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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산마신-10화 (10/226)

< 5, 취마(醉魔)의 정무관 점령. >

5, 취마(醉魔)의 정무관 점령.

사마충은 정무관 내에서 특별한 존재였다.

그의 집안은 황의상단으로 섬서성 북부에서 알아주는 상단 중 한 곳이다. 상행을 위해 장성을 오가다 보니 관부와 연줄도 있었고, 상당한 무인들은 빈객으로 뒀다.

사마충은 그런 곳의 막내아들이다.

첫 째는 상단에서 일하고, 둘 째는 종남파의 제자로 들어갔다. 그러니 막내인 사마충이 초도각에서 수련하는 이유는 뻔했다. 화산파와의 연줄을 만들겠다는 상단주의 의지였다.

“내가, 어, 형보다 계산도 잘하고, 어! 형보다 달리기도 잘했어. 그런데 왜 화산파냐고?”

상단주의 입김이 닿은 입관이다 보니 사마충을 통해서 들어오는 기부금의 액수는 상당했다. 그 돈만으로도 정무관의 몇 달 운영비가 충당된다는 소문이 돌았다. 게다가 사마충은 초도각에 입관하기 전 절정의 무인에게 검법을 전수받기도 했다.

그러니 초도각의 대장이 될 생각에 부풀었으리라.

하나 화산파가 제아무리 쇠락했다고 해도 돈으로 모든 것이 해결되지는 않았다. 사마충은 근골과 자질, 인성을 평가한 후 진무관이 아닌 정무관에 배정됐다. 정무관과 진무관이 견원지간이라지만, 후자가 우위에 있음은 부정할 수 없다.

“그, 그건 그렇다고 쳐. 그런데 왜! 정무관이냐고? 야! 네가 봤을 때, 어! 내가 정무관에 어울려?”

사마충의 짜증 섞인 물음에 닭다리를 뜯던 관도가 황급히 고개를 내저었다.

“아, 아니!”

진심이라고는 조금도 느껴지는 않는 대꾸였다. 주변을 돌아보니 닭다리 하나에 영혼을 팔 녀석들로 가득했다.

사마충은 개처럼 뼈를 핥는 관도에게 물었다.

“대웅이는, 쓰흡, 야! 왜 안와?”

하나 관도는 뼈다귀에 정신이 팔렸는지 대꾸가 늦다.

그 순간 사마충은 얼굴을 붉히며 관도를 두들겨 패기 시작했다.

“이 새끼가! 어! 내가! 말을 더듬어서! 후우, 무시해? 어! 너도, 임마, 내가 형들보다, 우스, 우스워!”

내공을 담아 때린 것이 아니라 피륙의 고통일 뿐이다. 하나 관도는 세상에서 가장 강력한 공격에 당한 것처럼 과장되게 몸부림을 쳤다.

사마충은 그 모습을 보고 장탄식을 했다.

“하아, 진짜. 쩝, 믿을 놈이 없네.”

하나 열흘 전 이훤과 원가휘의 비무를 떠올리는 순간 짜증이 사그라졌다.

‘그 녀석만 내 밑에 넣으면.’

지금도 그날의기억만 떠올리면 아랫배에서 후끈한 기운이 요동을 치는 듯했다. 객관적으로 보았을 때 이훤은 절대적으로 원가휘의 상대가 될 수 없었다. 한데 마치 어린 아이를 가지고 놀 듯 짓밟지 않았던가.

“좋아.”

사마충은 그제야 얼굴 가득 미소를 지었다.

섬서 북부에서 황의상단과 원영검문은 오랫동안 동료이면서 경쟁자였다. 그러다 보니 자식들 간의 평가 또한 오래 전부터 회자됐다. 그는 자신이 정무관에 배정받은 걸 원가휘의 탓으로 여겼다. 원가휘만 없으면 초도각 전체를 아우르는 건 어렵지 않을 것이라 믿었다.

하나 현실은 그리 녹록하지 않았다.

그런데 이훤이라는 돌파구가 생긴 게다.

“이훤! 어, 왜 이렇게 안 와.”

그때 공터 반대편에서 어슬렁거리며 등장하는 관도가 있었다.

이훤이다.

그는 포대웅이 그랬듯 건들거리며 손을 흔들었다.

“이여, 사마충아, 어디 있니? 사마세가와는 조금도 관련이 없고, 가문 내에서도 막내라 권한은 쥐뿔도 없는 사마충이 누구냐?”

사마충의 두 눈이 찢어질 것처럼 커졌다.

역린이나 다름없는 부분을 건드렸으니 당장이라도 목검을 뽑아야 했다. 황의상단에서 납품하는 질 좋은 목검이니 반병신이 될 때까지 때려도 부러지지 않으리라. 하나 울화가 치미는 것과 달리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못했다.

뒤이어 등장한 포대웅의 몰골 때문이다.

“충아. 미안해.”

단순히 늦었다고 하는 사과는 아닐 터였다.

“원가휘한테 자격지심이 가득하다며? 원가휘만 없으면 초도각을 네 손 안에······.”

“닥쳐!”

사마충은 포대웅을 찢어발길 것처럼 노려봤다. 다른 놈은 몰라도 포대웅은 조금이나 신뢰했다. 한데 일각도 지나지 않아 자신의 모든 걸 알려줬다니 어처구니가 없을 정도였다.

“미안.”

포대웅은 퉁퉁 부은 얼굴을 들지도 못했다.

이훤이 다시 나섰다.

“어쨌든 나보고 네 밑으로 들어오라던데. 아직 유효한가?”

사마충은 미간을 좁혔다.

열흘 전만 해도 이훤은 그리 눈에 띄는 존재가 아니었다. 그저 밑바닥 관도들을 챙기거나, 노는 것을 좋아하는 정도였다. 한데 비무 이후 아예 다른 사람처럼 변한 듯했다.

“그, 그래. 유효해.”

“그럼 대답할게. 거절한다.”

이훤의 말에 사마충은 입꼬리를 올렸다.

이렇듯 대놓고 자신을 농락하는 상대는 오랜만이다.

어쩌면 원가휘 이후 처음일지도 모르겠다.

사마충은 으르렁거리듯 대꾸했다.

“너, 어! 그러다 죽어. 까불지 마라.”

하나 이훤은 여전히 산책을 나온 사람처럼 여유로웠다.

“사람 죽여본 적 있냐?”

“······.”

“넌 없어. 그러니까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말고, 애들이나 풀어라. 어차피 한 번 거쳐야 하잖아.”

사마충의 얼굴은 불덩이처럼 새빨갛게 달아올랐다.

그는 저마다 고기를 든 채 멀뚱거리고 있는 관도들을 향해 외쳤다.

“언제까지! 어! 그냥! 혼, 혼내줘!”

“쯧쯧, 말더듬이라더니 포대웅이 말해준 것보다 심하네.”

“주, 죽여!”

관도들은 그제야 이훤을 향해 뛰어왔다.

어차피 어수룩한 녀석들이다 보니 급한 김에 뼈다귀를 들고 덤비는 놈도 있었다.

이훤은 소매에서 나무토막을 꺼냈다.

길이는 손바닥만 했고, 굵기는 손가락 두 개 정도.

‘어디 보자.’

현재 접근 중인 관도는 일곱 명.

포위망을 구성한 것도 아니고, 진법도 아니다.

그저 되는 대로 달려들었다.

“후우.”

길게 숨을 흘리는 순간 몸속의 혈류가 급격하게 가속되는 듯했다.

시력이 좋아지고, 청각은 또렷해졌다.

일곱 명 중 도착하는 순서를 헤아린 후 가장 근접한 녀석에게 다가섰다. 내려치는 목검을 고갯짓으로 가볍게 피한 후 나무토막으로 겨드랑이 사이를 꾹 눌러줬다.

“으거거거거거!”

녀석은 기괴한 신음을 흘리며 애벌레처럼 몸을 말았다. 다음 녀석은 빈틈이 너무 많아서 그냥 얼굴을 후려쳤다. 정무관도들의 무공은 수준이라고 할 만한 정도도 되지 못했다. 저잣거리의 왈패라고 해도 이 녀석들보다는 나을 터였다. 최소한 놈들은 실전 경험이라도 충분하니까.

“너도 한 방. 너도 한 방!”

따귀를 때리고, 나무토막으로 누르고, 발을 걸었다.

그렇게 네 걸음을 걷기도 전에 일곱 명의 관도가 각자 다른 신음을 흘린 채 널브러졌다.

짝짝짝-

눈치 없는 양칠이 멋있다며 박수를 친다.

이훤은 그걸 또 받아주며 어깨를 으쓱거린 후 사마충에게 물었다.

“할래?”

“······.”

“잘 생각해. 한 번 하면 돌이킬 수 없어.”

사마충의 목울대가 심하게 꿈틀거렸다.

그도 그럴 것이 이훤의 눈빛은 또래라고 하기에는 너무나 음습했다. 게다가 간간히 혀로 입술을 핥는 모습에 소름이 끼쳤다.

이훤은 그럴 줄 알았다는 듯 쓰러진 관도들을 보며 턱짓을 했다.

“저것들은 치우고, 대장끼리 대화 좀 할까?”

어린놈을 추켜세우는 건 땅 짚고 헤엄치는 것처럼 손쉬웠다. 아니나 다를까 궁지에 몰렸던 사마충은 헛기침을 몇 번 하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그, 그래. 대장끼리! 어! 대화 하자.”

잠시 후 이훤과 사마충, 그리고 양칠만이 남았다.

“쟤는?”

“어! 내 수발드는 애.”

이훤의 대꾸에 양칠은 복잡한 표정을 보였다.

하나 끝내 자리를 뜨지는 않았다.

“며칠 사이에 다른 사람이 됐네?”

“그런 건 됐고. 대장답게 중요한 이야기를 하자.”

사마충은 금세 화제를 잊고, 헛기침을 하며 으스댔다.

“그, 그래.”

“포대웅에게 대충 들었어. 네가 뭘 하고 싶은지, 그리고 뭐가 필요한지에 대해서 말이야. 일단 너는 화산파에 뼈를 묻고 싶냐?”

사마충은 단호하게 고개를 내저었다.

그의 목표는 황의상단으로 돌아가 적법한 후계자가 되는 것이다.

하나 다음 물음에는 쉬이 대꾸를 할 수 없었다.

“원가휘는 이기고 싶지?”

은밀한 제안에 대한 대꾸는 오래지 않아 이뤄졌다.

이훤은 사마충이 고개를 끄덕이는 순간 설득을 시작했다.

“내가 네 손으로 원가휘를 때려눕힐 수 있게 만들어 주마. 그렇게 되면 사람들은 황의상단이 원영검문보다 낫다고 여길 거야. 어때?”

“내 무공을, 크흠, 너한테?”

사마충은 대답을 꺼렸다.

하나 이훤은 이미 모든 것이 해결됐음을 직감했다.

사마충이 자신을 의심했다면 능력의 유무를 거론했을 터였다. 한데 녀석은 무공을 알려줘야 하는 부분에만 신경을 썼다.

이제 잘 익은 고기에 젓가락을 꽂을 차례였다.

이훤은 사마충의 손을 잡아끌었다.

그리고 대뜸 자신의 단전에 가져다 댔다.

물론 녀석이 다른 생각을 하는 순간 혈륜의 힘으로 머리를 쪼개버릴 터였다.

“헉!”

사마충은 눈을 휘둥그레 떴다.

단전의 틀만 느껴질 뿐 한 올의 내공도 느껴지지 않았다.

“나는 이런 상황에서 원가휘를 반병신으로 만들었다. 그럼 너는?”

이훤의 말에 사마충의 눈은 꿈을 꾸듯 몽롱해졌다.

아마 이훤보다 훨씬 더 강렬하고, 멋있게 원가휘를 짓밟는 상상을 하고 있으리라.

사마충은 침을 꿀꺽 삼키며 호흡을 가다듬었다.

“크흠, 네가 그렇게만 해준다면, 큼! 나도 할 수 있는 내에서, 후우!  모든 걸 해 줄게.”

그래도 상인의 자식이라고 거래의 방식을 안다.

이훤은 목소리를 낮췄다.

“일단 술 좀 구할 수 있냐?”

< 5, 취마(醉魔)의 정무관 점령. > 끝

ⓒ 김태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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