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화산마신-6화 (6/226)

< 3, 기연 강탈. >

3, 기연 강탈.

원가휘란 누구인가?

놈은 원영검문의 소문주다.

원영검문은 섬서 북부에서 나름대로 이름을 떨친 문파였다. 장성 밖으로 나가는 상인들을 호위해주거나, 물건을 맡아줌으로서 돈을 벌었다. 그런 곳의 소문주였으니 어린 시절부터 부족함이 없이 자랐으리라.

‘버릇없고, 안하무인에, 제멋대로 행동하는.’

비무대에서 보여준 언행만 봐도 사람 여럿 죽였을 놈이다.

그런 놈이 난생 처음 동굴에 갇혔다면?

그것도 심지어 삼 일이다.

이훤은 한차례 더 들이친 냉기에 부르르 떨었다.

이 추위는 솜옷이나 이불로 막을 수 있을 추위가 아니었다.

“그 새끼가 이걸 참는다고?”

전 재산을 걸어도 좋다.

원가휘는 이 추위를 그냥 참고 버틸 놈이 아니다.

이훤은 중얼거렸다.

‘내가 그 새끼라면 어떻게 했을까?’

해답은 가까운 곳에 있었다.

이훤은 나무로 덧댄 문을 바라봤다.

‘춥잖아. 여기가 싫잖아. 나뭇가지나 짚단이라도 더 쌓아놓으면 따뜻하다고 생각했겠지. 그러니······.’

나갔겠지.

자물쇠도 없고, 지키는 자도 없다.

오롯이 갇힌 자의 의지를 믿는 장소였다.

원가휘라면 분명 별 생각 없이 나갔을 것이다.

어차피 원영검문의 소문주라는 직함만 가져도 평생 놀고먹을 수 있는 위치였다.

어렴풋이 기억이 났다.

놈은 원영검문주의 명령으로 초도각에 입관했다.

원영검문의 입장에서는 제아무리 쇠락했다고 해도 화산파와 인연을 맺어서 손해 볼 것이 없기 때문이다.

‘내게는 이곳이 안전지대지만.’

원가휘에게는 감옥이었으리라.

그러니 분명 놈은 밖으로 나갔다.

이훤은 문고리를 잡고, 한 번 더 선유동 내부를 살폈다.

눈으로 보고, 손으로 만지고, 심지어 냄새까지 맡았다. 하지만 이곳에는 음식 쓰레기 냄새와 칼바람이 전부였다.

선유동에 기연은 없다.

이훤은 문을 밀었다.

끼익-

들어올 때와 똑같은 소리가 선유동 내에 울렸다.

동시에 선유동 안과는 비교할 수 없는 칼바람이 암기처럼 쇄도했다.

“으으으.”

이훤은 팔로 몸을 감쌌다.

길은 세 곳.

위, 아래, 그리고 초도각에서 온 소로.

원가휘가 아무리 생각이 없어도 초도각으로 가지는 않았으리라.

이훤은 망설임 없이 아래쪽으로 향했다.

“놈이라면 더 추운 위쪽으로 갔을 리가 없지.”

아래쪽이라고 해서 길은 아니다.

수풀과 나뭇가지를 피하면서 이동했다.

그러면서 끊임없이 읊조렸다.

‘원가휘처럼 생각하자.’

한겨울이다 보니 나뭇가지는 축축했다.

게다가 칼바람으로 인해 서리가 내리거나, 살얼음이 깔렸다.

조금 더 내려가 보자.

원가휘의 얄팍한 인내심이 바닥나기 전에 무언가 눈에 띄는 것이 나타날 터였다.

그때 물소리가 들려왔다.

시냇물이다.

이 날씨에 물가로 향할 놈이 아니다.

이훤은 가차 없이 방향을 틀었다.

소로(小路)는 끊긴 지 오래였다.

‘여기가 어디쯤 됐을까?’

초도각은 화산 내에서도 초입에 위치했다.

하나 화산의 산줄기는 여산을 지나 종남산까지 연결됐을 정도였다. 대략적인 거리만 따져도 수백 리에 이르는 산세를 자랑했다. 그러니 초입이라고 해도 자칫 길을 잘못 들면 평생 헤맬 수도 있는 노릇이다.

“음?”

갑작스레 바람에 실려 온 소리가 있다.

짐승의 울음.

위협적이지는 않다.

“원숭이인가?”

이훤은 다시 한 번 방향을 틀었다.

화산의 원숭이는 그리 낯선 존재가 아니었고, 원숭이가 오가는 곳에 영약이 있을 리 만무했다. 조금이라도 좋은 게 보였다면 녀석들이 벌써 먹어치웠으리라.

“아! 젠장, 그 새끼처럼 생각해야지.”

이훤은 잠시 망설였다.

자신은 기연을 찾아온 것이지만, 원가휘는 추위를 피할 수 있는 물건을 찾으러 나온 길이다. 심지어 현재 원가휘의 나이는 약관에도 이르지 못한 꼬맹이였다.

“그 새끼라면 왜 나왔는지도 잊어버리고, 원숭이를 구경하겠다고 갔을 수도 있지.”

마치 범죄자의 뒤를 쫓는 포쾌가 된 듯했다.

이훤은 단서를 향해 조심스럽게 나아갔다.

그리고 탁 트인 전경과 함께 상당한 넓이의 공터를 발견했다.

‘이건 좀 이상한데?’

원숭이가 많아도 너무 많았다.

공터는 산바람을 직격으로 맞아야 하는 장소였다. 그러니 무리 생활을 하는 놈들이 이곳에 모여 있을 이유가 전무했다. 떠날 수 없는 이유가 있을 것이라 미루어 짐작할 뿐이다.

끼이- 끼이-

이훤은 조심스럽게 공터로 나갔다.

팔뚝보다 조금 큰 원숭이들의 울음이 여기저기서 울렸다. 하지만 가까이 오는 대신 더 좋은 자리를 찾아 이동할 뿐이다.

그 광경이 참으로 묘했다.

좋은 자리란 공터 반대편이 더 잘 보이는 위치였다.

놈들은 무언가에 홀린 것처럼 시선을 떼지 못했다.

그렇기에 이훤이 접근해도 자리를 피할 뿐 크게 신경을 쓰지 않았다.

‘이쯤 되면 원가휘도 뭔가 있겠다 싶었던 거지.’

이훤은 주변을 경계하면서 공터를 지나쳤다.

그러자 동물들이 만들어놓은 소로가 나타났다.

낮은 부분만 밟혀서 허리를 숙여야만 지나갈 수 있는 통로였다.

‘원가휘가 당시 얻은 내공은 10년 정도.’

천공혈륜겁에 입문하기에는 턱없이 모자랐다.

반 갑자가 되지 않으면 애초에 시작할 수 없는 무공이 아니던가. 그러나 기연만 얻는다면 입문까지의 시간을 상당히 단축할 수 있으리라. 화산의 무공을 꾸준히 수련하면 스무 살이 되기 전에 하산하는 것도 가능했다.

스륵-

이훤은 소로의 끝에 이르는 순간 예기치 못한 광경에 시선을 빼앗겼다.

‘······.’

수컷으로 보이는 원숭이 세 마리가 나무 아래서 수액을 핥고 있었다. 대장과 그에 준하는 놈들이 수액을 독차지 한 게다. 그러니 나머지들은 떠나지도 못하고, 멀찍이서 구경만 하는 상황이다.

이훤은 눈을 가늘게 뜨고 수액의 근원을 확인했다.

그 순간 절로 탄성이 흘러나왔다.

“아.”

나무를 칭칭 휘감은 넝쿨의 위쪽에는 손가락 두 마디 정도의 과실(果實)이 달려 있었다.

심지어 두 개였다.

원가휘가 발견한 기연이 분명했다.

이훤은 원숭이와 다를 바 없이 과실에 홀린 사람처럼 걸음을 뗐다.

그 순간 대장 원숭이의 날카로운 울음이 귀를 찔렀다.

우끼끼!

이훤은 황급히 수비 자세를 취했다.

대장은 다른 원숭이에 비해 덩치가 컸다. 무릎 어림에 닿을 정도였지만, 머릿수는 위협이 되기에 충분했다.

우끼끼! 우끼끼!

한데 녀석은 이빨을 드러내지도 않고, 마치 저자의 아낙네가 호들갑을 떨 듯 자리에서 펄쩍 펄쩍 뛸 뿐이다.

우호호! 우호호!

이훤은 녀석이 바라보는 곳을 보고 눈을 휘둥그레 떴다.

그곳에는 대장보다 조금 더 덩치가 큰 녀석이 축 늘어진 채 죽어 있었다. 게다가 입가에는 먹다 남은 과실이 굴러다녔다.

“하, 설마 경고를 해 준 거냐? 위험하다고.”

이훤의 물음에 원숭이는 그렇다는 듯 과실을 보며 몸을 부르르 떨었다. 그리고는 수액을 할짝거리며 이빨을 드러냈다.

수액이나 먹고 떨어지는 게 신상에 좋다는 경고였다.

하나 이훤은 개의치 않았다.

원가휘가 먹고 살아났다면 이훤도 살 수 있다.

이훤은 어깨를 으쓱거리며 손바닥을 내보였다.

원숭이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그를 지켜봤다.

호기심 가득한 시선을 뒤로 한 채 과실을 향해 손을 뻗었다.

‘먹자마자 단전에 쌓으면 돼.’

원숭이와 원가휘의 차이는 하나였다.

심법의 유무.

영기(靈氣)가 농축된 과실을 밥처럼 소화시키는 건 불가능했다.

이훤은 앉을 자리를 살핀 후 과실을 땄다.

그리고 잽싸게 입에 넣었다.

매담자들의 이야기처럼 입에 넣는 순간 녹아내리지는 않았다. 하나 한 입 베어 무는 순간 들뜬 열기가 입 안 전체에 퍼졌다. 한순간에 추위를 몰아내는 것도 모자라 숯을 삼킨 것처럼 후끈한 기운이 몸뚱이를 장악했다.

“으으.”

이훤은 불에 익어버린 듯한 턱을 억지로 움직이며 과실을 씹었다. 껍질과 씨는 물론이고, 과즙까지 모조리 삼킨 후에야 가부좌를 틀고 앉았다.

과실의 기운이 온 몸으로 퍼지는 순간.

‘이런! 병신 새끼!’

원가휘에 대한 욕이 절로 튀어나왔다.

이건 십 년 정도의 내공을 얻을 수 있는 평범한 영약이 아니었다. 제대로만 흡수한다면 일 갑자의 내공을 얻을 수 있을 만큼 대단했다. 놈은 영약의 이 할도 제대로 흡수하지 못한 게다.

‘정신 차리자. 이깟 것보다 위험한 것도 다 이겨냈어!’

이훤은 온몸에 뻗힌 열기로 인해 정신이 혼미함에도 호흡을 가다듬었다. 현재 몸 상태로는 그 또한 원가휘 정도의 덕만 볼 수 있을 터였다. 그렇기에 효율을 극대화 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했다.

‘최소한 삼 할이라도 흡수해야 해.’

이훤은 재빨리 전생의 기억을 더듬은 후 불경을 읊조렸다.

‘받아들이는 것과 받아들여지는 것에서 미혹되고, 혼란한 견해에서 벗어나라. 이미 생긴 것도 아니고, 생길 것도 아니니 소유의 집착이야 말로 아집이리라.’

소림의 혼원일기공(混元一氣功)이면 몸 상태가 아무리 개판이라고 해도 어느 정도는 흡수가 가능하리라.

‘제발!’

그 순간 요지부동이던 단전이 움직였다.

< 3, 기연 강탈. > 끝

ⓒ 김태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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