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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산마신-13화 (13/226)

< 6, 처음으로 술을 버렸다. (2) >

6, 처음으로 술을 버렸다. (2)

*

“뭣들 하는 것이야?”

진무관주의 일갈이다.

초도각주는 눈을 가늘게 떴고, 정무관주는 턱이 빠진 사람처럼 입을 벌렸다.

그도 그럴 것이 눈앞의 광경은 너무나 흉흉했다.

진무관의 관도 한 명은 게거품을 물었고, 다른 한 명이 머리가 깨진 듯 피투성이였다. 게다가 계단 옆 수풀에서 발이 튀어나온 것으로 보아 한 명이 더 있는 듯했다.

“도대체! 이게 어찌된 일이야?”

진무관주의 울분 가득한 외침에 사마충은 끙끙 앓는 소리를 내며 몸을 일으켰다. 부러진 목검에 의지한 채 비틀거리다가 한 차례 더 주저앉았다.

“관주님. 제자, 어! 사마충이 인사를. 쿨럭! 드립니다.”

이훤은 몸을 조금 더 웅크렸다.

사마충의 목소리를 듣는 순간 웃음이 터져 나올 뻔했다. 하지만 효과는 좋았다. 피투성이의 제자가 말을 더듬으며 비틀거리니 어찌 안쓰럽지 않을까. 역시 사마충에게 먼저 대사를 준 것이 주효했다.

‘아! 그나저나 내 술은 어찌한단 말인가.’

이훤은 소리 없이 이를 갈았다.

사마충에게 받은 술이 오늘로 열한 병 째였다.

그러니 별 다른 사건이 없었다면 십일향주(十一香酒)라고 이름 붙인 후 뜨거운 밤을 보냈으리라. 한데 이름도 불러보지 못한 채 쓸모없는 놈들에게 끼얹어야 했다.

이런 적은 처음이다.

회귀 전까지 통틀어도 기억에 없을 정도였다.

그만큼 소중한 술이었다.

아니, 술은 모두 소중했다.

회귀 전 취마(醉魔)라 불렸던 시절이라면 광야제(狂夜帝)가 되어 피바다를 만들었으리라. 놈들의 뼈라는 뼈는 모조리 부러트린 후 절벽 아래로 걷어찼을 터였다.

‘철저하게 복수해주마.’

이훤은 가슴팍을 부여잡고,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진흙투성이인 옷에는 발자국이 선명했다.

“으으으.”

애절하게 불러보려 했지만, 정무관주 양통의 얼굴을 보는 순간 울상을 지을 수 없었다. 저 자와는 전생에서부터 좋게 지낼 수 없는 사이였다.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설명해 보라.”

“제가 청소를 하던 중 저들이 나타났습니다.”

고자질을 할 때에는 어조에 신경을 써야 한다.

정무관주를 보고는 분위기가 잡히지 않았기에 초도각주를 바라보며 억울함을 호소했다.

“술에 취한 저 녀석들이 먼저 시비를 걸면서 말하길 원가휘의 복수를 해주겠다고 했습니다. 아무리 친하게 지내도 그렇지. 유리검 유 대협과 초도각주께서 처결을 내리셨는데 이렇듯 시비를 걸다니요.”

진무관주는 눈을 휘둥그레 떴다.

그는 뒤늦게 관도들을 살폈지만, 모두 혼절한 탓에 저간의 사정을 들을 수 없었다. 하나 가까이만 가도 술 냄새가 진동을 했다.

“뭐 이런 말도 안 되는 상황이.”

초도각주가 혀를 찼다.

“비록 이곳이 화산의 경내는 아니라지만, 장차 화산의 제자를 목표로 하는 관도가 음주를 하다니.”

화산파는 도가문파로 분류되지만, 정통이라 칭해지는 무당파와는 궤가 달랐다.

도호의 사용은 재량이었고, 혼인도 가능했다.

하여 화산파 내에서도 도명을 지닌 자보다 속명을 유지하는 문도가 훨씬 많았다. 게다가 문도끼리의 혼인은 물론이고, 술과 고기도 자유로웠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정식 문도도 아닌 어린 관도들에게 음주를 허락할 리 만무했다.

진무관주는 똥 씹은 표정을 지었다.

그는 원가휘와 관도들의 관계를 모르지 않았다. 오히려 원가휘에게 뒷돈을 받고, 연결해주기도 했다. 그렇기에 저들이 술김에 복수를 하겠다고 나섰다고 해도 의심할 수 없었다.

화제를 돌려야 했다.

“저, 저 놈은 왜 여기에 있느냐? 분명 청소 중에는 출입을 금한다고 하지 않았더냐!”

사마충은 기다렸다는 듯 무릎을 꿇었다.

이미 이훤이 예상한 질문이었기에 준비된 대답이 흘러나왔다.

“제자가 요즘 형님과 친하게 지내고 있습니다. 정무관의 발전을 도모하고자 자주 만나던 중 형님이 고생하시는 것이 안타까워 그만······.”

녀석은 제가 마시던 물병을 슬쩍 내밀었다.

“따뜻한 차라도 마시고 하셨음 해서 명령을 어겼습니다. 모든 죄는 제게 있으니 벌을 내리셔도 감수하겠습니다.”

이 또한 좋지 않은가.

한쪽은 술을 마신 후 싸움을 걸고, 다른 한 쪽은 우애 좋게 발전을 도모한단다. 신뢰의 무게 추가 어느 쪽으로 기울지는 불을 보듯 뻔했다.

“동도를 생각하는 마음가짐이 애틋하다. 하나 명을 어긴 것에 대한 벌은 받아야 할 터, 사마충에게 선유동, 일 일 폐관을 명한다. 지금 당장 수행하라.”

초도각주의 단호한 한 마디였다.

진무관주가 어처구니없어 하는 가운데 정무관주가 아예 절을 하며 대꾸했다.

“관도들을 제대로 간수하지 못한 제 잘못도 있습니다. 각주께서 허락하신다면 내일 저녁까지 금식하며 반성하겠습니다.”

“그리 하시게.”

초도각주는 만족스러운 듯 고개를 끄덕였다.

하나 진무관주는 이번에도 헛웃음만 연발했다.

‘아니, 나만 빼고 또 분위기가 이상해지네.’

정무관주는 사마충을 부축하며 자리를 떴다.

초도각주는 한 숨을 내쉬었다.

“관주.”

“예, 예!”

“그대는 본산에서 초도각을 어찌 생각하는지 알 고 있을 게요. 그렇다고 해서 분위기에 편승하여 관도들과 함께 들떠서는 아니 되오. 그대부터 포기한다면 누가 초도각에 정을 붙이겠소이까. 내 뜻을 알겠소?”

진무관주는 고개를 들지 못했다.

“죄송합니다. 각주께서 초도각을 화산파의 산실로 만드시고자 하는 의지를 어찌 모르겠습니다. 모두 제 불찰입니다. 제가 제대로 가르쳐서 앞으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초도각주는 모든 걸 관도들에게 미루는 진무관주를 보며 입맛을 다셨다.

‘정무관은 현실에 안주하여 유지하는 걸로도 급급하고, 진무관은 속세의 관부처럼 아수라장이로구나.’

그는 눈을 가늘게 뜨고, 이훤을 응시했다.

‘그래도 저 녀석이라면.’

그 사이 진무관주가 안쓰러운 표정을 지으며 이훤에게 다가왔다.

“많이 다쳤느냐?”

“멍이 들지는 모르겠지만, 지금은 괜찮습니다.”

이훤이 빠르게 대답했다.

하나 진무관주는 못들은 척 다가와 손을 맞잡았다.

그러면서 은근슬쩍 맥문에 엄지를 얹는다.

‘하아, 예상 그대로 움직여주니 더더욱 네놈이 우스워지는구나.’

반면 이훤의 조소와 달리 진무관주는 표정을 굳혔다.

‘빌어먹을! 아예 내공이 느껴지지 않는군. 하긴 저 놈들이 술에 취하지 않았다면 어찌 이런 놈들에게 당했을까. 하려거든 제대로나 하지. 등신 같은 놈들!’

그는 혼절한 진무관도들을 흘겨본 후 돌아섰다.

이훤은 소리 없이 코웃음을 쳤다.

‘네깟 놈이 짚어본다고 뭘 알까?’

이미 회귀 전에도 경험하지 않았던가.

무림의 명숙이라고 떵떵거리던 자도 혈륜을 눈치 채지 못했다. 대뜸 이훤의 내공이 빈약함을 비웃으며 한참을 도발하더라. 물론 그 날 밤 이훤이 직접 장강의 물고기 밥으로 만들어줬다. 땅 위에서 쓸모가 없으니 물속에서라도 쓸모가 있기를 바랄 뿐이다.

“각주, 그럼 저는 저 놈들을 챙겨서 돌아가겠습니다.”

진무관주는 관도들을 짐짝처럼 옆구리에 끼고 계단을 올랐다.

“각주께 청이 있습니다.”

이훤은 자세를 바로 했다.

“듣겠다.”

“저 녀석들은 큰 잘못을 했습니다. 하나 원인은 동도를 아끼는 마음이 엇나갔기 때문이 아닐까······.”

초도각주는 말을 끊었다.

“알겠다. 선처하마.”

이훤은 고개를 숙인 채 미간을 좁혔다.

‘이렇게 쉽게?’

관도들이 지금은 입 닥치고 있겠지만, 퇴출이라도 당하면 같이 죽자고 달려들 수도 있다. 게다가 곁에 두는 편이 원한을 해소하기도 좋았다. 하여 몇 가지 이유를 준비했거늘 모든 것이 너무 쉽게 풀렸다.

당황스러울 만큼.

이훤은 고개를 들어 초도각주의 표정을 확인하는 대신 말을 이었다.

“감사합니다.”

“그래, 기껏 청소를 했는데 다시 지저분해졌구나. 벌이 끝나는 날까지 고생을 하려무나.”

“알겠습니다.”

초도각주마저 떠났다.

이제 백팔계 주변은 서늘한 바람만 가득했다.

이훤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모든 일이 원하는 대로 이뤄졌음에도 어딘가 모르게 찜찜했다.

‘쯧, 초도각에 대해 아는 것이 없으니 불편하군.’

사마충이나 양칠을 조금 더 닦달해봐야겠다.

이훤은 마음을 접고 청소를 이어가려 했다.

하나 이내 인상을 쓰며 땅이 꺼져라 한 숨을 흘렸다.

“아! 내 빗자루.”

11호가 누워 있던 자리에는 부러진 빗자루만이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

초도각주는 화산파의 이대 제자로 도학에 조예가 깊다. 무공도 상당했지만, 처음부터 구도자의 길을 택했다. 그렇기에 작금에 이르러서도 초도각에 대한 애착이 다른 사형제들에 비해 남달랐다.

“흐음.”

그는 며칠 전 마주했던 하인을 떠올렸다.

평소와 달리 주눅이 들었기에 납품하는 물건을 살펴봤다. 그러던 중 짚단을 몇 겹이나 싸맨 술병을 발견하고, 추궁했다.

사마충과 이훤의 관계를 알게 된 건 그쯤이었다.

초도각주는 평소와 달리 콧노래를 부르며 붓을 놀렸다.

「사형에게.

초도각의 명운을 논할 때마다 부정적이셨지요.

이대로 고여서 썩는 것보다 물장구를 쳐서라도 진흙탕으로 변하는 쪽이 낫다고 하셨지요. 한데 요즘 들어 미꾸라지 한 마리가 시원하게 물장구를 치고 있다오. 추후에 여유가 되시거든 한 해를 마무리하는 기념으로 초도각에서 차 한 잔 하셨으면 좋겠습니다.」

며칠 후 해가 바뀌었다.

그리고 천공혈륜겁의 성취는 드디어 일 성에 이르렀다.

아껴뒀던 무공을 익힐 차례였다.

< 6, 처음으로 술을 버렸다. (2) > 끝

ⓒ 김태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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