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63화
데리야키 공룡 구이
쏴아아아아
처음 천둥을 치는 것과 동시에 한두 방울씩 떨어지기 시작했던 빗방울은 이내 하늘에 구멍이라도 뚫린 것처럼 빗물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그 빗물들은 곳곳이 불타고 있는 이 작은 전장을 차갑게 식혀주었다.
그 결과 아직 잔불이 남아 불타고 있는 식물들에 붙은 불은 메케한 냄새의 연기만을 조금 남기고 모두 사라졌다.
그리고 그 장소에서 마리는 기절한 카리나와 세레나를 감싸듯이 앞으로 나와 아룡과 대치를 하였다.
그러나 마리가 필사적으로 두 사람을 지키기 위해서 아룡의 앞을 막아섰음에도 아룡은 마치 인간종처럼 코웃음을 치며 마리의 그런 모습을 우습게 여길 뿐이었다.
마리의 화살이 그 마수에게 위협적이기는 했지만, 그것은 그녀의 화살이 카리나나 세레나와의 전투를 집중하고 있는 틈에 눈동자 같은 급소를 노리기 때문에 위협적이었던 것.
더이상 그녀를 지켜줄 방패도 없고 마수의 신경을 혼란스럽게 만드는 마법도 없다면 그녀의 화살이 그 마수의 급소에 닿을 일은 없는 것이므로.
그것은 세 사람과 전투를 하며 얻어낸 경험에 의한 추론이었고, 과연 그 추론은 생태계의 지배자라는 이름에 부족함이 없는 정확한 것이었다.
그러나 그 아룡이 간과한 사실이 있다면 마리의 능력이 오직 그것만이 아님을 몰랐던 것이다.
마리는 떨리는 두 눈으로 카리나와 세레나는 살펴보았다.
다행히 둘 다 마나를 과도하게 소모한 것으로 탈진을 한 것뿐 신체에 치명적인 상처를 입은 것은 아닌 듯했다.
하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지금의 상황에서 마음을 놓을 수는 없는 문제였다.
이대로라면 당장 눈앞의 아룡에게 쓰러진 그녀들이 찢기는 것은 시간문제로밖에 보이지 않았으니.
“미안해요……. 카리나 씨. 레나 씨.”
그런 쓰러진 두 사람에게 마리가 느낀 것은 아룡을 혼자 상대해야 한다는 공포도, 무력감도 아닌 죄책감이었다.
자신이 결단을 내리는 것이 느렸기 때문에.
그래서 두 사람이 그녀를 지키고 쓰러진 것이었기에.
마리는 지금까지 모험하면서 오직 활만을 사용해왔다.
그것만으로도 모험하는데에도 문제가 없었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그 이전에 이 모험을 계속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녀가 숨겨두었던 그 능력을 사용하면 더는 같이 모험을 할 수 없게 될 확률이 높았으니까.
그렇기에 마지막 순간까지도 마리는 자신의 궁술만으로 이겨낼 수 있는 역경이라 믿으며 힘을 아꼈다.
하지만, 그 잘못된 판단으로 인해서 벌어진 결과는 카리나와 세레나 두 사람의 기절이었다.
마리는 결코 이대로 모험을 끝내고 싶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두 사람을 희생하면서까지 모험을 계속하고 싶지는 않았다.
슬픈 눈으로 카리나와 세레나를 바라보던 마리는 곧 자신의 머리를 묶고 있던 머리끈을 풀었다.
그렇게 머리끈을 풀고 생머리가 된 마리시아는 조용히 눈을 감고 자연의 기운을 느꼈다.
크워어…?
그리고 점차 그녀들을 향해서 모여드는 여러 가지 색상의 빛무리들.
한순간 아룡은 아직 마법쟁이가 쓰러지지 않은 것인지 고개를 돌아보았지만, 세레나는 탈진해있는 상태 그대로였다.
아니, 애초에 마리의 몸을 감싸고 있었던 빛무리는 마법으로 만든 인공적인 빛들과는 달랐다.
좀 더 불규칙하고 마치 스스로 자아를 가지고 있는 것 같은, 그리고 인공적인 마나의 배열로 이루어진 마법과는 달리 정제되지 않은 순수한 자연의 기운.
[마리시아! 오랜만이네!]
[안녕! 마리시아! 어쩐 일이야?]
[야. 너 큰일 났어. 너희 엄마가 완전히 화나서 너 찾고 있던데?]
[여긴 또 어디야?]
긴장감이 넘치는 전장의 분위기와는 달리 천진난만한 어린아이 같은 목소리로 꺄르륵 거리는 빛무리들.
그 빛무리의 정체는 자연의 영혼이라고도 불리는 정령이었다.
“정령 여러분들. 오랜만에 불러서 죄송한데 저 마수를 쓰러트려 주실 수 있을까요?”
[마수? 와아! 엄청나게 큰 녀석이잖아!]
[짱 큰 도마뱀이다!]
[와! 저 녀석 입 좀 봐! 늑대 한 마리 정도는 한입에 삼키겠는데?]
[그래서 왜 저 녀석을 쓰러트려야 하는 거야?]
“저 마수가 제 친구들을 상처입혔어요.”
마리시아는 평소와는 달리 웃음기 하나 없는 진지한 얼굴로 말을 했고 그 분위기를 느낀 것인지 정령을 또한, 소란을 멈추고는 진지하게 마수를 마주하기 시작했다.
[뭐라고? 마리시아의 친구를 괴롭히다니! 마리시아의 친구면 우리의 친구야!]
[그보다 새로운 친구 사귄 거야? 나중에 소개해줘!]
[저기 쓰러진 애들이 친구 같은데?]
[뭐야! 쟤네 귀가 짧잖아! 설마 마리시아 너 엘프의 마을 밖으로 나선 거야!?]
...모든 정령이 진지한 것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한 명 정도는 진지했다.
그렇게 형형색색으로 빛나는 정령들을 주위에 둔 마리시아는 굳은 표정으로 활시위를 당겼다.
.
.
.
“후우. 어떻게든 늦지 않게 식재료들을 다 회수했네.”
설마 천둥이 치자마자 비가 쏟아질 거라고는 생각 못 했는데.
한창 예전에 사냥꾼을 할 때는 이런 실수는 하지 않았는데, 사냥꾼 일을 그만두고 나서 나도 감각이 둔해진 것일지도 모르겠다.
나는 회수한 식재료들은 다시 종류별로 나눠서 더 정리한 뒤 다시 모험가 길드의 로비에 앉아서 한숨을 돌렸다.
덜컹!
그때 모험가 길드의 문이 열리며 마리가 들어왔다.
“아. 비 오는데 얼른 들어와라.”
“쿠르트 씨!”
“너 머리끈 풀렸다.”
그러나 마리는 내 말에도 머리카락을 정돈하지 않고 울상을 지으며 말했다.
“그게 아니라……. 카리나 씨와 레나 씨가…!”
“...뭐?”
쏴아아아아
.
.
.
마리는 카리나와 세레나를 데리고서 간신히 복귀했다.
다행히 두 사람에게 큰 상처는 없었다.
두 사람 모두 마나를 너무 많이 소모해서 탈진 현상을 일으키기는 했지만 그것뿐.
다만 탈진 상태로 비를 너무 오래 맞아서 체력이 너무 소모되었고 하루 정도는 꼼짝없이 휴식을 취해야 한다는 판정이었다.
그렇게 빗물에 젖은 두 사람의 몸을 마리가 닦아주고 옷까지 갈아입혀서 각자의 방에 데려다준 마리는 다시 침울한 얼굴로 모험가 길드의 1층으로 내려왔다.
“...어쩌다 이렇게 된 거야?”
“그게 말이죠…….”
쿠르트의 질문에 마리는 힘없이 울먹이며 어떻게 된 일인지를 설명하기 시작했다.
모험가 길드의 의뢰를 수주받아서 숲속을 탐색하게 된 경위부터, 헬 하운드를 마주치고 곧이어서 아룡까지 마주치게 된 이야기.
헬 하운드는 아룡과의 영역 다툼으로 인해서 손도 대지 않고 퇴치하는 데 성공하였지만 곧이어서 아룡과 맞붙게 된 이야기.
그리고 아룡과 전투를 이어나갔지만, 힘이 부족해서 카리나와 세레나가 쓰러지고 마지막으로 남은 마리 또한 필사적으로 전투를 이어나갔지만 아룡을 쓰러트리기에는 역부족이었고 결국 간신히 카리나와 세레나 두 사람을 데리고 오는 것이 한계였다는 이야기까지.
말을 하는 도중에 마리는 감정이 복받쳐 오른 것인지 마지막 말은 거의 울면서 말하는 것에 가까웠다.
“저……. 너무 분해요. 카리나 씨와 레나 씨가 쓰러졌는데도 복수도 하지 못하고 도망쳐 왔다는 것이…!”
“너무 신경쓰지 마라. 세 명이 모두 멀쩡할 때도 밀리는 상황이었다면 혼자 남은 네가 쓰러트리지 못한 것도 어쩔 수 없으니. 오히려 두 사람을 무사히 데리고 온 것만으로도 충분히 제 몫을 해낸 거다.”
“그런 게 아니에요! 제가 좀 더 잘했더라면…!”
그러나 마리는 쿠르트의 위로를 곧이곧대로 받아들일 수 없었다.
자신의 짧은 모험이 끝나는 것을 각오하면서까지 전력을 내보였음에도 불구하고 결국 아룡을 쓰러트리는 것은 실패로 돌아갔다.
그녀로서는 두 사람을 쓰러트린 적이 눈앞에 있는데도 무력하게 다른 두 사람을 챙겨서 도망쳐 오는 것이 고작이었다.
차라리 처음부터 정령의 힘을 내보여서 두 사람과 힘을 합쳤다면 무언가 달라졌을까?
그녀로서는 이 모든 일이 자신이 방심한 탓에 벌어진 일이라는 생각밖에 들지 않는 것이다.
마리는 그것이 너무 분하고 슬퍼서 눈물이 흐르는 것을 참을 수가 없었다.
그렇게 마리가 흐느끼는 것을 한참 동안 듣고 있던 쿠르트는 그녀를 위로하기 위해서 말을 건넸다.
“신경 쓰지 마라. 모험가 일을 하다 보면 마수에게서 도망치는 날도 있는 거지.”
“하, 하지만 저는…!”
쿠르트에게 항변을 하려던 마리는 곧 그녀의 이마에 올라간 쿠르트의 손에 말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그는 손으로 그녀의 이마를 짚으며 말했다.
“열이 있군. 카리나와 세레나의 몸은 닦아주면서 정작 자신의 몸은 닦지 않았으니 열이 오른 거야.”
그 말대로 그녀는 도착하고 카리나와 세레나의 몸 상태를 진단받은 것과 동시에 그녀들의 몸에 묻은 빗물과 젖은 옷을 갈아입혀 주었지만, 정작 본인은 두 사람에게 신경을 쓰느냐 몸도 제대로 닦지 않고 젖은 옷을 입은 그대로였기 때문이다.
카리나와 세레나 정도로 탈진 상태에 이른 것은 아니었지만 마리 또한, 전투하는 과정에서 체력을 많이 소모한 상태였고, 모험가 길드에 도착해서 몸이 식기 시작하며 감기 기운이 오르기 시작한 것이었다.
“어차피 너희가 받은 의뢰의 내용은 마수들의 이상 현상에 대해 원인을 조사하는 것이었어. 비록 아룡을 토벌하지는 못했지만, 그 원인이 아룡에 의한 것임을 밝혀낸 것만으로도 의뢰는 성공적으로 완수한 거다. 그러니까 너도 올라가서 옷 갈아입고 쉬어라.”
“그, 그래도…….”
“어차피 머리에 열이 오른 상태로는 아무것도 못 하잖아. 자세한 이야기는 내일 하자.”
쿠르트는 그렇게 말하며 아직 슬픔을 완전히 떨쳐내지 못한 마리를 억지로 숙소로 돌려보냈다.
결국, 쿠르트의 말이 일리 있음을 느끼기도 했고 그의 고집을 꺾지 못함을 느낀 마리는 그의 말대로 순순히 그녀의 방으로 돌아가기로 하였다.
그리고 그녀가 2층으로 올라가려는 것을 확인한 쿠르트는 조용히 우의를 갖춰 입었다.
“쿠르트 씨…? 어디 나가시나요?”
“아아. 생각해보니까 밖에 식재료들을 말리고 있었던 것을 깜빡해서 말이지. 식재료들을 회수하고 나도 올라가서 잘 테니까 먼저 자고 있어.”
“네에……. 알았어요.”
쿠르트의 대답에 마리는 점점 열이 오르기 시작해서 멍해지는 머리로 깊게 생각하지 않으며 얌전히 2층으로 올라갔다.
마리가 2층으로 올라간 것을 확인한 쿠르트는 곧 말없이 몸을 돌려 모험가 길드의 밖으로 나섰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 님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표지 일러스트를 러프판에서 정식판으로 교체하였습니다!
표지를 그려주신 므밍 님에게 다시 한 번 감사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