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9, 화산의 괴물들. (2) >
*
화산파는 전진교의 후예인 학대통을 시조로 삼았다.
전해지기를 그가 화산에 도관을 개관하니 천하의 구도자들이 구름과 같이 모여들었다고 했다. 그렇게 수많은 도관이 만들어졌고, 학대통을 중심으로 도가의 교리를 논하며 성지(聖地)로 자리 잡았다.
“······라는 건 빌어먹을 화산파 놈들이 주장하는 거지. 내 말 알겠느냐?”
화천대에 속한 조장은 넋이 나간 사람처럼 고개를 끄덕였다. 조금만 반응이 늦어도 노인네의 솥뚜껑 같은 주먹이 뒤통수를 강타할 것이 분명했다. 스스로 도사라고 주장하는 노인은 일견하기에 화전민처럼 보였다.
그렇기에 수하들을 보내 목을 치라고 명령했다.
모든 문제는 거기서 시작된 셈이다.
노인은 화전민이 아니었고, 장진관의 관주라고 했다.
그리고 화산파보다 장진관의 역사가 더 장구하다며 왜곡된 진실을 바로잡으려 애썼다. 물론 그 과정에서 대답이 늦을 때마다 여지없이 주먹이 날아왔다.
조장은 퉁퉁 부은 얼굴로 억지웃음을 지었다.
“그, 그렇군요.”
장진관주는 눈을 가늘게 뜨더니 턱짓을 했다.
“모르는 것 같은데? 한 번 말해봐.”
방금 전까지만 해도 화산의 위기를 구경하겠다고 술까지 챙겨 나온 자였다. 한데 지금은 제자의 숙제를 검사하듯 아예 자리를 깔고 앉았다.
“네?”
“말해 보라고. 설마 너도 화산파처럼 장진관을 인정하지 않는 게냐?”
조장은 황급히 고개를 내저은 후 기억나는 대로 읊조리기 시작했다.
“노자의 제자였던 주나라의 관윤자가 화산에 터를 잡고, 도가의 교리를 논했고요. 어느 날 갑자기 학대통이라는 무도한 자가 이름값으로 사람들을 끌어 모으더니 자기가 정통이라고 하면서······. 아! 씨, 뭐였지? 뭘 만들었는데······.”
장진관주는 주름진 눈매를 좁히며 손을 까딱였다.
“이리와.”
“네? 아닙니다. 기억날 것 같습니다.”
“내가 갈까?”
그는 말이 끝나기 무섭게 허공을 날더니 하반신을 비틀었다. 그 순간 채찍처럼 휘어져 들어온 발바닥이 조장의 볼을 강타했다.
쫘악!
“아흐흑!”
조장은 이빨이 낱알처럼 흩어지는 상황에서도 무릎을 꿇고, 용서를 빌었다.
장진관주는 혀를 차며 말했다.
“이래서 사마외도 놈들은 안 돼. 머리가 나빠. 머리가 나쁘니까 쉬운 길이나 가려고 하지. 천의는 순리다. 삶은 물과 같이 자연스럽게 나아가야 함을 모르고, 욕망과 욕심을 내려놓지 않으니 어찌 올곧게 갈 수 있으랴? 타인의 것을 빼앗고, 죽이고, 더럽혀서 나아진 들 그게 무슨 의미가 있단 말이더냐?”
조장은 고개를 조아렸다.
하나 속으로는 알고 있는 모든 욕을 총동원해서 노인에게 쏟아 부었다.
‘그러는 네 놈도 화산파를 이겨먹겠다고 이러고 있잖아!’
장진관주는 오랜만의 설교가 즐거운 듯 화산파의 위난마저 뒤로 한 채 열정적으로 말을 이어갔다. 그러던 중 미간을 좁히더니 소로의 반대편을 응시했다.
잠시 후 그곳에 능글맞게 생긴 중년인이 모습을 보였다.
“어이쿠! 형님, 오랜만에 뵙네요!”
장진관주는 짜증 섞인 표정을 지었다.
“내가 네 놈은 선인봉에서 나오지 말라 했지?”
“어허! 같은 도사끼리 이거 왜 이러실까?”
“누가 같은 도사야!”
그는 중년인을 노려보다가 엎드려 있는 조장을 들어올렸다. 공깃돌처럼 가볍게 들어 올리는 모습에 조장은 대경실색하여 손바닥을 모은 채 빌었다.
“잘못했습니다. 살려주십시오.”
“알아. 네 놈이 잘 못한 건 알고 있어. 그보다 저기 저 놈을 봐라. 내가 화산파까지는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어. 하지만 저기 진박의 법통을 이은 것들은 아무리 생각해도 자격이 없지!”
조장은 정신이 혼미해지는 듯했다.
학대통은 누구고, 관윤자는 누구며, 진박은 또 누구란 말인가. 자신의 사문조차 제대로 알지 못하는 그에게 화산파의 논쟁은 너무나 어려운 화두였다.
“어허! 형님, 이웃끼리 그러시면 곤란하죠. 진박노조께서 송 대에 터를 잡으셨지만, 도력만 따지면 왕중양에 비견한다고 하셨습니다.”
“봤어? 네가 봤냐?”
“허허, 이 형님 보시게. 그럼 형님은 보셨소? 아닌 말로 관윤자는 존재 자체도 논란이 많을 만큼 옛 사람이 아니시오. 최소한 우리는 사서에 이름은 남았소이다!”
조장은 두 사람의 논쟁에 눈을 질끈 감았다.
‘미친놈들이다. 그리고 아무 것도 모르고, 화산을 공격하려 한 우리도 미친놈들이다.’
한참을 싸우던 두 사람은 논쟁이 꼬리를 물고 이어지자, 소강상태에 이르렀다.
“그나저나 그 놈은 뭐요?”
“흥! 감히 장진관을 공격하려 하기에 손을 좀 봐줬지.”
“아이고, 나락선도수에 맞았으면 시신이 제대로 남지도 않았겠네요. 그나저나 용호관에게 왔던데요. 이것들 정체가 뭡니까?”
장진관주(長眞觀主)는 용호관주(龍號觀主)에게 어깨를 으쓱거렸다.
“알게 뭐야. 화산파를 치러 간다니 연화봉에 올라가서 구경이나 하련다.”
“그래도 명색이 화산의 그늘 아래 함께 사는 처지인데 너무 심하시네. 저는 이 기회에 빚이나 지워두고, 나중에 써먹어야겠습니다.”
용호관주는 빈말이 아닌 듯 머리카락을 곱게 빗어 넘겼고, 일자건과 도관을 썼다. 게다가 방금 다림질을 한 것처럼 빳빳한 황의도복은 물론이고, 부적을 쓰는 주사와 붓까지 챙긴 상태였다.
장진관주는 자신의 복장을 살핀 후 아쉬워했다.
“아! 나는 왜 그 생각을 못했지? 나도 제대로 된 대괘의를 입고 올 걸.”
“형님이 얼굴이 대괘의죠. 그냥 함께 가시지요. 가는 길에 술도 좀 나눠주시고.”
두 사람은 조장을 땅에 질질 끌면서 연화봉 쪽으로 발길을 돌렸다.
이와 같은 상황은 화산 곳곳에서 일어났다.
본래 화산은 학대통이 자리를 잡기 전부터 명산으로 유명했다. 암암리에 구도자들 사이에서는 무당산보다 윗줄로 쳐줄 정도였다. 그렇기에 학대통을 중심으로 한 도관들의 성세가 지속되자, 원래부터 자리를 잡고 있었던 도관들도 상당수 흡수됐다. 하나 여전히 관윤자나 진박노조를 비롯해 소수의 법통을 이어가는 자들이 수백 년간 화산에 뿌리를 내린 상태였다.
“감히 뇌진공도관을 앞에 두고 화산파의 이름을 거론해?”
뇌진공도관주(腦震空道觀主)의 쌍수가 십여 개로 나뉘어 전방을 수놓자, 흑의인들은 추풍낙엽처럼 나뒹굴었다. 그리고 관주의 허락 없이 누구도 다시 일어나지 못했다.
“허허, 지금이라도 회개한다면 과거의 업보 또한 만회할 수 있을 게요. 그러니 나와 함께 이 동굴에서 칠 년의 수양을 함께 합시다.”
절벽에는 구멍이 숭숭 뚫려 있다.
동굴의 숫자만 서른 개.
스스로를 삼십삼동주(三十三洞主)라 칭하는 왜소한 체구의 노인은 살기를 드러낸 무인들을 하나둘 씩 기절시킨 후 동굴로 끌고 들어갔다.
“허허, 선인이 된다면 다시 햇빛을 볼 수 있을 게요.”
화산파에 대한 호불호는 저마다 달랐다.
하나 사마외도에 대한 거부감과 화산에 대한 애착은 마찬가지였다. 욕을 하고, 혼을 내도 화산에 있는 자들이 해야 마땅한 게다. 외인(外人), 그것도 악인들이 살기를 드러낸다면 참을 수 있는 자가 몇이나 되겠는가.
노군이 소요자에게 했던 말은 이런 의미였다.
그 또한 화산파가 직접적으로 나설 수는 없으나, 수많은 도관들과 교류를 하지 않았던가. 심지어 애지중지하는 안주 또한 친우에게 분양받았을 정도였다.
컹컹!
수십 마리의 개가 어금니를 드러낸 채 경고를 한다.
수화관(獸和觀)의 관주는 그런 개들을 조용히 시킨 후 한 자루의 검을 뽑았다.
“이 중에서 개를 좋아하는 자라면 뒤로 물러서라.”
*
복천적은 검을 늘어트린 채 미간을 좁혔다.
“이런 개 같은 경우가.”
그는 심호흡을 하면서 전방에 쓰러진 노인을 노려봤다.
초절정의 고수라고 자부하는 그조차도 노인을 상대로 칠십여 초식을 겨뤄야 했다. 하물며 노인은 별 생각 없이 덤벼들었던 수하들을 서른 명이나 격사 한 후였다.
“궁주, 괜찮으십니까?”
경천대와 기천대의 대주도 안색이 좋지 않았다. 노인의 두 제자를 한 명씩 죽였지만, 손해가 막심했다. 경천대주는 한쪽 손이 부었고, 기천대주는 머리에서 피를 흘렸다.
“도대체 여기가 뭐란 말인가?”
복천적은 이를 갈면서 폐가나 다름없는 도관을 노려봤다. 서악관(西岳觀)이라 새겨진 현판을 아무리 노려봐도 정체를 알 길이 없었다.
“차라리 잘 됐습니다. 저런 난적이 화산파와 합류했다면 더 큰 희생을 치렀을 겁니다.”
“후우, 올라가자. 오늘 화산에서 제대로 혈채를 받아내야겠다.”
하나 집결지에 도착한 이후 기껏 가라앉혔던 울화가 다시 한 번 치밀어 올랐다. 본래 사백 명을 이끌고 화산을 오르지 않았던가. 한데 집결지에 모인 무인은 이백오십 명 정도였다. 심지어 화천대주는 도착하지도 않았다.
“이게······. 이게 무슨······.”
복천적은 길잡이를 불러들였다.
그는 황망한 와중에도 황급히 머리를 굴려 정답에 근접한 결론을 내놓았다.
“아마 화산 곳곳에 퍼져 있는 도관들과 싸운 듯합니다. 들리는 말에 의하면 몇몇 도사는 무공을 익혔다고도······.”
콰직!
복천적은 길잡이의 머리통을 날려버린 후 미간을 좁혔다.
“그건 미리 이야기를 했어야지! 안되겠어. 매혼단을 써야겠다.”
대주 세 명은 눈을 휘둥그레 떴다.
백매선자가 환혼천사에게서 받아온 잠력단이 바로 매혼단이다. 먹으면 잠력을 폭발시켜 평소보다 강한 힘을 선보이겠지만, 마지막에는 누구도 파멸을 피할 수 없었다.
“매혼단을 먹으면 돌이킬 수 없습니다.”
“하지만 지금보다 세 배는 강해지겠지.”
“화산을 점거했다고 해도 수하들이 없다면 향후 궁주의 세력을 인정받지 못할 겁니다.”
복천적은 단호했다.
결국 대주들은 매혼단(梅渾丹)을 영약으로 속여 대원들에게 나눠줬다. 복천적은 일을 마치고 돌아온 대주들에게 유지로 감싼 단약을 건넸다.
“이게 뭡니까?”
“매혼단을 개량한 정혼단이다. 이건 뒤탈이 없어.”
복천적은 자신의 말을 증명하듯 먼저 정혼단을 삼켰다.
‘정혼단은 다섯 배의 위력을 낼 수 있다. 반드시 애매에게 화산을 바치겠어!’
복천적은 어느 순간부터 광적으로 애매에게 집착했다.
강림혼요술의 힘이었지만, 그는 연모의 감정이라고 여겼다. 그러니 매혼단보다 독성이 강한 정혼단을 망설임 없이 삼킬 수 있었다. 하나 대주들은 그것도 모른 채 희희낙락하여 정혼단을 삼켰다.
“우리에게 남은 시간은 한 시진이다.”
“그 전에 화산을 잿더미로 만듭시다!”
*
혈천궁의 부궁주는 보고를 받고, 눈을 가늘게 떴다.
복천적과 수하들이 이름 없는 도인들에게 큰 손해를 봤다는 정보를 접한 후였다. 그는 밀법대종사를 돌아보며 물었다.
“종사께서도 알고 계셨습니까?”
“몰랐지. 하나 알았어도 무슨 문제가 되겠는가?”
밀법대종사는 강 건너 불구경을 하듯 키득거렸다.
“일인전승이나 깨달음을 얻은 구도자들이 어디에 있을 것 같은가? 저자? 화려한 집? 아니지. 그들은 천기를 받고자 하늘과 가까운 곳으로 가네. 오악 중 한 곳인 화산이라면 별의별 놈이 다 튀어나와도 이상할 것이 없지.”
“이곳은 어떻습니까?”
부궁주는 혹시 모를 도인들과의 만남을 경계했다.
하나 밀법대종사는 그 또한 신경 쓰지 않았다.
“낙안봉은 뾰족하고, 높아. 도관을 차리기에 힘든 장소지. 게다가 금지로 지정해놨으니 마른하늘의 날벼락 같은 상황은 벌어지지 않을 걸세.”
“좋습니다.”
부궁주는 안개인지, 구름인지 모를 희뿌연 것에 휘감긴 낙안봉 정상을 보며 읊조렸다.
“일차 집결지는 노군동이다. 출발하라.”
< 29, 화산의 괴물들. (2) > 끝
ⓒ 김태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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