이훤까지 모조리 죽여야겠어.’

*

종남파는 빠르게 안정을 되찾았다.

반도가 명확하게 구분됐기에 더 이상 경계할 이유가 없었다. 다만 진명삼성 중 두 명이 사문을 배신했다는 충격만은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모든 일을 불문에 부쳐달라고?”

이훤의 말에 장문대행이 된 소부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습니다. 은공의 공은 널리 알리겠지만, 속사정까지 내비칠 필요는 없지 않을까 싶습니다.”

사람 팔자는 시간 문제라더니.

매번 날 선 대화를 주고받던 소부가 더없이 조심스럽다.

“어떻게 해야 하나.”

이훤이 말꼬리를 흐렸다.

그도 그럴 것이 종남파에서 얻어낼 것만 한 가득이다.

소부가 목소리를 낮췄다.

“전 장문인까지 사문을 배신했다는 소문이 돌면 강호에 큰 파장이 일 겁니다. 사부는 제자를 믿지 못하고, 제자는 사부를 믿지 못하겠지요. 지금까지 강제로 봉합되었던 문제들이 한꺼번에 터져 나올 거니다. 그것이야 말로 적들이 바라는 결과일지도······.”

이훤은 손을 들어 말을 끊었다.

“소 장문대행. 그래도 나를 가장 많이 본 사람이잖아. 그런 식으로 물 타기하면서 강호의 안위 따위를 내세워봤자 소용없어. 현실적인 이야기를 하자고.”

“은공께서 바라시는 게······.”

“술.”

“네?”

“종남산 주변에서 내가 마시는 모든 술값을 대신 내줬으면 좋겠어. 그리고 종남파 내에도 선물로 들어온 술이 제법 될 거야. 그거 한 병도 빼놓지 말고 다 줘.”

소부는 믿을 수 없다는 듯 말을 잇지 못했다.

“그러면 모든 일은 불문에 부치지. 심지어 내 이름을 빼도 좋아. 너희들끼리 으쌰으쌰 해서 문파를 지킨 걸로 하자고. 어때?”

“그, 그래도 되겠습니까?”

이훤은 단호한 한 마디를 내뱉었다.

“술.”

소부가 슬쩍 옆을 바라봤다.

태을노도가 고개를 끄덕였다.

‘본 파의 무공이나 조사전만 아니라면 뭔들 주지 못하겠는가. 손녀라도 있다면 내어주고 싶을 정도로구나.’

이훤은 소부가 허락을 하자, 그제야 미소를 지었다.

“아! 화산과는 친하게 지낼 거지?”

“그렇지요. 본래 종남파와 화산파는 형제였습니다.”

“화산파 말고, 화산. 화산은 화산파와 도관이 하나로 뭉쳐서 화산연맹이 되었다. 그러니 앞으로 잘 지내도록 해. 아! 물론 화산이 형이지?”

이번에도 태을노도는 고개를 끄덕였다.

‘사람의 관계는 서열로 정해지지 않아. 앞으로 얼마만큼 친분을 쌓느냐가 관건이다!’

소부는 방긋 웃으며 말했다.

“이걸로 더 원하시는 것은 없지요? 종남파는 언제든 은공을 환영하니 아무 때나 찾아오셔도 좋습니다.”

이훤은 입맛을 다셨다.

해달라는 걸 다해줄 것 같은 분위기가 아닌가.

한데 종남파 따위에 바라는 것이 있을 리 만무했다.

양 손을 소매에 넣고 꼼지락거리다가 생각지도 못한 무언가가 잡혔다.

“정말 중요한 게 있소.”

이훤이 표정을 굳히자, 소부도 덩달아 진지한 표정을 지었다.

“술이나 문파와의 관계보다 더. 자칫 그대들의 자존심에 상처가 될 수도 있소.”

“그게 뭡니까?”

소매 속의 물건을 꺼냈다.

“이건······. 매실의 씨가 아닙니까?”

이훤은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매화나무 아래서 술을 마시는 것이 좋아. 한데 종남산에는 매화나무가 없네.”

소부는 눈을 휘둥그레 떴다.

갑작스런 제안이었고, 어찌 보면 아무 것도 아닌 조건이었다. 하나 화산파의 상징을 종남산에 심는다는 것에 본능적인 부담감을 느낀 듯했다.

태을노도가 눈을 번쩍 떴다.

“조건이 있네.”

이번에는 이훤이 표정을 굳혔다.

‘아! 술을 포기하라고 하면 곤란한데······.’

태을노도가 진중한 어투로 말했다.

“본 파에는 매화나무를 길러본 자가 없네. 그러니 자네가 주기적으로 찾아와 잘 자라는지 봐주게.”

이훤은 빙긋 웃으며 손을 모았다.

태을노도 또한 다시 눈을 감은 채 포권을 했다.

그렇게 종남산에 구파오가 중 첫 번째로 매화나무가 심어졌다.

< 38, 술, 그리고 매화. > 끝

ⓒ 김태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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