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42화
과일나무 뿔 순록의 훈연 바비큐
세레나가 입안으로 집어넣은 것은 매우 작은 한 조각의 고기였다.
그것은 그녀가 드워프라서 평균적인 인간종보다 작은 체구를 가지고 있음을 고려해도 작다고 할 수 있는 한 조각이었다.
새끼손가락의 한마디는 될까 싶은 작은 한 조각.
하지만 그 한 조각이 그녀의 입안에서 터트린 풍미는 절대 조그마하지 않았다.
입안에 넣고 그녀의 점막에 닿는 것.
고작 그것만으로도 폭력적일 정도의 압도적인 과일 향이 그녀의 입안을 가득 채웠다.
그것은 마치 망고처럼 단 것 같았으면 복숭아처럼 향긋한 것 같았고, 또다시 파인애플처럼 상큼했고, 마침내 아보카도처럼 기름졌다.
그야말로 온갖 과일들을 하나의 병 안에 넣고 숙성시킨, 과일로 만든 고독(蠱毒)이 있다면 이런 맛이 날까.
거기에 그 과일 향은 일반적으로 과즙에 절여서 구운 고기와는 달랐다.
세레나는 처음부터 쿠르트에게 음식을 만들어달라고 할 속셈으로 접근했었던 만큼 미식에 대해서 나름대로 탐욕스러운 부분이 있었고, 실제로 여러 가지 맛있는 요리들을 많이 먹어왔다.
그중에는 포도주에 숙성시킨 멧돼지 고기 스테이크도 있었는데 그때 먹었던 고기에서도 이 정도의 맛은 느껴지지 않았다.
고기의 잡내가 사라질 정도로 과즙에 고기를 담가놓는다면 그 시간에 비례해서 고기의 잡내가 사라지고 과일의 향이 배어들게 되지만 대신 그만큼 고기 특유의 묵직한 바디감 또한 비례해서 줄어들게 되는 것이다.
물론, 대부분은 고기의 중량감이 줄어드는 것 이상으로 고기에 스며든 과일 향이 더욱 강점으로 작용하기에 거기에 신경 쓰는 사람은 적었지만…….
쿠르트가 구워준 고기를 한 점 먹은 지금, 세레나는 자신이 지금까지 고기의 묵직한 바디감에 대해서 무시하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생각하게 되었다.
마치 포도뿐만 아니라 온갖 과일을 함께 넣고 보름은 족히 숙성시킨 것 같은 아찔한 과일의 향기가 나는데도 탄성과 육향을 잃지 않은 각성종의 고기.
과일 숙성 방식이었다면 필연적으로 고기에 과즙이 스며드는 만큼, 고기 안의 육즙 또한 밖으로 빠져나가는 것이 어쩔 수 없는 손실이었다면.
쿠르트의 조리는 반대로 훈연이라는 과정을 통해서 고기 내의 성분이 빠져나가는 일 없이 구워지게 된 것이다.
이 각성종의 고기는 처음부터 고기의 내부에서 과일의 향을 가지고 있을 뿐만 아니라, 외부에서는 뿔을 이용한 훈연의 방식으로 안과 밖 이중을 과일 향으로 코팅된 것이다.
과연 고기에서 잡내가 나지 않는 것으로 유명한 과일나무 뿔 순록.
가축으로서 기르는 짐승이 아니라 야생동물을 잡았다면, 특별한 손질을 거치지 않는 이상 누린내가 날 법도 한데 그녀의 입안에 있는 고기에는 그저 은은한 과일 향이 맴돌 뿐이다.
하지만 그것이 고기에서 과일의 존재감만이 느껴진다는 것은 아니었다.
어금니로 고기를 물으면 고기의 결이 부드럽게 갈라지며 그 안에서 고기의 담백하고 기름진 육향이 향기롭게 퍼진다.
과일 숙성을 하지 않아서 입안에서 살살 녹을 정도로 부드럽지는 않았지만, 그렇기 때문에 그 탄성 있는 식감이 자신이 먹고 있는 것이 고기향이 나는 과일이 아니라 과일 향이 나는 고기라는 사실을 다시 한번 깨닫게 한다.
그리고 이내 씹으면 씹을수록 점점 어우러지는 고기와 과일 향의 조화.
처음 입에 들어왔을 때의 느낌은 고기의 모양을 한 과일이었다면, 지금은 그저 고기와 과일의 완벽한 하모니.
자신이 씹고 있는 것은 순수한 고기인데 마치 입안에서는 과일과 고기가 융합한 완전히 새로운 음식을 먹는 것만 같은 느낌이 든다.
그러나 애초에 처음부터 조각내서 입에 넣은 고기 자체가 작았기 때문에 그 즐거움은 금방 꺼져버리고 말았다.
마치 성냥팔이 소녀가 피운 성냥불처럼 금세 꺼진 입안의 작은 하모니는, 오히려 먹기 전보다도 더더욱 자신의 공복을 부각하기만 하였다.
“후아…….”
부족한 사람이 진짜 괴로운 순간은 아무것도 몰랐을 때가 아니라 자신이 부족하다는 상태를 인식한 뒤인 법.
그렇게 세레나는 자신의 공복을 채우기에는 턱없이 부족하지만 너무나 황홀한 고기의 여운에 달아오른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다시 자신의 욕구를 해소하기 위해서 다시 한번 나이프를 들고 고기를 썰었다.
마음 같았으면 나이프 따위는 집어 던지고 포크로 고기의 정중앙을 찍어서 그대로 들고서 입가에 기름이 묻는 것조차도 신경 쓰지 않고 마음껏 물어뜯고 싶었지만 그렇지 않은 것은 아직까지 남아 있는 이성이 쿠르트가 지켜보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냈기 때문에 자제한 것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이미 처음의 여유롭고 조신한 모습은 없이, 한시라도 빨리 고기를 썰어서 입에 넣기 위해 조급하게 포크와 나이프를 놀리고 그렇게 잘라낸 고기가 처음 잘라낸 고기의 두 배의 크기는 되어 보인다는 사실은 그녀는 모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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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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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르트가 럽을 바른 고기까지 모두 구워서 자리로 돌아왔을 때 그녀는 이미 맛있게 고기를 먹고 있었다.
어느새 그녀는 처음 썰었던 고기의 4배에 가까운 사이즈로 고기를 잘라서 입에 욱여넣었는데 그 모습은 사실 포크와 나이프를 사용하기를 고집할 뿐, 처음 그녀가 의도했던 모습과는 거리가 먼 것이었다.
덜컥
“다행이군. 입맛을 찾은 것 같아서.”
“쿠, 쿠르트…!”
그렇게 정신없이 자신의 입안에 들어온 고기를 흡입하며 어느새 양 볼 안에 해바라기 씨를 잔뜩 넣은 햄스터 같은 상태가 된 그녀는 럽을 바른 고기를 테이블 위에 올려놓는 쿠르트를 보고 흠칫 놀랐다.
‘아, 안 돼. 이러다간 쿠르트가 나를 왈가닥이라고 생각하고 말 거야. 어떻게든 얼버무려야…….’
“착각하지마. 그냥 네가 구워준 성의를 생각해서 열심히 먹고 있을 뿐이니까!”
그녀의 의도는 자신은 평소에는 이렇게 식사를 하지 않고, 단지 쿠르트가 만들어준 음식은 특별하니까 맛있게 먹고 있을 뿐이란 것이었지만, 결과적으로 그 모습은 영락없이 쿠르트에게 쌀쌀맞고 불친절하게 대하는 모습일 뿐이었다.
아니, 어쩌면 유행이 지나버린 촌스러운 캐릭터처럼 보이기도 했고.
하지만 다행히도 쿠르트는 그에 대해서 전혀 신경 쓰지 않고 자신이 새로 구운 고기를 내밀며 말했다.
“여기 추가 고기다. 마음껏 먹으라고.”
“뭐, 뭐라고…!?”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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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레나는 지금 행복하면서도 괴로운 상태였다.
행복한 이유는 처음 자신이 쿠르트에게 기대했던 대로 그가 만든 고기 요리가 너무나 맛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불행한 이유 또한 그와 같았는데, 자신이 살면서 한 번도 맛보지 못했던 최고의 요리를 먹고 있는 와중에도 자기 마음대로 호쾌하게 고기를 뜯는 것이 아니라, 어울리지 않는 귀족 영애 흉내나 내면서 깨작깨작 고기를 먹어야 했기 때문이다.
비록 그녀가 한 번에 잘라내는 고기는 처음 내숭을 떨며 잘라내었을 때보다 몇 배나 커져 있기는 했지만 애초에 나이프 질을 한다는 것 자체가 그녀에게는 답답한 행위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것뿐이라면 불편할 뿐, 불행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진정으로 그녀를 불행하게 만드는 것은 고기를 한입에 뜯지 못한다는 것이 아니라 술을 함께 곁들일 수가 없다는 사실이었다.
사실 이미, 쿠르트는 그녀가 얼마나 술꾼인지 임무를 하기 전에 봤기 때문에 아무런 의미가 없는 행동이었지만, 세레나는 그것에 대해서 깨닫지 못하고, 혹은 의도적으로 무시하며 술을 입에 대지 않고 있었다.
이렇게 맛있는 고기를 먹으면서 술을 곁들일 수가 없다니.
그나마 다행이라는 사실은 쿠르트가 구워준 고기가 향긋한 향기와 산뜻한 맛을 가지고 있어서 맥주나 증류주보다는 포도주가 어울리는 맛이었다는 것이다.
그녀가 선호하는 주종은 맥주와 증류주였기에 포도주는 있으면 맛있게 마시기는 하지만 굳이 다른 술을 두고 굳이 찾아 마시지는 않을 정도.
만약, 이 고기의 맛이 조금이라도 더 진했다면 그녀는 진작 참지 못하고 맥주를 통 단위로 들이켰을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술에 대한 욕망을 참는 것은 쉽지가 않은 일이었고 조금만 방심해서는 배낭 속에 넣어두고 다니는 휴대용 증류주를 꺼내서 마실 것만 같았다.
세레나는 그 유혹을 떨치기 위해서 차라리 고기를 계속해서 먹기보다는 대화라도 나누는 게 좋다고 생각했다.
“호, 호호……. 고기가 참 맛있네.”
차라리 대화를 나누면서 신경을 다른 곳으로 돌리고, 동시에 쿠르트와 더 가까워질 수 있다면 일석이조다.
하지만 그녀가 필사적으로 짜낸 묘수는 사실 스스로를 외통수로 몰아넣는 행동이었다.
“그래. 입에 맞는다면 다행이네. 아. 맞아. 여기 럽을 바른 고기도 있다. 이것도 먹어봐.”
“러, 럽을……. 발랐다고?”
“그래. 럽이 스며드는 데 시간이 오래 걸려서 우선은 바로 구울 수 있는 그냥 고기를 먼저 내오기는 했지만, 사실 이쪽이야말로 진짜 메인 메뉴라 할 수 있지.”
스륵
쿠르트는 그렇게 말하며 그녀의 앞으로 여러 가지 색의 가루를 바른 고기를 내밀었다.
그리고 그 접시가 그녀의 앞으로 다가오면서 풍기는 폭력적을 넘어선, 살인적인 향기.
안 그래도, 고기 자체의 향기와 훈연을 하면서 배어 들어간 훈연재의 향기로 강렬한 향을 내뿜는 바비큐 고기였는데 거기에 더해서 맛을 더욱 진하게 만든 바비큐 고기라고?
꿀꺽
여러 색의 가루가 발렸음에도 모험가 길드 내의 조명에 의해서 빛이 반사될 때면 윤기가 좌르르르 흐르면서 반짝이는 고기의 표면이나, 매콤하고, 달콤하고, 싱그러움, 고기의 고소함까지 복합적으로 내뿜는 향기.
시각과 후각을 양쪽에서 공격하는 그 럽을 바른 고기를 보는 순간, 그녀는 깨달았다.
‘이것’을 먹는다면 자신은 더이상 스스로를 제어할 수가 없다는 사실을.
이건 분명히 맥주와 어울린다.
방금 전의 고기는 특별히 재료를 더하지 않은 만큼, 다양한 향을 품고 있었지만 이내 고기를 삼키고 나면 입안에 남는 것은 깔끔한 만족감이었다.
하지만 이것은 분명 그 이상으로 파괴력 있는 강한 맛을 내뿜을 것이며 럽을 바르지 않은 고기처럼 깔끔하게 넘어가지도 않을 것이다.
그러니 이 자리에서 쿠르트에게 잘 보이고 싶다면 ‘이것’은 먹지 않는 게 최선이다.
애써 럽을 발라 구워준 쿠르트에게는 미안하지만 여기서는 거절해야 한다.
‘그래. 지금 바로 거절의 말을 하자.’
‘자신은 럽을 바르지 않은 고기만으로 충분하다고.’
‘럽을 바른 고기는 너에게 양보하겠다고.’
그녀의 뇌의 한구석에 남아 있는 이성은 필사적으로 그녀를 설득했다.
그것은 옳은 말이고 반박할 구석이 없는 논리였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눈은 쿠르트가 내밀은 럽을 바른 고기에서 떨어지지 않았고, 그 고기를 밀어내기 위해 그 접시에 올렸던 손은 마치 바위만큼 무거운 등껍질을 가졌다는 천근 거북을 위에 올려놓은 것처럼 움직이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그 접시의 끝을 잡고, 떨리는 손짓으로 조금씩, 천천히, 하지만 확실하게 자신에게로 끌어당기고 있었다.
그리고 지나치게 힘이 들어가서 손가락이 새하얗게 될 정도로 힘을 세게 쥔 손을 움직여서 고기를 잘라내었다.
그리고 그렇게 잘라낸 고기를 홀린 것 같은 표정으로 입안에 넣었다.
하압
오물오물
꿀꺽
그리고 느껴지는 것은 과일 향에 더해서 파프리카, 로즈마리, 마늘, 후추 등 온갖 향신료를 더한 자극적이고 강렬한 맛의 폭포.
그냥 구운 각성종의 고기가 맛의 하모니였다면, 이것은 맛의 오케스트라.
하모니가 혀를 진동시키는 전율을 느끼게 했다면, 맛의 오케스트라는 혀를 넘어서 뇌까지 뒤흔드는 감동이 있었다.
그냥 훈연만으로 한 고기에서는 은은한 단맛과 향이 배어 나왔다면, 이 고기에서는 과일 향만으로는 부족한 부분을 완벽하게 채워주는 짠맛이 있었다.
그 단맛과 짠맛이 어우러지며 만들어내는 시너지 효과는 완전히 고기를 삼키고 나서도 한참을 입안을 맴돌았다.
그리고 느껴지는 것은 불완전함.
오히려 깔끔하게 완결성이 느껴졌던 구이와는 달리 추가적인 요소가 들어감으로써 깔끔함이 무너진 것이다.
‘아, 안 돼! 생각하지마!’
하지만 인간종의 뇌란 생각하지 말라고 생각하면 오히려 더더욱 의식하게 되는 법.
이 고기의 짠맛을 빨리 어떻게든 해야 한다.
이 요리는 이것보다 더욱 완벽해질 수 있다.
그리고 나는 이것을 완벽하게 만들어주는 것이 무엇인지 알고 있다.
그건.
‘아, 안 돼! 그걸 떠올려버리면 더는 되돌릴 수 없어!’
세레나는 필사적으로 자신의 생각을 통제하려 했지만, 그것은 이미 그녀가 럽을 바른 고기를 먹은 순간 끝난 문제였다.
바로…….
‘그만!’
맥주.
맥주였다.
입안에 남아 있는 고기의 기름기와 향신료의 자극적인 맛을 모두 씻어주고, 시원하게 입안을 리프래쉬 한다면 마나를 모두 소모해버린 하루의 피로를 모두 잊고 편하게 녹아내릴 수 있는 것이다.
마법으로 차갑게 식힌 맥주는 쏴아아아아 하며 거품을 일으키며, 엔젤 링을 형성할 것이며 그렇게 넘칠 듯이 올라오는 거품을 우선 입으로 걷어내서 맥주의 첫맛을 본 뒤, 이내 거품이 어느 정도 가라앉은 맥주를 망설이지 않고 목구멍으로 넘긴다.
그때 탄산을 터트리는 맥주의 식감이 식도를 타고 내려가며, 마치 식도 안에서 기포가 터지는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키는 쾌감을 주겠지.
꿀꺽꿀꺽하며 목울대를 움직이며 한 모금이라도 더 많은 맥주를 입안으로 밀어 넣기를 반복하다 보면 어느 순간 이만큼 마셨으면 됐다 하는 만족감에 이르는 감각이 느껴지는 데 이때, 푸하~! 하고 컵에서 입을 뗀다.
그 뒤에 자신의 입술에 묻어있는 맥주 거품을 호쾌하게 닦아 내리면, 맥주를 마시는 동안 참고 있었던 산소가 입안으로 급격하게 빨려 들어가며 마치 눈앞에 보이는 것들까지도 청량해진 듯한 느낌이 들겠지.
꿀꺽
그렇게 기원한 맥주의 맛을 상상해버리고 만 세레나는 결국 두 눈을 질끔 감을 수밖에 없었다.
“아. 몰라! 시발! 웬디! 여기 맥주 한 통 가지고 와!”
그녀의 짧고 엉성했던 내숭이 끝나는 순간이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 님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참고로 저는 맥주보다는 탄산음료를 선호하는 파입니다.
여러분들도 모두 맛있는 저녁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