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69화
막간, 마리의 비밀
요즘 들어 신경 쓰이는 것이 있었다.
그것은 최근 마리의 상태가 이상하다는 것이었다.
“너무 마히어요! 더 주헤효!”
“입에 있는 거나 다 먹고 말해!”
마리는 입에 집어넣은 음식들도 다 삼키지 않은 채로 신나 하며 내게 밥그릇 내밀었다.
이런 모습은 평소와 똑같은 마리의 모습이었지만…….
“자. 여기 주문한 맥주요.”
“고마워. 웬디! 역시 맛있는 밥과 함께하는 맥주는 참을 수가 없지!”
웬디가 맥주잔을 서빙 해오자 세레나가 그것을 받고 곧바로 마법을 사용해서 맥주잔을 차갑게 식혔다.
그녀의 손에서 푸른색 빛이 맺히는 것과 함께 그녀의 손에서 차가운 냉기가 뿜어져 나오기 시작했다.
우우웅
...움찔!
그리고 세레나가 마법을 사용하는 것을 보고는 반사적으로 몸을 떠는 마리.
이게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었다.
최근 며칠 동안 마리는 세레나가 마법을 쓰는 모습만 보면 움찔하고 몸을 떨어대는 것이었다.
처음 세레나와 만났을 때는 이러지 않았던 것 같은데.
거기에 마리가 부자연스럽게 움찔하며 몸을 떠는 것은 그것뿐만이 아니었다.
저녁 시간이 되어서 램프에 불을 붙일 때, 도시의 안과 밖을 나설 때마다 정문에 걸려있는 횃불을 볼 때마다.
그리고 그것들의 공통점은 빛을 내뿜는 광원이라는 것.
즉, 마리는 불빛을 두려워하고 있었다.
...어째서?
“마리.”
“네에! 쿠르트 씨! 뭔가요?”
“요즘 뭐 신경 쓰이는 일 있냐?”
...움찔.
내 말에 웃는 얼굴 그대로 부자연스럽게 굳어버리는 마리의 얼굴.
그것은 말로 대답을 하지 않았음에도 명백하게 나의 말이 맞다는 것을 나타내는 신호였다.
그러나 마리는 끝까지 시치미를 뗄 생각인지 내 말에 전력으로 부정하며 말했다.
“아, 아니요! 아, 아무 일도 없었는데요! 저는 평소와 똑같은데요! 아하하! 밥이 맛있다!”
그리고는 곧바로 누가 봐도 어설픈 모습으로 웃으면서 스튜를 입으로 옮기는 마리.
“거짓말하지 마라. 최근 무슨 일 있었냐?”
당연히 그 어설픈 거짓말에 속아 넘어갈 리 없었고, 나는 다시 한번 더 마리에게 추궁하듯이 물었다.
그와 함께 지진이 난 것처럼 떨리기 시작하는 그녀의 동공.
“시기상으로 보면 지난번에 세 사람이 마수들의 이상 현상을 조사하고 돌아온 다음부터인 것 같은데.”
움찔
아, 반응했다.
“어, 어떻게 그걸……. 아니, 저는 무슨 소리를 하고 있는지 전혀 모르겠는데요!”
아니, 아직도 이걸 숨기려고 한다고?
이렇게 되면 어쩔 수 없지.
“세레나. 잠깐 괜찮을까.”
“뭔데?”
맥주를 마시면서 나와 마리의 대화를 듣고 있던 세레나는 내가 부탁하려는 일이 무엇인지 대충 예상이 간다는 듯 음흉하게 웃으면서 말했다.
“잠시 마법으로 광원 좀 만들어줄 수 있어?”
그리고 나의 부탁에 기다렸다는 듯 미소를 지으며 광원을 불러일으키는 세레나.
“얍! 빛이여!”
한 개 두 개.
세레나는 형형색색으로 빛나는 여러 개의 광구를 테이블의 주위로 띄우기 시작했다.
그리고 주위의 광구가 하나씩 들어갈 때마다 점점 더 불안한 표정을 짓기 시작하는 마리.
그녀는 불안정하게 떨리는 눈으로 세레나가 불러낸 광구를 보았다.
“봐봐. 지금도 세레나가 빛을 불러낼 때마다 불안해하고 있잖아.”
“그, 그건…….”
“무슨 일인지 말해. 곤란한 일이라면 도와줄 테니까.”
“그러니까…….”
내 말에 마음이 흔들리기 시작하는 듯 한참을 갈등하던 마리는 이내 두 눈을 질끔 감더니 고개를 좌우로 흔들며 소리쳤다.
“안 돼요! 말할 수 없어요!”
아. 거의 다 넘어왔다고 생각했는데.
어쩔 수 없지.
“네가 그렇게 생각한다면 강제로 물을 수는 없지. 대신 나중에라도 말할 준비가 되면 알려줘.”
“미, 미안해요. 하지만 말할 수 없어요…….”
나 말에 마리는 죄책감 가득한 표정을 지으면서도 뜻을 굽히려 하지 않았다.
“그래. 세레나 미안한데 마법 좀 거둬줄래?”
“싱겁네. 알았어.”
내 말에 세레나는 공중에 띄워두었던 광구들을 하나씩 꺼트리기 시작했다.
하나씩 빛의 덩어리들이 소멸하며 마침내 테이블의 근처에는 두세 개의 광구만이 둥둥 떠다닐 뿐이었다.
“저……. 레나 씨. 이 광구들도 마저 꺼주시면 안 될까요?”
“응? 나는 마법들 다 취소했는데?”
“네?”
마리가 세레나의 말에 의문을 표하면서 고개를 갸웃거리는 순간, 테이블 위에 떠 있던 광구들의 빛이 점점 커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순식간에 크기를 키우는 빛무리 안에서 들려오는 밝은 어린아이 같은 목소리.
[미안해. 마리시아. 결국, 들키고 말았어.]
[그러니까 처음부터 가출해서는 안 됐지.]
[하지만 마리시아의 입장도 어쩔 수 없었는걸.]
[마리시아. 진짜 큰일 났다.]
뭐, 뭐라고?
빛무리에서 목소리가 들렸다는 사실에 대해서 놀라야 할지 아니면 그 목소리가 말해준 정보에 대해서 놀라야 할까.
제대로 판단을 내리기도 전에 점점 크기를 키우던 그 빛무리는 어느새 하나로 합쳐져서 성인 인간 정도의 크기가 되었다.
그리고 점점 더 구체적인 형상을 띄기 시작하더니 곧 어딘가 마리를 닮은 엘프 여성의 모습이 되어서 마리를 노려보았다.
[마리시아!]
“히익! 어, 엄마!”
[옆 마을에 놀러 가겠다고 나가서 몇 달 동안 안 보이길래 걱정했더니 가출을 해!?]
“아니……. 하지만 나도 이제 다 컸는걸요.”
[다 크기는 무슨. 아직 스물넷 밖에 안됐으면서! 내가 언제 평생 인간사회로 나가지 말라고 했니? 딱 쉰 살만 먹고 나가라고 했잖아!]
그 말에 마리는 억울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엄마! 쉰 살은 너무 늦어요! 다른 인간종들은 모두 스물이 되기 전에 독립하는데!”
[늦기는 뭐가 늦어? 다른 엘프들은 백 살이 넘어서야 독립하는데, 쉰 살이면 충분히 많이 양보해줬다는 것도 모르고 큰소리를 치는구나!]
“크, 큰소리를 친 게 아니라…….”
[됐다. 남은 잔소리는 돌아오면 할 테니까 당장 집에 돌아와!]
“엄마!”
[도망칠 생각은 하지 마. 정령들과 소통을 하기 시작한 순간 이미 네가 어디 있는지 느낄 수 있으니까!]
그 말을 끝으로 엘프 여성의 형상을 이루고 있던 빛무리는 다시 서서히 작아지기 시작하더니 곧 아무것도 없었다는 듯 흔적조차 남기지 않고 사라졌다.
그리고 모험가 길드의 안에는 무섭도록 소름 끼치는 정적만이 남았다.
.
.
.
“그래서, 어떻게 된 일인지 설명을 해줬으면 하는데.”
“저도 참 궁금하군요. 마리시아 양.”
“자, 말해봐.”
“우, 우으으……. 이래서 들키고 싶지 않았는데…….”
나와 카리나, 세레나. 세 사람이 차가운 눈으로 마리를 노려보자 세 사람의 눈길을 받은 마리는 울상을 지으며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아니, 사실 이미 그녀의 어머니로 추정되는 인물과 두 사람이 대화를 나눈 것만으로도 어떻게 된 일인지 충분히 알 수 있었기에 설명이 필요한 것은 아니었지만 마리가 스스로 실토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느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우리의 예상대로 현재 마리의 신세를 꼼짝없이 가출 청소년이나 다름없는 신세였다.
인간사회를 돌아다녀 보고 싶은 욕망으로 가득 찬 마리와 아직 어리다는 어머니와의 갈등.
그리고 이내 마리는 참지 못하고 기회를 엿보다 여행 짐을 챙기고 나서는 편지 한 장만 남기고서 가출.
장황하게 설명하기는 했지만 결국 마리가 한 말의 결론은 그것뿐이었다.
“그래서 결국 제대로 허락도 받지 않고 집을 나선 거냐?”
어쩐지 머리가 욱신거리는 같은 느낌에 머리를 부여잡으며 그렇게 말하자 마리는 자신도 할 말은 있다는 듯 발끈하며 말했다.
“하지만 저도 성인이에요! 평범한 인간이라면 어엿하게 16살이 넘는 순간 어른으로 인정을 받는데 저는 거기서 8년을 더 기다렸다고요!”
“하지만 마리시아 양은 하프 엘프지 않습니까.”
“그리고 하프 인간이고요! 절반은 인간의 피가 섞인 저에게 엘프의 시간 감각은 너무 길어요!”
하기는 하프 엘프의 삶은 인간치고는 길지만, 엘프치고는 매우 짧으니.
전형적인 엘프식 시간 감각을 가진 어머니의 말은 쉽게 받아들이기 힘든 부분도 있겠지.
“뭐, 그 부분은 우리가 엘프도 하프 엘프도 아니라서 잘 모르니 어쩔 수 없지만……. 그래서 어떻게 할 거야?”
세레나의 말에 마리는 불안한 듯 한 번 움찔하고는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어, 어떻게 하다뇨?”
“일단 너희 어머니께서 돌아오라고 하셨잖아.”
“그거야 못 들은 거로 하고…….”
“마리시아 양!”
마리의 한심한 소리에 카리나는 엄한 목소리로 그녀를 꾸짖었다.
“히익! 하지만 돌아가면 분명 모험가 같은 건 때려치우게 하고 엘프 마을 밖으로도 못 나가게 할 텐데요. 쉰 살이 넘어서 엘프 마을 밖으로 나가면 그때는 카리나 씨도 레나 씨도 똑같이 쉰 살이잖아요!”
그 말도 일리는 있는 말이었다.
엘프의 시간에서 몇십 년은 그렇게 길지도 않은 시간이지만, 엘프가 아닌 우리 입장에서는 전혀 그렇지 않았으니.
그녀가 다시 사회로 나갔을 때는 나는 몰라도 다른 두 사람은 초월자라도 되지 않는 이상 노화가 찾아오기 시작할 나이였으니까.
하지만 그렇다고 마냥 도망치는 것만이 해결책이 될 수는 없었다.
“그러니 설득을 해야지.”
“...설득을 못 하면요?”
“...종종 놀러 가도록 할게.”
“안 돼요! 쿠르트 씨! 버리지 말아 주세요!”
내 말에 마리는 눈물을 왈칵 쏟으면서 내 몸에 달라붙기 시작했다.
아니, 무슨 다 큰 여자애가 매미처럼 양다리를 꼬아서 달라붙어.
“노, 농담이야. 나도 같이 가서 설득해볼 테니까.”
“지, 진짜요?”
“그래. 이제 와서 의리 없이 너를 버리겠냐.”
“동감입니다. 저도 마리시아 양의 어머님을 설득하기 위해서 힘을 보태겠습니다.”
“설마 우리가 너만 쏙 버리고 우리끼리만 모험가 생활을 할 거라 생각한 거야?”
“카리나 씨. 레나 씨. 우에에엥…….”
우리의 말에 마리는 예상도 못 했던 대답이었다는 듯 눈물을 참지 못하고 엉엉 울기 시작했다.
“야! 잠깐 내 옷에다 콧물 묻히지 마!”
그렇게 우리의 세계수로 향하는 여행이 시작된 것이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 님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공모전은 끝났지만 환버거는 끝나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