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 회귀, 최고다! (2) >
1, 회귀, 최고다!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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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리검(琉璃劍) 유건평.
화산파의 이대제자인 그는 월례비무를 참관하는 중이다.
어린 아이들이 화산의 기본무공으로 비무를 펼치고 있으니 웃어른으로 미소를 지어줄 만도 하다.
하나 그는 한껏 인상을 쓴 채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크흠.”
“사형, 어디 불편하십니까?”
초도각주가 눈치를 보며 물었다.
유건평은 본산에서도 쉬이 대할 수 없는 이대제자 중 한 명이다. 무공도 무공이지만, 자신만의 기준으로 사람을 대했기에 불편해하는 자가 적지 않았다.
한 마디로 오만했고, 괴팍했다.
“일 년.”
“네?”
“초도각을 만든 게 벌써 일 년일세. 한데 저들을 보고 있자니 영 달라진 것이 없군.”
초도각주는 쓴웃음을 지었다.
화산파에 기재라고 할 만한 제자가 들어온 게 벌써 수 년 전이다. 그렇기에 억지로라도 기재를 찾기 위해 만든 것이 바로 초도각이다.
‘본 파가 쇠락한 것을 인정하지 않으시는군.’
초도각주는 목소리를 가다듬었다.
“사형.”
본산에도 초도각을 못마땅하게 여기는 이들이 많다.
그들은 구파의 중심이며 명문의 상징인 화산이 저자의 무관처럼 문호를 열고 아무나 받아들이는 것이 싫었으리라.
하지만 현실은 냉혹했다.
명문이라는 껍데기만 남은 화산파를 찾아올 기재는 많지 않았다.
초도각주는 살살 달래듯 말을 덧붙였다.
“첫 술에 배부를 수 있나요. 저 아이들도 졸업할 때가 되면 본 파의 동량이 되어줄 겁니다.”
“과연 그럴까? 저 비무에서 이길 수 있는 방법은 두 가지야. 가전무공을 익혔거나, 집에 돈이 많거나. 지는 놈들과는 이미 출발선이 다르단 말일세.”
초도각주는 탄성을 내뱉었다.
유건평의 반대 이유는 수긍할 만했다.
“시작부터 모든 것이 완벽할 수야 있나요. 초도각의 존재를 널리 알리려면 어쩔 수가 없지요. 그래도 널리 알려진다면 분명 두각을 드러내는 제자가 나타날 겁니다.”
“후우, 언제쯤 그런 아이가 나타나려나.”
두 사람은 각자의 다른 생각을 했다.
하지만 한 가지만은 동의했다.
이번 기수에서 화산파가 혹할 만한 관도는 나오지 않는다는 점이다.
“다음 기수에서 이것부터 고치게. 관도들에게 가전 무공의 사용을 금지한다는 것을 분명히 알려야 해.”
“흐음, 아무래도 중소방파에서 반발을······.”
유건평은 때마침 벌어진 비무대를 보며 손가락질을 했다.
“지금 펼쳐지는 비무를 보게.”
초도각주의 시선이 유건평의 손가락 끝을 좇았다.
한 쪽은 화산파의 기본무공만 익힌 초짜였고, 다른 한 쪽은 원영검문이라는 중견 방파의 장자였다.
“계란과 바위의 싸움이군. 자! 누가 이길까?”
“······.”
유건평은 기세등등하여 말을 이었다.
“어차피 화산의 제자가 된다면 화산의 무공으로 새로 시작해야 할 터. 그렇게 된다면 가전 무공을 익힌 건 오히려 역효과를 내거나, 불필요······.”
“헙, 저게 무슨 조화인가.”
말꼬리를 흐리는 것과 침음이 동시에 터져 나왔다.
퍽! 퍽! 퍽!
계란이 바위를 후드려패고 있었다.
*
지금부터는 섬세한 조율이 필요했다.
원가휘의 말처럼 한 방에 끝내는 건 말이 안 된다.
재미없잖아! 억울하잖아! 아쉽잖아!
이훤은 헐떡이듯 숨을 몰아쉬었다.
환희를 숨기기 위해 과장된 행위였지만, 원가휘에게는 충분히 먹혔다. 이훤에게 불의의 일격을 맞았지만, 후속타는 없다고 여겼는지 금세 기가 살았다.
“그래, 천박한 새끼가! 운이 좋았어. 어!”
원가휘는 이빨을 드러낸 채 재차 달려들었다.
하나 초식의 순서를 조율할 실력이 있을 리 만무했다.
원영검문에서 배운 기본적인 투로가 연이어 펼쳐졌다.
‘여기서 한 방.’
때렸던 부위에 한 방 더 꽂아 넣었다.
갈비뼈에 거미줄처럼 금이 갔으리라.
퍽!
이훤이 상체를 비스듬히 숙이며 꽂아 넣은 주먹에 원가휘는 학질이라도 걸린 사람처럼 진저리를 쳤다.
“아으으!”
속으로는 맞으라고 고사를 지내고 있을 게다.
하나 이훤은 한 대도 맞아줄 생각이 없다.
자칫 빗맞았다가는 기절할 수도 있는 노릇.
퍽! 퍽! 퍽!
주먹으로 치고, 발로 차고, 치는 척하며 놈의 힘을 빼기도 했다.
“좀! 맞아라! 개새끼야!”
눈에 불을 켰다는 말이 저런 의미였나 보다.
원가휘는 숫제 미친 사람처럼 날뛰었다.
그런 말이 있더라.
미친놈에게는 몽둥이가 약이라고.
이훤은 이십 년 간의 원한이 담아 쉴 새 없이 놈을 후려쳤다.
빠각!
원가휘는 오른팔 상박을 얻어맞고, 부르르 떨었다.
팔에서 시작된 경련이 손까지 전염됐을 때 목검이 덜그럭 소리와 함께 비무대 위를 나뒹굴었다.
이훤은 침을 흘리며 비틀거리는 원가휘를 보며 호흡을 조절했다.
‘나도 슬슬 한계군.’
단련되지 않은 주먹에는 피가 맺혔고, 팔다리는 모래 주머니를 매단 것처럼 무거웠다.
그렇기에 마무리를 위해 혼신의 힘을 다하여 접근했다.
원가휘가 주저앉기 전 발로 무릎을 밀었다. 그러자 놈은 밀려나듯 억지로 일어나야 했다. 그 이후 얼굴이 닿을 만큼 접근한 후 자세를 낮췄다. 그리고 뜀뛰기를 하듯 몸을 날리며 명치를 올려쳤다. 손바닥의 아랫부분인 장근(掌根)은 팔꿈치나 무릎처럼 부족한 힘을 더해줬다.
퍼억!
놈의 몸이 낫처럼 꺾였다.
훤히 드러난 등을 팔꿈치로 찍었고, 꼬꾸라지는 놈의 뒷목을 낚아챈 후 무릎으로 한 번 더 아랫배를 타격했다.
“우웩!”
원가휘의 입에서 싯누런 토악질이 분수처럼 솟구쳤다.
그리고 제가 만들어낸 토사물에 얼굴을 박았다.
‘완벽해!’
지난 이십 년 동안 상상했던 결과물 중에서는 가장 낮은 처벌이다. 하나 전생과 다르게 사지가 멀쩡할 예정이니 쾌감은 최고였다.
자! 이제 마무리를 할 차례다.
이훤은 널브런진 원가휘의 몸에 올라탄 후 주먹질을 하기 시작했다.
“그러게! 왜! 의원까지! 보내서! 나를! 두 번 죽여!”
퍽! 퍽! 퍽! 퍽!
명문과 어울리지 않는 저자거리의 개싸움처럼.
누가 봐도 사적인 원한을 해결하듯.
박자를 맞춰서 놈의 면상에 주먹을 꽂아 넣었다.
원가휘는 고통에 몸부림을 쳤다.
‘지금!’
이훤은 슬쩍 몸이 떴을 때를 노려 무릎을 세웠다.
그리고 내려오는 힘을 이용하여 놈의 무릎을 찍어버렸다.
콰직!
느낌이 왔다. 신호가 왔다.
전생의 이훤처럼 놈의 무릎이 부러졌음이 느껴졌다. 그리고 재빠르게 미리 주워놓은 돌조각을 써서 놈의 근맥을 긁었다.
촤악!
옷 사이로 핏물이 배어나오는 것을 보니 입가에 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이 정도면 개싸움을 하다가 운 나쁘게 만들어진 상처로 보일 게다.
웃지 말자. 웃으면 안 돼.
표정 관리를 해야 할 때였다.
‘사후처리를 할 때까지는 집중해야 해!’
어찌됐든 복수는 여기까지.
지금부터는 회귀한 덕을 톡톡히 볼 차례였다.
이훤은 뒤늦게 달려오는 관주들과의 거리를 확인했다.
“멈춰라!”
“저 미친놈!”
그들의 외침을 귓등으로 흘리고, 팔꿈치로 원가휘의 인중을 겨눴다. 때마침 정무관주가 겨드랑이에 팔을 넣어 원가휘와 떼어냈다.
“안 돼! 죽이면 안 돼!”
애초에 때릴 생각조차 없었다.
자칫 잘 못 쳤다가는 놈이 죽을 테니까.
이런 곳에서 놈과 함께 인생을 끝내고 싶지 않았다.
진무관주는 얼굴을 알아보기 힘들게 되어버린 원가휘를 보며 이를 갈았다.
“가휘야. 가휘야! 이놈아. 정신 차려! 이훤! 네가 그러고도 무사할 줄 아느냐? 내가 반드시 너를 벌하여 오늘의 일을 후회하게 만들어주마!”
그러나 이훤은 원가휘만 보이는 사람처럼 침을 뱉으며 외쳤다.
“퉤! 씨발 새끼. 다음에 또 눈깔 부라리면 평생 검을 못 잡게 해주마!”
얼마나 하고 싶었던 대사던가.
이십 년 묵은 체증이 한 번에 내려가는 듯했다.
“뭐라고? 이놈이 못하는 말이 없구나!”
진무관주는 눈에 불을 켜더니 한달음에 달려와 이훤의 명치를 후려쳤다.
퍽!
욕지기가 이는 것과 동시에 시야가 흐릿해진다.
하나 이훤은 단상에서 유건평과 초도각주가 내려오는 것을 보고 남몰래 입꼬리를 올렸다.
지금까지는 전생과 똑같이 흘러가고 있다.
가해자와 피해자만 바뀌었을 뿐이다.
‘자! 이제 당신 차례야. 했던 것처럼만 해.’
< 1, 회귀, 최고다! (2) > 끝
ⓒ 김태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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