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53화
어린이 햄버그 정식
아침 일찍 일어난 정우는 그녀의 옆집에 사는 친한 오빠인 엘시네 집으로 쪼르르 달려갔다.
전날 생각해낸 재미있는 놀이가 떠올랐기 때문이다.
최근 들어 자신과 잘 어울려주지 않는 엘시였지만 자신이 생각해낼 새로운 놀이에 대해서 들으면 분명 눈을 빛내고 같이 놀아달라고 애원하겠지.
엘시 오빠가 자신의 치맛자락을 붙잡으며 같이 놀아달라고 애원하는 모습을 상상한 정우는 그 상상만으로 재미있다는 듯 ‘킥킥.’하고 웃었다.
“엘시 오빠 노올자~.”
“안 돼. 나 학교 가야 한단 말이야.”
“치이~. 치사해. 맨날 오빠만 학교에 가서 놀고.”
“그런 게 아니거든!”
정우의 그 말에 엘시는 무심코 크게 소리를 치고 말았다.
엘시라고 해서 학교에 가고 싶어서 가는 것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물론 학교에 가서 친구들과 노는 것은 즐거웠지만, 그 또래의 남자아이들이 대부분 그렇듯이 수업시간은 그에게 있어서 지루하고 괴로운 시간일 뿐이었기 때문이다.
그런 자신의 마음도 모르고 태평하게 학교에 놀러 가는 것처럼 말하다니.
그러나 곧 엘시의 진심 어린 짜증을 받은 정우는 마치 새총에 맞은 새처럼 눈을 크게 뜨더니 곧 울음을 터트리고 말았다.
“....흑……. 흑! 우와앙! 엘시 오빠가 나한테 화냈어!”
“아니……. 그런 게 아니라…….”
한 번 울음을 터트린 정우는 그간 엘시가 자신과 놀아주지 않아서 속상했던 서러움까지 밀려와서 기어이 엘시의 집 앞에서 꺼이꺼이 목놓아 울기 시작했다.
설마 자신이 조금 짜증을 냈기로서니 이렇게까지 구슬프게 울 거라고는 생각지 못한 탓이었을까.
엘시는 울고 있는 정우의 모습에 당황해서 어쩔 줄 몰라 할 뿐이었다.
그렇게 슬피 우는 정우에게 엘시가 결국 내린 선택은 도피였다.
“아! 학교 늦겠다! 미안해. 정우야. 학교 끝나고 나서는 많이 놀아줄게!”
그렇게 엘시는 도망치듯 자리를 떴고 정우는 엘시의 집 앞에서 한참을 구슬피 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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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이……. 엘시 오빠. 예전에는 안 그랬는데. 이게 다 학교 때문이야…….”
정우는 아직 한참을 울어서 눈가가 빨개진 채로 터벅터벅 걸으며 중얼거렸다.
그깟 공부가 뭐라고, 구구단인지 뭔지가 그렇게도 좋은가.
자기보다 노는 것보다 중요한 게 있다니. 옛날에는 저러지 않았는데.
이게 다 작년에 입학한 학교라는 곳 때문이었다.
어린 정우에게는 학교라는 곳이 마치 자신에게서 엘시 오빠를 빼앗아간 괴물로만 보였다.
그것도 매우 심술궂은 괴물로.
평소 같았으면 이대로 시무룩해져서 집으로 돌아갔을 정우였지만, 오늘은 기분이 왠지 울적한 것이 도저히 집으로 돌아가고 싶은 기분이 아니었다.
어차피 집으로 가봤자 아빠도 일을 하기 위해서 집을 비웠기 때문에 멍하니 시간을 보내야 하는 건 똑같았다.
그렇다면 차라리 사람이 많이 돌아다니는 시장이라도 구경하면서 기분전환이라도 하는 게 낫지 않겠는가.
아빠는 혼자 다니면 어린이를 잡아먹는 무시무시한 괴물이 나타난다고 시장에 혼자 가지는 말라고 했지만, 오늘의 정우는 아빠가 한 당부를 잘 지키지 않는 조금 나쁜 정우가 되고 싶은 기분이었고, 곧 아무 일도 없을 것이라고 스스로를 다독이며 시장으로 발걸음을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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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연 혼자 몰래 나온 시장에는 신기한 것들로 가득했다.
정우는 곧 심통이 났던 것도 잊은 채로 호기심을 보이며 이곳저곳을 돌아다녔다.
“와아~. 신기하다! 이건 뭐에요?”
정우는 눈을 초롱초롱 빛내며 아홉 꼬리 도마뱀을 가리키며 말했다.
그 도마뱀은 행상인이 준 벌레를 한입에 삼키고는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시치미를 떼며 석상이 된 것처럼 멀뚱히 서 있었는데, 그 모습이 천연덕스럽게 ‘내가 안 먹었는데요?’하고 거짓말을 하는 것 같아서 꽤 우스웠기 때문이다.
그러나 행상인은 정우의 물음에 대답하지 않고, 대신 사람 좋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아이고. 꼬마 아가씨. 여기는 왜 혼자 왔어. 아빠는 어쩌고.”
“오늘은 저 혼자 왔어요! 저도 이제 다 컸다고요!”
“꼬마 아가씨가 용감하네.”
“그렇죠? 히히.”
그렇게 정우는 행상인뿐만 아니라 과일을 파는 과일 가게에서 맛있어 보이는 과일을 바라보면서 맛을 상상하기도 했고 한 번도 들어가 본 적 없는 고급 식당을 밖에서 바라보면서 냄새를 맡아보기도 하였다.
신기한 동물을 파는 행상인, 맛있는 음식을 파는 상점, 어디에 쓰는지 짐작도 가지 않는 신기한 도구들을 파는 상점까지.
대부분은 인간이었지만 군데군데 고양이의 귀가 달린 언니나 키는 자신보다 조금 더 큰 정도밖에 되지 않았지만 마치 황소 같은 팔뚝을 가진 드워프 아저씨, 그리고 아까 행상인 아저씨의 노점에서 보았던 도마뱀 같은 모습을 한 아저씨도 있었다.
대부분 인간만 모여서 하는 거주 구획에서는 쉽게 볼 수 없는 다인종들이었다.
그렇게 한참을 돌아다니던 정우는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시장을 돌아다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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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헤헤. 재미있었다. 아빠는 시장에 혼자 가지 말라고 했는데 하나도 안 위험하잖아.”
그렇게 용감한 모험을 끝마친 정우는 오늘 하루를 충실하게 보냈다는 생각을 하며 집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태양이 머리 위를 향해서 이동하는 것을 보면 이제 곧 점심이라는 뜻이었고, 그렇다면 그것은 곧 집에 돌아가서 점심을 먹을 시간이라는 것을 의미했기 때문이다.
“그보다 번화가에 있었던 고급 식당에서는 무슨 요리가 나올까? 분명 내가 상상도 하지 못했던 엄청난 음식이 나오겠지?”
어쩌면 아빠가 감춰두고 특별한 날에만 하나씩 주는 과일 꿀 절임이 접시에 수북하게 담겨서 나오는 걸지도 몰랐다.
그런 생각을 하던 정우는 곧 뭔가 이상한 느낌을 받고 조심스럽게 뒤를 돌아보았다.
뒤를 돌아서서 본 광경은 어느 때나 다름없는 시장의 모습이었다.
대부분은 인간이었고 가끔가다 황소 같은 뿔이 달린 아저씨, 새하얀 날개를 퍼덕이며 아름다운 노래를 부르는 아가씨와 그것을 보고 신나하며 손뼉을 치는 자신의 팔뚝만 한 크기를 가진 페어리 오빠, 그리고 도마뱀같이 생긴 아저씨까지.
잠깐, 도마뱀 아저씨?
저 아저씨는 조금 전에도 본 것 같은데?
그것을 깨달은 순간 정우는 자신의 마음속을 가득 채웠던 용감한 모험심이 급격히 쪼그라드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슬금슬금 그녀의 마음속에 샘솟는 것은 아빠가 말했던 어린아이를 잡아먹는 괴물에 관한 이야기.
정우는 문득 아까 행상인의 노점에서 본 벌레를 먹고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시치미를 떼는 도마뱀의 모습이 떠올랐다.
“에헤헤……. 착각이겠지.”
그러나 정우는 곧 고개를 도리도리 흔들고는 다시 집으로 향하는 길을 걸었다.
그 발걸음은 평소보다 묘하게 빨라져 있었지만, 여전히 어른의 발걸음에 비한다면 느긋한 속도라고밖에 할 수 없는 것이었다.
그렇게 한참을 걷던 정우는 다시 한번 슬그머니 뒤를 돌아보았다.
그렇게 뒤를 돌아봤을 때 보인 것은 이미 시장을 벗어났음에도 똑같이 눈에 띄는 도마뱀 아저씨의 모습이었다.
그 도마뱀 아저씨는 그녀에게 관심 없는 척 굴었지만, 어린 정우의 눈에는 마치 자신을 잡아먹기 위해서 입맛을 다시는 모습처럼 보였다.
“히익…!”
그 모습을 본 정우는 아침에 느꼈던 엘시에 대한 심술도, 시장을 구경하면서 들떴던 기분도 잊고 눈물을 글썽이며 도망쳤다.
타다닥
그렇게 한참을 내달리기를 얼마쯤 했을까.
문득 정신을 차리고 보니 정우는 집에 돌아가는 길에서 벗어나서 인적이 드문 골목길을 돌아다니고 있었다.
처음 보는 길은 낯설고 두려운 것이었지만 지금 정우를 가장 무섭게 만드는 것은 아빠가 말해주었던 사람을 잡아먹는 도마뱀 괴물이었다.
물론 그것은 정우의 아빠가 정우가 함부로 밖을 돌아다니지 않게 하려고 지어낸 거짓말이었고, 심지어 그 괴물이 리저드맨이라고는 한 적도 없었지만 이미 정우의 마음속에서 그 어린아이를 잡아먹는 괴물의 모습은 쿠르트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다시 한번 가빠진 숨을 가다듬고 뒤를 돌아본 정우.
그러나 그렇게 필사적으로 도망을 쳤음에도 뒤를 돌아보면 그 도마뱀 인간이 아까와 똑같은 거리를 유지한 채로 정우의 근처를 맴돌고 있었다.
마치 한 사막에 비친 오아시스의 신기루가 그러할까.
아무리 다가가도 가까워지지 않고 아무리 멀어 저도 사라지지 않는 신기루처럼 그 도마뱀 인간은 정우의 곁을 맴돌고 있었다.
마치 정우가 지쳐 쓰러지는 것을 기다리는 것처럼.
“흐윽……. 흐윽……. 엄마아…….”
결국, 버티지 못한 정우는 그녀가 지금보다도 어렸을 적 돌아가신 엄마를 찾으며 눈물을 흘렸다.
그러나 하늘은 정우를 버리지 않은 것일까.
“괜찮니? 꼬마 아가씨?”
“히잉……. 응?”
그녀에게 구원의 손을 내민 것은 아까 시장에서 보았던 행상인 아저씨였다.
그 아저씨는 사람 좋은 자상한 미소를 지으며 정우에게 손을 내밀었다.
객관적으로 생각해본다면 방금 전까지 시장에 있던 아저씨가 왜 여기에 있는지, 그리고 아직 한참 장사를 할 시간인 점심시간에 왜 이런 외진 골목에 있는지 의심을 하는 게 옳았지만, 아직 어린 정우에게는 그런 것을 의심할 정도로 통찰력이 깊지는 못했다.
더군다나 지금의 정우는 자신을 뒤쫓아오는 리저드맨에 의해서 극한으로 겁을 먹은 상황이었다.
“행상인 아저씨!”
“아이고. 그래. 꼬마 아가씨. 무슨 일 있었어?”
“그게요…! 저기 저쪽에서 어린아이를 잡아먹는 괴물이…! 읍…! 으읍...!”
그러나 정우의 말은 끝까지 이어지지 못했는데 그것은 친절하게 그녀에게 다가온 행상인이 그녀에게 접근한 순간 태도를 뒤바꿔서 그녀의 입을 틀어막고 천을 꺼내서 그녀의 팔다리를 능숙하게 묶기 시작했다.
“흐흐흐. 어린아이를 잡아먹는 괴물? 그건 바로 아저씨를 이야기하는 거란다. 아무런 의심 없이 낯선 사람을 믿으면 안 된다고 엄마가 가르쳐주지 않았니?”
“읍…! 으읍……!”
“가만히 있으렴. 나도 귀한 상품은 다치게 하고 싶지 않단다. 흐흐흐. 어린아이는 참 좋아. 여러 가지로 수요가 많거든.”
정우는 필사적으로 발버둥을 쳤지만 그래봤자 학교에도 못 들어간 어린아이의 발버둥.
성인인 행상인의 힘을 당해낼 수는 없었다.
결국, 그녀가 눈물을 흘리며 저항하는 것도 부질없이 팔다리가 완전히 묶이게 될 무렵이었다.
정우와 행상인의 앞에 누군가가 나타났다.
“음?”
“친하게 이야기를 나누길래 친한 사람인가 싶었지만 역시 그랬군.”
“뭐야. 네놈은?”
행상인의 앞을 가로막은 인간종.
그것은 바로 다이어트 식단을 위한 식재료를 사기 위해 시장에 들른 쿠르트였다.
장을 보고 있는데 웬 어린아이가 혼자 돌아다니기에 무심코 쳐다보았더니, 그녀를 따라다니는 수상쩍은 인간이 눈에 띄었기 때문이다.
비록 노골적으로 추적을 한다는 티는 내지 않고 조심스레 다른 행동을 하는 척하면서 정우의 뒤를 밟았지만, 오랜 사냥꾼의 경험상 그 인간이 정우를 따라다니고 있다는 것을 눈치챌 수 있었다.
그러나 따라다닌다고 해도 무작정 나쁜 사람이라고는 할 수 없었다.
아이의 심부름이 걱정되어서 따라다니는 아버지일 수도 있었고, 아니면 그렇게 보이지는 않았지만, 정우가 귀한 집 자제라서 호위가 붙은 것일 수도 있었으니.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한번 눈에 들어온 어린아이를 미행하는 어른의 모습이 신경 쓰이지 않을 도리는 없었고 쿠르트는 조용히 정우를 따라다니는 그 행상인을 따라다닌 것이었다.
물론 쿠르트는 딱히 켕길 것이 없었기에 굳이 모습을 감추지는 않았고, 그렇기에 그 행상인을 따라다니는 쿠르트의 모습에 정우가 겁을 집어먹고 도망치게 된 것.
그것이 이 일의 전말이었다.
그리고 그 정우가 인적이 드믄 길로 들어서자마자 본색을 드러내고 납치하려는 꼴이라니.
“후우……. 만약 내가 보지 못했다면 큰일이 날 뻔했군.”
“뭐야. 뒤지고 싶지 않으면 그냥 꺼져.”
그 쿠르트의 말에 행상인은 품속에서 단검을 꺼내 그를 위협했다.
그러나 쿠르트는 그 모습에 겁을 집어먹기는커녕 오히려 더욱 기분이 불쾌해졌다는 듯이 눈을 세로로 길게 찢었다.
쿠르트가 순순히 꺼질 생각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자신의 범행현장이 들킨 순간 이미 살인을 하기로 마음을 먹었던 것일까.
쿠르트가 자신의 위협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가만히 있지 곧 그 행상인은 아무런 전조도 없이 단검을 들고 쿠르트에게 달려들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 님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설마 오늘이 어린이날 이었을 줄이야.
급하게 편성된 어린이날 특집편.
배경은 마리, 카리나, 세레나 세 사람이 의뢰를 하러 밖에 나간 사이 쿠르트가 겪은 사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