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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산마신-12화 (12/226)

< 6, 처음으로 술을 버렸다. >

6, 처음으로 술을 버렸다.

“쟤들은 말이지.”

사마충은 잔뜩 긴장한 상태로 저들의 정보를 설명했다.

관도의 번호는 초도각 입관 후 반 년이 지났을 때의 정보를 토대로 하여 배정됐다. 관주들은 인정하지 않았지만, 서열을 정해놓았다는 평이 지배적이다. 백팔계를 내려오는 진무관도들은 각기 3호, 7호, 11호 였다.

이훤은 웃었다.

“돈이 좋긴 좋네.”

서열 상으로 3호가 5호인 원가휘의 명령을 받는 건 상상하기 힘들었다. 분명 어떠한 대가를 통해 만들어진 관계가 아닐까 싶다.

놀라운 일은 아니다.

그도 그럴 것이 이훤의 평가대로 진무관과 정무관의 관도들이 화산파 문도가 되는 건 하늘의 별 따기였다. 그러니 계산 빠른 녀석들은 벌써부터 초도각 졸업 이후의 삶을 계획했다. 진무관 3호의 선택은 졸업 후 원영검문의 칼잡이가 되는 것이리라.

“아! 너 때문에 며칠 동안 많이 힘들었어.”

가장 서열이 낮은 11호는 투덜거리듯 말을 걸었다.

수다스러운 놈은 가만히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많은 정보를 전해준다. 아니나 다를까 녀석을 통해 비무 이후 진무관의 상황을 손바닥 위에서 살필 수 있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네가 가휘를 이기는 건 불가능하잖아. 그래서 결과는 뭐다? 배신자다! 이십 일 가까이 원가휘의 정보를 빼돌린 놈을 찾으려고 아주 난리도 아니었어. 그러니 우리가 얼마나 피곤했겠니. 더불어 많이 짜증이 났겠지? 어떻게 보상할 거야?”

“그래서 유리검이 직접 출입을 금지했는데도 몰래 찾아온 거냐?”

11호는 코웃음을 쳤다.

“우리가 너랑 놀려고 온 것도 아닌데 소문을 내면 안 되지. 원래 결말이 안 좋을수록 은밀해야 하는 거야. 예를 들어서 네가 입을 열 수 없게 되었을 때도 우리를 의심하지 않도록 말이지.”

녀석은 겁이라도 주려는 듯 잔뜩 인상을 썼다.

한데 그 모습이 참으로 우습다.

결국 저 세 명과 원가휘를 제외하면 오늘 일을 아무도 알 수 없다는 의미가 아닌가.

이훤은 세 명의 관도를 향해 손바닥을 내밀었다.

“잠깐! 나를 상대하려면 내 수하를 먼저 이겨야 할 거다.”

“나?”

사마충이 눈을 휘둥그레 떴다.

“열흘 동안 열심히 했잖아. 자신 없냐? 장차 원가휘를 이기고, 초도각에서 군림해야 할 사람이 누구지?”

“나, 나다.”

꼬맹이를 부추기는 건 일도 아니지.

이훤과 사마충이 귀엣말을 나누는 사이 진무관의 관도들은 기가 차다는 듯 폭소를 터트렸다.

“쟤, 사마충이잖아.”

“아! 능력도 없고, 말도 못 하고, 진무관에도 못 온 반편이가 저 놈이었네.”

이훤은 남몰래 경악을 금치 못했다.

그는 초도각이나, 관도들에 대한 기대를 접은 지 오래였다. 비단 그만의 일은 아닐 것이다. 화산파 또한 성세(聲勢)가 기울어 궁여지책으로 만든 것이 초도각이다. 아마 대부분의 화산파 문도들은 초도각을 속가의 무관 정도로 여길 터였다.

그러니 관도들이 망종처럼 날뛸 수 있는 게다.

화산파에서 신경을 쓰지 않기에.

‘그래도 진무관이 정무관보다는 몇 수 위네.’

삼류 흑도에게 직접 사사한 것처럼 자연스러운 도발을 보라. 쉴 새 없이 상대방을 자극하여 흥분하게 만드는 혀 놀림은 하루 이틀 내에 완성할 수 없는 능력이었다.

‘포대웅 같은 놈은 옹알이하는 아기 수준이었네.’

이훤은 사마충을 가리키며 외쳤다.

“너희들이 말이 옳다! 그러니 누가 나서서 이 모자란 녀석을 혼내줄래?”

대뜸 11호가 나서려 했다.

하나 이훤이 고개를 내저었다.

“아니지. 혼내주려면 제대로 해야지. 내 생각에 가운데 있는 네가 좋을 것 같은데.”

사마충의 안색이 흐려졌다.

이훤이 지목한 녀석은 세 명 중에서 가장 덩치가 좋은 7호였고, 놈의 완력은 정무관에서 소문이 자자했다.

“저, 저 놈은. 킁! 힘이······.”

그래도 애초에 싸울 생각을 하는 걸 보면 지난 열흘 동안 신뢰가 쌓인 듯했다.

반면 7호는 코웃음을 치며 나섰다.

“설마 저런 반편이로 내 힘을 빼놓으려는 수작이냐? 귀엽게 노네. 오랜만에 나선 길이니까 모르는 척 어울려 주마.”

11호 보다 덜했을 뿐 7호도 말이 많다.

수다스러움은 호흡을 흐트러트린다.

그리고 남자의 가치도 떨어트리지.

이훤은 사마충의 어깨에 손을 올린 채 귀엣말을 했다.

“저 놈도 강검이다. 강검 대 강검에서 내가 강조한 게 뭐지?”

사마충은 침을 꿀꺽 삼키며 중얼거렸다.

“눈썰미.”

“내가 장담컨대 11호보다 7호가 훨씬 쉬울 거다. 그리고······.”

이훤은 유혹을 하듯 속삭였다.

“너는 진무관 7호를 이기는 남자가 되는 거지.”

“오오오! 좋아.”

이럴 때에는 말을 안 더듬는구나.

이훤은 눈짓으로 계단을 가리켰다.

백팔계는 며칠 동안 청소를 했지만, 예전과 큰 차이가 없었다. 여전히 살얼음이 꼈고, 울퉁불퉁했으며, 낙엽으로 인해 발 디딜 곳이 마땅치 않았다.

사마충은 미약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지난 며칠 동안 몇십 번이나 계단을 나뒹굴지 않았던가. 심지어 이훤은 수련을 빙자해서 청소까지 대신 시켰다. 한데 그것은 고스란히 지리적 이점이 되었다.

사마충은 호흡을 조절했다.

그리고 이제는 자연스럽게 말을 하는 대신 검지를 까딱였다.

“하! 새끼, 어디서 이상한 걸 배워왔네.”

7호는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 헛웃음을 지으며 목검을 뽑았다. 그리고 맹렬한 기세로 사마충을 향해 달려들었다. 하나 세 걸음을 떼기도 전에 자세가 무너지며 비틀거렸다. 반면 사마충은 아래에서 위로 달리는 와중에도 중심을 잃지 않았다.

딱!

목검과 목검이 격돌했다.

한 쪽은 황의상단에서 직접 공수한 목검이고, 다른 쪽도 원영검문에서 원가휘를 통해 지급한 목검일 터였다.

그렇기에 가루가 날리는 대신 강렬한 반동이 뒤이었다.

이번에도 사마충이 먼저 반발력을 해소했다. 지난 며칠 간 이훤에게 기초적인 무리를 반복해서 배우지 않았던가. 힘을 주는 방법, 힘을 흘리는 방법, 힘을 분배하는 방법까지 몸에 맞는 옷처럼 자연스러웠다.

‘예상대로네.’

11호는 왜소한 체구로 보아 잔기술을 통해 이득을 보는 유형이다. 반면 7호는 힘으로 밀어붙여서 승기를 잡으려 했을 터였다. 7호는 성난 황소처럼 쉴 새 없이 사마충을 몰아붙였고, 일견하기에는 이미 우열이 가려진 듯했다.

하나 사마충을 보라.

녀석은 웃고 있었다.

사마충은 다시 태어난 것처럼 눈을 빛냈다.

‘된다. 돼!’

같은 강검(强劍)을 펼치다 보니 빈틈이나 약점 또한 다르지 않았다. 그러니 이훤에게서 배운 눈썰미와 지리적 이점으로 완력의 차이를 극복하기에 충분했다.

“야! 너도 합류해.”

3호의 말에 11호는 눈을 휘둥그레 떴다.

이훤은 그 모습에 탄성을 흘렸다.

‘호오! 분위기 파악은 할 줄 아네.’

확실히 진무관 3위 정도 되면 우열을 가릴 줄 알았다. 그래봤자 아이들의 싸움을 보는 정도였지만, 그 정도라도 있는 게 어디인가. 진무관 3위라는 서열은 실력으로 따낸 것이 분명했다.

11호는 머뭇거리지 않았다.

같은 관도이면서 상명하복은 흑도 수준이다.

이훤은 양 팔을 늘어트린 채 뛰었다.

지난 열흘 동안 혈륜은 스스로 성장했다.

내공이 담긴 피가 쉴 새 없이 혈맥을 질주하고, 혈도를 자극하니 몸속의 노폐물이 점차 사라졌다. 그 결과 오감의 기능이 향상되고, 뼈와 근육의 응집도 또한 촘촘하게 변했다.

이제 박투라면 초도각 내에서 적수가 없을 터였다.

솔직한 속내를 논하자면 화산파의 삼대 제자도 두렵지 않았다.

‘얼굴도 잘 생겨지면 좋으련만.’

이훤은 잡생각을 하면서도 백팔계를 질주했다.

마치 평지처럼 안정적으로 질주하는 모습에 3호가 눈을 부릅떴다. 반면 11호는 완전히 사마충에게 집중한 상태였다. 아마 이훤과의 거리가 상당함을 믿고 방심했으리라.

방심과 안심은 하늘과 땅만큼의 차이를 보인다.

결과도 마찬가지였다.

이훤은 사마충과 7호를 스치듯 지나치는 순간 소매를 털었다. 그 순간 이제는 완전히 손에 익은 지압봉이 모습을 드러냈다.

검지와 중지 사이로 불쑥 튀어나온 지압봉의 뭉툭한 끝이 11호의 곡지혈을 찍었다. 팔꿈치를 찍히는 순간 놈은 비명을 지르며 목검을 놓쳤다. 주저앉는 11호의 옆머리를 후려치는 순간 백팔계에서 놈이 사라졌다.

“후우.”

그 사이 3호가 호흡을 가다듬었다.

놈의 자세만 봐도 정무관의 누구보다 뛰어났다.

꾸준히 수련을 하고, 운이 좋아 눈에 띈다면 화산의 제자가 될 수도 있으리라. 하나 원가휘에게 몸을 판 이상 마음상태가 글러먹었다.

이훤이 디딤 발에 힘을 줬다.

‘이게.’

그 순간 혈류의 속도는 배가 된 듯 격렬하게 요동쳤다.

정상적인 심법은 내공을 단전에서 뽑아낸 후 정해진 혈도를 지나 원하는 곳에 도달해야 위력을 보였다.

하나 천공혈륜겁은 달랐다.

몸뚱이 전체를 단전으로 삼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의도하는 순간 행해졌다.

이훤이 뛰고자 하는 순간 내공은 발바닥의 용천혈을 통해 폭발했고, 주먹질을 하려는 순간 내공은 손끝에 머물렀다.

‘천공혈륜겁이다!’

비록 성취는 일 성에도 미치지 않았지만, 위력만은 3호가 감당하는 것이 불가능했다.

한 순간 번뜩임과 함께 지척에 이른 지압봉.

3호는 반사적으로 몸을 비틀었다.

빠각!

지압봉이 쇄골을 찍는 순간 승패가 갈렸다.

퍽! 퍽! 퍽! 퍽! 퍽!

결국 3호는 지압봉이 명치 깊숙이 박히는 순간 게거품을 물며 주저앉았다. 몸을 부들부들 떨며 고통스러워하는 걸 보니 죽지는 않을 듯했다.

“원가휘한테 안부는 내가 전할게.”

“아으으으.”

“그리고 알지? 쓸데없는 소리를 지껄이면 진짜 송장 치우고 여기 뜰 거다.”

이훤의 서슬이 시퍼런 위협에 3호는 엄청난 속도로 고개를 끄덕였다.

‘자! 우리의 말더듬이는······.’

고개를 돌리는 순간 엄청난 광경을 목격했다.

사마충의 전력을 다한 목검이 7호의 정수리에 꽂혔다.

빠각!

황의상단에서 제법 비싼 돈을 주고 구입했을 목검이 산산조각 나며 비산했다.

사마충은 피를 철철 흘리는 칠호를 가볍게 밀친 후 세상을 다 얻은 것처럼 양 팔을 벌렸다.

“하아, 기분 좋다.”

“진짜 이겼네?”

이훤의 혼잣말에 사마충의 환희로 가득하던 얼굴은 금세 똥 씹은 표정으로 변했다.

“너!”

하나 두 사람은 다툴 여력이 없었다.

백팔계의 위쪽에서 웃음소리가 들렸다.

“아이고! 각주님의 말씀은 언제나 옳습지요.”

“전생에 간신이었나. 손바닥에 기름칠이라도 해. 냄새나것다. 내가 그놈이 청소를 제대로 하는지 철저하게 확인할 거야. 알았어?”

이훤은 미간을 좁혔다.

말투만 들어도 누구인지 알 수 있었다.

심지어 가장 껄끄러운 상대의 목소리가 이어졌다.

“허허, 두 분 관주와 이렇게 산책을 나선 것도 참으로 오랜만입니다.”

초도각주까지 함께했다.

사마충은 아예 입을 벌린 채 벌벌 떨기 시작했다.

“어, 어, 어떻게. 어! 우리 어쩌지?”

계단은 굽이진 곳을 경계로 정확히 54계단으로 나눠져 있다. 목소리의 거리로 보아 10계단 정도만 지나면 굽이진 곳을 지나 피가 낭자한 현장을 확인할 수 있을 터였다.

이훤은 한 숨을 내쉬었다.

“어쩔 수 없지.”

“그, 그래. 어쩔 수 없네.”

사마충은 부러진 목검을 내려놨다.

그리고 벌을 청하는 마음으로 무릎을 꿇었다.

한데 함께 무릎을 꿇어야 할 이훤은 진무관도들에게로 향했다.

그 후의 일은 가관이었다.

이훤은 칠호가 흘린 피를 제 몸에 바른 후 술을 녀석들에게 뿌렸다. 아예 코를 막고 입에 술을 들이붓기도 했다. 그러면서 연방 영혼이라도 내어주는 사람처럼 한숨을 연거푸 내쉬었다.

“아이고, 이 아까운 술을 이렇게 버리다니.”

사마충은 황망한 가운데 눈만 끔뻑였다.

“뭐, 뭐하는 거야?”

< 6, 처음으로 술을 버렸다. > 끝

ⓒ 김태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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