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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산마신-50화 (50/226)

< 19, 이마일체(二魔一體). (2) >

문후는 이훤을 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 와중에도 웃고 있는 걸 보면 확실히 얼굴 자체가 저렇게 생겨먹은 듯했다.

“초면입니다만.”

대화를 이어가기 어려웠다.

눈치를 보던 소우륜이 움직였다.

“쥐새끼 같은 놈이!”

쾅! 쾅!

이훤이 허공에서 내리꽂히는 순간 대전의 바닥이 반구형으로 파였다. 소우륜은 지금까지의 경험을 토대로 검을 거둘 수밖에 없었다. 마치 처음 보법을 배운 사람처럼 우격다짐이나 마찬가지였지만, 그 위력은 지금껏 경험해보지 못했을 만큼 엄청났다.

촤라라라라락-

소우륜의 쌍검이 전방을 노리는 순간 등 뒤에서 네 개의 더 솟구쳤다. 그를 팔검기객이라 불리게 만들어준 육검합기공(六劍合氣功)이다.

‘새끼, 잔재주는 여전하네.’

이훤은 코웃음을 치며 손가락을 뻗었다.

허공을 향해 절혼지를 날리는 순간 소우륜의 등 뒤에서 솟구친 네 개의 검이 힘을 잃고 떨어졌다. 기관과 천잠사를 활용한 사술은 회귀하기 전 수도 없이 경험하지 않았던가. 그리고 육검합기공을 펼쳤을 때의 약점이야 말로 소우륜보다 이훤이 더 잘 알고 있었다.

파파팟-

자세를 한껏 낮춘 채 아래에서 위로 짓쳐드는 순간 소우륜의 아랫배가 훤히 드러났다. 파륜권의 묘리가 담긴 일권을 올려쳤고, 그대로 몸을 띄워 무릎으로 턱을 차올렸으며, 두 발을 모아 놈의 가슴을 걷어찼다.

꽈드드득-

소우륜은 찰나간 고깃덩이가 된 채로 나뒹굴었다.

“저, 저 놈 뭐야?”

인왕은 악귀처럼 혈광을 번뜩이는 이훤을 보며 더듬거렸다. 이제는 두 손이 아니라 몸 전체에서 붉은 기운이 스멀스멀 피어올랐다.

‘무당파의 종초홍을 찾아가면 살 길이 열릴 거다.’

이훤은 고천락의 건승을 빈 후 적과의 거리를 좁혔다.

인왕이 짐짓 놀라며 대도를 겨눴다.

하나 이훤이 노리는 건 칼이 아니라 칼의 주인이다.

지금껏 미동도 하지 않은 채 대국을 주시하던 소마를 죽일 차례였다. 회귀 전의 기억을 떠올리면 소마의 무공은 대단하지 않았다. 그는 얼굴로 사람을 홀리고, 말로 사람을 죽였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내게는 의미 없다!’

핏빛 기운이 넘실거리는 주먹을 들어 올리는 순간 소마가 일갈을 내질렀다.

“막아라!”

그 순간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인왕을 지키던 우사자가 몸을 던지다시피 끼어드는 것이 아닌가. 그는 검을 휘두르는 순간 검기가 다발처럼 솟구치며 올올히 출렁였다.

검기(劍氣)의 다음 단계인 검사(劍絲).

좌사자보다 두 배는 강한 듯했다.

이훤은 삽시간에 십여 번의 주먹을 내질렀다.

터터터터터터텅!

하나 힘이 부친 쪽은 우사자였다.

그가 비틀거리며 물러서는 순간 이훤이 허공으로 몸을 띄웠다.

“인왕! 쥐새끼를 쫓아!”

인왕은 갑작스런 상황에 넋을 놓고 있다가 소마의 일갈을 듣고 정신을 차린 듯했다. 그는 눈을 끔뻑이더니 황급히 고천락이 뚫고 나간 창문을 향해 내달렸다.

“쯧.”

회귀 전이나 후나 머리 돌아가는 건 잽싼 놈이다.

이훤은 문후를 한 차례 노려본 후 반대로 몸을 띄웠다.

콰쾅!

군림보는 시끄럽고, 투박하다.

하지만 효과는 확실했다.

인왕은 거리가 상당함에도 흠칫 놀라며 돌아섰다.

이훤은 소우륜이 놓친 검을 주워들고, 환야팔검을 펼쳤다.

촤라라라라락!

검영이 현란하게 번뜩이며 보법의 부실함을 감춰줬다. 인왕이 정신을 차렸을 때에는 이미 지척에 이르러 검과 도를 맞닿아야 했다

텅!

쇳소리 대신 기의 충돌이 일어났다.

인왕은 미간을 좁혔다.

“뭐야? 이거!”

생경한 감각이었다. 기와 기의 충돌이면 어찌됐든 우열이 가려졌어야 했다. 돼지비계를 때린 것처럼 묘한 감각이었고, 대도에 맺힌 기운은 솜이 물을 빨아들이듯 흡수됐다. 그렇다고 사술의 일종인 사령흡기공(邪靈吸氣功)은 또 아니었다.

이훤은 헛웃음을 흘렸다.

“느껴져? 돼지 같은 놈이 제법 한 수가 있구나.”

인왕은 얼굴을 붉히며 일갈을 내질렀다.

“한 때 혈도가의 장로로 참룡마도라 불렸던 나다! 괴이한 사술을 믿고, 까부는 것도 이제 끝이야.”

그의 대도에서 우사자가 보여줬던 것처럼 도기가 올올이 맺히면서 도사(刀絲)가 발현됐다. 하나 이훤의 시선은 인왕의 어깨 너머로 보이는 소마에게서 떨어지지 않았다. 그는 이쪽을 응시하면서도 우사자와 대화를 나눴다. 아마 인왕이 느꼈던 기이한 감각을 보고하는 듯했다.

“쯧.”

소마의 웃는 얼굴을 보고 있자니 눈앞의 인왕이 너무나 거치적거렸다.

“참룡마도라고?”

패도라면 패도로 응수한다.

검을 고쳐 잡았다.

철혈도법(鐵血刀法)을 검으로 펼칠 셈이다.

반면 인왕은 말도 벨 수 있을 것처럼 커다란 도를 휘저으며 말했다.

“이 별호를 얻기 위해 내 삶은 어둠으로 물든······.”

이훤이 누군가의 과거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려면 천하삼대명주 정도는 앞에 내어놓고 있어야 할 터였다. 인왕은 말을 채 끝맺기도 전에 지척에 이른 이훤을 보며 이를 갈았다. 하나 흉중의 화를 풀어내기엔 이훤의 도법이 너무 매서웠다. 검을 도처럼 올려치는 순간 공간이 갈라지는 듯한 착각까지 할 정도였다.

범상치 않은 도법이다.

“아까처럼 열심히 달려들어야지.”

이훤의 도발에도 인왕은 거리를 유지할 뿐 선공을 취하지 않았다. 아닌 말로 이훤과 드잡이 질을 해서 이긴다고 무슨 이득이 있겠는가. 지금이라도 비급을 가지고 도망친 쥐새끼를 쫓아가고 싶었다.

‘저것들은 또 어떻게 된 사이란 말인가?’

그리고 문후와 우사자의 관계도 신경이 쓰였다.

좌우사자는 인왕이 개미굴에 들어오기 전 우연히 의기투합하여 의형제를 맺은 사이다. 그렇기에 개미굴에 들어온 후 일인지하만인지상의 자리를 내어주지 않았던가. 심지어 개미굴에 들어온 시기도 문후가 제일 늦었다. 하나 마교의 추격대에게도 도망쳐 나온 감이 경고했다. 저것들의 관계가 아주 오래 됐음을 말이다.

‘설마 이 철혈마도가 남의 판의 졸로 이용된 건가?’

짜증과 분노, 자괴감이 이어질수록 전장에서 이탈하고 싶은 생각만 가득했다.

솨아아아아-

도가의 경구 중 채울수록 비우라는 말이 있다.

허(虛)의 묘(妙).

이훤과 망아취자는 주도(酒道)에 빗대어 허를 논했다. 하나 무공이야 말로 허의 묘리를 극대화할 터였다. 마음속에 생각이 많고, 복잡할수록 비워야 했다.

그러니 ‘인왕을 베고 소마를 벤다.’라는 일념으로 덤벼드는 이훤에게 있어서 인왕의 자세는 허점투성이였다.

아아아악-

검에 휘감긴 기운이 붉은 꼬리를 남기며 위에서 아래로 향했다. 인왕은 눈으로 이훤을 보고 있었음에도 검 끝이 정수리 근처에 이르렀을 때에야 인지할 수 있었다.

“으어.”

철혈도의 묘리는 오직 하나다.

모든 무학과 모든 깨달음을 더하여 상대를 벨 수 있는 단 하나의 길을 찾는 게다. 그걸 위해서라면 초식의 투로나 내공의 배분에 의미를 부여하지 않았다.

촤아아아악!

도사까지 펼치던 고수가 일도에 절반으로 쪼개졌다.

이훤은 인왕의 시신이 흩뿌린 핏물을 헤치며 돌진했다.

파팟-

시선의 끝은 처음부터 소마였다.

“그렇다면 염두에 둬야겠군요.”

소마는 그 말을 남긴 채 돌아섰다.

우사자는 자연스럽게 검을 늘어트리며 이훤을 막았다.

“축하하네.”

“뭐라는 거야? 늙은이야!”

이훤은 우사자의 지척에 이른 순간 몸을 휘돌렸다.

한 바퀴를 도는 순간 검은 상중하를 찔렀다.

터터텅!

우사자는 검을 걷어내더니 입꼬리를 올렸다.

“누군가의 관심을 받는다는 건 그리 쉬운 일이 아니라네. 그러니 자네를 죽이지는 않을 것이야. 생사는······.”

이훤은 미간을 좁힌 채 멀어지는 소마를 응시했다.

인왕전 밖이 아니라 단상 위로 올라가는 것으로 보아 탈출구가 따로 있을 터였다.

“그 나이를 먹고 남의 하수인이나 하고 있으면 부끄러운 줄 알아야지. 어디서 훈계를 하는 거지?”

이훤은 조급함을 숨긴 채 우사자를 향해 다가섰다.

“허허, 강호를 홀로 종횡하는 것이야 모두의 꿈이겠지. 하지만 말일세.”

쾅!

우사자는 미간을 좁혔다.

이훤의 눈에 맺힌 귀화는 놀랍지 않았다. 하나 군림보를 펼치는 순간 귀화가 허공으로 솟구치는 듯하더니 아래로 낮게 깔리는 것이 아닌가.

우사자는 본능적으로 절초를 펼쳤다.

검이 바람개비처럼 휘돌며 전방을 막았다.

하나 널뛰기를 하듯 튀던 귀화가 한순간 점멸하더니 지척에 이르렀다. 마치 붉은 안개가 뭉친 것처럼 한 덩어리가 되어 전방을 찢어발겼다. 환야팔검을 극성으로 펼치는 순간 우사자의 검기는 나무토막처럼 갈려나갔다. 우사자의 두 눈이 경악으로 물들었을 무렵 귓가에 악귀의 속삭임이 전해졌다.

“씨발, 어떻게 절박함이 없어.”

탈마는 언젠가 술을 취하여 취마를 평했다.

- 형님은 용도, 호랑이도 아니고, 이리요. 이리.

- 어, 너는 쥐새끼.

- 그냥 막 물어뜯거든. 형님이 지나가면 훔칠 게 없소. 주머니도 찢고, 그 안의 내용물도 찢고, 사람까지 찢어발기잖아. 이래서야 협동이 안 된다니까?

알게 뭐람.

이훤의 강호는 언제나 마지막처럼 치열했다.

다리를 고치기 위해 싸우고, 술을 마시기 위해 싸우고, 살기 위해 싸웠다. 단 한 번도 꿍꿍이를 가지고 남을 대한 적이 없다.

살기 위해, 이기기 위해 전력을 다했다.

인왕이나 우사자처럼 뒷일을 대비하고, 다른 속셈을 지닌 자들이야 말로 이리가 먹이를 상대하듯 갈가리 찢어버릴 것이다.

쩡!

기와 기가 흩어지고, 쇠와 쇠가 부딪쳤다.

검과 검이 깨지는 순간 절혼지가 우사자의 어깨를 파고들었다. 다섯 손가락이 어깨를 찍고, 반대편 손은 삼초나락수를 펼치며 아랫배를 두드렸다.

이제야 공청석유를 마신 보람이 느껴진다.

절혼지는 단전의 내공을 활용했고, 삼초나락수는 혈륜으로 위력을 선보였다. 양 주먹에 맺힌 붉은 기운이 파륜권이라는 이름으로 우사자의 전신을 헤집었다.

퍼퍼퍼퍼퍼퍽!

이훤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소마를 향해 달렸다.

콰콰쾅!

군림보를 쉼 없이 펼치는 순간 온 몸이 뻐근했다.

“소마! 이 새끼야!”

이훤의 대갈일성과 함께 손에 쥐고 있던 검을 던졌다.

비밀통로에 들어서던 소마가 힐끔 돌아봤다.

역시 놈의 무위는 회귀 전이나 후나 별로였다.

검이 어깨를 절반이나 파고들었다.

한데 소마는 고통을 느끼지 못하는 것처럼 힐끔 돌아보더니 입술을 달싹였다.

“회창산 관음동.”

그가 들어선 통로가 닫혔고, 이훤의 주먹이 문을 박살냈다. 이훤은 문을 박살냈음에도 두 번째 철문이 나타난 것을 보고 이를 갈았다.

“웃어? 칼을 맞으면서도 웃어?”

쾅! 쾅! 쾅! 쾅!

주먹질과 발길질이 이어질 때마다 단상 위는 초토화가 됐다. 잠시 후 단상 자체가 무너진 후에야 이훤은 장탄식을 흘렸다.

뚜벅뚜벅-

이훤은 술상 앞에 앉았다.

술을 병 째 마시고, 안주를 손으로 집어먹었다.

마치 석 달 열흘을 굶은 사람처럼 마구잡이로 들이켰다.

“이리와.”

한 쪽 팔을 잡고 땀을 뻘뻘 흘리던 우작이 눈을 부릅떴다. 하나 이훤의 눈빛이 이어지자, 슬그머니 술상 앞으로 다가와 무릎을 꿇었다.

“살고 싶지?”

“그, 그렇습니다.”

“네 형을 죽였는데도 나를 내버려둘 거야?”

“강호의 법도가 그렇지 않습니까.”

이훤은 눈을 가늘게 뜨며 파산룡 우작을 응시했다.

“강호의 법도. 좋지. 한데 강호인은 양민을 괴롭히지 말아야 한다는 말도 들었겠지? 여염집 처자를 납치해서 강간하고, 몰래 묻는 게 취미라며?”

우작의 두 눈이 찢어질 것처럼 커졌다.

푹푹푹푹푹!

이훤의 손을 떠난 젓가락이 우작의 얼굴에 박혔고, 이내 진저리를 치며 뒤로 넘어갔다.

“지금은 아니었어도 괜찮아. 넌 언젠가 그 짓을 했을 테니까.”

인왕부 전체가 난리통임에도 인왕전은 고요했다.

살아서 숨을 쉬는 건 이훤과 무암자였다.

이훤은 마지막 남은 술병을 들고, 무암자 앞에 섰다. 그는 여전히 넋이 나간처럼 고개를 숙인 채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

“한 잔 받으세요.”

잠시 후 힘없는 한 마디가 들렸다.

“그냥 죽이게.”

이훤은 억지로 무암자의 손에 잔을 들려준 후 술을 따랐다. 그리고 자신의 잔에도 술을 채운 후 두 손으로 들어올렸다.

“우리의 인연이 이제 끝남을 하늘에 고하며······.”

무암자는 영문 모를 표정을 지었다.

방금 만난 사이에 생사를 겨루지 않았던가.

한데 마치 친인을 대하듯 하는 모습이 낯설기만 했다.

이훤은 술을 들이켰다.

“거래였지만, 고마웠소.”

진심이었다.

공청석유를 마셨어도 천공혈륜겁이 없었다면 회귀 전의 삶은 더욱 처참했으리라.

무암자는 이훤을 바라보다가 술잔을 기울였다.

“이 또한 하늘의 뜻임을 받아들이겠나이다.”

그리고는 몸을 돌려 인왕전 밖으로 나가려 했다.

“어디 가십니까?”

“사형들이 오신다고 들었네.”

“가면 좋은 꼴은 못 볼 텐데요.”

“일이 이렇게 된 이상 죽을 때만이라도 무당의 문도로 가고 싶네.”

이훤은 그런 무암자를 잡아끌었다.

“갈 때 가더라도 딸아이는 살리고 가십시오.”

잠시 후 인왕부의 심처에 보고가 열렸다.

무암자는 약을 챙겼고, 이훤을 향해 절을 했다.

“은공께서 베푸신 덕은 제가 갚지 못한다면 딸아이가 반드시 갚을 것입니다.”

그그그극-

보고(寶庫)의 문이 닫혔다.

그 즈음 인왕부 전체의 쇳소리가 잦아들었다.

밀물처럼 무인들이 몰려오는 것으로 보아 무림맹의 승리가 분명했다.

무암자는 홀가분한 표정으로 인왕전 밖으로 떠났다.

이훤은 보고의 흔적을 숨긴 후 입꼬리를 올렸다.

‘이제 다 내 꺼지.’

소마를 놓친 건 안타깝다.

하나 개미굴에서 한 가지를 먹고, 한 가지를 얻고, 한 사람을 죽이는 건 이루지 않았던가.

그렇기에 그 또한 기분 좋게 인왕전을 나섰다.

“형님!”

“형님!”

이훤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두 사람이 자신을 향해 환하게 웃으며 달려오는 것이 아닌가. 그리고 두 사람은 서로를 보며 고개를 갸웃거리더니 경계를 하듯 천천히 다가왔다.

이훤은 종초홍과 고천락을 보며 헛웃음을 지었다.

나이 많은 동생과 장차 대도가 되실 동생이 생겼다.

‘아무래도 회귀 전보다는······.’

훨씬 즐거웠다.

< 19, 이마일체(二魔一體). (2) > 끝

ⓒ 김태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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