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64화
데리야키 공룡 구이
마리와 카리나, 세레나.
세 사람이 눈을 뜬 것은 다음날의 오후였다.
마나 탈진의 후유증으로 어딘지 나른한 몸을 이끌고 내려온 카리나와 세레나는 곧바로 마리에게 찾아가서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고맙습니다. 마리시아 양. 우리 둘을 데리고 모험가 길드까지 도망치셨다고 들었습니다.”
“마리, 네가 아니었으면 죽을 뻔했네.”
그러나 마리는 두 사람의 감사에도 우쭐해 하는 것 없이 오히려 힘없는 표정으로 인사를 받을 뿐이었다.
“아니에요. 제가 뭐 대단한 걸 한 것도 아닌데요.”
그녀로서는 괜히 힘을 숨기다가 다른 두 사람을 위험에 처하게 한 것뿐이니.
물론, 정령을 다루는 힘을 내보였다가는 당장 모험가 생활을 접게 될지도 모른다는 이유가 있기는 했지만 그럼에도 마리는 괜히 두 사람이 쓰러진 것이 자신의 탓인 것만 같았다.
그것을 모르는 두 사람은 그저 마리 또한 자신들과 같이 어제 하루종일 무리를 해서 피곤한 것으로 생각하고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음. 그보다 길드가 조금 소란스럽지 않습니까?”
“그러게. 보통 점심시간쯤이면 대부분 의뢰를 하러 나가서 한가할 텐데…….”
“그러고 보니까 그런 것 같기도…….”
그녀들은 나른한 몸짓으로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길드 안을 돌아보았다.
길드에 남아있는 모험가들은 다들 상기된 표정으로 무언가에 관해서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그것을 본 카리나는 세 사람의 대표로 웬디에게 가서 물었다.
“웬디. 오늘따라 길드가 소란스러운 것 같은데 무슨 일 있었어?”
“네? 그야 당연히 새벽에 있었던 일 때문이죠. 그렇게 커다란 마수를 잡아 왔는데.”
“커다란 마수?”
“네. 야간 당직 말로는 어떻게 한 것인지 혼자서 그 커다란 놈을 질질 끌고 오는데……. 순간 자신이 잘못 꿈을 꾸고 있는 줄 알고 손가락을 꺾었다가 인대가 늘어났다지 뭐에요.”
“손가락을…?”
“네. 리얼리티 체크를 했다나 뭐래나.”
“그나저나 커다란 마수라니 도대체 얼마나 커다란 녀석을 사냥했길래…?”
“네? 못 들으셨나요?”
“당연히 못 들었으니 물어보는 건데.”
카리나는 오히려 어째서 내가 알고 있으리라고 생각하냐는 듯 의문 섞인 눈으로 웬디를 바라보았고, 그녀의 얼굴을 본 웬디는 뭔가를 깨달았다는 듯 음흉한 미소를 지었다.
“아하. 그렇게 된 것이군요.”
“그렇게 되다니. 뭐가 말이지?”
“아니요. 카리나 씨가 모르신다면 굳이 제가 얘기할 필요는 없을 것 같네요.”
“뭐라고?”
“아. 그럼 저는 일이 바빠서 이만.”
웬디는 그것을 끝으로 그녀들을 피해서 길드의 접수대로 돌아갔다.
그것은 명백히 새벽에 있었던 일에 대해서 알고 있으면서도 대답을 하지 않으려는 속셈으로 보였다.
그러나 그것은 누군가에게 함구령을 받았다거나 악의를 가진 것이 아니라 마치 그녀들에게 장난이라도 치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웬디의 그 모습을 본 세 사람은 그 이유를 짐작하지 못하고 각자 고개를 갸웃거릴 뿐이었다.
“웬디 씨. 뭔가 이상하지 않나요?”
“역시 그렇죠? 마리시아 양.”
“흐음. 그래도 장난치는 걸 보아하니 중요한 건 아닌 거 같은데.”
그렇게 모험가 길드에서 벌어지는 작은 소란에 대해서 세 사람이 의견을 나누고 있으려니 길드의 2층에서 쿠르트가 하품을 하며 내려왔다.
“하암……. 뭔가 부산스럽네.”
“아. 쿠르트 씨! 지금 일어난 거에요?”
“그런 셈이지. 좀 늦게 잠들었거든.”
“어제 하루종일 고생한 우리보다도 늦게 일어나다니. 요즘 하도 의뢰를 하지 않아서 게을러진 것 아닙니까?”
“맞아. 쿠르트. 그렇게 게으름을 부리면 몸이 상한다고!”
그녀들은 자신들보다 늦게 일어난 쿠르트를 향해서 한마디씩 잔소리를 했지만 쿠르트는 그녀들의 말을 들은 체도 하지 않고 하품을 하고 있을 뿐이었다.
“그보다 배고프지 않냐. 탈진한 것 때문에 어제 점심때부터 하루종일 아무것도 못 먹었을 텐데. 밥이나 먹지.”
“그런 식으로 말을 돌리려고 해도…!”
구우우우
마리는 쿠르트의 말에 넘어가지 않는다고 말하려 했지만, 그녀가 말을 끝까지 잇기도 전에 밥이라는 단어에 반응한 그녀의 위장이 먼저 소리를 냈다.
“이, 이건…….”
“됐고, 자리에 앉아서 기다려라. 금세 음식을 내올 테니까.”
자신의 배에서 난 소리에 얼굴이 새빨갛게 달아오른 마리를 향해서 쿠르트는 피식 한 번 웃어준 뒤 모험가 길드의 주방으로 향했다.
.
.
.
“하아암…….”
나는 하품을 크게 한 번 하는 것으로 잠기운을 모두 떨쳐내고는 주방에 섰다.
어제는 아니, 어제도 아니지.
오늘은 아침이 다 되어서야 잠들어서 방금 일어났으니까.
물론 초월자의 육체는 하루 이틀 정도 안 잔다고 문제가 생기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초월자가 되기 전에 몸에 익었던 습관이 있으니.
심리적으로 뭔가 개운하지 않은 느낌이다.
하지만 그건 그거고, 요리는 요리지.
나는 지난 새벽에 사냥한 아룡의 꼬리를 도마 위에 올려놓았다.
쿠웅!
꼬리 전체가 아니라 일부분뿐임에도 불구하고 엄청난 중량감이다.
오늘 점심으로 먹을 요리는 바로 이 아룡의 꼬리를 이용한 요리다.
그건 딱히 내가 사냥꾼으로서 동료를 해친 마수가 있다면 그 마수를 사냥해서 잡아먹어야 하는 관습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었다.
어쨌든 모험가로서 동료에게 해를 입힌 마수는 사냥하는 것을 철칙으로 삼았기에 사냥했으니, 이번에는 사냥꾼의 철칙에 따라 사냥한 마수를 소비하는 것일 뿐.
시체 버섯의 경우에는 도저히 먹을 수 있는 것이 못 돼서 그대로 버려두고 나왔지만, 아룡의 경우는 명백하게 먹을 수 있는 마수였고.
그리고 나도 아룡의 고기를 먹는 것은 처음이기도 하고.
궁금하잖아.
어떤 맛이 날지.
우선은 아룡의 꼬리를 식칼에 오러를 불어넣어서 가죽을 베어낸 뒤 베어낸 가죽 부분을 잡고 벗겨낸다.
그렇게 가죽을 벗겨낸 꼬리를 다시 1인분의 크기의 스테이크 같은 모양으로 잘라낸다.
꼬리의 끝부분임에도 워낙 아룡 자체의 크기가 커서 그런지 적당한 두께로 잘라내도 그것 자체가 스테이크 한 장의 크기로 썰어진다.
이때 꼬리를 자르는 과정에서 아룡의 꼬리뼈가 걸릴 텐데 그 부분은 식칼에 오러를 둘러서 베어내면 뼈까지 쉽게 잘린다.
만약 오러를 불어넣어도 뼈가 잘 잘리지 않는다면 자신의 오러 수준이 부족한 것은 아닌지 곰곰이 생각해보는 시간이 필요할지도 모르겠네.
잘라낸 고기는 그대로 한 번 손가락을 들어서 만져보니 예상대로 육질이 매우 단단했다.
그럴 줄 알고 미리 준비한 포식수의 과즙.
이제는 익숙해진 포식수의 과즙을 아룡의 꼬리에 꼼꼼하게 바르고 소금과 후추를 뿌린 뒤 그것들이 잘 배어들 때까지 재워둔다.
포식수의 과즙은 아룡의 변질된 마나를 정화하면서 동시에 질긴 고기의 육질을 연하게 만들어줄 것이다.
그건 그렇지만 최근에는 너무 마수의 고기를 포식수의 과즙에 의존해서 정화하는 느낌이다.
조만간 포식수의 과즙을 대체할 수 있는 재료를 찾아서 모험하는 것도 괜찮을 것 같은데…….
어쨌든 그 아룡의 고기가 배어들도록 했다면 그다음은 구이에 쓸 소스의 준비다.
평소대로라면 소스에는 별다른 힘을 주지 않고 대충 육즙을 이용해서 그레이비 소스를 내겠지만, 오늘은 다르다.
얼마 전에 간장을 구매한 만큼 간장을 이용해서 만드는 대표적인 소스인 데리야키 소스를 만들 것이다.
데리야키 소스가 어울리는 육류 요리는 일반적으로 흰살생선과 닭고기였지만, 따지고 보면 아룡은 파충류에 속하는 식재료였고 일반적으로 뱀이나 도마뱀 같은 파충류들은 닭고기와 유사한 맛이 나니 데리야키 소스에 어울린다고도 할 수 있었다.
우선 필요한 것은 당연히 간장.
냄비에 간장을 부은 뒤, 간장 이외에도 마늘, 양파, 설탕을 넣는 것으로 맛과 향을 잡는다.
거기에 순수하게 간장만을 사용해서는 짠맛이 다른 맛을 뒤덮어 버리니 물을 넣어서 농도를 맞춘다.
그 뒤에 향과 감칠맛을 더하기 위해서 말린 버섯을 조금만 넣어준다.
그리고 간장과 함께 데리야키 소스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존재인 청주(淸酒).
바다 건너 대륙에서 대중적으로 쓰이는 양념인 간장조차도 매우 적은 수량이 시장에 돌아다닐 뿐인데 하물며 청주를 구하는 것은 매우 힘든 일이었지.
심지어 청주는 쌀을 이용해서 만든 탁주를 다시 한번 걸러서 만드는 술이라서 쌀을 재배하지 않는 이 대륙에서는 없으면 만든다는 생각으로 만들 수도 없는 것이었다.
이 청주 한 병을 구하려고 시장을 몇 바퀴나 돌았는지.
그렇게 어렵게 구한 청주를 한 컵 크게 받아서 다른 재료가 담긴 냄비 안에 통째로 집어넣는다.
그 뒤 냄비에 불을 올려서 냄비 안의 내용물을 졸인다.
그렇게 한 참 내용물을 졸여서 어느덧 양이 절반 정도로 줄어든다면 그것으로 끝이다.
남은 것은 체를 사용해서 양념을 우려내는데 사용했던 건더기를 걸러내는 것뿐.
그렇게 데리야키 소스가 완성될 즈음이면 아룡의 꼬리 고기 또한 먹기 좋은 느낌으로 연육 작용이 끝나있었다.
모든 재료가 준비된 것을 확인했다면 그 즉시 꼬챙이를 꺼내서 격자무늬의 불판을 조립한다.
데리야키 소스의 마지막은 숯불을 사용해서 숯불의 맛을 입히는 것이기에 굳이 팬을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격자형의 불판을 사용하는 것이다.
그 뒤 장작을 꺼내서 그 자리에 숯을 집어넣고 다시 불을 붙인다.
격자형의 철판 위에 아룡 고기를 올려놓고 요리용 붓을 사용하여 데리야키 소스를 그 고기 위에 꼼꼼히 발라준다.
치이이익
데리야키 소스가 골고루 발라진 아룡의 고기는 열에 닿는 것과 동시에 고기가 구워지는 냄새와 동시에 간장이 열에 타면서 나오는 짭짤하고 고소한 냄새를 풍기기 시작한다.
데리야키 소스의 맛은 단맛과 짠맛, 그야말로 단짠의 궁극이라 할 수 있는 소스였다.
그 단짠으로 이루어진 소스의 맛이 그저 굽는 것만으로 새어 나오는 것 같은 느낌이다.
간장은 고기보다도 낮은 온도에서 타기 때문에, 평소 고기를 구울 때보다는 약한 중불 정도의 온도에서 굽는다.
조금 정도는 소스가 타는 것도 그 나름의 맛이 있지만, 어느 일정 선을 넘어서 타게 되면 그 탄 부분은 소스의 맛을 돋보이게 하는 것이 아니라 역으로 소스의 맛을 묻어버리고 마니까.
치이이이익
고기의 굽기가 진행되면 진행될수록 점점 폭력적인 향을 띠기 시작하는 그 데리야키 구이.
하지만 조바심을 두지 않고 아룡 고기가 충분히 익을 때까지 기다리며 구워낸다.
이윽고 고기가 적절하게 구워졌다 싶은 순간에 망설이지 않고 고기를 빼낸다.
그렇게 하면 데리야키 소스가 지나치게 타지 않고 딱 맛있는 수준으로 숯불의 향을 흡수한 데리야키 아룡 구이의 완성이다.
오늘의 점심
데리야키 아룡 구이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 님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옆 동네의 공모전이 시작했다고 합니다.
이쪽과는 다른 동네의 이야기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동종 업계로서 다같이 잘 되었으면 좋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