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화산마신-92화 (92/226)

< 36, 천룡전(天龍殿), 최고다! (2) >

*

이훤은 너털웃음을 지었다.

“종남파 문도가 이렇게 많았어?”

장치결은 이훤의 농에 아무런 대꾸도 하지 못했다.

지금껏 이훤에게 두들겨 맞고 다리가 부러진 제자들만 해도 오십 명에 이르렀다. 그러니 장치결로서는 어처구니가 없을 수밖에 없으리라. 분명 대화로 해결해야 하니 사람들을 모아놓고 준비를 하라고 하지 않았던가.

‘도대체 왜 이런 무모한 행동을······.’

그가 보았을 때 이훤은 화산파의 문도가 아니었다.

성정이 괴팍하고, 술주정뱅이일 뿐이다.

잘 설득하여 종남파와 함께 할 수 있다면 이처럼 든든한 우군이 없을 터였다. 화산파가 그렇게 몇 번이나 이득을 보지 않았던가. 지금껏 즐기지도 않던 술을 공부하고, 제자들을 내어주면서 그렸던 큰 그림에 먹칠을 한 셈이다.

‘종남파에 도착하면 내가 나서서······.’

그는 걸음을 멈췄다.

한 발 앞서 걷던 이훤이 종남파의 건물이 보이자, 걸음을 멈춘 게다. 장치결은 불현 듯 이훤이 중재를 원하지 않을까 기대를 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건 아닌 거 같아.”

그렇다.

제아무리 이훤이 대단해도 홀로 종남파를 상대하는 건 불가능에 가까웠다. 무엇보다 명분이 없지 않은가. 술 한 병에 종남파를 적대시할 사람이 세상에 어디 있을까.

장치결은 바짝 마른 혀를 축인 후 표정을 수습했다.

한껏 밝은 표정으로 이훤을 설득하기 위함이다.

그런데 이어진 말투가 조금 이상했다.

“내가 아무리 막 살아도 장 총관까지 막 살면 안 되잖아.”

“네?”

“그래도 오랫동안 한솥밥을 먹은 사이거늘 다치고, 울고 그러면 마음이 아플 거잖아.”

미친놈아! 그건 종남산에 오기 전부터 생각했어야지.

하나 장치결은 그렇지 않다는 듯 고개를 내저었다.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가장 빠른 법입니다.”

이훤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지? 역시 그랬어.”

그리고는 대뜸 지풍을 날려서 장치결의 마혈을 짚었다.

“취선관주. 지금 뭐하시는 겁니까?”

“뭐하기는? 자네를 배려하고 있잖아. 내가 금방 다녀올 테니 자네는 여기서 쉬고 있어.”

장치결은 무슨 말이라도 하고 싶었다. 하나 이내 아혈까지 점혈당했기에 눈만 동그랗게 뜬 목석이 되어버렸다.

“너무 걱정하지 마. 아! 물론 자네 사형제들을 말하는 걸세. 그래도 명색이 정파인데 죽일 수는 없지.”

이훤은 망설임 없이 돌아섰다

장치결은 소리 없는 저주를 쉴 새 없이 쏟아냈다. 한데 그것이 효과를 본 것일까. 이훤이 서너 걸음을 걷더니 머쓱한 표정을 지으며 돌아왔다.

“그냥 두고 갔다가 멧돼지 밥이라도 되면 안 되니까.”

그는 주변을 두리번 거리더니 장치결을 옆구리에 끼고 솟구쳤다. 그리고 장치결을 나무에 걸어 놓은 후 홀가분한 마음으로 말했다.

“됐다. 너무 고마워할 필요 없어. 우리는 한식구잖아.”

아니야! 그렇지 않아!

내 식구는 종남산에 있단 말이다!

이훤은 장치결의 눈가가 촉촉해진 것을 보고 뿌듯한 표정을 보였다.

“그럼 다녀올게!”

잠시 후 이훤은 종남파의 산문 앞에서 침음을 내뱉었다.

종남파는 입구를 굳게 걸어잠갔다.

한데 산문 근처에는 개미 새끼 한 마리도 찾아보기 어려웠다.

그는 고개를 갸웃거리다 혈륜을 끌어냈다.

일격이면 삼백 년의 세월을 버텨온 종남파의 산문이 산산조각날 터였다.

‘아! 그래도 장 총관이 머물던 곳인데······.’

오늘의 행보는 몰살이나 점령이 아니라 압박을 목적으로 했다. 그러니 가능하면 좋은 쪽으로 해결될 여지를 남겨두는 것이 옳으리라.

그래서 월담을 하기로 했다.

휘리리릭!

가볍게 무릎을 굽혔다가 펴는 것만으로도 담장 너머로 내려설 수 있었다.

그리고 탄성을 흘렸다.

“우와!”

눈앞에는 녹빛의 무복을 걸친 종남파의 문도들이 진법까지 펼친 채 대기 중이었다.

그 수가 무려 삼백 명에 달했다.

청절검 소부가 장문인의 허락을 받고 나섰다.

“놈! 무슨 억하심정이 있어서 허락도 없이 종남파에 발을 들였느냐?”

이훤은 억울하다는 듯 미간을 좁혔다.

“그냥 있지 않을 거라며? 그래서 왔지.”

“뭐라?”

“너희들이 전부 움직이는 것보다 나 혼자 움직이는 쪽이 더 효율적이잖아.”

소부는 이훤의 느긋한 한 마디에 몸을 부르르 떨며 일갈을 내질렀다.

“여전히 제멋대로구나. 좋아! 네 말이 옳아. 어차피 네 놈만 처리하면 될 일이 아닌가. 우리가 모두 가는 것보다 네가 오는 게 맞지. 그러니 네 놈도 살아 돌아갈 생각은 하지 않았으렷다?”

이훤은 눈을 크게 뜨고 외쳤다.

“엇! 구파 중 한 곳인 종남파에서 이렇게 대놓고 사람을 죽인다고 선언을 하다니.”

“흥! 종남파에 허락 없이 발을 들였으니 생사여탈권은 우리에게 있다! 네 놈이 스스로 화산파와 관련이 없다 했으니 강호의 동도들이 어찌 우리를 욕하겠는가!”

소부가 일부러 말을 길게 끄는 건 이훤을 탓하기 위함이 아니다. 이훤을 죽여도 된다는 명분을 만들고, 그 명분으로 문도들의 기세를 끌어올리는 것이 목표였다.

한데 이훤도 다르지 않았다.

그가 대화를 이어간 까닭은 종남파의 기세를 꺾기 위함이다. 아닌 말로 그냥 다 죽여도 되는 일이었다면 벌써부터 소부의 안면에 주먹을 꽂아 넣었으리라. 하나 향후 화산연맹과 함께 섬서성을 지켜가야 할 종남파가 아니던가. 극단적인 해결책은 지양해야 마땅했다.

“후우.”

이훤은 한 숨을 내쉬었다.

“명분? 나는 명분을 생각할 여력이 없다.”

소부는 미간을 좁혔다.

갑작스런 이훤의 고백에 흔들린 것이 아니라 속내를 알 수 없었기에 답답했다. 그리고 마침내 며칠 전부터 머릿속을 가득 채웠던 의문에 대한 해결책이 드러났다.

“나와 형님이 지극히 아끼던 아이가 있다. 안주라고 하지. 그 녀석이 취선관을 떠나 실종이 됐어. 종남산에 올랐다고 하더군. 그래서 녀석을 찾기 위해 온 것이다.”

종남파의 문도들은 안주라는 기괴한 이름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하나 이훤은 슬픔에 겨운 사람처럼 고개를 숙인 채 말을 이었다.

“반드시 안주를 찾아야 해.”

결연한 한 마디를 내뱉고, 고개를 들어올렸다.

눈가에는 혈광이 번뜩였고, 온 몸에 투기가 가득했다.

“안주를 찾아야 하니 비켜라!”

장로 중 누군가 참지 못하고 외쳤다.

“뭐라는 것이야? 저 미친놈이!”

“종남산에서 없어졌으니 종남파가 책임을 져야지. 찾아내라! 만약 찾을 재주가 없거나, 종남산의 산주를 자처하지 않는다면 그래도 좋다. 내가 여기를 샅샅이 뒤지면 되니까.”

쾅!

종남파 장문인인 풍차룡은 진중한 성격으로 유명했다.

하나 그런 그조차도 이훤의 막무가내에 참지 못하고 일갈을 내질렀다.

“놈! 사마외도의 개종자가 아니라면 어찌 감히 구파의 한 축인 종남파의 앞마당에서 그런 허무맹랑한 요구를 할 수 있겠는가. 네 놈을 그냥 둬서는 안 되겠구나.”

내력이 담긴 외침.

하나 이훤은 싱글벙글 웃었고, 오히려 청절검 소부가 좌불안석이다. 이훤은 입꼬리를 올린 채 풍차룡을 향해 턱짓을 했다.

“당신 사제가 화산파에서 와서 한 말을 그대로 따라해 봤어. 한데 당신이 생각해도 너무 허무맹랑하지? 그게 아니라면 설마 화산파는 되도, 종남파는 안 된다는 억지를 쓸 텐가?”

풍차룡은 눈을 휘둥그레 떴다.

그는 진위 여부를 묻지 않았다. 소부의 표정만 봐도 진실임을 알 수 있었다. 하나 이런 자리에서 사제를 욕보일 수는 없지 않은가.

“놈! 궤변으로 본질을 흐리지 마라. 장 사제와 제자들이 실종된 것은 네 놈의 탓이 아니더냐? 그러지 않아도 장 사제가 네 놈의 손아귀에서 탈출하여 급히 서신을 보냈다.”

그는 장치결이 보낸 서찰을 흔들며 외쳤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종남파를 욕보이려 하는가?”

“장치결은 소중하고, 안주는 소중하지 않다는 거냐?”

“이 놈! 도대체 안주가 누구기에 종남산에서 억지를 부리는 것이야!”

이훤은 어깨를 으쓱거리며 말했다.

“우리집 개.”

한 치의 흔들림도 없이 올곧은 신념이 가득한 한 마디였다.

오죽 했으면 종남파의 문도들이 잘못 들었는지 귀를 의심했다. 그리고 서로를 바라보며 그렇지 않은 것을 확인하는 순간 적대감이 불같이 일어났다.

‘흐음, 이 정도면 명분으로서 충분할 줄 알았는데.’

이훤은 자신을 노려보는 종남파의 문도들을 보며 침음을 흘렸다. 하나 그렇다고 해서 달라질 건 없다. 화산파에서 명분의 부족함을 힘으로 채웠으니 여기서도 한 번 더 하면 될 일이다.

“안주부터 찾겠다!”

꿋꿋한 한 마디를 내뱉고, 거침없이 질주했다.

“막아라! 적은 한 명이다.”

“미친놈이다! 미친 자가 종남파를 더럽힐 수 없도록 혼신의 힘을 다하라!”

이훤이 달려드는 순간 종남파의 문도들이 일사불란하게 포위망을 구성하려고 했다. 하나 하고자 하는 의지가 아무리 뛰어나도 힘에 부치면 어쩔 수 없는 노릇이다.

퍼퍼퍼퍼퍼퍼퍼퍽!

검진이고, 진법이고 그냥 다 때려부쉈다.

이미 힘의 차이는 어른과 아이처럼 벌어진 상태였다.

종남파의 일반 문도들이 낙엽처럼 쓸려나갔고, 뻥 뚫린 공간으로 발을 내딛었다.

그 순간 끈적한 느낌과 함께 다섯 명의 장로가 들이닥쳤다. 종남파의 칠대검호 중 다섯 명이 모여야 펼칠 수 있는 상천태을검진(上天太乙劍陳)이 분명했다.

“쳇! 거미줄 같은 걸 깔아놔서리.”

칠대검호 중 유달리 성격이 급한 절룡비검이 일갈을 내질렀다.

“놈! 우주의 기운이 담긴 상천태을검진을 욕보이다니. 가만 두지 않겠다!”

“사제! 진정해. 놈의 혀는 기름을 바른 것처럼 매끄럽다. 삿된 기운에 현혹되지 말고, 검진의 운영에만 집중하게!”

이훤은 입꼬리를 올렸다.

삿된 기운이라니.

회귀 전이라면 그렇게 생각했을 수도 있다.

하나 이제는 천공혈륜겁의 연원이 새외에서 온 팔황무극존의 무공에 신마의 깨달음임을 알지 않던가.

‘너희들에게!’

음양(陰陽)의 조화가 극에 달하여 정기신(精氣身)의 일체를 꾀하고, 그로 인해 내외(內外)의 구분이 없어지니 심신은 인외(人外)에 이른다고 했다.

‘하늘 위의 하늘이······.’

인간의 범주를 벗어났으니 인간들이 천공혈륜겁을 두려워하는 것도 당연했으리라.

‘무슨 맛인지 알려주마!’

아마 피 맛일 게다.

이훤의 신형이 넷으로 나뉘어 사방으로 흩어졌다.

하나 본체는 그 자리에서 우주를 운운하던 절룡비검(折龍飛劍)의 검을 상대했다.

“헙!”

절룡비검은 이훤이 갑작스레 나타나자, 검을 회수하기 위애 몸 천제를 비틀었다. 상체를 휘돌리면서 검의 궤적을 바꾸고, 곧장 이훤의 목을 치려 했으리라. 하나 이훤의 신형은 그 상태에서 한 번 더 좌우로 찢기듯 사라졌다.

퍽!

이훤의 손끝이 절룡비검의 팔뚝을 스쳐갔다.

피가 분수처럼 솟구치는 가운데 뼈가 드러났고, 주인을 잃은 검이 바닥을 굴렀다.

“사제!”

찰나간 잔영을 마주했던 칠대검호는 한 덩어리가 되어 절룡비검의 곁으로 뭉쳤다. 절룡비검은 독문무공인 비검술도 제대로 펼쳐보지 못한 채 주저앉았다.

“내가 채우겠다!”

장문인인 풍차룡이 유려한 보법을 펼치며 빈자리를 채웠다. 그러자 다시금 끈적한 기운이 사방에서 몰아치며 이훤의 팔다리를 묶으려 했다.

‘쯧!’

이훤은 침음을 흘렸다.

저들과 생사를 논한다면 스무 합 이전에 결착을 낼 수 있다. 하나 살려두려면 생각보다 꽤 긴 시간을 소모해야 했다. 그렇기에 절예를 펼쳐서 절룡비검부터 처리한 게다. 한데 빈 자리를 메울 수 있을 줄 어찌 알았겠는가.

“일단 꺼져 봐!”

이훤은 실초와 허초가 뒤섞여서 백여 개에 이르는 검영이 사방에서 짓쳐들자, 혈륜을 극한까지 끌어올린 채 좌우로 흩뿌렸다.

콰콰쾅!

다섯 명의 검수가 검면을 정면으로 한 채 밀려났다.

이훤과 그들이 밟고 있던 청석은 모조리 가루가 되어 흩어졌다. 그 사이 이훤이 먼지 구름을 뚫고 계단을 올랐다. 높은 곳을 선점한 후 저들을 일격에 처리할 요량이다.

하나 계단에 올라 은하전 앞에 앉아 있는 세 명의 노인을 보는 순간 눈을 휘둥그레 떴다.

‘부족한 명분이······.’

이내 입꼬리를 올렸다.

‘채워졌네.’

이훤은 칠대검호를 뒤로 하고, 세 명의 노인을 향해 내달렸다. 진명삼성 중 막내인 태을진인이 슬쩍 일어나 이훤의 앞을 막아섰다.

채채채채채채채챙!

팔찌 형태로 있던 기형병기를 풀어내는 순간 핏빛 광채가 번뜩이면서 태을노도의 검을 튕겨냈다.

쩡!

이훤은 태을노도와 거리를 벌린 후 곧장 은하전 앞에 내려섰다. 그리고 긴 수염을 늘어트린 채 지팡이를 짚고 있는 주남노도와 넓적한 패검을 겨눈 채 앞을 막아선 진산진인을 보며 말했다.

“너도 천룡전이지?”

< 36, 천룡전(天龍殿), 최고다! (2) > 끝

ⓒ 김태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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