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44화
과일나무 뿔 순록의 차돌박이 샐러드
짹 짹
창문의 틈 사이로 햇빛이 들어오며 아침이 되었음을 알리고 있었다.
그야말로 맑고 쾌청한 날씨에, 화창한 날씨를 선천적으로 싫어하는 몇몇 인간종이 아니라면 누구라도 반길만한 좋은 아침이었다.
그러나 그런 아침 속에서 나는 고요하게 홀로 고민을 했다.
고민의 원인은 어제 내가 무심코 뱉은 말이었다.
그것은…….
부스럭
순간 나의 청력에 문밖에서 무언가가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딱히 인기척을 내기 위해서 낸 것은 아니었고, 오히려 조심스럽게 문 앞에서 기다리는 기색이었지만 오히려 그 조심스러운 기척이 나의 신경을 자극한 것이다.
그보다 벌써 아침 시간인가.
끼이익
“아! 쿠르트 씨. 좋은 아침이네요!”
“음. 우연이군요. 마침 저도 막 일어난 참이었는데, 이렇게 만난 김에 같이 아침 식사를 하지 않겠습니까?”
“우연…….”
두 사람은 마치 우연히 내 방의 앞을 지나가다 만났다는 듯 능청스럽게 굴었지만, 매일 같이 같은 시간에 규칙적으로 방앞에서 마주치는 우연이 있을 리가 없지.
만약 내가 방안에서 기척을 눈치채지 않고 있었으면 몇 분이고 우연을 가장하기 위해서 기다리고 있을 거였으면서.
“그래. 밥이나 먹자.”
그러나 나는 거기에 굳이 딴지를 걸지 않고, 그녀들과 함께 요리재료를 챙겨서 1층으로 내려가는 것을 택했다.
아무렴 어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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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층으로 내려가니 그곳에는 예상치 못한 인물이 나를 반겨주었다.
“야! 쿠르트! 여기야! 여기!”
“뭐야. 네가 왜 여기 있어?”
“나는 네가 아니라 쿠르트를 불렀거든.”
아침부터 맥주를 마시면서 나를 부른 것은, 다름 아닌 웨이브 진 붉은 머리가 인상적인 여성인 세레나였다.
“아. 세레나. 어젯밤에는 잘 쉬었어?”
나는 세레나에게 그녀의 상태를 유심히 살피며 물었다.
어제저녁을 먹을 때에는 멀쩡해 보이기는 했지만, 그래도 나로 인해서 죽을 뻔한 위기를 겪었으니 걱정스러운 마음이 들었기 때문이다.
“으, 응? 나는 괜찮아. 헤헤…….”
“그렇다면 다행이고.”
“아니, 그게 아니지. 이렇게 아침부터 만나게 된 것도 우연인데 같이 아침을 먹지 않을래?”
“이른 아침부터 맥주를 몇 잔이나 비우면서 쿠르트 씨가 머무르고 있던 길드의 1층에서 기다린 것이 우연이라……. 훗. 재미있는 농담이군.”
“뭐, 뭐래?”
세레나의 말에 카리나는 코웃음을 치며 그녀의 말을 지적했다.
하지만 따지고 보면 그 말은 자기 자신에게도 해당하는 말 아닌가?
그보다 역시 요리인가.
세레나는 어제저녁 내가 만들어준 요리가 인상적이었는지, 내가 해준 요리를 먹는 것이 목적인 듯했다.
그래도 아침부터 식탐이 넘치는 것을 보면 정신적 충격은 걱정하지 않아도 되겠네.
“그래. 앉아서 기다려. 금방 요리해줄 테니까.”
어차피 3인분이나 4인분이나 크게 달라질 것은 없고.
“아침부터 쿠르트가 직접…?”
그러나 내 말에 세레나는 예상치 못했다는 듯 눈을 크게 뜨고는 되물었다.
내가 직접 요리를 하는 건 예상하지 못한 건가?
그러면 아침부터 1층에서 나를 기다린 게, 요리를 먹기 위해서가 아니었나?
“요리를 먹기 위해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 아니야? 그러면 다른 용무라도 있었어?”
“응…? 아! 아니, 네 말이 맞아! 쿠르트가 만들어준 요리가 먹고 싶어서 기다리고 있었지. 헤헤헤…….”
“뭐, 그러면 셋이서 사이좋게 기다리고 있어라. 금세 만들어서 내올 테니까.”
그렇게 말하며 나는 식재료를 들고 모험가 길드의 주방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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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식재료 들을 들고 주방으로 돌아온 나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방금 전까지 다른 인간종들과 함께 있을 때는 떠오르지 않았지만, 이렇게 주방에 혼자 들어와 조용하게 되니 다시 고민이 떠오른 탓이다.
처음에는 아무 생각 없이 던진 한마디 말이었다.
그러나 그 한마디의 말은 나조차도 예상치 못한 와중에 점점 커져서 어느새 내 머릿속 생각의 대부분을 차지하게 된 것이다.
나는 잠시 내 눈앞의 식재료들을 멍하니 내려다보며 생각했다.
차라리 지금이라도…….
아니, 그게 아니지.
요리할 때에는 눈앞의 식재료를 어떻게 조리할 것인지에만 집중해야 한다.
거기에 다른 잡념 같은 것은 끼어들면 안 된다.
하물며 이미 요리를 할 준비가 끝났는데 이제 와서…….
그렇게 마음을 다잡은 나는 잡념을 떨쳐내고는 요리를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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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은 어제 사냥하고 또 마리와 카리나 두 사람에게 선물로 받았던 과일나무 뿔 순록의 고기를 손질해야 한다.
과일나무 뿔 순록의 고기는 확실히 고기 자체에서 과일 숙성 불고기에서 간장 양념을 빼고 과일 향만을 몇 배는 증폭시킨 것 같은 향기가 있지만, 반대로 그 압도적인 존재감 때문에 메인이 되지 않으면 안 된다.
다른 식재료를 돋보이게 만들거나 다른 식재료와 조화를 이루는 데에 약하다는 것이었다.
그렇기에 어울리는 조리법은 바비큐와 스테이크 같은 구이요리.
그리고 그 요리들은 아침부터 먹기에는 다소 부담스러운 감이 있다.
물론 그렇게 요리를 해도 다른 세 사람은 맛있게 먹어주겠지만 나 자신이 그렇게 하고 싶지가 않은 것이다.
그렇기에 오늘 과일나무 뿔 순록의 고기를 사용해서 만드는 요리는 구이 요리면서 동시에 아침으로 먹기에 부담스럽지 않은 요리다.
우선 사용하는 부위는 복부에 해당하는 부위, 돼지고기로 치면 삼겹살이라 부르는 부위에 해당하며 소고기로 치자면 차돌박이에 해당하는 부위라 할 수 있었다.
이름을 붙이자면 과일나무 뿔 순록의 차돌박이라고 부를 수 있겠네.
이 복부 쪽의 고기는 등이나 다리 같은 부위에 비해서 근육량이 적고 지방이 많아서 구이를 할 때 기름지고 고소한 맛을 가졌기에 제법 선호되는 부위였다.
그 과일나무 뿔 순록의 고기를 포를 뜨듯 얇게 잘라낸다.
평소에 고기를 구울 때는 씹는 식감이 살아날 수 있게 어느 정도 두께를 두고 잘라내는 것을 선호하지만 이번 요리에는 이쪽이 더욱 어울리기 때문이다.
식칼에 오러를 두른 뒤, 야채를 채 써는 것처럼 팔을 반복해서 움직여주면 고기임에도 불구하고 마치 양파가 썰리는 것처럼 반대편이 비쳐 보일 정도로 얇은 고기가 나온다.
그 뒤, 물기를 한 번 닦아주고 간단하게 소량의 소금과 맹독늪 연꽃의 씨앗 기름을 사용해서 밑간을 해주고, 소금이 배어드는 동안 다음 요리재료를 손질한다.
사실 손질이라고 할 것도 없지.
양상추, 적상추, 로메인 등의 샐러드용 채소를 먹기 좋게 다듬은 뒤 차가운 물에 잘 씻어 주면 끝이니까.
그렇게 잘 씻은 채소를 다시 깨끗한 차가운 물에 담가둔다.
그렇게 오랜 시간 담가둘 필요는 없다.
5분에서 10분 정도 담가두는 것만으로 채소의 신선함이 되살아난다.
그렇게 채소가 다시 신선해지기 기다리는 시간 동안 소금으로 간을 해놓은 고기를 다시 꺼낸다.
보통 고기의 밑간은 최소 30분은 해야 하지만 건너편이 비칠 정도로 얇게 잘라낸 마수의 고기는 굳이 기다리는 시간이 없이 곧바로 조리를 시작해도 무난하기 때문이다.
고기를 한입에 먹기 좋은 크기로 잘라서 팬에 넣고 굽는다.
고기가 얇으므로 굽는 시간은 평소의 절반도 채 걸리지 않는다.
그렇게 구워낸 고기를 4개의 접시에 나눠 담는다.
물론 아무리 얇게 잘라내서 소화에 부담이 없게 만들었다고 해도 차돌박이 부위 자체가 기름기가 많은 부위기 때문에 이대로라면 아침에 먹기 부담되지 않는 요리에는 다소 어울리지 않는다.
그렇기에 여기에 찬물에 담가두었던 샐러드용 야채 또한 물기를 털어낸 뒤, 먹기 좋은 크기로 찢어서 그릇에 풍성하게 담아준다.
여기에 이제는 당연하다는 듯 카리나가 건네준 생토마토를 포크로 찍어 먹기 좋은 사이즈로 잘라서 넣는다.
그 뒤, 식용유에 식초와 설탕, 소금, 라임즙 석으면 즉석 드레싱 완성이다.
완성한 드레싱을 다른 그릇에 옮겨 담으면 이것으로 요리는 끝이다.
오늘의 아침 메뉴
과일나무 뿔 순록의 차돌박이 샐러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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샐러드 위에 간단하게 만든 드레싱을 넉넉하게 뿌린 뒤, 포크로 양상추, 차돌박이, 토마토, 세 가지를 한 번에 관통해서 찔러 넣는다.
아삭
그 순간 손끝에서부터 느껴지는 아삭함.
입에 넣고 씹지 않았음에도 포크에서 느껴지는 경쾌한 저항감이 샐러드의 아삭함을 벌써부터 상상하게 만든다.
하지만 단지 촉감만으로 만족하기에는 아쉽다.
요리라는 것은 먹어야지 진정 그 가치가 있는 법.
세 가지를 관통한 포크를 입안으로 옮긴 뒤 씹으면 입안 가득 터질 듯이 느껴지는 야채와 과일의 싱그러움.
드레싱을 만드는데 특별히 많은 재료를 넣지 않고, 오히려 상당히 간단하게 만들었음에도 과일나무 뿔 순록의 고기에서 느껴지는 과일 향이 그것을 마치 세계적으로 유명한 레스토랑 고유 레시피로 만든 것처럼 수준을 끌어올린다.
여기서는 오히려 드레싱을 만드는데 지나치게 힘을 주지 않고 오히려 힘을 빼고 만드는 것이 정답이었다.
역시 고기의 향이 개성적이기 때문에 오히려 별 특색이 없는 드레싱이 잘 어울린다.
입안 전체에서 느껴지는 싱그러움을 음미하다가, 입안의 체온으로 인해서 샐러드가 미지근해지기 전에 그것들을 씹는다.
씹는 순간, 느껴지는 양상추와 토마토의 촉촉함.
양상추가 아삭아삭하고 깔끔하고 시원한 채즙을 내뿜는다면, 토마토는 반대로 양상추 같은 식감은 없지만 상큼하고 시큼한 맛으로 이른 아침 공복의 위장을 부드럽게 일깨운다.
그리고 두 야채가 부드럽게 식욕을 돋웠을 때, 등장하는 주인공.
물론 그 주인공은 마수의 차돌박이.
얇고 지방질이 많은 부위이기 때문에 질기지 않고 오히려 상당히 부드러운 식감으로 다른 샐러드의 재료와 조화를 이룬다.
야채를 씹는 정도와 같은 힘으로 씹어도 부담이 없을 정도로 부드러운 그 고기는 씹을수록 기름이 배어 나와 야채만으로는 부족했던 만족감과 포만감을 선사한다.
그 고기의 기름은 홀로 먹는다면 부담스러웠을지 모르나, 이미 뱃속에는 양상추와 토마토가 들어와 자신들의 식이섬유로 소화를 돕고 있었으니, 고기의 만족스러움은 챙기면서도 충분한 야채의 섭취로 소화가 부담스럽지 않은 것이다.
야채와 고기의 적절한 조화로 아침부터 고기를 얼마든지 먹을 수 있도록 만들어진 무서운 함정에 한 번 샐러드를 입안에 넣은 인간종은 그 누구도 그릇이 모두 비워지기 전까지는 손을 멈출 수가 없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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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네 인간종은 간단한 요리로 제공된 아침 식사를 모두 끝마쳤다.
“후우. 오늘도 맛있게 잘 먹었습니다!”
마리는 언제나처럼 단순하지만 기운찬 감상평을 남겼고,
“과연……. 고기만 먹는 게 부담스러울 때는 야채도 같이 먹으면 좋다……. 이렇게 또 하나를 배우는군요!”
카리나는 요리를 맛있게 먹으면서도 쿠르트가 만든 요리를 살피며 느낀 점을 갈무리하고 있었고,
“야채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 나에게 샐러드를 남김없이 먹게 만들다니……. 흥! 제법이네!”
세레나는 제 딴에는 쿠르트의 요리 솜씨를 칭찬하려 한 모양이지만, 결과적으로 칭찬의 말로서는 애매하다고밖에 할 수 없는 말을 남겼다.
그렇게 세 사람은 쿠르트가 아침으로 건넨 요리를 남김없이 먹고는 각자의 감상평을 들려주었다.
처음에는 그가 내준 음식의 고기의 비율이 낮아서 실망한 얼굴을 하더니 이러니저러니 해도 한 스푼 먹기 시작하면 다들 맛있게 잘 먹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 와중에 쿠르트는 다른 세 사람의 반응을 무시한 채로 어젯밤부터 이어진 고민을 계속하고 있었다.
그 고민이란 전날 저녁 그가 마리에게 했던 한 마리의 말이었다.
‘...뭔 소리야. 혹시 의뢰 나갔다가 이상한 버섯이라도 주워 먹었냐? 적당히 손 씻고 오기나 해.’
그 한마디.
아무 생각 없이 내뱉었던 말이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자신이 했던 말 한마디가 계속 마음에 걸려서 점점 신경 쓰이기 시작하더니, 이내 자고 일어났을 때는 그 자신도 감당할 수 없을 만큼 커져 버린 뒤였다.
물론, 그것은 자신이 마리에게 심한 말을 했다고 생각했기 때문은 아니었다.
거기에 대해서는 아무런 생각도 없다.
하지만 그가 그 한마디를 신경 쓰는 이유는 따로 있었으니…….
한참을 고민하던 크루트는 굳은 결심을 한 얼굴로 고개를 들었다.
그러고서는 무거운 얼굴로 일행들에게 선고하듯이 말했다.
“오늘 저녁은 버섯전골이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 님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녁 먹기 좋은 시간에 올리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이 정도라면 야식 먹기 좋은 시간에 올린 것은 아닐까요?
늦은 밤 출출할때는 야식으로 치킨이나 피자를 시키기보다는 그냥 샐러드를 먹는 것은 어떨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