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37화
과일나무 뿔 순록의 훈연 바비큐
오늘 하루는 느긋하게 쇼핑이나 하면서 쉬려고 했는데.
아무래도 그러기는 어렵게 됐다.
나는 모험가 길드의 직원이 임무의 상세내용에 대해서 설명하기도 전에 일어섰다.
혹시라도 조건을 자세히 들어서 좋은 조건이라면 다른 사람들이 빼앗아 갈 수도 있잖아.
그러니까 일단 선착순으로 입찰하는 게 최고다.
“그 임무. 내가 받도록 하지.”
“하, 하지만…!”
내 말에 모험가 길드의 직원은 당황한 듯 나를 바라보았다.
임무의 내용도 듣지 않고 나서겠다고 해서 당황한 것일까?
하지만 결과적으로는 지원자가 아예 없는 것보다는 나을 테니 다행이라고 할 수 있겠지.
“걱정하지 마라. 임무의 상세내용이 어떻든 내가 포기할 일은 없을 테니.”
“그건 불가능합니다!”
“시도해보기도 전에 불가능하다고 함부로 단정 짓지 마라.”
“그게 아니라……. 이 임무는 은 등급부터 수주할 수 있는데요.”
모험가 길드의 직원은 그렇게 말하며 조심스럽게 자신이 가져온 긴급 임무의 의뢰서를 가리켰다.
과일나무 뿔 순록 각성종 토벌 의뢰
토벌 등급 은
수주 가능 대상 은 등급의 모험가 이상
“....”
아.
길드 직원의 말에 나는 순간 비늘이 오그라드는 것 같은 부끄러움을 느끼고 다시 자리에 앉았다.
젠장.
이럴 때 카리나가 있었다면 바로 대리 수주를 하게 했을 텐데.
다시 자리에 앉은 나는 홀로 아쉬움과 창피함을 속으로 삭여야만 했다.
그때 상심한 채로 앉아있는 나에게 누군가가 말을 걸어왔다.
“하하하! 그거 안타깝게 됐네. 리저드맨 형씨.”
“누구야?”
고개를 돌려 내게 말을 건 인간종을 바라보자 그것은, 내가 모험가 길드의 1층으로 내려갔을 때 보았던 붉은 머리의 드워프 여성이었다.
그녀는 일반적으로 육체노동에 종사하는 일이 많아서 근육질의 체질이 많은 대부분의 드워프들과는 달리 근육이 없어서 얼핏 본다면 십 대 초반 정도의 인간으로밖에 보이지 않는 여성이었다.
오히려 그 여리여리한 모습은 모험가가 맞는지조차도 의심이 될 정도였으니.
붉은색의 웨이브 진 머리카락이 마치 어딘가의 귀족 영애가 아닌가 싶을 정도의 곱상한 외모였지만 그녀의 몸에서 풍겨오는 압도적인 술 냄새와 호전적인 성격이 그나마 그녀가 드워프라는 사실을 유추할 수 있는 유일한 단서였다.
하지만 그런 그녀가 왜 내게 말을 건다는 것이지?
그녀가 내게 말을 건 이유에 대해서 궁금하다는 표정을 지었기 때문일까 아니면 드워프 특유의 직설적인 화법 때문일까, 그녀는 빙빙 돌리는 것 없이 곧바로 본론을 꺼냈다.
“보아하니 저 긴급 의뢰가 받고 싶은 것 같은데 내가 도와줄까?”
“네가? 어떻게 도와준다는 말이지?”
“의뢰를 받고 싶은데 은 등급이 안되어서 못 받는 거잖아. 그렇다면 다른 은 등급의 모험가가 동행해서 대신 의뢰를 수주한다면 되는 거지?”
그녀는 그렇게 말하며 은 등급을 의미하는 모험가 패를 보였다.
과연, 내가 평소에 하던 것과 마찬가지로 대리 수주를 하는 방법을 사용하겠다는 것인가.
하지만 어째서?
내가 비록, 환생한 뒤에는 리저드맨의 마을에서 일생의 대부분을 보냈지만 그렇다고 해서 내가 세상 물정을 모르는 어리숙한 리저드맨이라는 것은 아니었다.
자고로 대가 없는 호의란 것은 없는 법이었다.
나의 등급이 은 등급이었다면 순수하게 같이 의뢰를 해나가기 위해서 파티 권유를 했다고 생각할 수도 있었지만 나는 아직 동 등급에 불과할 뿐이었다.
“나를 파티로 넣어도 너에게는 아무런 이익이 없을 텐데, 무슨 생각이지?”
“뭐? 하하하! 다른 꿍꿍이 같은 건 없어. 그냥 형씨가 저 의뢰를 받고 싶은데 못 받는 것 같아서 도와주려는 것뿐이야.”
그렇게 말한 그녀는 호탕하게 웃으면서 연신 맥주잔을 들이켰다.
이렇게 보니까 진짜 기분이 좋아진 술주정뱅이가 주정을 부리는 것도 같고…….
하기는 무언가 다른 꿍꿍이가 있다고 해도 그건 그때 가서 생각하면 될 일이다.
그 무슨 꿍꿍이가 있다 하더라도 눈앞의 과일나무 뿔 순록의 각성종을 잡는 것보다는 중요하지 않겠지.
때로는 설사 함정이라 생각되더라도 들어가야만 하는 길이 있는 법이다.
과일나무 뿔 순록의 고기가 그러했다.
나는 내가 답변하기를 기다리며 나를 바라보는 드워프 여자에게 말없이 손을 맞잡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하였다.
그렇게 처음 보는 여성과 나의 인스턴트 2인조 파티가 결성되었다.
.
.
.
그 드워프 여성의 이름은 세레나라고 했다.
“뭐, 편하게 레나라고 부르던가.”
그렇게 말한 그녀는 유리병에 담긴 증류주를 홀짝였다.
“임무를 시작했는데도 술을 놓지 않는다니. 정말 은 등급의 모험가인가?”
“후후. 그건 뭘 모르는 소리. 나는 오히려 술을 마셔야만 제 몫을 해낼 수 있다고.”
“아. 그래.”
처음에는 무슨 꿍꿍이를 가지고 내게 접근했나 싶었지만, 막상 같이 의뢰를 수행하게 되면서 알게 된 세레나의 모습들은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엉망이었다.
아무리 드워프들이 술을 좋아한다고 하더라도 임무의 도중까지 술을 마시다니.
이제 보니 무슨 함정이 있어서 의뢰를 받은 게 아니라 같은 등급에서는 더이상 같이 의뢰를 수행해주는 사람이 없어서 한 등급 낮은 나에게까지 눈을 낮춘 것은 아닌가 싶었다.
아니, 저런 태도라면 확실하다고 봐도 무방하겠지.
그나저나 저런 불성실한 태도로 용케도 은 등급을 달성했구나 싶다.
은 등급이라면 그대로 나름 모험가 중에서는 이름을 떨치기 시작하는 수준일 텐데…….
의외로 은 등급이라는 건 아무나 달성할 수 있는 것인가?
내 미심쩍은 시선에 세레나는 증류주를 홀짝이다 말고 이마를 찡그리며 말했다.
“뭐야. 지금 내 말 안 믿는 거지?”
“설마. 기분 탓이겠지.”
아쉬운 대로 파티를 결성하기는 했지만 설마 품행에 하자가 있는 주정뱅이였을 줄이야.
적어도 나를 등 처먹으려는 함정이 아닌 것은 다행이었지만, 그렇다고 주정뱅이 여자애까지 짐으로 달고 사냥을 하는 것도 별로 하고는 싶지 않은데.
이 의뢰만 빠르게 끝내고 다음부터는 아는척하지 말아야겠다.
나는 속으로 그런 생각을 하면서 세레나와 함께 산길을 걸었다.
.
.
.
세레나는 말없이 앞장을 서는 쿠르트의 뒷모습을 보면서 생각했다.
‘비록, 지금은 나를을 못 미더워하고 엮이기 싫다는 티를 풀풀 풍기고 있지만, 막상 마수를 만나고 내가 활약하는 모습을 보면 완전히 생각이 바뀔 수밖에 없을걸.’
그 리저드맨의 자격 심사를 맡은 카리나는 저 리저드맨의 능력을 높이 사서 처음부터 동 등급의 자격을 인정해준 것 같았으나, 그래봤자 동 등급의 모험가일 뿐이다.
‘시작부터 동 등급을 받았다는 것은 제법 유망주인 것 같으나, 그래봤자 베테랑의 영역에 들어간다고 할 수 있는 은 등급의 모험가, 그중에서도 더더욱 특별하다고 할 수 있는 나의 능력에 비하면 별거 아닌 것이나 다름없지.’
실제로 그녀가 친하게 지내는 모험가 길드의 접수원 웬디의 말에 따르면 기껏 모험가 등록을 끝마치고는 처음으로 받은 임무라고는 돌 등급의 삼족계를 잡는 임무뿐이라고 하였다.
그 뒤로는 변변한 임무조차 받지 않고 있다고.
물론 그것은 그녀가 쿠르트가 바다 골렘의 토벌 의뢰를 수행하기 위해서 리일라로 향했다는 사실을 모르기 때문에 할 수 있었던 오판이었다.
바다 골렘 토벌 의뢰는 동 등급의 쿠르트로서는 수행할 수 없었기 때문에 카리나의 명의로만 의뢰를 수행하였고, 그에 따라 그녀는 쿠르트가 삼족계를 잡은 이후로 아무런 경력을 쌓지 못한 풋내기라고 생각하게 된 것이었다.
‘그러니 마수를 사냥하면서 나의 뛰어난 능력을 아낌없이 보여주면 나를 무시하는 듯한 그 눈길은 곧 180도 바뀌어서 선망하는 눈길로 뒤바뀌겠지.’
그다음부터는 일사천리였다.
저 쿠르트라는 리저드맨은 앞으로 그녀와 어떻게든 파티를 맺고 싶어 하게 될 것이 뻔했고, 그렇게 되면 그녀는 비로소 숨겨두었던 그녀의 진정한 목표를 성취하는 것이다.
츄릅
‘아차차. 무심코 침이…….’
그녀의 목적.
그것은 바로 모험가 길드에서 혼자 술 마실 때마다 종종 눈에 띄던 쿠르트의 요리였다.
이번 임무를 통해서 압도적인 활약을 선보여서, 그가 어떻게든 뛰어난 모험가인 그녀와 파티를 맺고 싶어 하도록 만든다.
그러면 세레나는 최대한 튕기는 척을 하다가 결국 못 이기는 척 쿠르트에게 가끔이라면 파티를 맺어줄 수도 있다는 말을 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대신, 그에게 지난날 카리나에게 해주었던 요리를 자신에게도 만들어달라 하는 것이었다.
그렇게 된다면 그는 혹시라도 세레나의 마음이 바뀌어서 파티를 안 맺어주지는 않을까 노심초사하는 마음에 그녀의 제안을 거부하기는커녕 오히려 최선을 다해서 그녀에게 맛있는 술안주를 만들어주려 노력할 것이다.
거기까지 생각이 닿은 세레나는 계속해서 침이 샘솟는 것을 억누르며 바보 같은 웃음과 함께 챙겨온 증류주를 홀짝였다.
“헤헿……. 헤헤헤…….”
그리고 쿠르트는 자신의 뒤에서 들리는 멍청한 웃음소리를 들으며 생각했다.
‘알콜 중독에 이어서 조울증 증세까지……. 진짜로 이번 의뢰가 끝나면 아는척하지 말아야지.’
그리고는 한 가지 더
‘의뢰가 끝나면 마리랑 카리나한테 맛있는 음식이라도 해줘야겠다. 마리랑 카리나 정도면 정말 선녀였구나.’
그렇게 예상치 못한 곳에서 쿠르트는 자신의 파티원 들의 소중함을 깨달으며 두 사람은 각성종이 출현했다는 목격담이 있었던 장소로 향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 님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늦어서 죄송합니다.
...저는 초장 없는 데친 브로콜리 바구니입니다.